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힐링 여행, 1박 2일 제천관광
-코로나로 극장대신 관광지 찾은 영화모임
어느새 晩秋, 우리 영화모임(이상호 장 옥 정운종 최귀조)은 지난 10월 8일 벼르고 벼르던 제천 관광길 KTX-이음에 몸을 실었다. 몸이 불편해 함께 하지 못한 이상호 회우에겐 미안 했지만 김홍운 상임이사의 자상한 안내 스케줄이 돋보인 1박 2일 일정은 한마디로 환상의 힐 링 여정, 그 1박 2일을 돌이켜 본다.
(글: 정운종)
퇴계 이황과 두향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옥순봉
어린 시절 소풍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서니 비가 온다는 예보를 깨고 비교적 쾌청한 날씨가 발길을 가볍게 한다. 청량리 발 09시, 제천 역엔 1분 1초도 어김없는 도착 시간 오전 10시 5분,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철도여행길이었던 청량리~제천이 최첨단 고속 KTX 이음으로 가까워진지 불과 몇 달 전, 그 옛날 전기 기관차로 4시간이나 걸렸던 거리를 1시간 5 분 만에 가다니 격세지감이 남달랐다. 몇 달 전 준공돼 말끔히 단장된 제천 역사도 자랑스러웠지만 택시로 청풍면 ‘예촌’ 식당에 도착해 마주한 오찬은 더덕 무침을 곁들인 약 채락 메뉴. 꿀맛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밥상이다.
여기서 도보로 20여분,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기위해 걷는 강가엔 무성한 가을 채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람선에 올라 보니 저 멀리 옥순대교가 시야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옥순봉, 그 옆엔 구담봉이 우리를 굽어보며 어서 오라 손짓한다.
옥순봉은 그 옛날 퇴계 이황과 두향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봉오리다, 관기였던 두향의 글제주가 퇴계를 울렸으니 그가 남긴 이별가 한 구절 ‘이별이 하도 설워 잔들고 슬피 울며/어느 듯 술 다하고 님 마져 가는구나/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는 언제 들어도 단장을 애이는 듯 심금을 울린다. ‘숨긴 듯 내보인 듯 여며진 그리움이 석벽을 감싸 돈다.‘는 어느 시인의 빼어난 묘사에다 단양 8경과 제천10경 중 일부인 금수산, 월악산, 정방사 등의 다양한 절경이 선장의 구수한 안내방송으로 가슴에 파고드는가 싶더니 뱃머리는 어느새 장회나루를 도라 오던 뱃길로 회귀 한다.
유람선 위에서 약 1시간 20분 동안의 힐링 여행을 마친 우리 일행은 청풍호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다시 걸어야했다. 승용차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걸을 만 한 거리, 도착 즉시 케이블카에 몸을 실으니 말 그대로 온 천지가 내 세상 같은 기분. 이래서 모두들 하늘을 나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가. 창공을 바라보니 온통 환상의 나래가 춤추듯 펄럭인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비봉산(해발 531m) 정상에 오르니 빼어난 풍광에 놀란 관광객들의 감탄사가 천지를 진동한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청풍호, 다도해를 보는 듯
케이블카 상부 정차장 비봉산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구하려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청풍 호를 바라보니 흡사 다도해를 보는 듯 한 풍광이다. 관광객의 기호를 다양하게 충족시키고 있는 정상 휴식공간에서 커피 한잔에 피로를 풀고 다시 하산하는 케이블카에 올라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주차장엔 저녁식사를 예약한 ‘금성가든’에서 보내 준 승용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 메뉴는 제천의 명물 송어 회 한사라에 빠가사리 매운탕, 어찌 반주가 없을 손가. 숙소인 청풍호 발리 호텔은 이곳에서 250미터 지근거리, 피곤한 기색도 없이 담소를 거듭하다 모두들 12시가 넘어서야 꿈나라로 직행한 모양새다.
둘째 날 제천여행의 백미는 역시 의림지 관광, 상주의 공검지(恭儉池),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로 제방의 역사가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방 길이 530척(尺), 못의 둘레 5,805척이나 되는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친 아름드리 노송들이 걸음마다 위용을 뽐내며 어서 오라 손짓하는데 누가 읊었는지 ‘솔잎에 이는 바람 마음을 행궈주고 폭포는 흰 갈기로 욕망을 베어가네 영호정 단청에 깃든 저 세월이 빛나도다.’ 둘레길 난간에 전시된 시한수가 정겹기 그지없다.
‘백반기행’으로 유명세 치솟은 제천역 시락국 밥
이날의 진수는 제천역전 시락국 오찬, ‘백반기행’으로 유명세가 치솟은 만화가 허영만 화백이 작년 1월 찾아 더욱 소문난 집,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까지 등록 돼 있단다. 다양한 종류의 장아찌 반찬들이 빼곡하게 놓여 져 있는 가운데 시락국 밥 (시래기 밥+강된장+시래기 국. 값 7,000원)으로 배를 채우다 보니 늦은 점심시간인데도 찾는 손님이 줄을 잇는다. 당초 계획했던 행선지 베론 성지와 자양영당은 예전에 들른 곳이라 생략했지만 베론성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신학교가 건립된 곳이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심산유곡(深山幽谷), 계곡이 깊어 배 밑 바닥 같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는 이곳엔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어 천주교 신도들의 성지순례가 1년 내내 이어진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37호인 자양영당도 제천에 가면 들러 볼만한 명소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인 유중교(柳重敎)가 1889년(고종 26)에 창주정사(滄洲精舍)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고 1895년에는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이 8도 유림을 모아 창의(倡義)의 비밀회의를 연 곳으로 한말 의병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의림지를 굽어보는 용두산, 그 넘어 엔 ‘울고 넘는 박달재’가 관광객을 맞느라 영일이 없다 .
이런 역사의 현장과 관광명소를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으나 한동안 코로나로 영화 감상을 못한 보상치곤 그런대로 짭짤한 여행, 시종일관 수고를 아끼지 않은 김홍운 상임이사의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일요영화모임 16년 그 쏠쏠한 재미
우리들 영화모임이 태동한 것은 2005년 8월 어느날 지용우 조성해 이상호 정운종 네명의 회우가 청풍호반에서 개막된 제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된 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막작으로 상영된 일본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스윙 걸즈'가 지금도 눈에 선하지만 그 후 가끔 일요일에 만나 영화를 보거나 야외 나들이를 계속해 왔으니 16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셈이다. 이 모임이 정례화 된 것은 2008년 말레지아에서 손자를 돌보던 이상호 회우 귀국을 계기로 지용우 이상호 최귀조 정운종 회우가 거의 매주 일요일 빠짐없이 만나왔고 지용우 선배가 작고한 뒤엔 매사에 역동적인 장 옥 회우가 합류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최귀조 회우가 그동안 수첩에 꼼꼼히 기록해 놓은 화제의 개봉작만도 1백 70여 편에 이르고 볼만한 영화나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을 때는 점심을 같이하면서 이런 저런 세상이야기로 시간을 죽이거나 서울 근교 유원지 등으로 나들이 하는 재미도 쏠쏠했다.(2018년 5월 25일자 경향사우회보 제57호 참조) 야외 나들이로 즐겨 찾은 곳은 이상호 회우의 풍부한 관광지 정보가 주효했다. 두물머리, 세미원, 서울의 숲 공원, 자작나무 숲길, 송도, 월미도 교동도 등 서울 근교 나들이에서부터 풍물시장과 재래시장 투어로 보고 맛 본 즐거움은 노년의 여유와 풍요로움이 아닐까, 힐링속에 지나 온 세월이 꿈만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