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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를 가리켜, “고도의 지식 시대”라고 합니다. 그것은, 지식 팽창의 시대이고, 정보화 시대이며, 전문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으로 세계의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병에 대한 많은 지식을 알고 와서, 의사에게 진료받기보다 가르치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날마다 발생하며, 생활이 첨단화되었기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우리 삶 속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까? 오히려, 풍성한 지식과 이론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가운데,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무엇인가에 늘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지식이, 생존의 수단으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직장인들의 상당수는 먹고 살만한 돈만 있으면, 당장 퇴직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장인의 내면적 자기 퇴직”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이는,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은 퇴직한 상태로 방황한다는 겁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습니까? 시대의 발전이 생존의 수단은 붙잡고 있지만,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붙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캠브리지 대학교의 교수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는, “당신을 편안하게 해 줄 종교를 찾는다면, 나는 기독교를 절대로 추천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리를 찾는 것이 자기중심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기독교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완벽한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십자가이기에, 십자가를 덮어 버리면, 우리의 신앙은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된 우리가 행하는 신앙에 근거된 모든 행위는,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세상에 내어놓을 것은 “십자가의 복음” 뿐 입니다. 본문 25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크고 탁월한지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교만한 사람은, 우리의 지식과 지혜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으며, 우리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야스퍼스”는 “현대인의 가슴에는, 하나님은 쫓겨나고 맘몬이 앉아 있다”라고 했습니다. 현대는, 과학이나, 기술이나, 컴퓨터나, 정보가 생활의 모든 과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경은,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과학의 보증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8 - 19절을 보시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본문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란, 그 의미가 대단히 응축된 말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구원의 진리로서의 “십자가의 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그 죄 값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를 불쌍히 여기심으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씻기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아 멸망치 않고 구원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우리는 동산에서 멸망하고 동산에서 구원받았다. 에덴의 완벽함은 폐허로 끝났고 겟세마네의 구원은 쓰라린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개인이나 나라가 멸망할 때의 징조는, 진리가 미련스럽게 보이고, 십자가가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래서,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한 것으로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능력이며, 보혈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 믿는 사람을 죄 가운데서 구원해 내고, 생명을 살려내고, 세상을 이기게 하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선한 일과, 산상보훈 같은 것은 대찬성하면서, 십자가의 구속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본문 19절에서 사도 바울은 사 29: 14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지혜나 총명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겸손하게 믿고 순종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임을 말합니다. 헤롯대왕을 보면, 알량한 음모로 메시야의 오심을 막아보려 하였지만, 성공은 커녕, 오히려 성경에 나타난 문자 그대로 응하게 되는 도구가 되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미 6: 8을 보시면,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며, 고후 13: 4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있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능력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십자가의 능력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0 - 21절을 보시면,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전도입니다.
본문 20절을 보시면,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이를 우리말 성경역으로 보시면, “지혜로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 있습니까? 이 세대의 변론가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라고 합니다. 이는, 당 시대의 학문이나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 즉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학문과 지성과 이성이, 결코 지혜롭지 않다는 겁니다. 학자들은 생각을 거듭하고 추론하는 가운데, 분석적으로 이해합니다. 또,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득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먼저 계산하고 움직입니다. 이렇게, 학자들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믿음이 있으나 아직 연약한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지혜의 근원이며 믿음의 주인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권위와 진리의 위력에 압도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사람들에게, 그들이 미련하다고 여기는 “전도”라는 미련한 것을 통해, 십자가의 도가 정말 미련한 것인지 아니면, 지혜 있다고 여기는 학자나 변론가가 미련한 것인지를 분별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이어, 본문 21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전도를 “미련한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전도 자체가 미련하다는 것이 아니라, 겉모양만 화려하게 보이는 우리의 철학이나 지혜에 비교해 볼 때, 외형적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전도야말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최상의 방편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표현입니다. 전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여러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마련하신 구원의 방편으로, 신비 그 자체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없었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심으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신 겁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이보다 더 놀라운 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마련하신 최고의 지혜입니다. 갈 6: 14을 보시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 앞에 진지하게 서 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십자가가 거리끼고 미련하게 보였습니까? 십자가가 부끄러웠습니까? 어디서든 당당하게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고,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십자가 안에 우리 인생의 모든 해답과 소망이 있다는 것을 경험함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대해, 담대하게 증거하는 “십자가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4 - 25절을 보시면,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본문 24절에서 사도 바울은,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믿음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이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믿는 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우리 스스로가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신 겁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물인 지렁이가 우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대로 알게 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부르셨느냐 아니냐에 달린 문제이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앞에서 사람의 지혜는, 그저 무력할 뿐임을 밝힌 겁니다. 이어, 본문 25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우리가 율법 아래서 저주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친히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고, “십자가의 도”를 드러내는 겁니다. 여러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인격과 지혜를 드러내는 겁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받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겁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가라는 “토머스 에디슨”도 조그만 전구하나를 발명하는 데, 무려 일만 번 이상의 실험을 거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겨우 성공한 처음의 전구는 몇 초가 지나자 그만 새까맣게 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태양은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고장도 없이 태양계 전체에 한없는 빛과 열을 발산하여, 생명과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 그리고, 부요하심을 어찌, 우리에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비웃고 거절하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최고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있게 전했습니다. 이를 보며, 성도된 우리도 사도 바울의 이러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오늘 잠시 있다가 사라질 이 땅의 영광을 위해, 하늘의 놀라운 영광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과 같이,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마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