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잠깐의 휴식
석야 신웅순
언젠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게 초등학교 때였으니 실천에 옮긴 것은 그로부터 60년이나 지난 후였다. 그 때가 엊그제만 같다.
시작한지 3년째이다. 돌아보지 않고 시작했으니 누가 봐도 막무가내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칭찬이 아니었으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은 아내의 권유였다.
당신이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으니 밖에 나가 사람도 사귀고 그림도 그려보라고 했다. 선생까지 소개해주었다.
“선생님, 70이 넘어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그럼요, 할 수 있어요.”
초딩 수준의 할아버지 그림이 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은 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노파심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그림을 오랫동안 처다보았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그림이 바로 나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내 그림이 시적이라고 한다. 수묵 쪽으로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한다. 집사람도 같은 생각이다. 반세기를 먹과 함께 살아왔으니 그게 더 어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초점이 잡혀가는 것 같다.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그런 차원이 아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바로 나만의 그림말이다. 그게 하도 모호하니 하얀 화판을 보면 머리가 하해져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다. 모르니 무작정 생각하며 그냥 시작하는 것이다. 매양 실수를 한다. 언제나 그 많은 실수가 내 그림의 수 많은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의도대로 되는 게 없다는 얘기이다. 아마도 언젠가 그것은 발견이 되어 결국 나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가자.”
대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림도 시창작이나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 데까지 가더라도 어디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니 종국엔 나 말고 딴 사람이야 만나겠는가.
이쯤에서 숨을 고르며 잠깐의 휴식을 가져야겠다. 치열할 필요가 없다.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니니 그저 붓질을 즐거움 삼아 하면 되지 않겠나 싶다. 내가 힘들어 가지 못하면 그림이 나를 끌고 가면 된다. 인연이라면 그림이라는 여석이 언젠가는 나를 만나주지 않겠는가. 그곳이 눈 내리는 곳이면 어떻고 비 내리는 곳이면 어떠랴.
문인화에나 하는 화제를 한국화에다 썼다. 원칙이 어디 있냐 싶어 화제도 세로가 아닌 가로로 써버렸다. 에라, 낙관도 가로로 찍어버렸다. 넉넉하게 둔 여백은 일부러 둔 것이 아니라 그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억지로 잘 못 그려 넣는 것보다야 멋대로 상상하게 놔두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싶었다.
요새 한국화도 서양화처럼 그리는 경향이 많다. 화면이 꽉 차있다. 내 작은 옷에는 걸맞지 않는다. 그러든 말든 어차피 삶의 길도 초행길이니 한국화 녀석도 가는 곳을 내 알 수 없다. 묵의 길이나 다를 게 없으니 붓 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싶다. 언젠가는 긴 기다림 끝에 그대는 나를 다시 알아 볼 수 있을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지 않은가. 그 때의 내 그림은 어떤 시가 되어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아, 신윤복의 미인도 같은 그런 여인을 몇 생이 지난 후에야 시로라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한 인생의 소박한 분홍빛 산을 넘을 수 있을까.
- 2026.5.25.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첫댓글 교수님..새로운 시도 참 좋으네요. ^^
대가께서 말씀해 주심만도 초보는 힘이 납니다.고맙습니다.
@신웅순 아쿠..교수님 !!
대가라니요.
별말씀을 다하세요.
예원 선생님! 대가 맞습니다. 맞고요~~~~~ 교수님 그림에도 홀딱 반했습니다.^*^
왕초보에 그런 말씀을... 응원으로 받겠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