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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소-네트워크이론(ANT)로 풀어본 수필의 세계
종교가 된 화원, 식물성의 축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자연이라는 대예술가는 평범한 꽃들을 누구의 눈에나 뛸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가장 천한 잡초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그 경이와 아름다움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닿는 데에서 만들어진다. 희귀한 꽃은 그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 조물주의 보다 섬세한 기분으로 창조된다. 이러한 꽃을 발견하면 더욱 신성한 경지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은 것 같은 느낌을 우리는 맛보게 된다’라고 한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에서의 말은 김예순의 수필을 떠오르게 한다. 꽃의 매력은 뭐니뭐해도 아름다운 침묵에 있다. 오직 꽃만이 꽃병을 신성화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예술가들이 꽃을 소재로 작품을 쓴다. 꽃은 자연의 대표적 원형으로 특히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사랑하는 것은 풍류의 하나다. 청복이 있는 사람이라야 능히 꽃을 사랑할 수 있는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복은 저마다 갖는 복이 아니다. 우수에 잠기고 인색한 사람이 어떻게 이 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맑고 밝은 미소는 물론 좋은 마음, 좋은 말과 좋은 행동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김예순이 걷는 봄길에는 행운의 크로버가 인사할 정도록 그녀는 식물성의 행위소와 친숙하다.
꽃은 봄의 중추요, 생명의 표지라 탐화봉접이란 말이 있거니와 꽃을 탐하는 것은 봉접뿐 아닐 것이니 무릇 생명을 가지고 생명을 예찬하는 자 누구든지 꽃을 좋아할 것이다. 이효석은 <실록의 향기>에서 꽃을 볼 때와 음악을 들을 때같이 사람이 산 보람을 느끼는 때는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윤오영의 말을 빌리면, ‘한 송이 꽃은 우연히 가지 위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온 그루에 모인 정이 필연적으로 터져서 유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뷔르노 라투르의 <행위소-연결망이론>에 따르면 생명체고 비생명체고 전부 하나의 행위소다. 동물도 식물도 사물도 환경도 기술도 문자도 전부 다른 행위소에 영향을 미친다. 복잡계의 세상 속 모든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동적 관계 속에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 즉 구조접속을 통해 하나의 사건이나 만남은 하나의 하이브리드 의미체가 된다. 이효석은 라투르의 행위소-연결망이론을 어록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꽃을 사랑하는 김예순 작가와 비인간인 꽃의 네트워크가 구축하는 생태계의 확장을 눈여겨 보는 것이 이 수필을 감상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당신은 손에 총을 쥐고서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총이 당신에게 쥐어지면서 당신은 달라진다는 뜻이다. 총을 쥐기 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총이라는 행위소가 인간이란 행위소를 만나면서 사람이 달라지고, 총이 달아진다는 것이다. 총을 가지기 전에 없었던 분노가 사람에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총이 사람이라는 인간 행위소에게 오기 전까지만 해도 총은 하나의 객체로서 물체였지만 사람이라는 행위소를 만나게 됨으로써 총이라는 행위소가 인간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생명성과 생명성이 없는 총과의 연관성,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나 작가와 꽃의 만남이 다를 수 없다. 총을 쥐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 총을 쥐는 순간 갑자기 적개심을 준 사람들에게 살인을 할 생각을 품게 만드는 것을‘목표의 변혁’이라고 하는데, 이런 행위소-연결망이론으로 김예순과 꽃의 만남, 그 역동적 상호관계를 파악하면, 꽃이라는 행위소가 김예순에게 미친 영향, 즉 ‘목표의 변혁’을 분석할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수필감상의 새로운 관점을 확보할 수가 있다.
Ⅱ.
