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하느님 자비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오 9,35─10,1.6-8
대림 제1주간 토요일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 두 대의 비행기가 뉴욕 세계 무역 센터 쌍둥이 빌딩에 돌진해서 거의 3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폭력은 종교에서 나온다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상 암으로 죽은 이들보다 종교 때문에 죽은 이들이 더 많다.”
그러나 어떤 종교도 살인, 폭력이 정당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원천과 교리를 거스르는 짓이었습니다. 즉, 인간적인 판단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를 신의 뜻인 것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언제나 사랑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에 많은 폭력적인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신약성경과 분리해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완성된 구원 역사의 틀 안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때문에 폭력이 난무하는 것일까요? 그보다는 세속적인 생각이 폭력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참 종교인은 사랑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의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하신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일과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쳐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파견하는 제자들에게 기적의 권능을 주십니다. 즉,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수확은 하느님 일의 완성을 상징하는 구약 사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완성하는데 협조할 일꾼이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참 종교인이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살인과 폭력으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거짓 종교인이 아닌,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실천하는 참 종교인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참 종교인을 통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더 큰 은총과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완성할 일꾼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야 오늘 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실현될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이사 30,19)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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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별을 봐야 합니다.」
지금 스스로 최악의 어려움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점을 보게 됩니다.
1) 객관적으로 보면 본인들이 인지하는 만큼 최악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2)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상황을 악화하는 일만 반복하여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보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단정하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기가 더 힘듭니다. 모든 방법을 다 해봐도 안 되는데 어떻게 최악의 상황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로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까요? 우선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마음부터 없애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방법을 동원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안 될 텐데….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고 행동하면 결과는 뻔해집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나만 힘든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1cm 더 나아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별을 보고 있습니까? 시궁창을 보고 있습니까?
***<누구에게든 가장 좋은 결심은 ‘완벽한 결심’이 아니라 용기 내어 ‘한 번 더 해내는 결심’입니다(오늘의 명언)>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
(마태 9: 35―10,1.6-8)
「収穫は多いが、働き手が少ない。
だから、収穫のために働き手を送ってくださるように、
収穫の主に願いなさい。」
(マタイ9・35-10・1、5a、6-8)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for his harvest.
(Matthew 9:35–10:1, 5a, 6-8)
待降節第1土曜日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チュスハル コスン マヌンデ イルクニ ジョグニ
그 주인에게
ク ジュイネゲ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
チュスハル イルクン ドル ボネダルラゴ チョンハヨラ
(마태 9: 35―10,1.6-8)
収穫は多いが、働き手が少ない。
슈우카쿠와 오오이가 하타라키테가 스쿠나이
だから、収穫のために働き手を送ってくださるように、
다카라 슈우카쿠노 타메니 하타라키테오 오쿳테쿠다사루요오니
収穫の主に願いなさい。」
슈우카쿠노 오모니 네가이나사이
(マタイ9・35-10・1、5a、6-8)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for his harvest.
(Matthew 9:35–10:1, 5a, 6-8)
Saturday of the First Week of Advent
Matthew 9:35–10:1, 5a, 6-8
Jesus went around to all the town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oclaim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curing every disease and illness.
At the sight of the crowds, his heart was moved with pity for them
because they were troubled and abandoned,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for his harvest."
Then he summoned his Twelve disciples
and gave them authority over unclean spirits to drive them out
and to cure every disease and every illness.
Jesus sent out these Twelve after instructing them thus,
"Go to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As you go, make this proclamation: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Cure the sick, raise the dead,
cleanse lepers, drive out demons.
Without cost you have received; without cost you are to give."
2025-12-06「イエスは深く憐れまれた。」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待降節第1土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み心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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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イエスは深く憐れまれた。>
そのとき、9・35イエスは町や村を残らず回って、会堂で教え、御国の福音を宣べ伝え、ありとあらゆる病気や患いをいやされた。36また、群衆が飼い主のいない羊のように弱り果て、打ちひしがれているのを見て、深く憐れまれた。37そこで、弟子たちに言われた。「収穫は多いが、働き手が少ない。38だから、収穫のために働き手を送ってくださるように、収穫の主に願いなさい。」
10・1イエスは十二人の弟子を呼び寄せ、汚れた霊に対する権能をお授けになった。汚れた霊を追い出し、あらゆる病気や患いをいやすためであった。
5イエスはこの十二人を派遣するにあたり、次のように命じられた。
6「イスラエルの家の失われた羊のところへ行きなさい。7行って、『天の国は近づいた』と宣べ伝えなさい。8病人をいやし、死者を生き返らせ、重い皮膚病を患っている人を清くし、悪霊を追い払いなさい。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マタイ9・35-10・1、5a、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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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二〇〇一年九月十一日、イスラム過激派によってハイジャックされた二機の旅客機が、ニューヨーク世界貿易センターのツインタワーに突入し、三千人近い人々が犠牲となりました。九・一一以降、人々は「世界で最も恐ろしい暴力は宗教から生まれる」と非難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のため、次のように語った人さえいました。
「歴史上、がんで死んだ人よりも宗教のために死んだ人の方が多い。」
しかし、どの宗教も殺人や暴力を正当化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殺人や暴力を正当化する行為は、実はその宗教の源泉と教えに反するものです。つまり、人間的判断で暴力を正当化し、それをまるで神の御心であるかのように見せかけるのです。キリスト教の歴史においても、多くの暴力が存在しました。しかし、イエス様は常に愛を語られ、敵をも愛しなさいと教えられました。
確かに旧約聖書には暴力的な場面が多く見られます。しかしそれらを新約聖書から切り離して理解すべき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様によって完成した救いの歴史という枠組みの中で読まれるべきなのです。
では、宗教のために暴力が横行するのでしょうか。むしろ暴力を生み出しているのは世俗的思考です。真の宗教者は決して愛から外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イエス様は弟子たちとともにガリラヤの町や村を巡り歩き、会堂で教えられました。なさったことは二つ、「神の国の福音を告げ知らせること」、そして**「病気や弱さに苦しむ人々を癒すこと」**でした。そして派遣される弟子たちに奇跡の力を授けられました。すなわち、汚れた霊に対する権能を与え、それらを追い出し、病や弱さに苦しむ人々をすべて癒すためでした。そしてこう仰せになります。
「収穫は多いが、働き手が少ない。」
収穫とは、旧約思想において神の業の完成を象徴します。しかし、その神の業を完成へと導くために協力する働き手がいないのです。
つまり、真の宗教者が不足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殺人や暴力を正当化する偽りの宗教者ではなく、どんな状況でも愛を実践する真の宗教者がもっと必要だということです。そのような真の宗教者を通して、私たちは主からより大きな恵みと愛を受けることができます。だからこそ私たちは祈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の業を完成へと導く働き手が多く与えられるように。**そうして初めて、今日の第一朗読で語られたイザヤの預言が実現するでしょう。
「まことに、あなたたちはもはや泣くことはない。主はあなたの呼ぶ声に答えて必ず恵みを与えられる。主がそれを聞いて、直ちに答えてくださる。(イザヤ 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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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福音を読み、主が願っておられる働き手となれ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