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국가의 헌법이란 모든 법들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따라서 함부로 수정하거나 위반해서는 안 될 법입니다. 그 헌법 중에서도 앞에 나오는 것들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아무리 헌법을 개정하게 된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나,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는 헌법 제2조, 그리고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헌법 제3조 같은 것들은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바로 이런 가장 기본적인 헌법조차 무시하고 이 대한민국 안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주적인 '공산주의 국가'를 찬양하고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해'를 북한에게 넘겨주려는 무리들이 버젓이 국회 안에서까지 설치고 있는 것은 실로 통탄할 노릇이며 충격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비단 제헌 시대에 살던 정치인들과 국민들에게만 해당되는 법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역시 '똑같이' 지켜야 할 법이며, 그것은 법치국가에 살고 있는 양식 있는 국민이라면 정말 기본자세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역시 그처럼 시대가 바뀌어도 불변하며 대대에 이르도록 모두가 다 지켜야만 하는 법이 있었는데 바로 '십계명'이었습니다. 본문 1절부터 5절 상반절에 기록하기를 "1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2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4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a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요단강 건너편으로 멀리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설교'를 하게 되었던 모세는 그 서두에서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직후에 "호렙산" 즉 시내산에서 받았던 '십계명'을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일러주었습니다. 그 언약의 계명은 그들의 "열조" 즉 출애굽 세대만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지금 모세가 강조하고 있는 대로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는 이제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이스라엘의 신세대에게도 십계명은 반드시 지켜야만 할 '불변의 절대적 계명'임을 마지막 순간까지 일깨워 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 십계명 중에서도 처음 네 계명은 바로 하나님 섬기는 방법에 관한 계명이었습니다.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시내산의 계시를 통하여 당신을 계시해 주시는 제일 첫 순간부터 아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이처럼 명백한 '성문'으로써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 십계명의 서문은 본문 5절 하반절부터 6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5b여호와께서 가라사대 6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창조주로 나타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는 구원주로 당신을 스스로 선포하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이스라엘 백성에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십계명은 우리의 구세주가 주시는 계명 즉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주님께서 내리시는 명령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와도 세우신 이 언약의 계명들을 상고함으로써, 과연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치고 명령해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고 깨닫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다른 신을 자신을 위하여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섬겨야 합니다. 본문 7절의 말씀에 "7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제일신'으로 섬기는 정도가 아니라 '유일신'으로 섬겨야 한다는 뜻으로서, 당시의 고대근동사회에서 범람하던 일반적인 종교관에 정면으로 쐐기를 박은 명령이었습니다. 당시의 다른 모든 이방 종교들은 예외가 없이 다 '범신론'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지역을 따라 혹은 민족을 따라 여러 가지 종류의 다양한 신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같은 범신론적 사고방식은 자연히 피차의 신들을 서로 비교해 보게 하는데, 그 결과 물론 차이점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신들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으므로 사람은 어떤 신이든지 하나를 선택해서 믿기만 하면 관계없다는 결론에 절로 이르게 되며, 단지 그 중에서 어느 신이 더 우월한 신인가 하는 정도의 차이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을 그런 식으로 섬기기를 결코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신들과 비교해 본 후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중에 제일신이다'라고 믿는 것은, 다른 신이라면 그 정도만 해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지 모르지만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아주 분명하게, 아주 강력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여기 "나 외에는"이란 말은 '나와 대립시켜'라는 뜻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다른 신들을 내세워 하나님과 대립시켜 비교하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으시고, 사람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 알고 모시고 섬겨야 한다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 자신의 실존과 절대주권에 대하여 당당하신 자부심과 자존심이 충만한 선언이 아니겠습니까? 가짜 신들은 결코 이런 명령을 사람에게 내릴 수 없습니다. '다른 신들과 아예 비교조차 하지 말고 나만 섬겨라' - 이것은 오직 진짜 신, 참 하나님만이 사람에게 내릴 수 있는 너무나도 멋있는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법에 관한 계명들 중에서도 제일 첫 계명이니 이 제1계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악질적인 종교생활이란 바로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하나님과 대립시켜 놓고 비교해 본 후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다른 종교를 기독교와 대립시켜 놓고 비교해 본 후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다 같은 것이니 기독교 뿐만 아니라 다른 아무 종교를 믿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것 역시 이 계명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명백한 반역행위일 뿐입니다. 그처럼 이 제1계명을 어기는 자는 비록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할지라도 사실에 있어서는 불신자와 오십보백보일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란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다른 신을 아예 두지 않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것임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바로 8절부터 10절에 "8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9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명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보기 싫어하시는 꼴불견은 사람이 자기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만든 것들 앞에 스스로 엎드려 절하며 섬기는 행위입니다. "새긴 우상"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것', 말하자면 사람의 창조물입니다. 