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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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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찰 스크랩 마이산기행(5/6) 은수사에서 탑사로
현림 추천 1 조회 248 18.12.08 18:29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마이산기행(5/6) 은수사에서 탑사로


은수사에서 탑사로 향한다. 은수사에서 탑사는 내려가는 길이라 수월하다.

거리도 200m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 탑사는 두 세 번 방문한 적이 있어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돌탑은 불탑(佛塔)은 아니지만 언제 보아도 경이롭고 매력적이다.

옛적에는 돌탑만 보느라 탑사(塔寺)가 어느 종단 소속인지 별 관심도 못 가졌는데

이번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보니 은수사(銀水寺)와 같이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이었다.


<암마이봉의 타포니(tafoni>

암석이 물리적·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암석의 표면에 형성되는

요형(凹型)의 미지형을 풍화혈이라고 하는데, 타포니는 풍화혈 중에서도

특히 암석의 측면(암벽)에 벌집처럼 집단으로 파인 구멍을 가리키는 말이다.

풍화혈은 해안이나 화강암 산지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비가 내린 후 물이 괴거나 그늘이 져서 주변보다 습하기 때문에

입상붕괴가 선택적으로 촉진될 수 있는 부위에 형성된다.

 또한, 역암, 사암이나 석회암에서도 형성되며, 특히 건조지역에서는 이의 발달이 인상적이다.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면 봉우리에 폭격을 맞은 듯한 작은 굴들이 보이는데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하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마이산의 타포니는 신생대 제4기의 빙하기와 뒤에 온 한 냉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수마이봉에는 그 속에서 어느 스님이 불교 경전인 연화와 법화경을 얻었다는

 화엄굴이 한쪽 깊이 숨어서 석간수를 뿜어내고,

암마이봉에는 비탈진 남사면엔 갖가지 모양의 벌집 동굴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중 암마이봉의 벌집 동굴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런 동굴은 해안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주로 염분이 암석입자 사이에 들어가 풍화가 진행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예부터 알 수 없는 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크기도 높이도 다른 80여 개의 돌탑이 마이산 아래 탑사 골짜기를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외줄탑과 원뿔탑 등은 생김새도 쌓아 올린 양식도 제각각.

이 자연석 석탑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자연석 탑군이다.

 탑 중에서도 대웅전 뒤의 부부탑인 천지탑이 일품이다.

오행을 뜻하는 다섯 개 탑의 호위까지 받는 위엄이 있다. 제일 위쪽에서 아래의 모든 탑을 호령한다.

다듬지 않은 돌을 하나하나 원형으로 쌓아 올라가다가

중간에 합쳐진 양이 틈새 하나 없이 정교하게 짜 맞춰져 완벽하다.

반면 대웅전 앞쪽의 돌탑들은 외줄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자연석을 생긴 모양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을 뿐.

언뜻 보면 한 줄기 바람에도 금방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하지만 몇백 년의 세월 동안 그 어떤 강풍에도 견뎌왔다.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신비한 돌탑이라고 한다.




@마이산 탑은 마이산에 있는 80여 기의 돌탑들로 197642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돌탑의 건립 동기에 대해서는 조선 전기에 나라를 보호할 풍수지리적 목적으로

태조의 명에 의해 쌓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확실치 않고, 다만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마이산 탑사는 1920년경 임실에 살던 이갑룡(李甲龍)이란 사람이

 마이산에 들어와 초가 암자를 짓고 돌탑을 쌓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절 이름도 없었으나 그가 평생 만 불탑을 축성했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탑사(塔寺)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갑룡처사는 1957년에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평생 108기의 탑을 완성했으며 현재 80여 기의 탑이 남아 있다.

이 탑들은 마이산 탑(馬耳山塔)’이라는 이름으로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갑룡의 손자 이왕선이 한국불교 태고종에 사찰 등록을 하면서 정식으로 탑사(塔寺)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월광탑)

@@한국불교태고종은 2002년 기준 한국불교 105개 종단 중 하나로

 19701월 박대륜(朴大輪)을 종정(宗正)으로 추대하여 정식 종단으로 발족한 종단이다.

태고종은 대처승 종단으로 석가세존(釋迦世尊)을 종조(宗祖)로 하며,

고려 말의 고승 태고화상(太古和尙)의 종풍(宗風)을 선양하여 전법(傳法) 하는 것을 종지로 하고 있다.

소의경전은 금강경 金剛經등이고, 기타 경전의 지송(持誦)이나 연구는 제한하지 않는다.

 대한불교조계종을 제외한 종단으로는 최대의 교세를 가지고 있다.

