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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길수'의 정인지서문 해석을 읽고서.. | 역사는 고증하는 것이지 추측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
| 2004.12.18 16:59 | 글쓴이: 해 부 루 |
| | | 아래의 글은 훈민정음해례의 정인지서문을 구길수라는 분이 해석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저 아래에 굳맨님이 올려주신 글을 보니 자신만의 방식?이지만 연구도 꽤 하신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야말로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란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4200년전의 가림토제자원리까지 창안하신 것을 보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 분 역시 제자원리를 단군사상의 천부인에 억지로 꿰맞출려고 하는 것이 너무 눈에 드러나 보였습니다. 그 분의 정인지서문의 해석을 보며 제가 느낀 점을 몇가지 추가해 보겠습니다. 푸른글씨는 원문, 붉은 글씨는 구길수님의 해석, 검은 글씨는 저의 느낌입니다.
훈민정음 해례 정인지 서문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은즉 반드시 천지 자연의 문자가 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서 만물의 뜻과 통하게 했고 삼재의 도에 실리게 했으므로 후세에서 능히 바꿀수가 없는 것이다. 有天地自然之聲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이 야기이므로 세종전에 원시한글이 있었다는 것과 이것을 바꾸면 않된다는 말해주고 있다.
이 문장을 가림토의 존재증거로 해석해 버리는 대담성에 정말 놀랐습니다. 이 문장은 아무리 봐도 문자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대원칙을 나타낸 것으로밖에 해석되지가 않더군요. 다시 말해 이 세상에는 먼저 소리가 있고 그래서 인간은 그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문자를 만들어 자연의 이치를 나타내었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자는 아래의 글을 계속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바로 치나의 한자를 의미합니다. 만약 이 문장을 가림토의 증거로 해석하면 아래에 나타나는 문장들 곳곳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사방풍토가 구별되어 소리나 기운이 역시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대개 외국의 말은 그 소리는 있으나 그 글자는 없어서 치나의 글자를 빌려서 그 쓰임에 통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둥근 구멍에 네무난 자루를 끼우는 것 같이 서로 어긋나므로 어찌 능히 통해서 막힘이 없을수 있겠는가? 요컨대 모두 각자가 처소를 따르는 것이 편안할 것이지 강제로 사용하게 하여 같게 해서는 않될 것이다.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字以通其用. 是猶 鑿之 也.豈能達而無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이역시 당연한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글을 버리고 억지로 한자를 쓰게 한다면 않된다는 말이다.
위의 원문해석을 보면 아시겠지만 치나를 제외한 나머지 외국에는 문자가 없어서 치나의 문자를 빌려 자신들의 말을 썼다고 분명히 정인지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마치 둥근 구멍에 네모난 자루를 끼우는 것과 같이 어긋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가림토가 있었다면 치나외에 우리는 이미 우리글을 표현할 고유의 문자가 있으니 정인지가 이런 문장을 썼을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동방은 예악(禮樂)이나 문장(文章)이 치나를 엇비슷 하나 다만 말이 달라서 공부하는 사람은 그 취지를 해석하기가 힘들고 법을 다스리는 이는 그 자잘못 가리는 어려움을 걱정하고 있다. 옛날 신라 설총이 이두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모두 한문을 빌려쓰기 때문에 혹은 어색하고 혹은 들어맞지 않을뿐 아니라 언어사이에 만의 하나라도 그 뜻이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吾東方禮樂文章 擬華夏 但方言俚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昔新羅薛聰. 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이역시 다연한 말이다. 그래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이다.
