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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6-1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 반박문을 뷔텐베르크 성당문에 붙임으로, 그 절정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그 이전에서 수없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수없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한마음교회가 속한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입니다. 교회를 일반적으로 ‘개신교’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표현은 ‘개혁교회’입니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있고 난 후, 존 칼빈이 등장하여,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모든 교리들을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하여, “기독교 강요”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루터와 칼빈, 그리고 수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주도한 교회 개혁운동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며, 전 세계의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새로운 교회가 탄생하고, 문화의 지평을 바꾸고, 민주사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종교개혁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오늘날 개혁교회입니다. 종교개혁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개혁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개혁하지 않는 교회는 개혁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6-17절 말씀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오늘 설교 제목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구분할 때,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구약을 율법이라고 부르고, 신약은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을 율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라. 하지 말라”와 같은, 십계명과 같은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신약을 복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신약이 아니라, 구약에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박국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박국서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구약은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지만,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율법을 완전히 지킬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움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하는데, 율법을 100% 지킬 수도 없고, 100% 의로운 삶을 살 수 없으니, 우리에게는 절망 밖에 남은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이 선행으로 행함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공로를 많이 쌓아서, 경건한 삶을 살므로, 뭔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 아닌 지옥에 들어가고자 살아가는 애쓰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좋은 곳, 좋은 세상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부였습니다. 그 당시, 교황은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면죄부’라고 하는 것은 죄를 면하여 주는 증서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누군가를 위하여 면죄부를 사면, 그 사람의 죄가 면하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자기 것도 사고,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의 면죄부도 사면, 지옥에 가 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죄가 면하여져서,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이 일반 사람들에게 가르친 교리였습니다.
죽음 이후, 지옥에서 천국으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오고 갈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한 신부였기 때문에, 교황이 가르치는 대로, 그대로 다 따라했습니다. 매일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조금만한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면, 곧바로, 지도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고행을 하면, 죄가 없어진다고 해서, 바티칸 성당을 올라가는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면서, 한 계단 올라가서 기도하고, 또 한 계단 올라가서 기도하고, 그렇게 몸부림을 쳤지만,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티칸 성당의 계단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올라가면,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루터도 그대로 했는데, 계단을 다 올라가서,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크게 외쳤다고 합니다.
루터는 친구와 길을 가다가, 같이 가던 친구가 벼락을 맞고 죽는 것을 보고,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신부가 되고 나서도, 구원의 길을 찾아 방황했지만, 그 구원의 길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루터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로마서를 가르치기 위해, 로마서를 열심히 읽고 연구하는 중에, 17절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선행을 많이 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구나, 고행을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구나, 바티칸 성당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간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구나.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구나.”
그렇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가 외치기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을까요? 일반 성도들이건, 세상 사람들이건, 면죄부를 사면, 죄가 사하여져서,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간다고 믿게 되었을까요? 왜 교황은 그런 잘못된 교리를 가르쳤을까요?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500년, 그 당시, 고급 언어는 라틴어였습니다.
각 나라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말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성경은 라틴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조선 시대까지 양반들이 글을 우리나라 말로 하고, 글은 한문을 사용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은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구약이든, 신약이든, 오직 라틴어로만 기록해야만 했습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라틴어를 배운 신부들밖에 없었습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영어로 번역하거나, 불어, 독일어로 번역하거나 하면, 체포되어, 종교재판을 받아,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교황밖에 없었습니다. 신부들은 교황이 해석해 준 것을 그대로 낭독할 뿐이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미사 때 사용하는 언어도 오직 라틴어였습니다. 미사를 드리려 갔는데, 미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라틴어만 듣다가 돌아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교황이 세계 모든 주교와 고위 성직자를 소집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세계 어디서나 라틴어로만 진행하던 미사에 자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1965년까지, 세계 어느 나라의 미사건, 자국어로 된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오직 라틴어로만 미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각 성당 담당 신부들은 로마 바티칸에서 내려온 라틴어로 된 그날 예배 순서지를 보고, 낭독할 뿐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으로, 1965년 이후에야. 자국말로 미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미사에 참석한 일반 성도들은 신부의 입에서 나오는 라틴어 말만 듣다가 돌아왔습니다. 성경을 직접 읽을 수도 없고, 자국말로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신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황의 말이든, 신부의 말이든,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라고 하면, 고해성사를 하고,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행을 해야 한다고 하면, 고행을 했고, 사회봉사활동을 해야 죄가 없어진다고 하면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성당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면서, 기도해야만 죄가 없어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고, 그 말을 믿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죄가 없어진다고 하면, 면죄부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로마서 1:17절 말씀을 읽고 연구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성경을 읽을 수만 있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믿으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교황의 말을 믿으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도, 교황의 말을 더 앞세웠습니다.
