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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도량이자 중국 5대 산의 하나인 청량산과 같은 이름을 쓰는 전북 완주의 청량산. 그 산 중턱에 자리한 원등사에서도 한결같이 청량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원등사 계곡 입구에는 청량사가 있다. 따라서 전북산사랑회(회장 김정길)에서는 사찰의 고증을 받아 청량산으로 이정표를 세운 바 있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원등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원등사는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진묵대사가 사찰 터에 남아있던 석등의 등불이 변산 월명암까지 비치는 것을 보고 중창했다는 의미로 멀 원(遠)자에 등불 등(燈)자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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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부산 암릉.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동원한 마을 사람들에게 수고비 대신 이 산을 무상으로 준 후부터 베풀 대(貸)에 줄 부(付)를 써 대부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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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은 금남정맥에서 갈려 나온 산줄기로 만경강 원류인 동쪽의 고산천과 만경강의 지류인 서쪽 소양천의 분수령이다. 또한 고산의 계봉산(안수산), 소양의 종남산, 동상의 동성산과 대부산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다. 따라서 만경강의 원류인 고산천을 나누며 고산에 있는 계봉산을 이어주기 때문에 호남지리탐사회원들과 협의한 결과 고산지맥으로 부르기로 했다.
청량산의 이름도 잘못되었지만 대부산은 일제 잔재가 물씬 풍기는 괴상망측한 이름이다. 동상면 거인마을 정완채씨(063-243-9072)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동상면 일대를 측량하면서 강제로 동원한 거인마을 사람들에게 수고비 대신 대부산을 무상으로 준 후부터 베풀 대(貸)에 줄 부(付)를 쓰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김대연이라는 친일파가 대부산이 거인마을 주민의 공동소유로 되어 있으면 세금이 많이 나온다고 주민들을 속인 뒤 매각한 돈을 가지고 줄행랑을 놨다는 웃지 못 할 사연이 있다. 거인마을은 이름난 사람이 많이 배출된다는 의미이며, 임금이 써준 어필(御筆)를 받은 정진사도 그 마을 출신이다. 따라서 대부산을 거인산으로 고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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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동재 임도. 대부산에서 청량산으로 이어진 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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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산과 청량산은 정상 조망이 일품 학동산도 원래는 수만리 학동마을과 같이 학이 모여드는 ‘비학귀소(飛鶴歸巢)’ 형상으로 학 학(鶴)을 썼는데 최근 타지에서 학자들이 터를 많이 잡으면서 배울 학(學)으로 바뀌었다.
대부산과 학동산을 품은 동상면 수만리는 한국의 8대 오지의 대명사라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전주-동상을 잇는 일주도로와 수만교가 개설돼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대부산은 일제강점기에 축조되었다가 1953년에 막은 동상저수지와 그 아래에 새로 축조한 대아저수지 때문에 삼면이 육지 속 섬의 신세가 됐다.
그리고 그 산 주변의 지명이 특이하다. 수만(水滿)리는 조선 중엽에 전라도관찰사 이서구가 “장차 물이 가득 차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한 대로 동상저수지와 대아저수지 축조로 마을에 물이 가득 찼다. 대아(大雅)리는 원래 큰 골짜기라는 의미로 대실(大實)이라 했는데 일제가 한자로 바꿨다. 음수(飮水)마을은 뒷산이 목이 마른 말이 물을 마신다는 ‘갈마음수혈’의 명당에서 유래됐는데 말이 물을 마시기보다 전북사람들이 그 물을 마셨다.
대부산 정상은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훌륭하다. 북쪽은 동성산·운암산·왕사봉, 동쪽은 연석산과 운장산(주줄산), 남쪽은 청량산(원등산)이 한눈에 잡힌다. 대부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소나무와 어우러진 암릉은 스릴 만점이고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동상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와 산행미를 더해준다. 그리고 대부산 서쪽 중턱에 자리한 마애불상을 둘러보고 안도암에서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숲이 우거진 길을 걷는 것도 낭만적이다.
청량산 정상의 조망도 대부산 못지않다. 북동으로 금남정맥의 최고봉인 운장산 서봉과 연석산의 아름다움이 다가오고, 동쪽은 저 멀리 덕유산이 아스라하다. 남쪽은 만덕산, 서로는 서해가 눈앞에 가물거린다. 원등사에서 전주시가지를 조망하는 것도 일품이고, 사찰을 감싸고 있는 뒤편의 연봉들의 자연경관도 아름답지만 절 아래에 있는 대나무 숲과 깊은 계곡에서 내리쏟는 폭포와 옛날에 장군이 칼로 갈랐다는 깨진바위(장군바위)도 발길을 멈추게 한다.