이제 드디어 우리나라에 대한 글이 나오는군요. 역시 원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설총의 이두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가림토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시말해 최초의 우리 고유의 문자라 할 수 있는 것은 이두였지만 이 역시 한문을 그 근본으로 하기때문에 역시 우리말에는 어색하고 들어맞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것입니다. 위의 원문에 始作吏讀란 구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신라의 설총이 최초로 이두를 만들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결국 정인지는 왜 훈민정음이 창제되어야만 하는지 그 당위성을 지금까지 서술한 것입니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어 간략하게 예의(例義)을 계시하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는데 형상은 옛 글자를 모방한 것이고 (象形而字放古篆) 소리의 원인은 칠조(七調)에 소리의 바탕을 했으므로 삼극(三極) 의 뜻과 이기(二氣)의 묘함이 다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만 가지고도 그 전환이 무궁하며 간단하면서도 요긴하고 정밀하면서도 통달되어 있는 고로 지혜있는 사람은 아침이 다하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이 못되어 배울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하더라도 그 실정(實情)을 알 수 있다. 자운(字韻)이 곧 청탁을 능히 구별할 수 있고, 악가(樂歌)가 율려(律呂)를 고르게 하며, 쓰는 데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고, 이르러 통달하지 않는 곳이 없다. 비록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 마침내 우리들에게 자세히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을 해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명하시니,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犀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濁之能辯.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戾. 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1) 略揭例義以示之...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지금까지는 국 내외의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가 세종의 단독 작품 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몇몇신하 즉 집현전 학사들과 같이 했다 하더라도 일생에 그런 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는 니혼의 신대문자나 인도의 부라미 문자를 모방 했다고 보는 것이다.
위의 구길수님의 글은 훈민정음해례의 발견 이전에 국내외학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해례가 발견된 후 더 이상 이런 논란을 할 필요조차 없는데 굳이 해례의 정인지서문을 해석하는 도중에 다시 해례발견이전의 논란을 들먹이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해례의 제자원리가 집현전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의 원문에도 나讀嗤?세종께서 정인지등에게 훈민정음의 원리를 가르치신 후 다시 너희들이 여러사람에게 이 도리를 가르쳐라고 명을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라고 분명히 정인지가 적고 있습니다.
(逐命詳加解釋 以喩諸人 드디어 (세종께서) 저희들에게 자세히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을 해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분부하시니)
그럼 왕이 책마저도 직접 적어야만 친제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인가요? 이런 유치한 주장에는 사실 대꾸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지만 어쨋든 그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적습니다. 그런데 집현전 학사중 반 이상은 최만리등 훈민정음 폐지론자 들이고 나머지 반 정도는 정인지 파인데 여기의 이 내용을 보면 이들은 이미 만들어진 훈민정음의 해설이나 해석을 하여 반포하라는 명령이나 받았다는 것이니 훈민정음 창제는 확실히 세종 단독으로 한 것인데 이는 정말로 문자 구성의 역사상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세종 혼자서 훈민정음을 창제해다는 것이 그렇게도 불가사의하단 말인가요? 니혼학자들이 계속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들이 한글의 신대문자기원설을 주장할 때 반드시 내세웠던 것이 어떻게 혼자서 이런 문자를 창제할 수 있냐는 것이었죠.
2) 象形而字倣古篆- 자방고전(字倣古篆)은 다른 부분에도 많이 나와 옛 한자를 모방 했다는 것인지 우리의 옛 글자르 모방했다는 것인지 혼동하게 하는데 여기서는 확실히 象形而字倣古篆 즉 그 ‘형상’이 옛글자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옛글자를 한자로 본다면 과연 우리 한글이 단 한군데라도 한자를 닮은데가 있는가? 우선 한자는 ‘ㅇ’ 과같은 원이나 ‘△’ 과 같은 세모지거나 사선으로된 글자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러므로 이는 확실히 원시 한글이라는 가림토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옛글자 篆이 가림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은 저 밑의 글에서 얘기한 바가 있습니다. 백번 천번 양보해도 한글이 한자와 닮은 점이 없으므로 전은 가림토를 말하는 것이다라는 이런 논리의 비약은 너무 심합니다.
3) 雖風聲鶴戾. 鷄鳴狗吠.- 바람소리 새로리 개소리는 한자로는 도저히 그대로 적을수 없는데 이 새글자로는 얼마든지 적을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신(臣)은 집현전 응교 최 항, 부교리 신 박팽년, 신 신숙주, 수찬 신 성삼문, 돈녕부 주부 신 강희안, 행(行)집현전부수찬 신 이개, 신 이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여러 해(解) 및 예를 만들어서 이 글자에 대한 경개를 서술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였으니 그 깊은 연원이나 정밀한 뜻의 오묘함은 곧 신들로서는 능히 펴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시정 업적이 온갖 임금을 초월하여 정음을 지으심도 선대의 이어받은바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다. 어찌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바가 없으니, 인적인 사사로움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문물을 열고 사업을 성취시켜 주실 큰 지혜는 드디어 오늘을 기다림이 있었구나!