교황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있었습니다. 교황이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고, “틀리다”라고 하면 틀린 것이었습니다. 교황의 말에는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발명하여,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을 때, 그는 종교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교황을 중심으로 한 로마 가톨릭교회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라고 주장하는데, 그에 맞서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했으니, 당연히 종교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릴레이는 살기 위해서, 재판에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갈릴레이가 잘못했다고 정죄했습니다.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최근에야 바로 잡았습니다. 교황은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는데, “태양이 지구를 돈다”라고 하는 그런 오류를 범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종교개혁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을 때, 종교개혁자들은 무엇을 주장했을까요?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주장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기록되어 있는 성경이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책들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우선시했습니다.
세상 황제조차도 자신의 발 아래에 둘만큼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교황의 말보다도, 성경을 가장 우선시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경을 봐라”
그래서, 루터는 자기 모국어인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다른 종교개혁자들도,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한다고 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체포되어, 종교재판을 받게 되면, 사형에 처해지는 죄였습니다. 왜냐하면, 교황이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오직 라틴어로 기록하고, 라틴어로 읽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들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2:8-9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이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그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을까요?
창세기 15:6절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기 전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과 함께 최초로 할례를 행하기 전입니다.
그러므로, 사라를 통하여, 이삭을 낳기 훨씬 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인정받았습니다.
그후에.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이스마엘과 함께 할례를 처음 행하였고, 그후에 또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의 순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 할례를 행하여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행하여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모세는 언제 적 사람입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애굽에서의 400년이 지난 후의 사람입니다. 모세가 받은 율법으로 아브라함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진짜인 것처럼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세의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면죄부를 구입해야만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면죄부를 산다고, 우리의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만이 사할 수 있습니다.
부적을 사서 갖고 있어야만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상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 가운데에는 다시 한번 세례를 받아야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날짜를 모르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하고 살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죄는 다 용서함 받았으니, 앞으로 지은 죄조차도 이미 다 용서함 받았으니, 하고 싶은 것, 가리지 말고, 다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나쁜 짓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명명백백하게 잘못된 교리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세례를 받는다고 사람이 확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일입니다. 세례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마음대로 살았는데, 앞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결단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서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세례를 두 번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결단한 것이 약해졌으니, 다시 한번 세례를 받으면, 천국 가는 것이 더 확실해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구원받은 날짜를 아십니까?
구원받은 날짜를 몰라도, 천국 가는 것은 확실합니다.
구원받은 날짜를 모르면, 천국에 못 들어가는 일은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마음껏 살아도 되느냐? 이미 앞으로의 다 용서함 받았으니, 죄 지어도 상관 없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니, 그 은혜, 너무 고맙고 감사하여,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지, 어둠이 되고, 부패의 온상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으로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리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요. 죽는 날까지, 그 은혜를 보답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을까?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지금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틀린 것인가를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똑똑하고 위대한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삶의 생명의 양식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만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고,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너무 연약하오니, 우리에게 강한 힘을 주옵소서.
코로나와 함께 해야만 하는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고 있사오니, 우리를 위로하여 주옵소서.
잘못된 교리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