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신적 피폐함과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가 지도자의 투신에 따른 일시적 충격일 수도 있지만, 심리적 불안과 답답함을 덜어주는 정신적 지도자가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도인은 참 행복하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하지만, 그들 주위에 늘 구루(Guru·인도 사람들은 구루를 구루지 혹은 구루 데브라라 높여 부른다)라 불리는 영적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 10여 년 살면서 지켜보니, 인도 정부는 지진이나 쓰나미 따위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할 때 물질 지원뿐만 아니라, 구루를 앞세워 정신의 피로를 덜어주는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까지 운영했다.
‘내게 맞는 수행법’ 골라 배운다
그 덕일까. 2006년 인도의 1인당 GNP는 820달러로 우리나라의 15분의 1에 불과하지만, 행복지수는 명실공히 아시아 1위였다. 2007년 8월, 여론조사 업체인 악사(Axa)의 테일 러넬슨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인도는 아시아 8개 나라(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홍콩 타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가운데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다(행복지수란 각 나라 중산층의 향후 12개월에 대한 전망, 5년간 직업, 가족, 건강, 퇴직 계획 등에 대한 평가를 말함).
10여 년 전 처음 인도에 와서 느낀 점은 자유로움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 자유로움 뒤에도 구루와 요가 사상이 있었다. 구루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인도인에게 아사나와 프라나얌(호흡법)을 권한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로 깊은 잠을 자지 못하거나 정신·육체 질환을 않는데, 신기하게도 아사나와 프라나얌은 그 같은 압박에서 벗어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또 짧은 시간에 현실 의식에서 벗어나 잠재의식을 넘어 무의식에 이르도록 돕는다.
구루는 사람들의 틀에 박힌 생각을 자유롭게 하고, 어떠한 도그마(교리)도 없이 에고(자아)를 없애주며, 자유정신을 누릴 수 있는 방법론을 가르친다. 많은 구루가 왔다 갔고 또 지금 활동하지만, 현실 세상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론 혹은 경영 방식을 쓴다. 쉽게 말해서 자기 브랜드를 내세워 광고하고 추종자를 모은다. 어떤 이는 타고난 성인으로 특별한 수고 없이 추종자를 모아 큰 단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추종자가 늘어나지 않아 소수의 모임으로 잊히기도 한다. 한편 이들의 기본 사상은 인도 전통 베다 사상으로, 구루마다 가르침의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구루가 강조하는 인도 요가 사상은 중국의 노장 사상, 효 사상, 불교 사상과 달리 수많은 수행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 생활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론, 즉 ‘실제적 삶의 기법’을 가르친다. 모든 인간이 같은 성격과 기질을 띠지 않듯이, 요가 역시 많은 방법론 중 각자에게 맞는 것을 찾아 수행할 수 있다. 논리를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즈나나 요가를, 정이 많고 행동으로 정신을 수행코자 하는 사람은 카르마 요가를, 용맹 정진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타 요가·크리야 요가·쿤달리니 요가를 좋아할 수도 있다. 또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사람은 박티 요가를, 소리나 진동을 통한 수행에 관심이 있으면 만트라 요가를, 성 에너지를 활용해 수행코자 하는 사람은 탄트라 요가를 택할 수 있다. 명상의 종류도 수없이 많은데 앉아서, 누워서, 소리 내며, 걸으며, 염주를 돌리며 할 수 있다.