김예순 수필 속 봄, 호수, 공원, 꽃 등 모든 것을 비인간이라고 하는데, 이런 모든 비인간적인 속성을 가진 것들이 독립적 개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행위소를 만나면, 다시 말해 구조결속을 하면, 사람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행위소-네트워크이론에서는 모든 것이 객체다, 주체도 객체고 객체도 객체다. ANT이론은 3가지 특징을 가지는데, 첫번째 모든 행위소가 동등한 자격(대칭성)을 갖는다.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생명성이 없다고 굴복되거나 종속되는 것이 없다. 두 번째 과학과 기술이 구분되지 않는다. 주체와 객체, 거시화와 미시를 구분하지 않는다. 셋째 인간의 역량은 독립적인 존재의 역량이 아니라 어떤 네트워크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관계가 존재 가치를 결정한다. 즉 행위소가 다른 행위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행위능력이라고 하는데, 행위소의 연결에 의해 독립된 개체 액터actor는 행위능력이 가능한 ‘에이전시’가 되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의식이라 하겠다. 인간과 꽃의 만남은 인간과 비인간의 구조접속에 해당하고, 이런 두 행위소의 상호작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뷔르노 라투르의 행위소-연결망이론의 주요한 특징은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지 않고 동등한 객체로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고는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적 접근을 통해 김예순의 수필에 나타난 행위소 연결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과 무관한 기술도 무생물도 인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행위소-연결망이론과 객체지향존재론의 핵심이다. 어떤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우리는 수필가의 자술서나 마찬가지인 수필을 통해 그 결과를 알 수도 느낄 수도 있다. 모든 액터, 즉 김예순이 만나는, 또는 만나지는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사람의 행동이나 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구조주의 방법론이 드러난 이상 매우 흥미로운 감상법이 되리라 믿는다. 호수와 공원이란 자연 환경이 김예순에게 어떤 새로운 생각을 주었을까?
계절의 여왕, 상큼한 5월이다. 파란 하늘 아래 물기둥 솟구치는 대자연의 호수, 윤슬 가득한 그림 같은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이다. 메타세쿼이어 등 싱그러운 초록빛 거목들이 세상을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놓았다. 내 안에 성큼 들어온, 싱그러운 연초록빛 나뭇잎들이 삶의 숨결로 다가와 만심환희한다.
꽃 축제장에 든다. 국제꽃박람회장에는 수백만 송이 꽃들이 관광객을 반긴다.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미세먼지를 씻어낸 앞날 봄비 덕에 살랑거리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은 축복이며, 꽃들 향기 속에 흠뻑 빠져드는 날이다. 호수를 품은 더 넓은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국제적 규모의 꽃 축제는 환희롭기까지 하다. 꽃들 정원에 들어선다. 다양한 테마로 꾸며져 있다. 5월의 여왕인 장미정원에 들렸다. 노란, 빨간, 하얀색 등 송이송이 하나같이 예쁘고 요염하기까지 한 장미꽃이다. 한쪽 튤립정원이다. 햇살 받은 연분홍, 하얀, 보라, 주홍, 빨강, 분홍과 주황 빨간색이 함께 섞인 다양한 꽃 빛이다. 꽃 빛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의 꽃들이 활짝 웃음으로 반긴다. 하나같이 아름다움의 극치다.
- 김예순의 <호수공원의 봄> 발단부
하늘, 호구, 윤슬, 꽃, 봄비, 햇살, 공원, 정원, 장미, 튤립, 꽃빛 등은 독립된 객체지만 자연 감수성이 강한 김예순 작가를 만나면서 강력한 에이전시가 된다는 것이다. 저들이 행위소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자연은 독립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식물들이든 환경이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쳐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비인간적 행위소인 이런 자연물들이 작가에게 영향을 주어서 글을 쓰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고, ‘계절의 여왕, 상큼한 5월이다.’ 라는 문장이 ‘일산 호수공원’을 불러오고, ‘장미정원’ ‘튤립정원’에 영향을 미쳐, 구조가 변화되어, 계속 ‘구조접속’을 거쳐 문단이 되고, 문단이 모여 수필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구조화된 구조가 끊임없이 만나면서, 또 다른 문장을 불러오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한 편의 작품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역동적인 메카니즘을 통해 이 작품이 씌여졌다고 볼 수 있다. 구조접속이 인식이고, 삶이다. 삶은 독립된 것이 아니고 연결망으로 이어져 인접 행위소와 서로가 상호작용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앎과 삶이 하나로 일치가 되는 것을 행위소네트워크이론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인간도 하나의 행위소, 비인간도 하나의 행위소로서 둘 다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대칭성을 갖는다.
샛노란 캥거루포, 진분홍 페튜니아, 더블 페튜니아, 자주색 빨간색 보라색 안젤로니아, 불꽃 같은 샐비어, 달리아, 만데 빌라, 눈부신 다홍빛 카라, ‘나는 애정을 숨길 수 없다’라는 꽃말을 가진 갖가지 꽃 빛의 디기탈리스드 등이 반긴다. 한쪽 코너, 넓은 유리창 안에 전시된 거대한 뿌리 같은 식물이 보인다. 팻말을 보니 이 식물은 아모르포팔루스 라는 약 7년 동안 땅속 덩이줄기에 양분을 모아 단 이틀에서 닷새 정도 기간만 꽃을 피운다고 쓰여 있다. 꽃이 곧 개화가 될 것이라고 쓰여 있다. 곤충 매미의 삶과 닮은, 희귀한 꽃을 못 보는 게 참으로 아쉽다. 화훼 전에서 만난 귀한 꽃은 유튜브에서나 본 귀한 꽃들이다. 꽃으로 세계 여행을 한다.
