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무당거미 한 마리가 참나무에 대 저택을 짓고 명상에 들었다. 자태가 제법 우아하다. 8개의 긴 다리를 꺾어 포즈를 잡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다리만 긴 게 아니라 허리도 잘록하다. 다분히 섹시하다. 곤충보다 두 개의 다리가 많고 머리와 가슴은 분리가 되지 않아 비슷하게 보여도 곤충과 다르다고 으스댄다. 그토록 엉성해보이는 거미줄 집일지라도 투명한 형태미를 따를 곤충의 집이 없다. 개성 만점의 집에서 먹이를 포획하여 즉석 포식을 하지 않는다. 집어딘가에는 늘 포획된 먹잇감이 거미줄에 감겨 숙성되고 있다.
집이라고는 가려진 곳이 없고 도처에 날 것들이 지천인데 거미의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비롯 되는가. 먹이 사슬에 걸려들지 않는 것일까. 공원에서 숲해설가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이 난다. 도도하게 포즈를 취하고 모델이 되어주는 무당거미의 무엇에 호기심이 피어나는지 아이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놀이마당에서는 거미줄 모양의 수업 도구를 가지고 "거미가 줄을 친다" 는 가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놀고, 정자에서는 공작 도구인 클레이로 거미를 만들어서 손바닥에 들고 이동을 한다. 나는 아이들이 만든 창작품을 보며 아이스크림에 초코가루를 뿌리듯 미소와 놀라움을 뿌려주고 지나갔다.
색스러운 몸통만 만든 아이, 8개의 다리를 강조한 아이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꺾어 8개를 꽂아두엇다. 가늘고 굴절된 다리에 비중을 두어 만드느라고 수고한 아이는 국수가락처럼 늘여서 간신히 8개의 다리를 붙였고 , 거미의 입 가에 아주 작은 물체를 붙여둔 아이는 자기 식으로 먹을 것이란 생각이다. 같은 설명, 다른 거미로 태어났다. 같거나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관찰을 통해 들어온 감동으로 창작한 거미를 손바닥에 얹고 행여나 부서질세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을 보았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읽는다.
나는 아이들과 달리 거미란 가수가 생각났고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 여가수가 왜 거미란 애칭을 사용했을까 몹씨 궁굼했다. 나는 타인의 시선에 거미가 되었다. 박양근 평론가가 나를 거미에 빚댔다. 아마도 거미 꽁무니에서 줄 뽑아내듯 글을 쓴다는 의미가 컸으리라.
우리 눈에 띄이는 거미 수는 적어도 1년 동안 거미에게 잡아먹히는 영국의 곤충류는 영국 인구 전체의 무게와 같다는 통계를 보면 내게 잡아먹히는 글감도 그에 못지 않게 만만치 않은 면으로 보아 나도 거미 속성임에는 틀림없다.
거미나 나나 삶이 투명하고 모성은 강하다. 그 모든 것이 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공원에는 새들 천국인데 도도하게 거미줄에 앉아 쉬는 뱃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거미에게는 독이란 무기가 있고 나에게는 신의 은총이란 무기가 있다. 행여 위기가 닥치는 때에는 여지없이 줄을 늘여 출렁거릴테니 재주도 한 몫 한다. 알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거미가 어느 날 그 알주머니를 거미줄에 달아놓자 새끼가 주머니를 째고 줄줄이 기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임신한 개체가 위기에 처하면 새끼를 사방팔방으로 흩어뿌리면서 생존하기를 기대한다. 엽낭거미는 갓 부화한 새끼에게 자기 몸을 파먹이며 키우기도 한다.
이들은 몇번의 허물벗기를 하며 몸이 커지고 성체가 된다. 나도 몇번의 영적 허물벗기를 통해 강건해지고 능력이 커졌다.
무엇보다 거미는 담배연기에 취약하여 죽기도 한다. 나도 한 때 전매청에 근무한 아버지의 딸로 자라면서 간접 흡연을 하여 기관지가 약해서 목관리가 가장 어렵다. 수시로 목소리가 변하고 염증이 생긴다. 영락없는 거미과다.
타린툴라 거미는 속살이 게살보다 뽀얗기도 해서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며, 이미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식용 거미로 알려지기도 했다. 식단표에 거미튀김, 거미구이가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으나 거미통조림은 나와 있다는 설이다. 그렇지. 내 수필에도 퓨전 수필, 아포리즘 수필, 이미지 수필, 실험수필 등등으로 수식되며 마치 식단표처럼 널려있으니 독자의 먹거리가 된다는 것은 기대되는 일이다. 15권의 책으로 글통조림을 만들었으니 적지 않은 양이다.
내가 본 거미의 장점은 지혜이다. 땅속생활을 마치고 갓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하루살이나 날파리를 잡기 위해 잔디 잎과 잎 사이에 촘촘히 그물을 친다. 전 생을 다 살아도 하루인데 날자마자 거미의 밥이 되는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미련스럽게 집 장만을 일찍 하지 않는다. 먹이가 되는 것들이 날개를 달 때 쯤 거미줄을 친다. 헛수고를 하지 않는 거미, 잡힌 날 것을 그대로 먹지 않고 거미줄로 돌돌 말아서 한 쪽에 매달아 놓은 채 소화액을 주입하여 천천히 내부를 녹이며 빨아먹는다고 하니, 나의 수필창작 수법과 흡사하다. 포착한 글감을 집요하게 파고들거나 오래 숙성시켜서 내 정신에 녹여 빨아먹는 식이다.
글감이 생길만 한 곳에 거미줄을 치고, 생길만한 시기에 거미줄을 쳐도 글감이 잡히지 않으면 그냥 기다린다. 이슬이 거미줄에 수정을 빚으면 전혀 예기치 않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거미줄 건축법으로 사람들에게 방수복 소재를 개발하게 돕고 이슬 맺힌 풍경으로 아름다움을 전해주면서 익충과 공존하는 나는야 거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