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우리는 어떻게 의미에 이르게 됩니까?
답 : 삶에 그 가치를 부여해 주는 것이 의미입니다.
그리고 삶이 의미를 상실할 때 당사자는 자살을 합니다.
의미는 가치로부터 생겨납니다.
행복을 결정해 주는 것이 삶에 관한 사실이나 사건들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라는 것을 통찰할 때
그것은 철학이라는 주제 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집니다.
철학은 지성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영역입니다.
철학은 의미와, 의미가 내포하고 있는 정교한 내용을 고찰하는 영역입니다.
철학은 의미의 구성 요소들과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가를 정의하려 애씁니다.
이러한 탐구는 인식론, 혹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무엇인가를 알게되는가에 관한 학문으로 이어지고
인식론은 다시 우주론을 낳는데,
우주론은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정의하려 애씁니다.
신학은 인식론과 우주론을 넘어선 단계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선형적인 지성을 최대한 구사하여 비선형적인 신성의 실상 그 자체를 이해하려 애씁니다.
추상화 작업에서 그 다음으로 높은 단계는 형이상학으로 이동합니다.
형이상학은 비이원적인 실상에 관해서 말하고
주관을 영적인 진리의 영역으로서 다시 강조합니다.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는 말은 그저 '물리적인 세계를 넘어서'를 뜻하는 말에 불과합니다.
형이상학이 말하는 실체들 너머에는 전통적으로 신비로운 것으로 서술된 경험 수준들이 있습니다.
신비로운 상태들 너머에는 전통적으로 깨달음이라 부른 앎의 상태가 있습니다.
깨달은 상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앎을 통해 신과 분리된 자아의 모든 이원성을 버리면서
영적인 진화의 궁극적인 완성에 이릅니다.
그 최종적인 깨달음은 오로지 전체적인 하나임만이 존재하고
참나와 참나의 근원 또한 하나라는 것입니다.
무한하고 궁극적인 잠재성은 존재의 실재(Actuality Existernce)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래 신성하며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성의 절대적인 표현은 주관성(Subjectivity)입니다.
따라서 만일 내가 존재한다면 (I exist) 신은 있습니다.(God Is).
깨달음은 모든 존재가 창조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창조자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증거입니다.
창조된 것과 창조자는 하나입니다.
일단 지각이 만들어 낸 거짓된 이분법이 타파되고 나면
실상의 본질은 절로 명백하고 자명해집니다.
거기에는 사고 작용이 지어낸 거짓된 주객 같은 가공품이 남아서
실상 창조자 대 창조된 것으로 분리시키는 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완전한 주관성의 비이원적인 실상에서 모든 환상은 사라집니다.
모든 존재와 창조의 근본은 주관성의 상태입니다.
신은 주관성의 본질입니다.
존재를 지각하는 주체가 바로 우리 내면의 , 신의 현존에 대한 앎입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함께 우리는 추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추구되는 것이라는 영적인 수수께끼를 해결합니다.
본질적으로 주체가 찾는 것은 바로 주체입니다.
주체 대 객체라는 이원적인 양극이 존재한다는 환상은 용해되어 버립니다.
인간이 지각에 의존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시켜 버린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안고 있는 궁극적인 역설입니다.
깨달음의 상태가 드러날 때는 마치 아주 친숙한 곳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체험하는 것과 같은
환희의 순간이 존재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순간적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런 망각은 지각 그 자체의 작용으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성경의 창세기는 이런 망각 상태를
선악이라는 양극의 지각적인 영역의 사과를 따먹는 것으로서
우화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주관성의 순수함은 하나의 위치성에 의해 오염되었고,
그 위치성은 인류를 과오로 인힌 끝없는 고통의 나락에 빠뜨렸습니다.
신이 개입하지 않을 경우 실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인류는 오로지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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