아름다운 꽃과 햇살이 어울려 빛으로 그려지는 꽃 천지, 세상은 꽃향기로 질펀하다. 하나같이 밝은 모습의 관광객과 자연 속 많은 세상의 색이 어울려 주변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꽃들의 모습은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들의 해외 근무로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손녀와의 나들이기에 행복감이 더한다. 오래전 서울 첫 나들이 때 일이다. 가족들과 호수공원을 찾은 날, 몇 가지 식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날은 산세베리아 몇 그루를 사고 호수공원을 산책하고 왔다. 그때 젊은 여인이 흰머리 할머니 되어, 웅장한 꽃 축제를 보니 격세지감이 든다.
- 김예순의 <호수공원의 봄> 전개부
김예순의 수필을 읽고 있으면, ‘예술미는 자연미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 헤겔의 주장이 떠오른다. 그는 예술을 정신적인 소산으로 여겼으며, 예술의 목표가 단순히 자연을 모방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느끼는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또한 예술을 정신화의 과정으로 보고, 완전한 재현과 모방은 영혼과 생명력이 없는 것이라 치부하였다. 즉 예술을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세계에 근본적인 변형을 거쳐 진리를 감성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이라 여겼다. 그가 동양을 서양보다 한 수 아래로 본 이유는 한자의 자연 모방성이었다. 사물을 인식론적으로 보지 않고, 즉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그대로 본다는 것이었다. 예술의 힘은 바로 개인의 실제 얼굴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기보다는 그의 정신적 내면, 진실된 실재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데 있다는 차원에서 김예순의 수필은 헤겔의 예술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흔히 문학은 인간과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의 참모습을 비춰주는 동시에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삶에 대한 교훈과 진리를 전달한다. 그것은 문학이 일상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안목에 따라 재구성됨은 물론이요, 독자들이 소망하는 삶의 형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모방하거나 일방적인 교훈을 나열하는 식이라면 독자들에게 감흥과 깨달음을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예술은 형식과 내용미의 적절함 속에 개인의 목적과 사회의 목적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 김예순은 화원에찬을 통해 더 나은 사회가 실현되는 것을 꿈꾼다. 그렇다면 우리 수필가들은 무엇보다도 구경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썬글라스를 장착하고 난 다음 꽃의 세계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별채의 전시관에 들어섰다. 신의 작품 같은 꽃들로 꾸며 만든 작품들, 각 국제행사에서 수상한 멋진 플로리스트들의 출품작이다. 태양이 꽃을 물들이듯 예술은 인생을 물들인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많은 시간과 고뇌했을 그들의 예술혼에서, 꽃의 수형과 향기가 좋아 꽃꽂이에 한동안 몰입했던 내 청춘 시절 추억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전시실 한편에는 분재가 반긴다. 섬잣나무, 곰솔, 소사나무, 뀡의비름, 무늬좀대, 팽나무, 주목, 상반시 등 수려하고 귀한 모습인 갖가지 수종이다.
하루를 온통 자연 풍광과 꽃 속에 빠진 생애 최고인 날이다. 더욱 행복감이 드는 건, 다른 일 제쳐놓고 며칠 동안 공휴일을 모두 나에게 할애한 아들과 손녀 덕택이다.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된 우리 큰손녀는 종일 사진사가 된다. 곳곳에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할머니 이 꽃 앞에 서세요. 여기가 더 예뻐 보여요 하며 내 생애 최고의 모델을 만든다. 손녀는 예쁜 얼굴 함께 모델도 되어준다. 유달리 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예약까지 한 어버이날 선물이다. 나를 좀 아는 것 같은 아들의 효심에 내 남은 생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꽃향기 속에 빠져 몇 달을 계속 아픈 무릎 생각은 잠시 잊었다. 저명한 정신 분석학자인 칼 융(Carl Jung)은 “신은 질병을 통해 우리를 찾아온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신체적 증상은 영혼을 승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가 있다고 한다. 아픔을 다가오는 축복의 기회라고 감사하게 받아들이자고 했다. 오늘은 할머니 다리 하나도 아픈 것 같지 않다. 라고 손녀가 웃으며 하는 말에 공감한다. 무릎 통증에 어쩔 수 없어 행사장 오기 전날 한의원에서 침까지 맞았다. 침 덕택도 있겠지만 눈의 호사에 무릎이 하나도 아프지 않고 구경은 끝이 없다. 이 코너에는 큰 유리병에 꽃이 꽃동산처럼 쌓여있다. 팻말을 보니 외국 꽃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꽃 빛과 실크처럼 하늘거리는 꽃잎이다. 볼수록 아름다워 신이 아니면 이런 꽃을 피울 수 없을 것 같다.