원등사로 오르는 계곡은 여름철 피서객, 가을철 단풍을 즐기는 탐방객으로 붐빈다. 청량산은 운장산과 함께 공비토벌 소탕작전의 주요 거점으로 유명하며,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금은보석을 숨겨 두었다는 소문이 있다.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북으로 뻗어가는 금남정맥이 입봉과 보룡고개(26번 도로)를 지나 황조치로 가기 전에 북쪽으로 고산지맥을 내려놓는다. 그 지맥에는 밤재를 지나 청량산을 솟구쳤다. 청량산에서 북쪽은 학동산과 대부산, 서북쪽은 귀골산을 내려놓고, 귀뚤봉과 위봉산성을 지나 동쪽으로 위봉산으로 나뉜다. 되실봉을 지나 써래봉에 이르러 동쪽으로 동성산, 북쪽으로 고산의 계봉산(안수산)의 산줄기를 나누고, 서쪽으로 서방산과 종남산을 일구어 놓는다.
청량산의 물줄기는 만경강의 원류인 고산천과 소양천을 통하여 만경강을 이루고 대부산과 학동산의 물줄기는 모두 동상저수지에 모아져 고산천과 만경강을 이루다가 서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상 청량산은 완주군 동상면과 소양면의 경계를 이루고, 학동산과 대부산은 모두 동상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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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량산 정상. 금남정맥과 서해까지 보이는 조망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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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바뀐 한자 지명, 원래 한글 지명으로 바꿔야
이번에는 호남지리탐사회가 고산지맥상에 있는 1코스를 답사했고, 24코스는 전북산사랑회가 청량산과 대부산 정상에 이정표를 세우며 답사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는 율치(栗峙)로 나와 있으나 원래는 밤나무가 많아서 밤재로 불려왔고,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바꿨다. 현재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도 율치마을에 있기 때문에 전북산사랑회에서 우리말로 ‘밤샘’으로 명명했듯이 율치도 ‘밤재’로 바꿔야 옳다.
급경사인 산행들머리를 힘들게 올라 녹음이 우거지고 낙엽 쌓인 고스락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금남정맥 입봉과 밤재가 다가온다. 북쪽은 앞으로 가야 할 산줄기들이 너울너울 춤춘다. 산줄기가 북으로 꺾이며 뚝 떨어지는가 싶더니 오름길에서 땀을 쏟고 나자 고스락의 전망바위에 닿는다.(밤재에서 30분소요)
전망이 탁 트이며 서쪽 소양과 만덕산, 남동으로 연석산과 운장산이 고개를 살며시 내민다. 헬리포트를 만나면 내림길이 시작되고 완만한 능선을 걷노라면 서쪽으로 원등사 하산길이 악수를 청한다. 고스락에 올라 지나온 산줄기를 바라보니 마치 살아온 인생길 같이 느껴진다.
또 하나의 고스락을 올라서면 곧바로 청량산일 것 같지만 정상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듯이 저만큼 달아나 있다. 북서쪽의 원등사와 종남산으로 가는 길을 지나 동쪽으로 가면 청량산 정상이다.(밤재에서 1시간10분 소요) 삼각점(진안 48)과 전북산사랑회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악수를 청한다. 사방이 탁 트여서 조망이 훌륭하다.
산줄기가 뚝 떨어지는가 싶더니 산죽과 잡목이 우거진 완만한 북릉이 계속된다. 오찬을 느긋하게 즐기고 출발하면 곧바로 삼거리다. 동쪽의 동상면 신사봉에서 오는 길과 헤어져 북쪽으로 완만한 능선을 걷는다. 또 다시 산줄기가 뚝 떨어지는가 싶더니 서쪽으로 학동과 다자미마을이 다가오고, 곧이어 서쪽으로 다자미 가는 길을 만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북쪽의 능선을 철사줄로 막아 놓았다.
