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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모든 사람을 위한 진리
디모데전서 2:1~7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당시 거짓 교사들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에베소 교회 내에서 사도를 대신하여 교회를 지도할 디모데에게 목회 지침을 내려줍니다. 디모데는 사도의 가르침을 유념하여 교회 내부에서 거짓 교사들이 거짓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막고 흔들리는 교회를 안정시키는 일을 감당해야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먼저 교회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며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주고자 합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에서 사도가 가려쳐 주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복음 진리의 원리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기도 사역의 우선성과 기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드려져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사도는 디모데에게 교회 사역을 할 때에 성도들을 권면하여 기도를 하도록 권면하라고 말하는데, 그것을 ‘첫째로’ 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권한다는 의미는 사역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두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역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역은 기도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라는 특별한 상황도 사도가 염두에 두고 말씀한 것이지만, 다른 교회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권면입니다. 교회가 기도하는 것을 첫째의 사명으로 삼아야 할 만큼 기도는 중요한 사역입니다. 우리도 이 점을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요? 사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여기서 기도의 대상은 믿는 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교회가 기도해주어야 할 사람들은 인종이나 국적이나 사회적 지위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을 기도해줄 대상으로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도 당연히 기도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로마 시민만 아니라 헬라 사람들도 포함되고 그 외에 야만인이라 일컬어지는 스구디아인 곧 스키타이 족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지식인이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인이건 상관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도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만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교회밖의 사람들까지도 위하여 기도해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모든 나라와 백성들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만유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주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세상 모든 나라와 백성들을 다스리고 기르시는 만유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 하나님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교회입니다. 이방인들도 신을 부르고 기도하지만 그들의 신은 참 신이 아니요 그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줄 수 없는 신들입니다. 오직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 아버지께서만이 참 신이기 때문에, 그를 알고 믿는 교회와 성도들만이 하나님께 올바로 기도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귀한 특권과 영광임을 알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어야 할 사명도 있음도 자각하고 이 사명에 늘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무엇보다 먼저 에베소 교회에게 가르치라고 가르친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중요한 우선 순위를 가진 사역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교회가 기도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교회 자신만을 위한 기도만 아니요 교회 밖의 세상 모든 사람들까지도 위하여 기도해줄 권세와 특권과 무거운 책임감까지 가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여기서 사도는 성도들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를 네 가지 단어를 써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라고 하였습니다. 네 가지 단어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네 가지 단어가 같은 의미를 반복한 것은 아니기에 세분하여 구별하자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간구’는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긴박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병이나 사고나 고통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 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절박하게 청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요 예배적 언어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뢰며 경배하는 기도입니다.
‘도고’는 ‘엔튕크세스’라는 헬라어로서 ‘엔튕카노’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그 단어는 ‘만나서 간절히 청원하다, 만나서 담화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누군가를 위하여 간절히 중재적 청원을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치 모니카가 자기 아들 어거스틴을 위하여 오랫동안 하나님께 그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드린 것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성령께서도 구원받은 자들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엔튕카노’를 한다고 로마서 8:27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가까이에서 대신하여 탄식하며 매달려 기도하는 자세가 바로 ‘도고’인 것입니다.
‘감사’라는 것은 당연히 그 사람의 선한 일과 수고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알려 축복해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강조점이 다른 네 가지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사도가 정확히 이렇게 세분화된 기도를 말하기보다는 모든 형태의 기도를 전부 동원하여 기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 안의 믿음의 교우들뿐 아니라 주 안의 한 형제 자매인 모든 교회의 성도들뿐 아니라 아직 교회를 나오지 않고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까지도 아무런 인종이나 언어나 혈통이나 문화, 정치적 제약 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기도해주는 것을 교회와 우리 성도들의 책임으로 알고 이를 실천하기를 늘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의 기도가 너무 이기적이고 제한적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합시다. 교회는 이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윤리적 의미로서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도 세상을 위해주고 기도로 축복하며 사랑함을 드러내보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창조주시며 만민을 기르시고 햇볕을 악인과 의인에게 골고루 비추시고 비를 의인의 밭과 악인의 밭에 골고루 내려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만민을 위한 기도를 통하여 잘 펼쳐 나가도록, 우리 모두 사도가 첫째로 권면한 명령에 순종하여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사역에 성도들 모두 동참합시다.
