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의 성격은 그것을 만든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지프는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답게 튼튼하고 육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지프는 본래 비포장 도로를 주행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트럭과 같은 사다리 모양의 프레임 위에 별도의 차체를 얹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 미국에서는 SUV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경 트럭(light truck) 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미국의 픽업 트럭과 SUV는 매우 유사하다.
크로스오버 성향이 강한 그랜드 체로키
실제로 픽업 트럭을 기반으로 한 대형 SUV들이 바로 미국의 SUV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의 차체 구조는 매우 무겁고 견고하다. 물론 그 대신 큰 엔진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SUV들은 비포장 도로 주행성능을 강조한 유형의 소위 하드코어(hardcore) 형과, 도심지에서 주로 사용 가능한 크로스오버(crossover) 형으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차체가 작은 루비콘 같은 모델도 엔진을 8기통 4,000cc가솔린 엔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하드코어 성향의 루비콘
그에 비해서 유럽의 SUV들은 비포장 도로의 주행보다는 도심지의 사용에 초점이 있는 크로스오버형의 비중이 높다. 그래서 이들은 4륜 구동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공간의 활용성을 높인 승용차로써의 성격이 더 강한 모습이다. 물론 최초의 차량 개발 시기부터 비포장 도로의 주행에 비중을 높게 가지고 있던 ‘랜드로버’ 브랜드의 차량들은 주행성능에서는 비포장도로를 고려한 성능과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차체의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크로스오버 성향의 곡선적 디자인의 티구안
그래서 미국의 ‘Jeep’으로 대표되는 하드코어적인 4륜 구동 차량들보다는 조금 더 차려입은 느낌이다. 그래서 오히려 도로를 전제로 하되, 차량의 주행성능을 높이는 개념으로 발전된 것이 유럽의 4륜구동 차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차체의 디자인도 도회적인 이미지와 기능적인 하드코어적 이미지가 공존하는 것이 유럽 SUV의 차체 디자인 특징일지도 모른다. 물론 메이커나 브랜드 별로 디자인 성향은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드코어적 성격이 조금 더 강한, 그래서 직선적 디자인의 랜드로버 LR3
재미있는 점은 미국의 SUV와 유럽의 SUV 모두 도시의 사용이 중점적인 컨셉트의 차량들은 비교적 부드러운 느낌의 차체 형태를 가지는 반면, 비포장도로 주행의 비중이 높은 성격의 차량들의 차체 디자인은 기하학적이고 딱딱한 형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비포장도로 주행을 위해서는 튼튼한 차량 구조가 필요하고, 또 차체의 이미지 역시 그러한 인상을 주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형 SUV 토요타 4Runner
한편 일본의 SUV 차량은 미국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개발된 모델들은 미국의 차량과 유사한 크기와 디자인이지만, 그 특색이 뚜렷하지는 않고, 다만 ‘실용적인 제품’ 이라는 특징에 머무르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일본 국내시장용으로 개발된 차량들은 작은 차체에서 공간 활용을 높일 수 있는 구조와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승용차급의 다이하츠 테리오스
특히 일본의 SUV들은 대형 차량에서부터 일본 경승용차 배기량 660cc에 이르는 경SUV 차량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다. 사실 경SUV에게서 오프로드를 주파하는 기능을 기대하기보다는 경승용차의 규격 내에서 SUV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차량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측면은 하드웨어보다는 감각적인 소프트웨어를 중시하는 성향의 일본 제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특징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