구루는 전통적 요가·명상 수행 방법에서 일반이 모르는 수행법을 가르치거나, 현대인에게 맞게 개발해 많은 사람이 쉽게 따라하도록 돕는다. 옛날에는 그 수행법을 익히려면 히말라야 동굴 같은 데서 구루를 만나 수년간 배워야 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언론이나 책자, 입소문으로 알게 된 구루의 가르침을 골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구루를 따라다니며 강의를 듣거나 수행 코스에 참가한다. 어찌 보면 10대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열광하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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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참된 영혼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만이 그곳에 진실한 평화가 있을 수 있다.” 암마 | 그 덕일까. 인도 사람 대다수는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몸을 씻고 가정에 있는 기도실이나 작은 제단 앞에서 온 식구가 싱싱한 꽃을 드리며, 향을 피우고 푸자(제사)를 드리는 덕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흔들릴 때는 가까운 사원에 가서 기도도 드린다. 미국 등 많은 선진국의 관료나 글로벌 대기업 임원 중에 인도인이 많은 이유도 이 같은 생활을 통해 몸에 밴 침착함과 냉철한 판단력 덕이다. 그렇다면 인도인의 마음을 다독이고 어루만져주는 구루 가운데 비교적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제일 먼저 암마(55)를 꼽을 수 있다. 나이 불문하고 그녀는 자기 앞에 선 사람을 “내 아들, 내 아들” 혹은 “내 딸, 내 딸” 하면서 안아준다. 평범한 인도 아줌마 같은 외모에 키가 작고 얼굴이 복스럽다. 본명은 마타 암리타난다마이. 일반 사람들은 그 이름을 “암마”라고 줄여 부른다(암마는 남인도어로 우리말 엄마와 발음과 뜻이 같다). 인도와 전 세계를 돌면서 벌써 2100만명 이상을 안아주었다.
인도 사람은 암마를 마더 테레사 이상의 성인으로 여긴다. 테레사 수녀는 한 종교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을 하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보였지만 암마는 다르다. 나도 마침 아쉬람 근처에 출장을 갔다가 암마를 ‘영접’할 기회가 있었다. 남들은 삿상(Satsang·구루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말씀을 듣는 의식 모임)에 참가하며 대여섯 시간 이상 기다렸으나, 나는 지인의 도움으로 30분도 안 되어 금방 만날 수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듣던 대로 얼굴에 인간의 에고가 하나도 없는 듯했고, 아기가 엄마에게 느끼는 사랑처럼 묘한 모성애를 느끼게 만들었다.
암마가 아쉬람에 있건, 인도의 다른 지역에 있건, 아니면 다른 나라에 있건 그의 앞에는 늘 수천~수만명이 늘어서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가리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 오로지 그에게 안기고 싶어서다. 암마는 하루 18시간 일하며 귀천도 따지지 않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들을 안아준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산되는데, 사람들은 저절로 그것에 빠져들며 위로를 받는다.
암마는 1953년 남인도 케랄라 주 아주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한 어부였고, 엄마는 항상 아팠다. 그 탓에 암마의 어린 시절은 거친 노동과 집안일뿐이었다. 학업도 초등학교 3학년밖에 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미덕이 있었다. 바로 신심(神心)이다. 그는 숨쉴 때마다 신을 생각할 정도로 신실했다. 또 사랑을 타고났는지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곡식을 퍼주고, 동네에 나타난 거지에게 하나밖에 없는 금팔찌를 내주기도 했다(그 바람에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맞거나 동네에서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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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당신이 지금 신의 왕국을 차지한 몸, 마음과 영혼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오라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신의 전재(全在)함은 당신의 전재함이며, 단지 당신이 할 일은 그 앎을 늘리는 것뿐이다.” 파라마한사 요가난가 | 스무 살 무렵 한 구루가 이 소녀의 범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그의 아버지에게 아쉬람(수행처)을 차려주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집 뒤에 작은 초막을 만들어주었다. 암마는 그곳에서 명상하고, 다른 사람들을 맞아 축복하고 안아주기 시작했다. 스무 살 처녀의 축복은 다른 동네에까지 소문이 났고, 30여 년이 흐른 뒤 그 외양간 같던 작은 초막은 이제 거대한 아쉬람으로 변했다.
