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이사야 19:22-25/ 하나님의 백성 이집트와 앗시리아
본문(25절)은 도전적입니다. 이방 나라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내 백성 이집트야, 내가 손수 만든 앗시리아야”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말씀인데, 당시 유대인들은 오죽했을까요? “어떻게 이방 나라인 이집트와 앗시리아를 우리와 같은 주님의 백성으로 취급하냐”며 볼멘소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은 이 구절을 ‘이집트와 앗시리아에 있는 내 백성’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앗시리아를 ‘내 백성’이라고 칭하시는 것을 얼마나 납득하기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요나서의 이야기가 이와 비슷합니다. ‘내 백성’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니느웨를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요나는 이방 나라를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납득하지 못하고 탐탁지 않아 합니다.(욘 3:10-4:11) 위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내 기준에서야 이방 나라지, 하나님께는 모두 다 당신의 백성, 당신께서 지으신 당신의 소유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러시다면 우리의 생각과 입장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디까지가 믿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믿지 않는 것일까요? 그동안 우리는 이렇게 재단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종교 안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인 자와 아닌 자를 구별했습니다. 이러니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이스라엘과 함께 ‘내 백성’이라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함께 예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23절)
이 예배는 이사야의 전체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1장을(1:11-17) 통해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삶이 뒤따르지 않는 이스라엘의 제사를 거부하시며 참된 예배를 알려주시는데, 그 내용은 “억압하는 자들을 꾸짖고,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이집트와 앗시리아가 함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을 포함한 이 세 나라가 세계에 복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24절)
이런 의미에서 3·1운동은 우리에게 뜻깊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억압, 폭력, 착취에 대해 연대하여 저항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우리와 다른 천도교·불교·개신교라는 이유로 함께할 수 없다며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민족과 나라, 사람을 구하는 데에 종교가 따로 있냐며 함께 힘을 모았습니다. 그 정신이 있어 지금의 3·1운동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개신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인 저들과 어떻게 함께하냐며 배척하지 않고, 저들도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긴 정신이 3·1운동에 깃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마음·뜻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3·1운동에 깃든 이 정신을 본받아,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연대하여 이 예배를 드림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