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드는 둥지/ 김경빈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를 늘 갈구하는 사람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으려나 기대를 해도 같은 날이 반복이 될 뿐이다. 아니 늙어가는 몸이 보이는 신호는 불안을 마음에 안겨줄 뿐이다, 늙어가는 것보다 더 서운한 게 없다는 성현들의 말씀에 공감한다. 젊어서는 일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아플 새도 없었고 자신을 돌아볼 짬이 나지를 않았었는데 지금은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하는 게 일이 되어가고 있다.
“여보 , 오늘은 좀 멀리 나가봅시다.”
“강원도 쪽으로 갈까요? 아니면 충청도 쪽으로 갈까요?”
집에 있으니 답답하고 날마다 어디로 가서 노는지 차를 끌고 다니기는 하지만 아내는 곧잘 싫증이 나곤 한다. 남편은 놀면서 외식을 한 번씩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은 것들이 다 해소되어 좋단다.
은퇴를 하고 처음 1년은 날마다 천국이었다. 통장에 쌓여있는 퇴직금이 있었고 시간이 널려 있으니 가까운 해외부터 여행을 다녀왔고, 이틀이 머다 않고 맛있는 것 먹는 것도 좋은듯했다.
아들 장가들면서 집을 사주지는 못했어도 전세 자금 조금주고 노처녀 딸년 독립한다고 오피스텔 보증금 보태주고 나니 통장의 잔고가 아주 줄어들어버렸다. 게다가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파서 비싼 주사도 한 번씩 받아야하고, 각종 영양제도 사먹어야 하니 생활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건강 염려증이 있는 남편은 이따금씩 병원을 가서 쓸데없는 초음파니 MRI 같은 비싼 진료를 받는다. 결과는 전과 다름이 없다는데도 한 해가 가는 것이 부담이 라고 천년만년 살겠다는 욕심이 커 보이는 남편이 못마땅한 아내이다.
결혼 초기 며느리는 싹싹했다. 시부모에게 맛있는 것도 사들고 오고 전화도 자주 하더니 떡두꺼비 같은 아들하나 낳은 후론 싹 변한 것 같다. 얼마를 버는지는 모르지만 손자는 자기 친정엄마가 본다하고 시어미 도움은 바라지도 않는다. 아내도 친정어미가 되고 싶은데, 딸년은 절혼을 선언하고 힘든 세상 고생은 자신으로 끝내고 가겠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 손자가 보고 싶어 아들네 집에 가고 싶어도 무슨 핑계는 그리도 많은지 어쩌다 한 번씩 자기들이 와서 손자를 보여줄 뿐이다. 아들 집에는 손자 돌 때 가보고 벌써 몇 년 된 것 같다. 명절이나 생일 때 아기 얼굴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퇴직하고 있는 지금은 시간이 많아도 아들네 집 가는 일은 없다.
“엄마, 집에 올 때 미리서 말씀을 해주세요. 와이프한테도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마시구요.”
손자가 보고 싶어 지나가던 길에 아들네 집에 잠깐 다녀온 게 화근이었는지 아들이 찾아와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고 갔다.
“내가 무슨 상처 주는 말을 했다고 그래? 난 그저 니들 키울 때처럼 농담이나 했을 텐데?”
“암튼 그런 게 있어요. 우리하고 와이프는 다르니까 칭찬도 지적하는 것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들이 가고 난 후 너무 서운했었다. 우리처럼 시어미 잔소리를 밥 먹듯이 받아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아들과 싸움이라도 할까봐 잔소리는커녕 서운해도 잘한다, 잘한다만 헸는데도 내가 말한 것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는 데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벌써 손자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 후론 며느리를 봐도 가게 사장님 보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딸년도 잘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러 가고 싶어도 집이 너무 어질러졌다고 엄마가 오는 것을 너무나 실어해서 가지도 못한다.
