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얼마나 다치는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부딪혀서 멍이 들기도 하고 종이에 베이기도 합니다. 이런 작은 상처들은 약을 바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괜찮아집니다. 하지만 심각한 상처들은 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일에도 생채기가 나죠. 마음이 다치고 회복하는 과정은 성장할 때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상처는 반드시 치료가 필요합니다. 가장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때문에 생긴 상처가 그렇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큰 장애물이 되는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심리치료사로 근무하는 박지연 매니저를 만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심리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들어봤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산하 중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심리치료사로 근무하는 박지연 매니저
어떤 일을 하시는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중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심리치료사로 근무하는 박지연입니다. 이곳에서는 2014년부터 근무했으니까 올해가 벌써 10년째네요. 직접 아동이나 아동과 가족 구성원을 심리치료하는 것부터 치료사 관리까지 심리치료 사업 전반을 관리하고 있어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심리치료사업이란 무엇인가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업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하나는 상담원(사회복지사)이 학대가 발생한 가정에 권리 교육을 하거나 필요한 지원을 연계하는 사회복지적인 업무가 있고요. 다른 하나는 아동을 비롯해 가족 구성원에게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게 있습니다.
심리치료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 아동이 후유증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대 행위자’에게도 심리치료가 필요해요. 요즘은 ‘학대 행위자’라고 낙인찍지 않기 위해 ‘사례관리 대상자’로 부르고 있지만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일과가 궁금합니다.
오전에는 치료사 선생님들이 쓴 업무 일지를 보면서 전날 치료 진행이 어땠는지 살피고 보고하는 일을 합니다. 직접 치료하는 시간과 행정 업무하는 시간 외에는 회의가 무척 많은데요. 학대가 발생한 가정에 치료가 얼마나 어떻게 필요한지 치료계획을 세우는 회의부터,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사례 회의, 치료를 끝내야 할지 연장해야 할지 정하는 종결회의까지 회의의 연속입니다.
▲심리치료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박지연 매니저
심리치료사업에서 계속 회의가 필요한 이유가 있나요?
가정을 면밀하게 살피는 상담원, 아동학대를 조사하는 아동보호전담 공무원, 심리치료사의 관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에요.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도 있고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시설로 분리되었고 1년이 지나 가정 복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상담원은 부모가 변화가 별로 없어서 안 된다는 입장을 보여요. 그런데 치료사와는 부모가 마음을 많이 열고 좋은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에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담당 공무원은 아이가 원하기 때문에 복귀를 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을 살피고 여러 사안을 결정해야 해서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아이들이 심리치료를 받게 되나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하는 사례가정은 시∙군∙구청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조사 후 아동학대로 판정된 케이스예요. 상담원이 가정에 방문해서 가정에 어떤 지원을 해야 할지 살핀 후 회의를 합니다. 가족 구성원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부부싸움이 심각한 어느 가정 사례를 말씀드릴게요. 아빠는 알코올 중독에 주사가 있었고, 엄마는 첫째 아이와 갈등이 심했어요. 아빠, 엄마, 그리고 첫째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했는데 살펴보니까 둘째 아이가 표현하지 않았을 뿐 아주 힘들어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엄마와 첫째 아이, 둘째 아이 모두 심리치료를 진행했어요. 안타깝게도 아빠는 알코올 치료와 상담 모두 거부했지만요. 다행히 장기간 치료받으신 엄마가 힘을 얻어서 아빠의 주사 행위를 차단하고 아이들을 보호하게 되었습니다.
심리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아이들은 놀이치료나 미술치료, 모래치료 같이 매체를 사용합니다. 언어로 상담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도 해서요. 청소년들도 언어로만 하면 지겨워할 수가 있어서 보드게임을 활용하기도 해요. 성인은 주로 언어로 상담하고, 1:1로 개별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부부상담, 가족상담, 아동과 성인이 함께하는 모자상담/부자상담도 진행하고 있어요. 형제상담을 한 적도 있네요. 가정의 필요에 맞게 맞춤형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보통 10회기가 기본이고, 연장이 필요하다고 하면 길어지는 케이스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아동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까지 심리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중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진행하는 심리치료가 1주에 100건 정도예요.