서양의 유명한 의사들이 ‘평생 자원봉사’
현재 그녀가 세우고 운영하는 자선재단은 800병상의 AIMS 병원, 의과대학, 약학대학, 사원 12곳, 빈민을 위해 지은 주택 2만5000채, 5만명을 수용하는 가난한 여자들의 숙소, 고아원, 양로원,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초등·중등학교 33군데, 컴퓨터 교육센터, 공과대학 등이 있다. 미국·유럽 등 27개 나라에 아쉬람과 삿상 그룹이 있어서 매년 암마가 직접 방문해 세계인을 축복한다. 2002년에는 유엔이 주는 ‘비폭력을 위한 간디-킹 상’을 수상했다(코피 아난·넬슨 만델라·제인 구달 등도 이 상을 받았다). 암마의 모든 집회는 무료이며 단지 기념품만 적당한 가격에 판다. 이 많은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은 자발적 후원금에 의해서 운영된다. 지금도 코친에 있는 종합병원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무료로 치료해주고, 환자의 생활 수준에 맞춰 병원비를 책정한다. 이곳에서는 연봉을 수백만 달러 받던 서양의 많은 유명 의사가 평생 자원봉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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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당신 자신 안에 있는 신을 보는 것이며, 사랑은 당신 곁의 사람 안에 있는 신을 보는 것이며, 지식은 모든 곳에 있는 신을 보는 것이다.” 스리스리 라비상카르 |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구루는 스리스리 라비상카르(53)이다. 그는 내게 호흡법을 가르쳐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요가의 길로 안내해준 인물이다. 출생지는 현재 내가 사는 인도 남부 뱅갈로르이고, 어렸을 적부터 푸자에 관심을 두었다 한다. 뱅갈로르에서 대학을 나와 은행에 취직하려 했으나, 최종 면접을 하고 오는 도중에 현실 사회가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닫고 다른 방면을 모색했다. 그 와중에 마하리시 마헤시를 만나고, 그의 요청으로 초월명상(TM) 단체의 일을 돕게 된다. 하지만 몇 년 뒤 TM 명상본부가 내분으로 뱅갈로르에 만든 베다 스쿨을 폐쇄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해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이후 열흘간 명상을 통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호흡법 ‘수다르산 크리야’를 창안한다. 스물여섯 살에 뱅갈로르 시 외곽에 부지 수만 평을 확보하고, 그곳에서 아쉬람을 준비한다. 우선 ‘실제적 삶의 기법(Art of Living)’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 세계를 돌면서 호흡법 강의를 한다. 또 자금을 모아 베다 학교를 운영하고 자선사업도 한다. 나 또한 이 단체의 프로그램에서 호흡과 육체와 마음의 상관성을 배웠고, 요가 공부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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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 바바 람데브(위 가운데)의 아사나 요가 텔레비전 강의 시청자는 무려 8500만명에 이른다. | 케이블 TV를 통해 자주 소개되는 바바 람데브(1965~)도 인기 있는 구루다. 람데브는 어렸을 때 신체 마비 증상으로 고생했지만, 요가 아사나를 배워 온몸의 기능을 다시 얻었다고 한다. 현재 디브야 요그 만디르(Divya Yog Ma–ndir)라는 단체를 이끌며, 수천명을 상대로 야외에서 아사나 요가(몸·호흡·의식을 한데 묶는 수련법)를 무료로 강의한다. 그 과정은 고스란히 신앙 방송 아스타 TV를 통해 방영되는데, 시청자가 무려 8500만명에 이른다. 요즘 람데브는 프라나얌(호흡법), 아사나 요가, 아유르베다(인도의 전승 의학) 전파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람데브는 북인도 특유의 보수적 종교단체와 정치 세력으로부터 아유르베다 약품 판매에 대해 비난을 받는다.
한국인의 심리적 불안과 불만 그리고 답답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신적으로 맑고 깨끗한 국가 지도자가 나오면 치유될까. 정치도 정치지만, 국민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줄 영적인 그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