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3년을 보내며 지난 한 해 동안 갑판장이 즐겨다닌 단골집 몇 집을 (다시)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지난 여름 갑판장네가 3박4일간 호남지역의 향토별미를 만끽한후에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선택한 첫 끼니는 정인면옥의 평양냉면이었습니다. 경쾌한 육수에 말은 까실한 메밀면을 크게 한 입 들이키며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했습니다. 평양냉면, 비빔냉면, 자루소바, 녹두전, 수육 등 정인면옥의 메뉴는 허투른 것 없이 모두 갑판장의 입맛에 맞습니다. 그러니 지인들이 갑판장을 찾아 서울의 변방인 가산동으로 오면 식사대접을 위해 찾게 되는 두번째 집입니다. (첫번째 집은 강구막회입니다. ㅎ)
정인면옥은 갑판장이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그래봐야 고작 몇 개월 전이지만)만 해도 광명의 뒷골목에 있는 그렇고 그런 식당들중 하나였습니다. 양질의 음식과 쥔장내외의 수고에 비해 알아 봐 주는 이가 별로 없는 그닥 흥해 보이지 않는 식당 말입니다. 같은 외식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비록 갑판장이 제 앞가림은 잘 못해 마눌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처지지만 될 만한 식당을 감지하고 은근슬쩍 띄워주는 재주가 있습니다. 은근슬쩍이다 못해 너무 은밀해서 식당의 쥔장도 뭔일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생색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 식당의 음식을 안정적으로 먹기 위함이기 굳이 떠들썩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입맛에 맞는 식당이 영업부진으로 문을 닫으면 나도 손해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종종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은밀한 띄워주기의 약발이 너무 잘 먹혀 완급조절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를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될 만한 식당이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갑작스런 문전성시나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식당에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런 수요의 쏠림은 공급이 미쳐 따라가질 못해 여러가지 부작용을 야기시킵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 3시쯤 정인면옥을 방문 했었는데 쥔장내외의 표정이 무척 지쳐 보였습니다. 그 시각에도 거의 동시에 새로 입장한 다섯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주문을 넣었습니다. 평소 홀서빙을 도맡았던 안사장님은 바깥사장님을 도와 주방에 계셨고 낯선 이(잠시 일손을 도우러{혹은 놀러} 온 쥔장내외의 지인으로 추정)가 (서툰)홀서빙을 맡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0분쯤 경과할 때까지 누구의 음식도 나오질 않았습니디. 모든 손님들이 주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녹두전이 나왔고...25분이 경과해서야 가장 먼저 입장하고 주문했던 갑판장네가 주문한 수육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수육은 주방과 가까운 테이블로 향했습니다. 연이어 나온 두번째 수육을 받기는 했지만 순간 갑판장의 욱이 발동했습니다. 전투에서 진 장수는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끼니 때를 훌쩍 넘긴 시간이고 주문한지 한참이 되었기에 아마 식당안의 모든 손님들이 민감해져 있었을겁니다,
다시 5분후, 그러니까 거의 동시에 입장한 다섯 팀이 식당에 머문지 30분이 경과했을 무렵 두 번째 사단이 났습니다. 소문이 자자한 냉면을 맛보고자 홀로 자전거를 타고 온(차림새로 짐착) 중년의 남자가 사자후를 시전했습니다. 냉면 한 그릇을 먹자고 30분도 넘게 기다려야 하느냐고...
허기진 손님의 입장도 이해하고 지친 쥔장의 심정도 이해를 합니다. 갑판장은 양측의 입장에 다 처해 봤으니 말입니다. 현 시점에선 쥔장부부에겐 휴식이 절실해 보입니다. 다 잘살자고 하는 일인데 몸이 축나고 마음까지 상처를 받아서야 쓰겠습니까. 하루 이틀 하고 말 일도 아니니 지치면 안 됩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하는 소규모의 음식점이라면 점심과 저녁 사이에 2~3시간쯤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것도 권할 만 합니다. 그 시간이 참으로 달콤하고 유용합니다. 일의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요. 인원을 보강한다연 더 좋을테지만 그건 이모저모로 잘 따져봐서 할 일입니다.
갑판장의 모토는 '일백만원 덜 벌고, 일천만원 더 쓰는 삶'입니다. 작은 물질에 연연하지 말고 내 삶에 더 충실하자는 의미입니다. 일백만원어치의 쉼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하거나 만족한다면 그게 더 잘사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늘 갑이고픈, 그래서 갑판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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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안주인분께서 항상 웃으면서 맞아주셨는데
안으로 지치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식당은 가만히 있을 뿐인데
주위에서 자기껏인냥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새해 잘 맞이하구...복 많이 받어~~~
정인면옥은 주문후에 조리를 시작하기에 더 맛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상당한 시간과 품을 요구합니다.
즉, 비효율적이라서 더 맛있는 상황입니다.
손님들도 그 점을 이해하고 정인면옥 고유의 맛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진득하게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정인면옥까지 갈 이유가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강구막회에도 항상 평안함이 함께하기를...
복을 받기만 하지 말고 우리모두 스스로 복덩이가 되어 다른이들에게 복을 나눠주자구.
이렇게 글로 새해인사하네요 즐거움이듬뿍한 새해되소서^^
이크! 인사가 한참 늦었습니다. 받은 복 두배로 돌려 드립니다. 요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