▲모래를 활용한 아동 심리치료 예시
아이들이 받는 심리치료는 매체(놀이, 그림 등)를 사용한다고 하셨는데요.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학대받은 아이들은 자기표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림이나 놀이, 모래를 통해 자신의 상태나 감정, 의사를 표현하는 거죠.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이 그리는 것들이 다 의미가 있어요. 놀이치료를 할 때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장난감을 선택하는 것부터 어려워하기도 해요. 그러면 놀이를 선택하는 것부터 치료 과정에 들어가는 거예요. 놀이 과정에서 충동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친구들에게는 치료 과정에서 적절하게 의사표현하는 방법도 알려주고요. 뭔가를 만든 후에 성취감을 느끼기도 해요.
심리치료가 아이들에게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나요?
아이가 학대받아서 생긴, 성장하는 데 방해되는 요인을 심리치료 과정에서 보완하도록 도움을 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아이가 뭔가 만드는데 잘 안 돼서 낑낑거리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잘 안 돼서 속상하겠다. 그럴 땐 선생님한테 도와달라고 할 수 있어’라고 심리치료사가 말하면 ‘어른이라는 존재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존재구나’라고 알게 되는 거죠. 방임도 학대의 일종인데요. 방임된 아이들은 규칙이 없어요. 그게 치료실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요. 그런 아이들은 치료실의 규칙을 알려주고 지킬 수 있게 도와주고요. 심리∙정서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성장에서도 소근육을 잘 못 쓸 때에는 소근육 발달을 도와주는 놀이를 한다거나요.
심리치료를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된 사례가 궁금합니다.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 사례인데요. 늦게까지 또래랑 어울리고, 담배를 입에 문 사진을 SNS에 올리고 그러면서 가정에서는 신체 학대를 경험한 아이예요. 훈육하다가 아동학대가 발생했고, 아이는 부모님을 신뢰하지 않아서 대화가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치료 과정에서 솔직하게 생각을 말해줬어요.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가정에서 외롭고 힘들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라고요. 심리치료사와 관계가 형성되면서 아이는 자기 입장에서만 바라보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상황을 대처하는 법들을 배워갔어요. 부모님도 교육을 통해 강압적으로 훈육하지 않고 노력하고, 개별적으로 상담받으면서 아이와 부모님이 소통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는 학교 친구들과 문제가 있었는데, 관계도 회복하고 자신감도 얻었어요. 이런 변화 사례를 볼 때 정말 뿌듯하고 보람이 느껴집니다.
▲놀이를 활용한 아동 심리치료 예시
일하면서 언제 가장 힘드신가요?
진짜 심리치료가 필요한 아이들, 부모님들이 치료를 안 받을 때요. 아동학대로 법원에서 상담을 받으라는 상담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심리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특히 아이들은 ‘싫어요’라고 하면 못하는 거예요. 청소년 같은 경우에 ‘학교도 가기 싫고 밤낮이 바뀌어서 낮엔 자야 해요’라고 하거나 집에서 심리치료받기로 했는데 문을 안 열어주는 경우도 있어요. 너무 안타깝죠.
그리고 부모님들을 상담하다 보면 자녀를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지 잘 모르시는구나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의 역할이 달라져야 하는데 어릴 때처럼 똑같이 대하는 거죠. 아동학대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도 정말 많고요.
아동학대가 뭔지 모르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뉴스에는 심각한 아동학대 사례만 주로 나오기 때문에 ‘내가 무슨 아동학대냐 엉덩이 좀 때린 건데’라거나 ‘애를 어떻게 안 때리고 키우냐, 나도 다 맞으면서 컸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한번 애를 때렸다고 신고되지 않거든요. 아마 아이를 때리는 행동이 반복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가 아동학대라고 생각해요. 꼭 때리지 않더라도 윽박지르고 강요하는 것도 그 시작이 될 수 있죠. 그리고 아이에게 그런 행동이 반복되고 강화될 수 있잖아요. 아동학대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 아이에게 사과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세이브더칠드런 후원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처음부터 세이브더칠드런을 후원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10년 넘게 중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면서 세이브더칠드런이 정말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산 쓰는 것도 보고, 세이브더칠드런이 하는 일도 들여다봤을 때 정말 믿을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하는 중간에 후원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서 후원자님들도 믿고 후원해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후원자님들이 계셔서 아동학대 피해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거든요. 감사하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함께해 주신다는 것은 후원금 이상의 지지와 격려, 응원, 용기가 되는 것 같아요.
첫댓글 아이들을 존중하는 어른~
아이들이 건강한 마음과 밝은 웃음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잘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