[마릴린 먼로의 누드에서 시작된 'Playboy'잡지의 신화-4]
디마지오는 마지못해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인파를 피하기 위해 새벽 2시에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장면을 촬영했지만, 소문이 퍼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녀가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서자 바람에 속옷이 보일 정도로 치마가 펄럭였고, 군중들은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더 높이, 더 높이!”를 외쳤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이자 당대의 어떤 운동선수보다 품위를 중시했던 디마지오는 모퉁이에서 무표정하고 말없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에게는 이 영화가 그녀의 순수함을 멋지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 모든 것들이 금전적 이득을 위해 그녀를 대중 앞에 노출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날 밤 그들은 격렬하게 다턔다. 다음 날 그는 혼자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사실상 그들의 결혼 생활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1954년 말, 그들은 이혼했다. 결혼 생활은 겨우 1년을 채웠을 뿐이었다. 디마지오가 짐을 싸서 집을 나설 때 신문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 그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갑니다. 거기가 내 집이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까운 친구로 남았고, 그의 헌신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수년 후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세 번째 결혼 생활이 무너져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가정부에게 디마지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었다고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디마지오의 대형 포스터를 침실 옷장에 간직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의 불행한 사생활이 그녀의 경력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안정이 필요했던 그녀는, 막 연애를 시작한 아서 밀러와 가까이 있기 위해, 그리고 액터스 스튜디오의 일원으로 합류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녀는 진지한 배우로서 인정받기를 갈망했지만, 연기에 임하는 그녀의 태도는 갈수록 불안정해져 갔다. 밀러는 그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지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 역시 그녀를 실망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56년 7월에 그녀는 밀러와 결혼했지만, 평온이나 안식을 찾지는 못했다. 밀러와의 결혼 생활이 무너져가고 있을 때 그녀는 가정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제는 아무도 진짜 나를 알지 못해. 마릴린 먼로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어? 왜 나는 그저 평범한 여자가 될 수 없는 걸까. …아, 왜 모든 일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거지?” 1957년이 되자 그녀의 정신 건강은 더욱 빠르게 악화되어 갔다. 그녀는 수면제를 더 많이 복용했고 아침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른 어떤 배우들보다도 영화사로부터 착취를 당했고, 전성기 시절에도 턱없이 낮은 출연료를 받았다. 영화사 수뇌부들은 늘 그녀의 성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했고, 그녀를 여전히 멍청한 금발 미인으로만 여겼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를 찍을 때, 영화사 임원들은 그녀가 너무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했고, 그중 한 명이 화를 내며 “당신은 스타가 아니오.”라고 그녀에게 대놓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신사 여러분. 제가 뭐든 간에 영화 제목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이고, 제가 뭐든 간에 그 금발이 바로 접니다.”
1952년 2월, 그녀의 경력이 막 상승세를 타던 무렵 20세기 폭스사에 익명의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를 건 남자는 누드 달력에 실린 알몸의 여자가 바로 그들의 새로운 스타 마릴린 먼로라고 말했다. 그는 10,000달러를 요구하면서, 돈을 안 주면 증거를 신문사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영화사 직원들은 이 전화에 겁을 먹었지만, 돈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돈을 주면 더 많은 협박만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달력 속의 여자가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그녀를 압박했다. 그녀에게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력이 이제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참고 서적: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1950년대 현대 미국의 탄생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