죽는 날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건강을 위하고 노는 일을 찾으라고들 한다. 남편이 혼자 모임이라도 나가면 쓸쓸하고 같이 노는 때도 늙어가는 자신이 초라함을 느낀다. 어쩌다 찾아오는 지인들의 잔칫날이나 동창들 모임 하는 날이 사는 것 같을 뿐이다. 직장을 다닐 때도 쉬는 날이면 아내는 집에서 쉬거나 자식들하고 함께 있기를 좋아했다. 취미생활을 쭉 해오던 남편은 혼자 나가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어 날마다 즐거운 모습이다. 하지만 아내가 걱정이 되면 한 번씩 억지로 아내와의 같이 외출을 하곤 한다.
“날씨가 추워지니 온천이나 다녀옵시다. 당신 목욕탕 좋아하지 않소?”
남편은 아내를 부추겨서 여행 채비를 하고 나선다.
“그럼 동학사 둘러보고 유성 쪽으로 온천 다녀와요.”
두 부부는 충청도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우리나라의 발전된 모습에 실감을 느낀다. 시골까지 잘 깔아놓은 아스팔트길이 시원스럽다.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다닐 때나 다른 친구들이나 친척이라도 있으면 명량하지만, 부부간의 여행은 조용한 명상의 시간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혼자서 놀러 나가는 것보다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남편은 생각한다.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애들과 여행을 했던 동학사를 돌아서 나오다 지나던 길에 저수지 주변을 산책한다. 잔잔한 물결은 더없는 평화로움이다. 저 물 속에도 잔인한 생존이 있겠지만 논병아리들은 자맥질하고 놀기에 바쁘다. 어미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새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물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러다가 어미가 달려가면 새끼들도 쪼르르 따라간다. 남편은 친구들과 골프라도 치러가는 상상을 하는지 몰라도 아내는 생각이 많아진다. 자신도 저 물오리들처럼 자식들을 끌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고 잘못하는 새끼들 쪼아대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식들을 훈계하던 시절도 있었던 걸 생각한다.
“엄마 우리 탈것이 많은 놀이공원으로 가요."
“아녜요, 공룡전시관을 먼저 가요.”
지들끼리 싸우면서 서로 먼저 갈 곳을 정하기도 했었다는 걸 생각해낸다.
“엄마, 이번에 사야할 것이 많아요. 용돈 좀 올려주세요.
귓가에는 생생한 어린 시절의 아이들 목소리가 남아 있고 눈에는 조그만 아이들의 모습에서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월이 언제 이렇게 지나가 버렸지? 내가 사는 재미는 무엇인가?’ ‘장가보낸 아들은 며느리 남편이 되어 잘 살고 있겠지. 며느리가 나보단 더 잘해줄까? 나처럼 지 새끼들만 생각하고 남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닐까? 딸년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행여 나쁜 일에 빠진 것은 아닌지, 나쁜 애들과 몰려다니는 것은 아닐까?’ 자기들이 삶을 찾아 떠나간 자식들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오는 것을 감추려 남편을 바라본다.
“여보, 저기 물오리들 봐요. 새끼들 데리고 다니는 것이 너무 평화롭게 보여요.”
외로움을 애써 감추면서 남편에게 말을 건다.
“우리 젊었을 때의 모습이잖아요? 당신도 자식들을 데리고 다니길 좋아했잖아요? 당신 품에 충분히 가두어 잘 살지 않았소? 이젠 자식들 걱정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말아요. 지들끼리 잘 살면 그만인 것이오.”
“참, 여자에게 자식은 생명이에요. 먹고 살기 바쁘다고 잘해주지도 못하고 지들이 커서 집을 나간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생각만 들어요.”
“그만하면 잘했어요. 우리 형편에 그래도 성실하게 살았잖소?”
“둘이 맞벌이 하면서 재테크를 많이 하지 못한 제가 너무 원망스러워요. 제가 좀 가진 것이 있고 누리고 살면 자식들이 문턱이 닳게 드나들까요?”
“이 사람이 참. 가서 맛있는 거나 먹고 들어갑시다. 괜히 잘 노는 물오리 보더니 감상에 젖어가지고는......”
