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산문)
봄,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
남덕현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30|147×217×13 mm|216쪽
15,000원|ISBN 979-11-308-1560-2 03810 | 2020.2.5
■ 도서 소개
허무를 품는 심오한 사유와 봄빛 같은 문체
남덕현 수필가 겸 시인의 네 번째 산문집 『봄,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가 <푸른사상 산문선 30>으로 출간되었다. 일상과 자연과 주변 사물들을 예민한 감각과 허무주의적이면서도 심오한 사유를 토대로 담백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그려냈다. 문장 사이사이 배어나오는 저자 특유의 무덤덤한 유머와 사투리 말씨는 독자들에게 재미는 물론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 시인 소개
남덕현
1966년 대전에서 태어나 보문고등학교와 서강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산문집으로 『충청도의 힘』 『슬픔을 권함』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등이, 시집으로 『유랑』이 있다. 2013~2014년 『중앙일보』에 칼럼「남덕현의 귀촌일기」를 연재했다.
■ 목차
프롤로그
제1부 두 개의 문
친구, 전화하다 / 집들이 손님 / 장례식장에서 / 어머니, 전화하시다 / 수녀님께 / 얼근한 전화 / 새벽에 아들에게 쓰다 / 멀쩡하시네요? / 두 개의 노점 / 두 개의 문
제2부 한여름 밤의 백일몽
오후 / 낮잠 / 공연한 아침 / 변두리 동네, 오후 / 한여름 밤의 백일몽 / 개가 나에게 / 며칠 앓고 난 후, 마당에서 / 아홉 개의 가을 / 공원에서
제3부 불가촉천민
편의점에서 / 텃밭에서 / 성당 앞에서 / 염불 / 산책에 대하여 / 스님께 / 겨울밤, 산속에서 / 불가능의 봄 / 불가촉천민 / 화병(花病), 화병(火病), 생병(生病)
제4부 모르고, 모르며, 또 모른다
후배, 전화하다 / 폐가에서 / 지루한 봄 / 암자에서 / 유랑 / 애인에게 / 굿바이 크리스마스 / 유언 / 모르고,모르며, 또 모른다 / 겨울
■ '프롤로그' 중에서
1.
이 세계가 불완전하게 감각될 뿐,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을 때 비로소 사유가 시작된다.
까닭을 모르고 넘어질 때에만 ‘넘어짐’에 대한 사유가 시작되고,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를 때에만‘슬픔’에 대한 사유가 시작되며, 까닭 없이 한숨이 나올 때에만 ‘허무’에 대한 사유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 세계는 나에게 ‘앎’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모름’을 요구한다.
이 세계는 나에게 통찰을 요구하지만 끝내 통찰할 수 없는 세계이며, 결국 통찰되어서는 안 되는 모순의 세계다.
모순의 세계는 신이 형벌처럼 던진 대답 불가능의 질문이기도 하고, 스스로 자초한 자학이기도 하다. 형벌이든 자학이든 분명한 것은, 그 모순의 세계 속에 사물의 세계가 있고 그 사물의 세계가 배양하는 상념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물의 세계를 산책하며 상념을 배양하는 일이 나는 무척이나 행복하다.
그래서 이 책은 자학의 기록이자 행복의 기록이다.
2.
사물의 세계에는 오직 직선과 곡선만이 있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어쩌면 나는 이미 직선과 곡선이 아닌 제3의 선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발견된 것이 아니다.
언어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언어가 제3의 선에 어떤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는 아직 발견된 것이 아니다.
언어의 발견 없이는 나는 단 하나의 사물의 세계도 발견할 수 없으며 끝내 사물의 세계와 접촉할 수 없는 불가촉천민이다.
나는 언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그만큼 언어를 증오한다.
그래서 이 책은 언어에 대한 의존의 기록이자 증오의 기록이다.
■ 추천의 글
사막의 봉쇄 수도원에서 쓴 것 같은 이 책은 아주 위험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갈피에 독약을 묻혀 독자들이 죽어가는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처럼 이 책에도 페이지마다 ‘허무의 독약’이 묻어 있어 치명적이다.
아무래도 이 세상은 진실 같은 건 원치 않는 눈치고 남덕현 시인은 처음부터 진실 같은 건 존재할 리 없다는 듯 사물의 세계를 떠돈다.
시인은 기를 쓰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시적 언어를 얻고도 매몰차게 사다리를 걷어차지 못한다. 낯선 타향을 배회하듯 시의 세계를 어슬렁거리다 다시 사다리를 타고 비루한 세계로 내려오고야 마는 시인의 운명은 처연하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 읽으면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허무에 지독하게 허기진 글이다. 행간마다 시의 뼛가루가 풀풀 날린다. 이번 생도 아닌 것처럼 다른 생도 아니다. 남덕현 시인은 길을 가다가 문득 연기로 변할 것 같은 시인이다. 그런 자연연소를 꿈꾸는 시인의 영혼에 촘촘히 박힌 가시가 나를 찌른다. 오늘 조문 갈 상갓집 점심은 '육개장이 짤 것’ 같다.