둘째로,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사도가 요청하고 있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사도는 특별히 여기서 에베소 교회를 지도하는 있는 디모데에게 공중 예배 때에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ㄹ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 시를 비롯한 이방 교회들은 대부분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황제가 있고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원로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 내의 여러 지방에는 로마 황제가 파견한 지방 총독들이나 로마 황제가 임명한 지역 토후들을 통치권자로 세운 분봉왕들이 있었습니다. 또 자치 도시들에는 치안 판사들이 있어서 사법부 역할을 감당하고, 행정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공중 예배 때나 가정 예배 때에 성도들로 하여금 로마 제국의 세속 권세를 가진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로마 황제는 사악하고 잔인하고 추하기로 이름난 네로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자기 어머니까지 죽이고 동성 연애를 하며 자기 스승 세네카까지 죽이는 악행을 그치지 않았고 아마 이 편지를 쓴 직후인 주후 64년 경에는 로마 대화재를 일으키고 그 죄를 기독교회에 뒤집어 씌워서 교회에 엄청난 박해를 가한 악행자였습니다.
이렇게 분명 사악하고 교회를 반대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임금과 지방 지도자들일지라도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라의 복지를 위하여, 나라의 정치 군사적 안정을 위한 정책 실행과 군사적 보호를 도모하는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가 이렇게 교회에게 명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2절 후반절에 사도가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사도가 이렇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명한 까닭은 교회와 성도들이 공권력의 방해나 사회의 무질서와 악한 자들의 개입 등으로 생겨나는 소란과 방해나 박해 없이 성도들이 평안하고 고요하게 교회에 모여 예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경건함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과 단정함 곧 엄숙하고 덕스럽고 안정된 모습의 신앙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질서가 안정되어야 함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교회가 마땅히 국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이렇게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흔들리고 사회 불안이 심화되고 큰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거나 분쟁이 발생하거나 나라간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면, 교회도 성도들도 어쩔 수 없이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고요하고 평온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경건과 단정함을 가꾸어 가는 정상적인 신앙 생활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가가 안정되고 질서 있게 공권력이 행사되어 악을 징벌하여 악이 횡행하지 못하게 하고 선을 진작시키도록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당시 황제가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람인 네로가 황제였을 때에 이러한 명령을 한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명령의 무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한국 교회와 우리 성도들은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과 대통령실의 보좌관들, 그리고 입법부의 국회의장과 국회의원들과 국회 직원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과 각급 법원들과 법무부 산하의 검사들과 수사 주체가 된 경찰 공무원들, 그리고 각 부서의 장관 차관 및 공무원들, 국방부 장관 및 수많은 군대 지도자들과 군인들, 각 기업의 지도자들 및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직임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 많이 해드립시다. 특별히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력한 국가 체제이므로, 대통령을 위하여 지혜와 건강과 겸손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도록 우리는 자주 더 많이 기도합시다.
셋째로, 이렇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사도는 밝힙니다.
3절과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렇게 교회와 성도들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며,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사도가 명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만민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할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이 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기를 소망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16 말씀에서도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만민 사랑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높은 관직, 최고위 관직인 임금과 황제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그들이 멸망받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교회가 기도해주어서 그들이 교회와 진리의 말씀, 복음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결코 기도의 대상에 어떤 한계를 정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기도의 대상에 포함하여 주님께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전도합시다. 또 국가의 지도자들의 경우에, 그가 가진 권력으로 교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도리어 교회를 잘 도와서 모든 성도들이 고요하고 평안하게 생활하며 경건과 단정함으로 점점 성숙해진 신앙의 자태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도록 우리가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합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며 기쁘게 받으시는 신앙의 자태이며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입니다.
넷째로, 사도는 여기서 그가 전파하는 복음의 진수를 여기서 선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한 분이시요 구원 중보자도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5절과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나라의 임금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포함하여 교회 밖의 모든 사람들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를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 위함이지만, 중요한 이유가 바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렇게 교회 밖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이유는 당시 이방 지역의 모든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 자기들이 섬길 많나 여러 신들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신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여러 중재자들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들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중재자들은 천사들이나 혹은 이런 저런 영적 유출물들이었습니다. 영지주의 철학에 의하여 발전된 수많은 중재자들 속에는 모세도 예수님도 소크라테스 등 위대한 현인들도 있습니다. 악한 영과 선한 영들이 이 중재자들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방인들에게는 여러 신이 있고 여러 구원 중재자들이 있다고 굳게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되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그분은 모세를 통하여 계시되고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자기를 계시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 한분만이 구주십니다. 그리고 그의 언약을 따라 인간의 구원을 이루시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오신 분이 계신데,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하신 한 분 중보자입니다. 다른 중보자, 다른 중재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자기를 기꺼이 내어 주어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때가 차매 마침내 죽은 자 가운데서 확실히 영광의 몸을 입고 부활하심으로 그가 대속주라는 증거를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구원 중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며 그가 자기 몸을 대속물로 내어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모든 죄인들의 죄 값을 다 치르셨음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교회의 사역인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진리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교회가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이방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방 지역에 복음을 증거하러 왔노라고 증거합니다.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신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이 복음 진리,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구주로 보내셔서 대속물로 목숨을 내어주게 하셨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만민의 중보자가 되셨다는 이 구원 진리를 세상 가운데 누가 알겠습니까? 전하지 아니하면 결코 알 수도 없고 믿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자기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시면서 세상 가운데 그들을 다시 파송하시는 말씀을 해주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처음 부르실 때부터 사도 바울에게 그를 이방 나라로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시더니, 그가 안디옥에서 사역할 때에 마침내 그를 정식으로 이방인들의 사도로 파송하셨습니다.