- 김예순의 <호수공원의 봄> 전개부
김예순의 이 수필은 전후 맥락이 상관관계로 엮어있어 공감성을 높여준다. 모든 것은 이유를 가진다라고 하는 충족 이유율은 모든 현상이나 행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주제의 구체화를 돕기 위해 김씨는 융의 어록과 손녀와의 동행을 끌여들였다. 그래도 이 수필의 최고 압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꽃 빛과 실크처럼 하늘거리는 꽃잎이다. 볼수록 아름다워 신이 아니면 이런 꽃을 피울 수 없을 것 같다.’는 대목이다. 수필은 지나가버린 삶의 파편을 주워 담는 작업이다. 기억의 창고 속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도 있고, 너무 깊이 보관되어서 얼른 찾아낼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기억들은 시간의 줄에 꿰어져서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낱낱이 부서진 채로 파편이 되어서 흩어져 있다. 분명히 내게 실재하였던 삶의 편린이었는데도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것도 있고 더 선명해진 부분들도 있다. 김예순은 이미 살아오면서 형성되어 있는 식물성과의 인연을 생명의 서정으로 엮어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의미만 부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현재의 나에게 우리 사회에 긍정적으로 보탬이 되는 방향성을 있어야 한다. 그녀는 ‘눈의 호사에 무릎이 하나도 아프지 않고 구경은 끝이 없다.’는 말을 통해 자연을 치유제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운다. 그가 생태적 합리성으로 자연을 종교적 존재로 보는 특유의 독특한 사유로 수필을 쓴 이유다.
철 따라/ 잠시 피었다가// 머잖아/고분고분 지면서도//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꽃// 중략/
‘꽃’이라는/말없이 깊은 종교
문득, 나는 그 종교의 /신자가 되고 싶다//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형형색색 꽃들이 천사 되어 웃고 있다.
넓고 넓은 별천지. 별빛 같은 윤슬과 함께한 호숫가 축제장, 백만 송이보다 더 많은 꽃 천지다. 난생처음 보는 꽃물결 속에 빠져버린 생애 최고의 날이다. 웅장한 규모 국제 꽃박람회장, 정원 내에 유명 카페가 두 군데나 있다. 쉴 겸 카페에 들른다. 따끈하고 달콤한 카푸치노 맛은 어느 때보다 최고의 맛이다. 아픈 다리에 더 앉아 있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봄, 선물을 한가득 안았다.
사랑으로 다가선 자연 앞, 우리 삶 속 오늘 같은 작은 일상이 이렇게 아름답게 빛난다니. 노을의 배웅을 받으며 아름답고 행복한 오늘 추억을 내 마음의 정원에 꼭꼭 심어본다. 한동안 진한 아픔이 더욱 철들게 하나 보다. 문득, 꼭꼭 숨겨 두었던 빛바랜 그리움이 무채색으로 밀려온다.
- 김예순의 <호수공원의 봄> 결말부
김예순은 정원 내 있는 한 카페에 들러 카푸치노를 마시며, 이 맛을 어느 때보다 최고라고 표현한다. 왜 카푸치노가 최고의 맛을 안겨주었을까. 바리스타가 좋은 재료를 써서 맛있게 커피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라투르의 행위소-연결망이론을 조금이라도 아는 지식인이라면, 카푸치노 커피가 맛있는 이유를 커피와 관련이 깊은 행위소와의 연결망 속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다. 별빛 같은 윤슬과 백만 송이보다 많은 꽃천지와 카페 그리고 카푸치노와의 만남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커피에 우유를 탄 것을 카푸치노라고 하는데, 왜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카푸치노라고 하는지 아는 사람은 김예순의 커피맛을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수사 프란치스코는 수도원에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갈색의 수도복을 입었는데, 이 수도복은 독특한 모양의 후드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카푸치노 이름은 수도사가 입었던 두건 카푸치오라는 행위소와의 연결망으로 생긴 것이라는 걸 알면, 꽃을 종교로까지 승화시킨 작가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다.