― 이산하(시인)
■ 출판사 리뷰
산문집 『봄,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는 예민한 감각과 심오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글들의 모음이다. 글 속에서 드러나는 주변 일상과 사물에 대한 사색은 담백하고도 예리하다. 사물의 세계를 산책하며 상념을 배양하는 일이 무척이나 행복하다는 그는 공원의 노인과 비둘기의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그렇게 자신과 주변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사소한 것들을 기록한다. 나른한 봄밤의 정취, 허무와 권태, 그런 것들을 저자는 담백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다.
그 사이사이 배어나오는 저자 특유의 무덤덤한 유머와 이웃 사람들이 주고받는 만담 같은 대화는 독자들을 편안하게 미소 짓게 한다. 정자의 노인들이 주고받는, 선문답 같기도 하고 동문서답 같기도 한 대화며 저자와 어머니의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엇나가는 전화 통화, 충청도 사투리가 양념처럼 곁들여져 더욱 유쾌하다. 웃음과 우울을 넘나드는 이 산문집은 독자들에게 두 배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 책 속으로
투명 문에는 배후가 없다.
안과 밖이 훤히 보이는 문에는 배후가 없다.
배후가 없으면 상상이 없고, 상상이 없으면 환상이 없으며, 환상이 없으면 이야기도 없다.
문에 가려진 얼굴과 얼굴의 배후에 자리 잡은 적대와 환대에 대한 상상이 투명 문에는 없다.
문에 가려진 타자에 대한 상상과 환상, 타자에 대한 철학과 이야기가 투명 문에는 없다.
투명 문은 죽은 문이다.
상상이 죽고, 환상이 죽고, 철학이 죽고, 이야기가 죽은 문이다.
신비가 죽은 문이다.
종일 죽은 문을 드나드는 우리의 정신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두 개의 문」(62쪽~63쪽)
피기는 하였으나 아직 향이 어린데, 그래도 꽃이라고 바람 따라 진다.
꽃잎은 어찌나 얇은지 통째로 바람에 질망정 둘로 갈라지지 않고, 거미줄은 어찌나 가는지 허공에 날려도 토막 나지 않는다.
갈라지고 끊어질 면적과 두께가 없는 불가능한 것들이 지천인 봄, 봄은 불가능의 세계가 기르는 한때다.
나는 봄이 기르는 불가능의 꿈에 젖어 골목을 걷는다.
골목 끝에서 끈 풀린 조막만 한 강아지 한 마리가 전력으로 달려오고, 나는 엉겁결에 주저앉아 맞을 채비를 하며 생각한다.
아, 저놈이 코뿔소였으면!
전력으로 달려와 무릎 꿇고 기다리는 내 가슴에 뿔을 박아주면 어찌 좋으랴 생각한다.
뿔을 박고 한참이나 씩씩거리면서, 내 갈빗대를 부수고 심장까지 깊숙이 뿔을 박아주면 어찌 아니 좋으랴 생각한다.
겨우내 얼어버린 심장이 뚫리고 내 가슴이 다시 온통 더운 피에 젖어 상념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한다.
봄이 코뿔소처럼 달려와 내 심장에 뿔을 받으면 더할 나위 없겠노라 생각한다.
아이는 어디를 만져도 그곳이 아이의 전부이듯, 내 어디를 만져도 그곳이 봄의 전부였으면 좋겠노라 생각한다.
아직은 봄바람이 겨울바람 위에 기름 막처럼 흐느적거리며 굳다가 녹고, 녹다가 다시 굳는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아침에 짜 주시던 염소젖, 딱 그 기름막이다.
바람에서 염소젖 냄새가 난다.
그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봄의 말초신경을 건드려, 봄의 따뜻한 혀가 난폭하게 내 혀를 휘감아 뽑아내 버렸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봄이 기르는 불가능의 세계 앞에서 나의 언어가 모든 가능성을 상실했으면 오죽 좋으랴 생각한다.
「불가능의 봄」(140~141쪽)
보고 싶다고 말씀하신 책 몇 권을 보냅니다.
책장을 넘길 때 내 손가락 지문을 긁고 지나가던 종이의 감촉과, 솟았다 가라앉던 손등 근육과 실핏줄의 미세한 움직임도 책과 함께 보냅니다.
사실 내가 읽은 것은 책이 아니라 그것들, 내 몸의 언어입니다.
내 몸의 언어를 읽으며 참고 기다리면 끝내 책이 나를 읽어줍니다.
말씀하신 나의 독후감 대신 내 몸을 읽은 책의 독후감을 동봉합니다.
일생의 책이라 할 만한 것이 제게도 상, 하 두 권 있습니다.
상권은 끝까지 다 읽지 않았으나 이미 다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용이 지루해서 매일 그만두고 싶으나 어쩔 수 없이 계속 읽습니다. 별거 없는 책을 할 수 없이 매일매일 고통스럽게 읽고 있습니다. 상권을 생략하고 하권을 집어 들고픈 충동에 늘 휩싸입니다. 그러나 하권은 상권을 생략하고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지루한 상권을 죽을힘을 다해 버텨가며 읽고 있습니다.
상권의 제목은 삶, 하권의 제목은 죽음입니다. 삶은 지루하나, 지루한 삶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죽음의 한 페이지도 넘길 수가 없습니다. 참 막막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르고, 모르며, 또 모른다」(178쪽~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