태고종은 대처승(帶妻僧)의 사찰로, 사찰의 개인소유 인정과 승려의 결혼문제를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유지 운영할 수 있는 재가교역자제도인 교임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

비구승인 대한불교조계종과 다르다.


(좌측은 신령각 우측은 약사탑)

@@문광부(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전 명칭) 2002년 자료에 의해

2006년 발표된 국내불교종단 수는 105개가 된다.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절은 573(위덕왕 20)으로

 전하는 심원사(深院寺)로 현재 진안 마이산 일대는 7~8개의 종단이 운집하고 있으며,

태고종 소속으로는 탑사를 비롯하여 구암사, 마이사, 보흥사, 은수사, 쌍봉사 등이 있다.

(신령각이다, 신령각은 예전에 나한전이었다고 한다)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 호 석정)1860325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손이다.

수행을 위해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 하던 중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으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이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 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 부분을 쌓았고,

상단 부분에 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모아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 부분은 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 주석하고 있는 혜명스님은 바로 이갑룡 처사님의 3대손이다.

혜명스님 위로 2대손인 도생 처사님이 이곳에서 수도하였고

지금은 혜명스님과 4대손인 진성스님이 함께 마이산 탑사를 지키고 있다.


신령각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좌우에 지장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다.

처음 관음보살인 줄 알었는데 주련에

<나무대행원보현왕보살>으로 나와 있어 보현보살로 추정된다.

무속에서는 석가모니불을 모실 경우 함께 <강삼세명왕>을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강삼세명왕>은 <금감살타보살>이라고 하며, 금강살타보살은 보현보살의 이명이다.

또한 탑사의 돌탑축조가 음양이치법이나, 팔진도법 등 풍수지리법에 따라 축조된 것으로 보아

 탑사는 옛적에 무속신앙과도 상당한 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미륵보살상 앞 암마이봉은 붉은 담쟁이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대웅전도 신영각의 법당도 동일하게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좌측주련은 <나무본사석가모니불>이고, 우측은 <나무대행보현왕보살>이다.

뒤편 탱화는 영산탱이 아닌 칠성탱으로 보인다.





산신각


산신각에는 이갑룡처사상도 함께 모시고 있다.

남여 산신 두분과 함께  천지탑을 배경으로 이갑룡처사가 좌정한 모습이 산신탱으로 특이하다.


탑사의 80여기 돌탑중 최고명품으로 일컫는 천지탑이다.

<천지탑(天地塔)>은 높이 13m의 원뿔 형태로 하나의 몸체로 올라가다가

두 개의 탑을 이루는 특이한 형태로써 천지탑 역시 마치 한 쌍의 부부처럼

탑사 한가운데 자리 잡아 마이산 산세와 잘 어울린다.

 

1885(고종 25)경에 임실에 살았던 처사 이갑룡(李甲龍)이 수행을 위하여

 마이산 밑으로 이주한 뒤 108기의 돌탑을 30여 년에 걸쳐서 혼자 축조하였는데

지금은 약 80여 기가 남아 있다. 탑사에는 천지탑, 오방탑, 33신장군탑, 중앙탑, 일광탑,

월광탑, 약사탑으로 이루어져 막동 흩은 식 쌓기 탑으로서 27개의 정화수를 떠놓은 기도단이 있다.

 

이곳에서는 겨울철이 되면 각 단에서 정화수 물그릇에서 역 고드름이 올라오는 신비를 보여준다.

주 탑인 천지탑은 제일 높은 그곳에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 쌍의 탑으로 음탑, 양탑 2기로 배열되었고,

높이는 13, 5m이고 동북좌 남서향으로 축조되어 있다.

주 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미적 세련미와 웅장함을 내뿜으며 팔진도법의 축조법이 배열된 천지탑이다.

 

천지탑은 음과 양을 뜻하며, 보는 쪽에서 오른쪽이 하늘을 뜻하며,

보는 쪽에서 왼쪽이 땅을 뜻하는 음양의 천지탑이다.

천지탑은 만 3년이 세월 동안 쌓아졌으며, 낮에는 돌을 나르고 쌓아 올랐고

밤 자시(12)에는 윗돌 음돌 양돌을 올렸다 한다.

천지탑을 완료한 시기는 1926년에 완공한 것이다,

완공된 시기는 전북 정읍 신태인 백산사 터에 은씨라는 사람이

이갑룡 처사를 초대해 천지탑과 같은 탑을 쌓은 기록이 있어 탑사의 탑을 완공한 시기를 알 수 있다.

