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정리하다 눈에 들어왔어요. 오래 전 일인데 그때가 새로워서 함께 나눕니다)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
영원한 오월의 신부이신 나의 어머니!
살랑거리는 작은 잎새의 속삭임들이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전구하시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 같은
빛나는 초록의 오월입니다.
어머니의 숨결이신 바람 소리와
햇빛의 반짝임인 저 나뭇잎들은
밤 사이에도 한 웅큼씩 여름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어머니를 향한 저의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늘 제 자리 걸음인 듯 하여
이 시간의 어둠이 저에겐 오히려 위로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아들이 목에 난 물혹을 수술하던 날
목을 감싼 두툼한 거즈를 바라보며
침대 모서리에서 저의 무능함을 아파하던 그 날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꼬옥 붙들고 있던 작은 묵주는
어머니가 주시는 생명줄이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온 힘을 다 해 붙들고 있는
엄마의 치마폭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우주였던 그 치마폭은
저와 아들을 감싸 안았고
무더운 팔월의 병실 모퉁이도
그리 힘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면
가슴 저 아래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작은 뭉게 구름이 있습니다.
푸른 풀밭 위를 마구 뛰어다니는 강아지의 행복함 같은,
젖내나는 엄마 품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는
갓난 아기의 편안함 같은,
그리고 가끔은
촉촉히 내려 앉는 가을 안개비 같은
애잔한 뭉게 구름이 있습니다.
혼자 운전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길을 잘못 들어
어둑한 산 길 비포장 도로로 접어 들 때가 있습니다.
차를 돌릴 만한 공간도 없는
깎아지른 절벽이 내려다 보이는 외길을
꼬불꼬불 올라 갈 때의 그 아득함.
때로는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지만
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차선조차 알 수 없는
기막힘과 두려움의 도로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앞 서 가는 자동차의 깜빡거리는 희미한 불빛은
얼마나 큰 희망이며 위로인지
거기에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운전을 합니다.
돌아보면 삶의 고비고비
크고 작은 아픔들로 목이 메일 때
보일 듯 말 듯 숨통을 틔어 주던 작은 불빛은
언제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의 파아란 겉 옷 자락이
왜 그리도 길게 드리워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랑하올 어머니
성지의 푸르름이 더욱 짙어 갑니다.
이제 이 곳 성지도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새 터로
보금 자리를 옮겨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많은 이들의 기도와 희생이
순교자들의 통공에 묻혀
하느님께 이미 다달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핏빛으로 물들었을 수구문 계곡위로
끊임없이 흘렀을 어머니의 피눈물이
긴 세월 동안 이 곳을 지켜 오셨을 것입니다.
어머니,
이 저녁을 마지막으로
저희는 또 한 해의 오월을 보냅니다.
장미 향기 그윽한 뜨락 같은 당신의 오월을.
돌덩이처럼 굳은 마음속에
묵주 기도의 씨앗이 가물가물 싹 터오르던
희망의 오월을 말입니다.
125위 시복 시성의 영예로운 이름 속에
이 성지를 지켜주고 더욱 빛내 줄 한덕운 토마스 순교자를
새 터와 함께 다시 한 번 어머니께 봉헌합니다.
힘들고 지친 영혼들의 위로자이신 어머니!
산 이와 죽은 이의 통공속에
이 성지를 찾는 모든 이들의 염원이
평화의 물결을 이루게 하소서.
작은 촛불들의 일렁임이 향내처럼 피어 오르는 거룩한 이 땅에
어머니를 기리는 찬미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소서.
언제나 두 팔 벌려 안으시고
두 손 모아 기도하시는 당신의 모습처럼
우리 모두 그렇게 살게 하소서.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7년 5월 마지막날 밤에 남한산성 순교 성지에서
봉사자 박명순 드보라 드림
첫댓글 뜻깊은 성지에서 봉사하셨네요 세상 모두의 어머니처럼 열두폭 치마로 감싸안으시는 성모님의 사랑이 잘 느껴지는 편지입니다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