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준과 노호영의 2라운드 경기를 관전하다.
7월 10일 우중충 했던 어제의 날씨와는 매우 다른 화창한 날씨의 4번 코트로 향하기 위해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10시 30분부터 첫 번째 경기로 한국 주니어 김장준 선수가 뛰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구부터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하여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든 기자들 사이에 콕 박혀 누가 오는가를 기다렸다. 영국 여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수 많은 군중들 사이에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실상 가까이 보니 그 여배우는 너무나 가녀려서 테니스코트에 세워 놓으면 쓰러질것 같았다. 너무나 유명한 여배우가 센터코트로 윔블던 8강 경기를 보러 가는 여정은 사람들한테 치여 걸음걸이가 쉽지 않았다.
김장준은 초반에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그런데 중반 이후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서둘렀다. 하필이면 상대 선수가 영국의 유망주였는지 응원석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니 우렁찬 박수로 힘을 실어주었다. 여기저기서 찰리 찰리를 외치는데 힘을 받아서인지 결국은 찰리로베르손에게 세트 스코어 2대 3으로 졌다. (64.67.36)
두 번째 경기로 이어진 노호영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스코어는 뒤지고 있었지만 침착하게 경기를 해 나가는 것이 그래도 잘 헤쳐 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응원석에는 황동현 김장준 장가을까지 한국의 주니어들이 모두 다 출동해 응원하며 힘을 실어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 후반전에 갑자기 응원석에 모이더니 와일드카드 받아서 출전한 마크 케빈은 세트 스코어 1대1에서 타이브렠 10대 6으로 노호영을 제압했다. 경기를 마친 후 코트 밖으로 나오는 노호영 선수에게 많은 어린이들이 달려가 사인해 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무엇이 그런 인기를 한 몸에 받게 하는지 의아했으나 패자에게도 공평하게 마음을 쏟아주고 있는 현지인들이 감사할 뿐이었다.
두 게임을 집중해서 보고 나니 진이 빠져 눈이 안 보일 정도로 급속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응원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초반부터 희망이 없었다면 설렁설렁 놀면서 관전했을 터인데 김장준과 노호영 모두 다 충분히 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먼저 앞서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미디어 실에 들어와 진한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힐로 향했다.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힐에 모인 사람들은 햇빛 샤워를 하기 위해 해변에서처럼 윗 상의를 벗고 누워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누리는 것, 자신이 소망하는 것에 충실한 유럽인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힐의 천연 잔디는 어제 종일 내린 비로 아직 질펀하게 젖어 있었지만 나름 준비해 온 각양각색의 깔판으로 자리를 만들어 누워있거나 비스듬한 자세로 센터코트에서 열리고 있는 리바키나와 스비톨리나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이제 한국주니어 선수들은 오로지 복식 경기만을 남겨 놓고 있다. 마지막 6번째 경기로 배정된 장가을 선수의 복식 경기가 오후 7시 넘어 4번코트에서 진행되었는데
미국팀에 완패했다. 평소 손발을 맞춰온 미국 선수들은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며 압도적으로 게임을 이끌어 갔다. 한국을 대표하는 주니어 노호영도, 김장준도 복식경기에서도 졌다. 이번 윔블던의 잔디코트에서의 경험이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글 사진 런던 윔블던 송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