 

천지탑을 보호하는 33신장군탑이 천지탑을 둘러싸여 있다.

이 신장군탑은 천지탑을 보호하는 신장군으로써 천지를 보호하는 의미를 두고 있고,

하늘의 33천의 우주 세계를 뜻하고 있다. 천지탑으로 남서쪽으로 단을 이루고 그 앞에 오방탑이 배열되어 있다,

이 오방(오행)탑은 동, , , , 북을 뜻한다. 또한 오행(, , , , )의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세상의 만물은 지수화풍의 사풍으로 돌아가며 다시 돌아오는 인연법을 얘기하고,

목화수금토로 만물이 이루어지고 생은 다시 목화수금토로 사라진다는 뜻이 있다.

 

천지탑은 기단부에서 한 몸통으로 축조되어 올라가다가 탑의 2/1쯤 되는 곳에서

 동북으로 나뉘어 두 개의 탑으로 쌓였는데 이는 마이산의 형체와 같은 것으로서

 마이산의 해발 뿌리는 한 덩어리로 땅속에 들어 있는 형상과 같은 것이다.

 천지탑은 정면에서 맞바람을 받고 있으며 천지탑의 힘은

뒷부분 허리 쪽으로 힘이 가해져 뒤로 기대는 형상에 바람을 이기고자 하는 형상된 것이다.

 

피라미드 형식의 하단부부과 상단 부분은 가장자리에 큰 돌을 안쪽으로 기울여 놓고

그 안에 작은 돌, 자갈 등을 넣어서 채우고 큰 돌로 다지면서 튼튼하게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면서

올라갈수록 치수를 줄이면서 피라미드의 형식으로 올라가

상단 삼각형 부분엔 작은 돌로서 가지런히 놓은 탑신의 쿠션 역할을 하고 있다.

 

삼각형 부분에 우물정자로 나무를 엮어 매어 발판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서서 하루 음돌 양돌을 하루 하나씩 올렸다 한다.

 뾰족하게 쌓아 올린 첨두원추형의 막돌 흩은 식 쌓기 석탑으로서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올렸으며 탑의 위엄은 보는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사실 이 탑은 정확한 명칭은 "막돌 흩은 식 쌓기 솟대" 가 맞다,

그 이유는 이 탑은 불의 사리를 모신 탑이 아니고 마을 입구나, 산등선에 있는 돌무덤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돌 하나에 수많은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알리고자 애원하는 솟대인 것이다.

구한말시대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을 하늘에 알리고자 하는 맘으로,

나라의 독립을 기원하는 소대로서 한 민족의 아픔을 하늘에 알리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탑 속에는 조그마한 돌들은 백성을 뜻하고, 탑 기단의 큰 돌들은 독립군을 뜻하는 것이다.























탑사 경내를 빠져나와 탑영제로 가는 길, 단풍이 눈길을 끈다.  
















(명려각)

명려각(明麗閣)은 한날한시에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최초의 부부 시인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 부부의 영정과 시비를 모셔놓은 곳이다.

삼의당(三宜堂) 김씨는 1769(영조 45) 남원에서 사관 김일손의 11대손 김인혁의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택호가 삼의당이다. 여성이기에 이름은 전하지 않고 그 택호만 전한다.

 조선 시대 여성으로서 가장 많은 257편이나 되는 시문을 남겼다.

기록에 의하면 남원시 향교동 처봉마을(현재의 유천마을)에서 출생하여

서당과 향교의 담벼락에 몰래 붙어서서 학도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한글과 한문을 깨우쳤다 한다.

그녀는 나이 18세에 같은 마을에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담락당(湛樂堂) 하립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나이도 같거니와 가문이나 글재주가 비슷하여

주위에서 천생배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고 한다.

 설레는 첫날 밤, 열여덟의 신랑·신부가 서로 주고받은 시가 전해 내려온다.

 



명려각 앞 마당 붉은 단풍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탑사 탐방을 마치고 금당사로 가는 길은 탑영제 수변공원을 지나야 한다.


봉두봉에서 바라 본 탑영제 수변공원길







<탑영제(塔影堤)>다, 마아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의미다.

탑영제 수변공원은 마이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계곡물에 반사되는 마이산 형상이 아름다워

그 주변으로 물 위에 뜨는 부유데크를 설치하여

마치 물 위를 걸으며 마이산 주변을 조망하듯 호반의 특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탑영제 수변공원길을 따라 금당사로 향한다.


~제6부에서 금당사편이 포스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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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12.09 05:51

    첫댓글 감사 합니다
    행복 하세요_()_

  • 18.12.17 17:04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 18.12.20 10:16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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