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가치
에베소서 2:1-10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내 이름 아시죠”를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유명한 CCM 가수인 박종호씨가 부른 찬양으로 가사가 얼마나 가슴을 콕콕 찌르는지 모릅니다. 1980년대에는 주 찬양 1집에 실렸던 “나”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작곡가 송명희 씨는 소아마비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던 분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사랑받던 곡입니다. 1990년 후반에는 오늘 어린이들을 위해 불렀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유명한 곡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조준모 목사의 “그의 생각”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저와 처는 이 곡을 너무 좋아하면서도 들으면 너무 가슴 아팠던 순간들이 떠올라 잘듣지 못하기도 하는 곡입니다.
제가 밴쿠버에 2006년부터 목회를 시작했던 교회에 갔는데, 교인들이 정을 안주고, 안믿고, 정말 괴롭혔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나 했는데, 알고보니, 전임 목회자가 교회에 온지 한달만에 더 큰교회에 기회가 있다고 가겠다고 했답니다. 당연히 교인들이 안된다고 했더니, 한밤중에 짐을 싸서 떠났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목사가 안와서 연락을 해보니, 연락이 안되고, 집이 비워져 있었으니 얼마나 황당했고, 상처를 받았겠지요. 교인들의 상처가 날카로운 칼이 되고, 창이 되어, 저와 처를 찔러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인들 중에 저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하면, 어느 사이엔가 찾아가서 온갖 이간질로 갈라놓더군요. 때로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공격받는 아내를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을 때 남편으로써 미안하고, 참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힘든지 하나님께 그렇게 따졌습니다.
“하나님, 제 잘못도 아닌데,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그때 이 곡을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 찬양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위로도 받고,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저들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저들이 쏟아내는 모든 것을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들이며, 울며 기도하며, 괴로움과 고통을 인내하며 목회를 했던 아픈 추억의 곡입니다.
이와같은 찬양들의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라는 고백입니다. 이보다 귀한 깨달음은 없습니다. 오늘 함께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은 여러분이 귀한 존재임을 아십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이아몬드광산 개발이 시작된 것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한 상인이 남아공의 어느 마을에 머물렀을 때 선반 위에서 광채를 발하고 있는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상인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저 돌멩이는 누구의 것입니까?"
"저것은 내 아들이 산에서 주어온 것입니다."
상인은 주인에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좋은 장난감을 하나 줄테니 저 돌멩이를 내게 주지 않겠소?" 주인은 선반에 놓인 광채 나는 돌멩이를 상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제 아들도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주인은 상인에게 몇번이나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값비싼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이 돌은 케이프타운의 보석상에게 12만 5천 달러에 팔렸습니다. 지금의 가치로는 수백만 달러겠죠.
아무리 비싼 다이아몬드도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가치를 모르면 길거리의 돌멩이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다이아몬드입니까 길거리의 돌멩이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모르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자살도 하고 마약도 하면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복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치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기로 살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한때는 애굽의 왕자였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양치기로 지내던 모세, 그는 자신의 가치를 다 잊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잊지 않으셨고, 모세를 불러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의 가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가치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우리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였다고 말합니다.
2절에 보면 ‘죄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의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불순종의 아들’이었다고 말합니다. 3절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죄로 인하여 지옥의 자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래 살아봐야 100수를 마음대로 살고, 영원한 지옥불의 자녀로 살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5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 은혜로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피가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귀중한 희생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내 편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편이십니다. 여러분의 편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사사기 7장을 보면 기드온와 300명의 용사가 135000명의 미디안 군사와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무기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랬더니 승리했습니다. 이것인 믿는 자의 가치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사랑을 받음을 확신하라.
인생을 살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이 많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보면, 그는 아버지도, 재산도, 그의 모든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15:17)
이것이 이 이야기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우리도 이같은 터닝 포인트가 있었거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고난을 겪어야 이같은 순간을 얻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담임목사로써 우리의 예배와 찬양과 기도 가운데, 이 순간이 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은 어떤 존재입니까?
엡2:10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 번역에서는 "우리는 그의 작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Masterpiece" 우리는 하나님의 많은 생각을 통해서 결정된 놀라운 예술적인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 대화를 나누던 시간은 가장 뜨겁고 더운 시간입니다. 즉 그 시간에는 사람들이 나와 일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집에서 쉬는 시간입니다. 즉 이 여인은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사람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싫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미웠던 것입니다. 부모를 원망했을 것이고, 한숨이 가득했습니다. 요즘 말로 투명인간같은 존재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을 거십니다. 예수님의 대화는 존재의 인정입니다. 우리가 가치가 없는 사람하고는 상대를 안한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았는데,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 대화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회복되고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를 욕하고 왕따 시켰던 마을로, 사람들에게로 뛰어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외칩니다. 이 순간이 바로 구원의 순간이요, 거듭남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사역에 그녀도 필요한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 받은 걸작품으로 다시 회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자신의 사명으로 가치를 높이라
당신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가치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사명을 찾아야 합니다.
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누구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바로 이 선한 일이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만 주신 선한 일을 하는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마세요. 대단한 일은 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됩니다. 대단한 일은 소망으로 품으시고 기도하시고, 당장 할 수 있는 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시간에 10분만 일찍 오시면 교회에 할 일이 많습니다. 강대상에 물이라도 올려놓으세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찬양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