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혼/정임표
풀밭에 누워서 가을하늘을 쳐다보기
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꽃 바라보기
깊은 우물속의 내 얼굴 들여다보기
네 살 된 외손자 손을 잡고 보드라운 잔디밭 걷기
나의 생각과 지혜가 미치지 않는 속이 깊은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기 같은 이런 것들을 나는 좋아 한다. 내 나이도 어느 덧 가을인 탓이리라.
이번 여름에 장모님께서 몸소 겪으신 실화 한 토막. 장모님은 금년에 여든 일곱이신데, 지금도 꼬부라진 허리로 이골 저 밭으로 다니시며 한시도 몸을 쉬지 않으시고 농사를 지으신다. 상주 너르실 산비탈에 오미자 밭이 있다. 장맛비에 풀이 우거져 발끝이 보이지 않는 그 밭에 새떼들이 소란스럽게 날며 재재거리고 있었더란다. 무슨 일인가하여 가까이 가서 보니, 오미자 밭에는 오미자 줄기가 잘 타고 오르도록 이랑마다 긴 쇠막대를 꼽아서 그물 벽을 만들어 주고 있는데 그 그물에 작은 새 한 마리가 걸려서 파덕거리고 있었단다. 그대로 두면 염천의 더위에 힘이 빠져 죽을 것 같아서 불편한 몸으로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서 구해 주려고 하니 수많은 새때들이 날아와서 장모님의 팔이며 머리를 사정없이 쪼더란다. 겨우 그물에 걸린 새를 구해서 하늘로 날려주고 나니 새들이 사라지더란다. 뙤약볕에서 작은 새 한 마리 구해내는 일에 구순에 가까운 노인이 새떼들과 씨름을 했으니 오죽이나 숨이 찼으랴! 밭 옆에 있는 큰 감나무 그늘에 쉬며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그때 어디서 처음보다 더 많은 새떼들이 날아와서는 장모님 머리 위를 한 동안 맴돌며 재재재재하고 노래를 하고는 날아갔는데 그게 꼭 동료를 구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 것처럼 보였더란다. 장모님께서 체험하신 동화 같은 이야기 한 토막을 전해 듣고 오래 전에 읽은 법정스님의 글이 떠올랐다.
“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노파가 다람쥐 굴을 발견하고 그 속을 뒤졌더니 도토리가 한바가지나 나왔다며 자랑을 하였는데 그 다음날 추운 아침에 다람쥐 가족들이 그 노파 방 앞에서 줄을 지어서 얼어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스님과 장모님이 거짓을 전한 게 아닐진데 어찌 인간에게만 아름다운 영혼이 있다 할 것인가. 우리 집의 반찬은 거의 대부분이 장모님께서 농사를 지어서 바라바리 싸서 보내 주신 것인데 아내는 이걸 또 서울에 사는 자신의 딸아이에게로 보낸다. 새들의 영혼, 다람쥐들의 영혼, 인간들의 영혼이 모두 아름다운 세계에서 살기를 기도한다.
첫댓글 영혼을 맑게 해주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