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파가 최고조로 달하던 무렵이다. TV채널을 돌리던 중 한 르뽀 형식의 밀착취재 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보기에도 왜소하고 남루한 행색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보통의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한, 그것도 요즘같이 한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계절에 혼자 몸을 의탁하고 거처하기에는 도저히 힘들 것 같은 허름한 곳에서 생활하는 주인공의 생활 모습이 시선을 붙잡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방랑생활이 몸에 배어 있다고 했다. 가정생활이 평탄지 않았다. 부모형제도 있었고, 결혼도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혼자 몸이 되었다. 일가친척 형제들과도 다 단절이었다. 말 그대로 현대판 방랑삿갓의 자유로운 영혼인지, 발걸음 닿는 곳에서 계절을 나다 다시 훌쩍 떠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마을 다리 아래 얼기설기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의 움막아래서 그만의 생활에 적응했다. 필요한 먹거리며 생필품은 주변에서 구해 가능한의 생활을 영위했다. 그럼에도 버려진 책이며, 하루 이틀 지난 신문을 빠트리지 않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고 있기도 했다.
왜 그런 생활로 접어들었는지? 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지천명 (知天命 ․ 50,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이 넘는 지금까지 방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사연은 곧 그가 병역미필자로서 군 기피와 관련이 있었다. 아버지의 가출로 가정이 어렵던 시절, 어린 나이부터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오면서 자신이 집을 떠나면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하다고 판단해 ‘조금만 더 있다가 가겠다’며 군대를 피하게 된 것이 결국 장기 기피자로 전락되고, 젊은 날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사회 기피와 더불어 은둔의 길로 들어서게 된 요인이었던 것이다.
‘(병역기피가) 후회 된다’고 했다. 한 순간의 판단착오가 결과적으로 ‘지천명’이 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떠돌이로 변방을 돌아야만 하는 한 남자의 상처뿐인 지난과거를 보면서 지켜야 할 의무와 도리를 저버릴 경우 접하게 될 벼랑길이 어떤 것인가를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1980년대 초 기자가 강원도 화천 최전방 GOP(일반전초)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다. 저녁 무렵 야간철책근무를 위해 병사들을 개인호에 투입하고 난 뒤 순찰을 돌때면 당시 이등병이던 A 병사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고 다가서곤 했다. A 병사가 경계근무를 설 경우 다른 병사보다 더 큰 애정으로 곁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며 소대장(소초장)과 병사의 거리감보다 비슷한 연령대 남자 대 남자로서의 정을 나눴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만 해도 GOP의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한겨울 눈이 많이 내리면 강원도 최전방 철책 순찰은 말 그대로 험난했다.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위험한 구간을 지나야 하거나 병사들이 착용하는 동계 방한피복은 너덜너덜 다 달아 헤지거나 중부전선에 휘몰아치는 강추위를 피하기 위해 얼마나 여러 개 옷을 껴입는지 방한화에 걸음걸이마저 뒤뚱 거릴 정도에 병사들의 애로사항도 컸었다. 당연히 소초장의 걱정과 염려도 병사에게 더 쏠리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A 병사는 말수는 적어도 매우 성실했다. 선임 병사들과는 대화가 별로 없어 보였지만 경계 호(초소)에서 소초장에게는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첫 휴가를 받아 놓고 하고 싶다는 얘기도 꺼내기도 했다. 휴가를 출발하던 날 소초장의 ‘특별 휴가비’도 받으면서 “휴가 잘 다녀오겠습니다”하며 씩씩하게 떠났다. 하지만 A는 이후 기자가 그 부대를 떠날 때까지 1년 이상 행방불명되었다. 휴가 미 복귀, 미귀대자로 사고대상자가 되고 만 것이다.
최근 병무청이 시행하는 <병역명문가> 가 각광을 받고 있다. 병무청이 지난 12일 3대 가족 모두가 군 현역 복무를 마친 <병역명문가>를 접수(1.15〜2.20)받는다고 밝혔다. 2004년부터 시행중인 <병역명문가>는 병역 이행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시작됐다. 할아버지부터 그 손자까지 직계비속, 즉 조부와 부·백부·숙부 그리고 본인·형제·사촌형제 등 3대 가족 모두가 현역 복무를 이행한 가문을 일컫는다.
매년 시행하는 이 병역명문가 시상식 현장을 보면서 기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제도가 병역뿐만 아닌 우리사회 전반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제공해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과거에 비해 우리사회 병역기피 현상은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적 신념 등 여타의 사유로 인한 것과는 다른 현상이다.
2017년 말 기준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 간 병역의무 기피자는 265명이다. 병무청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현역입영 기피자 98명, 사회복무요원소집 기피자 24명, 병역판정검사 기피자 4명, 국외불법체류자 139명 등이다.
한 때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인기가도를 달리던 연예인들이 병역면제를 받기위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등 기상천외의 행태를 벌여 사회 문제와 함께 위화감을 조성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중에 가수 유승준씨 사례는 대표적이다.
2002년, 가수 유승준은 군 입대가 확정됐으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병역의무를 이행하겠다고 했음에도 기피한 것이다. 당국의 입국 불허 조치가 내려져 현재까지 16년째 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는 불합리한 결정이라며 항소하고 부모까지 나서 호소했지만 2016년에 진행된 1심과 2017년 2월 열린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볼 때 안타까운 일이지만 병역이행 여부가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입증한 사건이라 할 것이다.
지난 2016년 선출된 제20대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을 제하면 현역 또는 보충역으로 병역을 필한 의원은 전체 의원 중 83.5%로 19대 국회의원의 병역의무 이행률 81.4%보다는 2.1%p 높고 같은 연령대의 일반국민 병역 이행률 70.6%보다는 12.9%p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또 지난해 12월 정부(청와대)가 대변인 발표를 통해 고위공직자 임용에 있어 적용될 ‘7대 비리’ 관련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준에 의하면 당연히 ‘병역기피’가 우선적으로 포함됐다.
병역은 국민의 4대의무이자 대한민국 건강한 젊은이라면 반드시 필해야 할 신성한 가치이기도 하다. 더불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책임 있는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만 강조되는 건 결코 아니다. 한 사람 한사람 국민이 그 의무와 가치, 도리를 다 할 때 그 역할은 더욱 신성하고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 지리라 본다.
나와 우리 가족이 행한 병역이행. 병역명문가, 군필자가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