옷에 달린 모자를 뜻하는 후드는 이탈리아어로 카푸치오cappuccio라고 한다. 라틴어 cappa에서 파생된 말로, cap의 어원과도 같다. 마테오의 수도회가 이후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분파로 인정받은 뒤 널리 알려지자, 그들이 입고 다니는 수도복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다른 수도복과는 달리 후드(카푸치오)가 유독 끝이 뾰족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뇌리에 잘 남았기 때문이다. 카푸치노라는 우유 거품 커피가 등장한 것은 18세기 말인데, 이 이름을 처음 붙인 곳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뜻밖에도 오스트리아였다. 갈색의 커피 위로 하얀 거품이 봉긋 솟아오른 것을 보고 누군가 프란치스코 수도사의 복장의 색깔과 머리 모양을 떠올렸고, '작은 카푸치오(카푸치노)'라고 부른 것이다. 오스트리아식으로는 카푸치네Kapuziner였던 이 베리에이션 커피는 한동안 합스부르크 가문이 즐겨 마시던 오스트리아식 커피였다. 참고로 이탈리아에서 카푸치노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30년대 이후부터였다.
Ⅲ.
삼사, 즉 사람, 사연, 사물을 잘 이해하려면 어떤 만남인가를 아는 게 중요하다. 행위소 자체가 핵심이 아니고, 한 행위소가 어떤 행위소와 만나 어떤 네트워크를 가지느냐가 이 수필을 해석하는 데 가장 포인트가 된다. 어떤 존재가 어떤 존재와 어떻게 만나는지는 수필창작에서도 수필의 감상에서도 중요하다. 행위소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행위소의 존재보다 행위소의 관계에 중점을 둔다. 행위소는 독립된 행위소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존재한다. 기차만 있으면 의미가 없다. 철도라는 행위소를 만나 기차는 역동성을 갖게 된다. 역동적인 힘은 네트워크로 얻는다. 모든 존재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관계적 존재다.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성과 전복 등 모든 상호작용을 ‘translation’이라고 한다. 행위소의 굴절이 없는 자연 상태를 ‘블랙박스’라 하는데, 고장이 나고 굴절이 생기면 비로소 우리는 관련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실체를 보게 된다. 행위소와 행위소가 만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시스템이나 네트워크를 해체하는 것을 역번역이라고 한다. 한 행위자의 의도를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를 나의 세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모든 과정이 translation이다. 김진택은 “translation은 부드럽고 평화로룬 소통이 아니라 사고와 일탈을 근원적으로 동반하는 강력한 충돌이자 접속이며 존재들의 생성과 확장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했다. 이 표현은 꽃과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작가의 행위소들간 의견 충돌, 갈등, 치열한 접속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신은 질병을 통해 우리를 찾아온다.”는 이 수필의 문학성을 견인하는 핵심 행위소라 하겠다.
미셀 칼롱의 translation의 4단계를 살펴보면, 첫번째 문제제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수통과지점’이라는 게 있다. 통과 기준을 만족한 사람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 관심끌기, 세 번째 등록하기, 네 번째 동원하기다. 행위소를 진짜 나의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다, 부여된 역할을 하게 만들면, 하나의 동맹이 구성된다. 가입된 사람과 안 된 사람이 차이가 나도록 하면 효과 만점이다.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4단계와 비슷하다. 극한 갈등-대안부각-만사형통-평화기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는 말과 작가와 꽃의 연결망은 강한 연결성을 갖는다. 김예순은. 자신이 체험한 자연서정의 아름다움을 수필이란 그릇에 담아 작품화하였고,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더불어 삶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전제로 삶의 이치를 내포하는 수필을 선보였다. 수필작가에게 체험은 현실공간에서 이루어진 사실체험과 상상체험을 두루 포괄한다. 현실 속에서 체험이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도 같은 논리이다. 제재를 통해서 주제를 겨냥하고, “한동안 진한 아픔이 더욱 철들게 하나 보다. 문득, 꼭꼭 숨겨 두었던 빛바랜 그리움이 무채색으로 밀려온다.”는 시궁이후공론의 깨달음을 ‘말없이 깊은’ 종교의 차원으로 승화시켜 해석해낸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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