서쪽 0.5km지점에 있는 학동산 가는 삼거리에 닿으니 빗방울이 떨어지며 발걸음을 바쁘게 한다. 학동산은 산길이 좋아서 왕복 20분이면 충분하다. 사봉과 학동을 잇는 사거리를 지나면 헬기장이 마중 나온다. 곧 바로 학동재 임도가 나올 것 같지만 오름길과 한참을 씨름해야 학동과 사봉을 잇는 임도가 지나는 학동재를 만난다.(청량산에서 1시간50분 소요)
학동치 건너편의 전망대에 올라서자 세차게 뿌리던 빗줄기가 멈추고 사방이 탁 트여서 조망이 좋다. 스릴 넘치는 암릉 사이로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면 대부산의 암릉이 눈앞에 다가온다.
발걸음을 재촉하면 전북산사랑회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마중 나온다.(청량산에서 3시간30분 소요) 대부산에서 5분쯤 내려가면 삼거리에서 북쪽은 암릉 길이고, 남쪽으로 5분쯤 내려가면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수만리마애불상을 만난다. 불공을 드리는 제단과 촛불, 조그만 석탑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안도암은 암자라기보다는 시골의 외딴집처럼 아담한 느낌이 든다. 감나무와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아늑하고 포근함이 느껴진다. 암자 뒤편에 있는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인다.
호젓한 산길을 내려가면 묘소가 있는 갈림길에서 암릉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와 만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하산을 하면 산죽과 낙엽송 군락을 만나고 741번 도로변의 입석교에 닿는다.(정상에서 5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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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안내
○밤재(율치)-(2.5)-청량산-(3.5)-학동산 삼거리-(0.5)-학동산-(0.5)-학동산삼거리-(0.5)-학동재 임도-(2.5)-대부산-마애불상-안도암-(2.0)-입석교 (총 12km, 6시간 소요, 점심시간 포함)
○수만리 동광초교앞 입석-학동-(2.2)-다자미-(1.5)-학동산삼거리-학동산-학동재임도-(4.0)-대부산-암릉-묘소 삼거리-(3.0)-입석교 (총 10.7km, 5시간 소요)
○다리목버스종점-(2.5)-송곳재-(2.2)-청량산-학동산-(7.5)-대부산-안도암-(2.0)-입석교 (14.2km, 7시간 소요)
○소양면 해월리 재활원-(1.3)-원암-원등사표지석-(2.2)-원등사-(0.7)-청량산-(4.0)-학동산-학동치-(3.5)-대부산-암릉-(3.0)-입석교 (총14.7km, 7시간 소요)
>> 교통안내
[승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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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동부우회도로-26번 국도(진안방향) -소양-마수교 삼거리-원등사 입구-다리목 버스종점/소양-송광사-위봉산성-수만리/소양-화심-율치-동상-수만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금산나들목-17번국도-금산-진산-운주-고산삼거리-음수교-수만리/학동/위봉산성/ 수만리-동상-율치
[대중교통](전주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 063-243-8268)
○전주-율치-동상 871번 시내버스 전주교도소에서 8시부터 3시간 간격으로 5회 운행
○전주-다리목 807번 시내버스 전주 통계청에서 7시부터 2시간30분 간격으로 6회 운행
○전주-학도 806번 시내버스 전주교도소에서 8시부터 3시간 간격으로 5회 운행
>> 문화유적 및 명승지
[수만리마애석불좌상] 전북유형문화재 제84호로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석불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유행하던 거구의 마애불상 가운데 하나다. 소발(素髮)에는 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고, 넓은 가슴, 큼직한 무릎 등이 당당하고 크게 보인다.
[원등사] 1200년 된 고찰로 진묵대사가 참선했다는 참선당(토굴)이 있다. 신라 문성왕 2년에 고승 보조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됐다가 진묵대사가 내변산 월명암에서 동쪽에 비추는 등불을 보고 백리 길을 달려왔고, 사찰 터에 있는 석등에서 불빛이 비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공비토벌 때에 불탄 것을 1985년 석굴법당과 명부전(冥府殿)을 재건하였고, 1989년에는 석굴법당에 500나한상을 모셨다.
>> 먹을거리 (지역번호 063)
소양면 화심리에는 40년 전통의 손두부 맛을 이어가는 두부집이 있어 유명하다. 돼지고기를 갈아 두부와 섞어 만든 두부탕수육, 검정약콩으로 만드는 두부와 콩도너츠가 별미다. 산행 후 동동주와 순두부, 그리고 순두부찌개를 곁들이는 맛도 좋다. 조화심생두부(243-8962), 화심순두부(243-8268).
/ 글·사진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