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의 신분을 첫째는 전파하는 자 곧 전령사라고 말합니다. 왕이 오신다는 전갈을 미리 전하는 전령사로 자기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사도는 전권대사를 말합니다. 주님이 직접 오시지 않고 그를 대신 보냄으로써 전권대사를 모신 자는 주님을 모신 자와 같습니다. 그가 주님의 권위를 가지고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떠나기 전에 그 교회에서 일할 일꾼들을 세워 놓고 또 대적하는 자들을 사단에게 넘겨주기도 합니다. 또 사도는 자기를 스승 곧 가르치는 자로 소개합니다.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고 하였는데, 이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담대히 전파하고 사도적 권위로 교회를 세울 뿐 아니라 교회의 여러 규례들을 가르치고 성경을 풀어 가르치는 등 영적 스승으로서 사역을 감당해왔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한 가지 7절 말씀에서 의미심장한 말은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 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 일부 거짓 교사들이 사도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부인하는 자들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기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이 참 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라고 쓰신 것입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에베소 교회의 거짓 교사들의 일부는 분명히 약 5년 내지 6년 전에 사도 바울이 그 교회에서 사역할 때에 사도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만 가져다가 환자 몸에 놓으면 병이 떠나고 귀신이 떠나는 것을 목격하고 놀라고 감격했던 기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그곳을 떠나 사역하던 중에 가이사랴 감옥과 로마 감옥에 갇히는 일을 보면서 그들은 기고만장하게 되었고 자기들이 에베소교회의 왕으로 생각하고 교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들을 성령의 진리로 생각하지 않고 얼마든지 인간의 철학과 종교적 경험을 통하여 변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사도 바울이 전하고 가르친 복음과 교훈보다 훨씬 더 대단한 영적 교훈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렇게 교회 성도들 위에 군림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하려 덤벼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불변합니다. 하나님은 한분입니다. 구원의 중보자 역시 오직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입니다. 이방 세계에서는 수많은 신과 수많은 구원 중재자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구원의 주와 구원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 안에도 또 다른 이교적인 가르침이 들어와서 사람들을 미혹하곤 합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구원 중보자로 받아들이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죽은 성자들도 구원 중보자로 받아들여서 그들의 기도를 간청하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곤 합니다. 오늘날도 각종 이단들은 예수님 외에 또 다른 어떤 영적 유출물과 같은 인간 선지자들의 예언과 가르침을 성경보다 더 대단하게 여기면서 예수님보다 더 믿고 따르는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오직 한 분 곧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뿐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누가 이 진리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으며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하면 진리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귀중한 사도의 지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의 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지금보다 더 많이 기도합시다. 그 사람이 정치적으로 내 마음에 안든다 하면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맡겨진 직분을 더 잘 감당하여 교회가 고요하고 평안하고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성숙해지는 열매를 맺도록 더 많이 나라를 위하여,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할 때에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잡신을 늘 섬기며 삼신할머니와 여러 잡신들, 그리고 점쟁이를 찾아가 운명을 점치던 사람들은 참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구원의 중보자도 오직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라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전파하는 자가 없이는 전혀 들을 수도 없고 들어본 적이 없으니 믿을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어찌 듣지 않은 자, 알지 못하는 이름을 어찌 부를 수 있으며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전파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많이 하고 또 나아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방 지역에 복음을 들고 담대히 전도한다면, 분명 박해와 모욕은 당할 것입니다. 그러한 영광의 시련을 당할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자들은 그 중에서 분명 복음에 반응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 사도가 에베소교회 사역자로 일하는 디모데에게 부탁했던 목회 지침을 마음에 새깁시다. 교회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는 일이 중요함을 기억합시다.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 많이 함이 교회를 위하고 경건 생활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 부름받았지만 동시에 세상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교회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내어주신 주님처럼 우리도 힘써 박해 속에서도 구원의 복음을 힘써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영광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이요 반드시 영혼의 귀한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