당연한 순서로 말하자면 만든 사람이 그 만든 것에 대하여 주인 노릇을 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자기가 만든 것을 자기의 신으로 모시고 섬기니 주객전도도 이런 주객전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종교인들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 대신 섬기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 행위를 두고 "나를 미워하는" 죄라고 단정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런 꼴을 보일 때 "질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질투란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남에게 빼앗길 때에 일어나는 심정입니다. 즉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을 다른 우상에게 빼앗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로 인하여 질투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질투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무슨 악감정 같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 하는 점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하나님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자기네들의 불신앙을 변명하는 최대의 논거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 그래서 자기가 감각할 수 있고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믿게 되는 우상 숭배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일단 참 하나님을 떠나 버린 사람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자기라는 존재와 그 자기가 만들어낸 것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사람은 자기 이성으로 추론해낸 원리, 사람이 자기가 만든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우주, 사람이 스스로 추구하고 싶은 욕망, 사람이 자기 힘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이상 - 이런 것들만 하나님 대신 믿고 숭배하고 사랑하면서 그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가 만들어낸 우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배역 행위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구약 여러 곳에서 '음행'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극히 적절한 표현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을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보다 더 숭상하는 것 -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는 바로 이 엄청난 바보짓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가시적인 조각물'로 전락시켜 버리지 말고, 오직 자신의 인격의 지성소에 모시고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그런 '인격적인 부모의 신앙'이 자식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것이며, 바로 그 결과 그 후손의 "천대까지" 이르는 은혜가 축복의 유업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만 신이라고 생각하는 엄청난 착각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우상을 하나님 대신에 섬기는 엄청난 죄악에 결코 빠지지 말고, 오직 성령께서 감화감동하시는 자신의 심령의 성전에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항상 인격적으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고 하나님을 지극히 존중하며 섬겨야 합니다. 본문 11절에 "11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치 아니하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 "망령되이"라는 말은 '함부로' 혹은 '헛되게' 등의 뜻으로 쓰인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저속하게 사용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는 죄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름이란 그 이름의 주인 된 존재의 인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사람 사이에서도 남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남의 ID를 도용하여 인터넷 계정을 만든다든지, 자기 나라 대통령의 이름을 사칭하며 돌아다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사용하다가는 명예훼손 내지는 사기죄로 고발당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백성 된 성도는 더욱 그 성호를 부를 때에 지극히 조심해야 함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당신의 선민 된 택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세상 나라의 백성들과는 달리 하나님 나라의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회에서 선포할 수 있는 실로 놀라운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불러 사용할 수 있는 까닭에 그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헛되이 부를 위험 또한 크게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집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지 않습니까? 사실 '아버지 이름'이란 표현도 버릇없는 것이라 해서 '부친 존함'이라 해야 하고, 그 이름의 각 글자 뒤에 반드시 '자' 자를 넣어 부르는 것이 예의인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드는 법은 그에 비하면 어느 정도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자기 자녀들이 영어라고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oh my God' 따위로 저속하게 사용하는 것을 그냥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나, 그 이름으로 서원기도를 드린 것이나, 그 이름으로 주일마다 신앙고백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뭐 이름 정도 가지고 사람이 조금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이지.'라고 제멋대로 속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에, 거짓 맹세에 사용하고 있는 지극히 심각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당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사람을 "결코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우선 그 하나님의 이름부터 진심으로 귀히 여기고 지극히 존중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함을 늘 기억하면서, 이 '하나님 여호와의 성호'를 늘 경외하는 마음과 함께 부르고 전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성별된 마음과 자세로써 섬겨야 합니다. 12절 이하 15절에 "12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안식일 제도는 이미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지켜져 왔음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미 출애굽기 16장에서 만나를 내려 주실 때에도 제 칠일 즉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들에 나가지 말라고 명하신 장면이 있었습니다.