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비거리', 성산일출봉 및 섭지코지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성산일출봉이 지척으로 바라보이는 오정개해안에 조성된 '시인 이생진 시비거리'는 그의 대표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 수록된 시들 중 19개 시를 선별해서 시비(詩碑)로 세워졌다.
이생진 시인(92)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섬시인이다. 아니 전세계적으로도 이생진 시인 만큼 섬을 많이 다니고 섬에 관한 시집을 많이 펴낸 시인이 또 있을까? 1955년부터 시집을 펴내기 시작해 <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후 지금까지 38권의 시집과 여러 권의 수필집을 펴냈으며, 우리나라 섬의 전경과 섬사람들의 뿌리 깊은 애환을 담은 시를 주로 써오고 있다.
특히 1978년에 처음 펴낸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수십 년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문학상,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尙火시인상을 수상했다. 2001년 제주자치도 명예도민이 되었고, 2009년 성산포 오정개 해안에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공원이 만들어졌다. 2012년에는 신안군 명예군민으로 추대받기도 했다. 신안군은 우리나라에서 섬을 가장 많이 가진 지자체이다. 무려 1004개에 이른다.
이생진 시인은 1978년에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 초판을 펴냈다. 당시 이 시인은 시집 서문에서 "햇볕이 쨍쨍 쪼이는 날 어느 날이고 제주도 성산포에 가거든 이 시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일출봉에서 우도 쪽을 바라보며 시집을 펴면 시집 속에 든 활자들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시집에서 시를 읽지않고 바다에서 시를 읽을 겁니다. 그 때 당신은 이 시집의 시를 읽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시를 읽는 것입니다. 성산포에 가거든 이 시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라고 말했었다. 그의 당부대로 난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을 배낭에 넣고 성산포에 갔다. 성산포 '이생진 시비거리'에서 시집을 꺼내자 고향 일가친척들을 만난 듯 시집 속 활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가 시가 되어 술 취한 듯 비틀비틀 시를 읊었다.
성산포에서는/남자가 여자보다/여자가 남자보다/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바다는 제 말만 하며/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이생진 시 <술에 취한 바다> 전문
‘이생진 시비거리'는 우측으로 성산일출봉이 우람하게 솟아 있고 좌측으로는 우도가 손에 잡힐 듯 누워 있는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생진 시인의 대표시 중 <무명도>라는 시가 있다.
저 섬에서/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한 달만/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한 달만
그리운 것이/없어질 때까지/뜬 눈으로 살자
40여 년 전 일출봉에 올라가 시심에 젖었을 때 이생진 시인은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예쁜 섬에 취해 <무명도>라는 시를 지었다. 이 섬은 우도인데 그는 당시에는 이 섬의 이름을 몰랐던 것 같다. 섬의 이름을 알고 있었든 몰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설령 섬 이름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 섬은 시인에게는 <무명도>로 남아 있는 게 헐씬 시심을 깊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생진 시인은 지금도 이 마음을 가슴에 간직하고 우도를 찾는다고 한다. 열 번 가고 스무 번을 가도 늘 그 때 그 마음이라고 말한다. 이 시는 작곡가 변규백 씨가 곡을 만들고 하덕희 씨가 고운 목소리로 불러서 서울의 대학로와 인사동 및 우이동 일대의 시낭송 자리 등에서는 늘 낮익은 노래로 애창되고 있다. 또, 작곡가 노명희 씨도 새로 곡을 만들고 김준곤 가수와 함께 직접 노래를 불러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우도 가는 성산항 길목에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식당도 있다. 성산포에 사는 한 주민이 이생진 시인의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너무 좋아해서 시인의 허락을 받아 식당 간판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식당에는 성산포 및 우도에 관한 이생진 시인의 시들을 액자로 만들어 여러개 벽에 걸어놓고 있다. 이 식당은 고등어 및 은갈치조림, 각종 해산물 구이 등 제주도 토속의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내놓고 있다.