정통 11년 9월 상한에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 우빈객 신 정인지는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 於是. 臣與集賢殿應敎臣崔恒. 副敎理臣朴彭年. 臣申叔舟. 修撰臣成三問. 敦寧府注簿臣姜希顔. 行集賢殿副修撰臣李塏. 臣李善老等槿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 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恭惟我殿下. 天縱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於今日也歟.正統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 禮曺判書 集賢殿大提學 知春秋館事 世子右賓客 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
이상을 정리해 보면 훈민정음은 우리의 옛 조상들이 그야말로 자연의 소리를 따라 글자를 만들어 썻으나 당시는 잊혀져 마치 잡초처럼 흩어져있던 가림토를 세종이 다시 정리하고 짜 마추어 새로 만들었으며 그 사실이 이 정인지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상세히 써 있다.
도대체 가림토가 잡초처럼 흩어져있다는 것이 이 서문 어디에 적혀있으며 이를 세종이 다시 정리하고 짜맞추었다는 것이 어디에 적혀있는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레본은 당시 모화사상에 젖은 완고한 선비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여지므로 훈민정음 해레본 서문만 보고 그 제자원리를 단정하거나 우리의 한글이 치나의 학문에 이론적 배경을 하고있다는 학설은 참으로 훈민정음을 모독하는 논리이므로 다시 한번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인지는 세종의 능력에 대해 더할 나위없는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의 오묘함과 그 정밀함은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라며 이 글을 창제한 세종의 능력에 대해 절찬을 하고 있습니다. 또,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란 구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음을 창제하실때 선대에 이어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룬것이다라는 이 글은 역시 훈민정음이 예로부터 전해지던 글을 배낀것이 아닌 세종의 친제임을 증명해주는 글이라 하겠습니다.
또 해례본이 모화사상에 젖은 선비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진다라는 것은 다만 추측이지 않습니까? 이런 추측을 근거로 제자원리를 믿을 수없다라는 말은 참으로 어이없습니다. 그리고 음양오행설은 치나의 학설이므로 이를 이론적배경으로 하는것은 훈민정음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말에서 정말 이분이 동양사학을 연구하시는 분이 맞는가 회의가 드는것을 부정하기 어렵군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하는것이 모독이라면 우리의 역사전체가 모독입니다. 아니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은 서양에서 비롯된 것이니 우리는 현재도 모욕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군요. 어이가 없습니다. 음양오행설은 치나 한국을 떠나서 그당시 동북아 사람들의 우주관이자 세계관이었습니다. 여기에 무슨 국적을 따져 모독이니 어쩌니 하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구길수님의 해석이나 다른 글들을 보면 이 분은 가림토는 분명히 존재했다라는 대원칙을 이미 세운 후 한글에 관한 모든 기록을 거기에 꿰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이분을 검색해보니 재야사학자라고 소개되어 있더군요. 나이도 저보다 훨씬 많으시고 또 우리의 역사에 대해 저보다 훨씬 많이 연구하신 분이신것은 틀림이 없겠지만 한글에 대한 이분의 주장은 좀처럼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는 고증하는 것이지 추측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구길수님의 훈민정음에 대한 글들은 객관적 고증의 흔적은 전혀없고 가림토라는 절대적인 선입견속에 온통 추측과 공상으로만 이루어진 논리라 할 수없는 논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 옮긴이 : 나 랏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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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이런 한글 도둑놈이 학회 주변을 얼쩡거린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하겠습니다.
훈민정음이 가람토 글자를 보고 만들었다는 사람들은 진짜 국수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일제 한자혼용파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뚜렸한 근거가 없이 추측으로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일제 한자혼용파들은 일제에 길들여진 근거라도 있습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 다니 서로 제가 했다고 합니다.
그놈들은 한글을 훔치려는 게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