“맞아요, 50대는 빈 둥지 증후군이라 했어도 자식들이 공부하고 취직하고 장가들고 시집가면 우리들처럼 부모를 보러 자주 올 줄 알고 그냥 잘 이겨냈어요. 그 땐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히 잘 지낸 것 같기도 하고요. 허무감을 느낄 시간이 없었던 거죠.”
대를 이어가는 삶이란 것이 부를 물려받으면 좀 쉽게 자유 시장을 누리고 살 수 있는데, 어미로서 그 부를 이루지 못한 게 자신의 죄인 것만 같다는 아내의 마음을 읽었는지 남편은 화제를 바꾼다.
“여보, 내 친구 창수 있잖소? 사업하는 큰 아들한테 보증을 서 주었다가 집이 날아갔다고 합디다. 우린 아이들이 월급쟁이로 살아가니 이 조그만 집은 남아 있는 거 아니요? 사람들이 다 만족하며 살 수는 없어요. 우리는 우리 걱정이나 합시다. 병원 신세지면 지들 시간 뺏는다고 원망을 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어 하는 소리요.”
남편이 주변에 있던 가지를 주워들고 휘익 물오리 쪽으로 던진다. 물오리들이 물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어미오리가 들어가자 새끼들도 쪼르르 들어간다.
남편이라도 곁에 있으니 아예 빈 둥지는 아니지만 하나 둘 씩 곶감 빼먹듯이 통장의 잔고는 줄어들고 자식에게 더 줄 여유는커녕 살림살이는 쪼그라들어가고만 있다. 쪼그라드는 것이 어디 통장의 잔고뿐이랴!
한 번씩 찾아오는 통증들은 늙어가는 육체를 오그라들게 하고 불안감까지 몰고 온다. 자식들 얼굴 보는 것도 언제인지 모른다. 지들은 일 년에 몇 번씩은 찾아오지 않느냐고 말을 한다. 많은 것이 빠져나간 마음엔 허전함만이 가득차고 있는 것 같다. 빈 둥지 증후군이란 말은 벌써 젊은 시절의 화려한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은 돈도 인생도 다 쪼그라드는 둥지라는 아내의 넋두리에 남편도 동의하듯이 먼 산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ㄱlㅁㄱㅕㅇㅂㅣㄴ♡
첫댓글 마음 비우고 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요
품 안의 자식이라고, 아이들 데리고 놀이공원 다니던 때가 아득히 그립습니다.
그래도 이야기 속의 부부처럼 서로 마음 헤아리며 가까운 곳 여행하며 지내는 날들도 감사하지요
저도 퇴임 후 남편과 가까운 곳 여행 다니며, 여유있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나도 내내 즐겁게 지낼 수 있게 시간을 잘 보내볼랍니다.
공감가는 동화 한편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분 방문에 감사합니다. 공시인님, 자주 들어오세요.
Evergreen님, 요즘의 전반적인 가족 문제를 다뤄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쪼개지면서 노인이 된 부모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녀가 결혼하면서 시부모나 친정 부모 중 손주 양육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재편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연히 자주 만나는 쪽은 아이들하고 정이 들고 반대쪽은 그렇지 못하고요.
현실을 인정하고 생활 패턴-노인 문화를 만들어 나가며 노후의 삶을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건강이 기본입니다. 어제 우연히 국어사전을 찾다가
"정강이가 맏아들보다 낫다
성한 발이 있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도 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다는 말. =발이 의붓자식[맏아들/효도 자식]보다 낫다."라는 속담을 보고 건강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서주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장수로 인한 노인 소외감도 큰 문제일 수 있고, 老老갈등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요새는 초로의 노인이 더 나중을 준비해야할 마음가짐을 점검해볼 수 있는 실버들의 여린 마음을 글에 담아보고 싶네요. 어린이 동화와 노인들의 동화를 써 보려 합니다.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빈둥지 증후군
맞는 말 이네요
내 나이가 어느새?
마음은 젊음인데
세월감에 따라
건강 염려증
치매 걱정으로
날이 저물고
오늘도 벌써
잠간인것 같은데 하루가 저물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