제주도 여행에서 동남쪽 해안에 위치한 성산일출봉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해 뜨는 오름으로 불리는 성산일출봉은 약 5천년 전 얕은 수심의 해저에서 수성화산 분출에 의해 형성된 응회구이다. 일출봉 높이는 180m. 그리 높은 암봉은 아니지만 섬 봉우리의 특성 때문에 제주도 동쪽 해안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고성처럼 웅장해 보인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면 정상 전망대에 이른다. 분화구가 사발 모양이다. 약 5천년 전, 상승하던 마그마가 용암층 내에 포함된 지하수와 반응하여 강력한 수성분출이 일어났다. 지하수가 용암을 통해 끊임없이 화도로 공급되어 분출이 끝날 때까지 수성분출이 지속되었다. 그 결과 일출봉의 분화구는 분석(일명 '송이')이나 용암으로 채워지지않고 현재와 같이 사발 모양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성산일출봉은 수성화산의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 420호와,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및 201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다.
성산일출봉에서 내려오면 동쪽은 우도 방향, 서쪽은 광치기해변으로 이어진다. 광치기 해변은 썰물 때면 드넓은 평야와 같은 암반지대가 펼쳐진다. 그 모습이 광야같다고 하여 광치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치기는 제주어로 '빌레(너럭바위)'가 넓다는 뜻이다. 광치기 해변은 제주 올레 제1코스의 종착점이자 제 2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생진시비거리에서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을 거쳐 조금 더 가면 섭지코지해안에 이른다.
섭지코지는 코지(코지곶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코의 끄트리 모양 비죽 튀어나온 지형이다. 위치상으로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 해안에 돌출되어 있다.
섭지코지 여행의 으뜸은 단연 3-4월 코지 끝 언덕위에 올라 눈이 부시게 피어난 유채밭 사이를 거닐면서 섭지코지의 해안 절경과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코끼리 모양의 성산 일출봉의 장관을 함께 마주하는 것이다. 특히 이곳의 유채꽃은 밝은 햇살과 푸른 바다빛과 어울려 그 어느 곳에서보다 더욱 선명하고 고운 빛깔을 띄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6월에는 유채꽃 시기는 지나고, 황금색 금계국 꽃밭이 한 철을 이루고 있었다. 금계국은 영어로 Golden Wave이다. '황금색 물결'이라는 영문표기도 멋지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섭지코지를 한바퀴 돌아보는 데는 도보로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급하지 않다면 차를 타고 휙 지나치는 것보다는 소풍나온 기분으로 걸어서 산책을 즐기기를 권한다.
섭지코지는 제주도에서 가장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단적비연수’, ‘이재수의 난’, ‘천일야화’, 드라마 ‘올인’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이병헌, 송혜교 등이 주연한 드라마 '올인'에서는 섭지코지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수녀원으로 나온다. 올인의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이병헌이 프로갬블러로서의 화려했던 과거를 접고 섭지코지 수녀원 앞에 하얀 집 한 채를 지은 후 옛 연인 송혜교에게 '방 하나 줄테니 함깨 살까?'라고 한마디 던진다. 송혜교는 눈물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생진 시비거리 및 섭지코지 가는 방법은...
성산일출봉에서 성산항 가는 중간쯤 오정개해안에 이생진시비거리가 있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 눈에 보여 경관도 매우 좋다.
섭지코지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 해안에 돌출되어 있다. 섭지코지 주소(주차장 기준)는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62-3. 외지인들에게는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성산일출봉에서 버스를 이용할 경우 701번 버스-신양리입구 하차-도보 50분. 이보다는 오히려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택시를 타면 요금 5천원 내외로 편하게 찾아갈 수 있다(성산포콜택시 064-784-3030,3031).
성산포 이생진 시비 거리
성산포 이생진 시비 거리2
성산포 이생진 시비 거리3
성산포 이생진 시비 거리4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2
성산 일출봉3
성산 일출봉4
성산 일출봉5
성산 일출봉6
광치기 해안
광치기 해안2
광치기 해안3
섭지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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