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십계명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긍정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의 세 계명들은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하라'는 명령이 주어진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다른 날들과 구별하여 떼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날을 구별해서 준비하는 가장 기초적 단계가 곧 모든 개인의 일을 쉬고 휴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에 대하여 너무나도 명백하게 강조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 십계명에서 뿐 아니라, 다른 모세 오경 중에서 하나님께서 안식일이나 성일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말씀에서는 거의 예외가 없이 '그날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바늘에 실 가듯이'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안식일을 성수함에 있어서 '일'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방해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도 사람이 달리 하고 싶은 자기 일, 먼저 해 놓고 싶은 자기 일, 급히 처리해야 할 자기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을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잘 아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의 일'을 쉬지 않고는 결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재삼재사 강조하시어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흔히 "급한 일이 있어서 이번 주일은 못 지키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자기 딴에는 아주 합당한 변명이요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오로지 말도 안 될 소리일 뿐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아무 할 일이 없으면 주일을 지켜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할 일이 있어도 그것을 쉬고 주일을 지켜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본인뿐 아니라 "네 남종이나 여종"까지 즉 자기 사업처에서 일하는 직원들까지 주일은 반드시 쉬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모든 이유와 변명은 사람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지, 하나님께서 명하시거나 허락해 주시거나 눈감아 주시기로 약속해 주신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무리한 명령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힘써 네 모든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엿새"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지나친 요구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과 편 팔" 등 그야말로 전지전능을 다 동원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일이라는 날만큼은 완전히 하나님께 '성별'하여 바쳐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일'을 위해 '떼먹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신자가 자신의 '시간'뿐 아니라 나머지 모든 마음과 정성과 힘과 뜻과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치면서 섬기는 제일 기본단계가 되는 것을 깨닫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제일 첫째 긍정명령인 주일성수를 꼭 순종하여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어른을 잘 모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이 정말 더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 어른이 정말 무엇을 바라시는지 도통 솔직히 말씀해 주지 않으실 때입니다. "그런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라든지 "네가 알아서 해라."고 어른이 말씀하실 때에는 정말 난감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모시기는 해야 하겠는데 그 속마음을 잘못 읽고 모셨다가는 좋은 뜻에서 한 일도 오히려 어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역정을 내실지도 모르니 아랫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곤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어른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자식이나 아랫사람에게 분명히 가르쳐 줄 때에는 정말 쉽습니다. 무얼 잡수시고 싶다고 하신다든지 혹은 어디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씀하시든지 하면, 그런 경우에 어른을 모시기란 매우 간단명료합니다. 그저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기만 하면 아무 뒤탈 없이 깨끗이 끝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잘 생각해 보면 어른이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시는 것은 아랫사람의 처지에서는 결코 부담스러워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른께 감사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당신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만 사람 앞에 밝히시고 '이제 너희들이 알아서 날 잘 섬겨라'고 명령하셨다면 사실 사람으로서는 그 얼마나 힘든 일이 되었겠습니까? 자식이 부모님 속마음 알기도 힘든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속마음을 바로 살펴내어 제대로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섬겨야 당신께서 기뻐하실지에 대하여 이 십계명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를 통하여 지극히 명료하게 밝혀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일이란 단지 그 명령에 따르는 것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사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란 이처럼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섬길 때는 그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만 섬기면 됩니다. 굳이 쓸데없는 다른 궁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왜 사람이 만들어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바보짓을 하려 합니까? 하나님을 다른 신과 같이 여기는 것, 인간의 창조물을 하나님 대신 숭배하는 것, 하나님의 성호를 자기 편리하게 남용하는 것, 하나님의 날을 자기 일로 채우는 것 - 사람이 생각해 낸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정말이지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모시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호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부르고 하나님의 성일을 성별된 자세로 지키는 이 네 가지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 섬기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원하시고 친히 명하셔서 성경 말씀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이 십계명을 따라 하나님을 신실하고도 충성스럽게 섬기심으로써 그 하늘 아버지를 진정 기쁘게 해 드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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