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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도봉산의 겨울 – 사패산,포대,신선대,오봉,우이암
1. 가운데는 자운봉, 오른쪽은 만장봉과 선인봉
屹臨三角岫 우뚝 서서 삼각산 굽어보는
拔出萬丈峯 빼어난 만장봉(萬丈峯)이여
峭如烈士氣 높기는 열사(烈士)의 기상과 같고
儼若高人容 근엄하긴 구도자의 얼굴과 같네
森羅衆冠佩 벌여 있는 형상들은 갓을 쓰고 패옥을 찬 듯하고
戍削千芙蓉 높이 솟은 봉우리들은 일천 송이 연꽃 같구나
瞻言使人敬 바라보고 있으면 공경심이 절로 일고
仰止起余慵 우러러보노라면 게으름을 떨쳐주네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강민정 (역) | 2014
―― 무명자 윤기(無名子 尹愭), 1741~1826), 「도봉산을 유람하며 도봉산의 가을 경치가 금강산보다 낫기에
(遊道峯山 以道峯秋景勝金剛)」 7수 중 제2수
▶ 산행일시 : 2025년 1월 11일(토), 맑음
▶ 산행인원 : 2명(악수, 김종기)
▶ 산행코스 : 의정부 안골,성불사 주차장,범골능선 392m봉,사패산,포대능선,포대,신선대,오봉능선,오봉,
도봉주릉,우이암,원통사,북한산우이역
▶ 산행거리 : 도상 12.2km
▶ 산행시간 : 8시간 5분(07 : 36 ~ 15 : 41)
▶ 갈 때 : 전철 타고 의정부역으로 가서 택시 타고 안골 성불사 주차장으로 감
▶ 올 때 : 북한산우이역에서 전철 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11 – 의정부역
07 : 36 – 안골, 성불사 주차장, 산행시작
08 : 00 – 범골능선 392m봉
08 : 38 – 사패능선
08 : 51 – 사패산(賜牌山, △552.0m)
09 : 33 – 회룡사 갈림길
10 : 08 – 649m봉, 산불감시초소
10 : 38 – 헬기장
10 : 45 – 포대, 716.7m봉
11 : 18 – 신선대(726m)
11 : 25 – 신선대 갈림길, 점심( ~ 11 : 55)
12 : 25 – 오봉능선 갈림길
12 : 57 – 오봉(655m)
13 : 32 – 오봉샘
13 : 51 – 도봉주릉, 오봉고개
14 : 09 – 542m봉
14 : 16 – 우이암
14 : 34 – 원통사(圓通社)
15 : 04 – 297m봉
15 : 31 – 북한산우이역, 산행종료
2.1. 산행지도(서울, 성동 1/50,000)
2.2. 산행그래프
▶ 사패산(賜牌山, △552.0m)
어느 해 겨울 오늘처럼 의정부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안골을 가는데 그 입구에서부터 눈길이라 택시기사님은 더
못 가겠다고 하여 걸어갔다. 오늘은 성불사까지 도로에 눈이 깨끗이 치워졌다. 시내 벗어나니 도로 주변이며 산골
은 눈이 제법 깊다. 예전과 다르게 안골이 인가가 드물지만 성불사가 대찰로 중창하고 나서 도로를 넓히고 콘크리
트 포장하였다. 그때는 성불사가 산속 외딴 암자와도 같아서 들르곤 했는데 이제는 고대광실의 큰 절이라 싫어졌다.
주차장 바로 아래 계곡의 선녀폭포(준홍폭포라고도 한다)는 동안거에 들어갔다. 조용하다. 위쪽 성불사에서는 염불
소리가 아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스틱 고쳐 잡고 왼쪽 사면의 소로인 눈길을 오른다. 가파른 계단 오르막이다.
몇 사람이 이미 오갔다. 그들 발자국은 말간 얼음이라 비켜서 새 길 낸다. 바람 한 점 없는 푹한 날씨다. 한 피치 오
르고 가파름이 잠시 멈칫한 틈을 타서 잔뜩 껴입은 겉옷 벗는다. 그래도 비칠비칠 땀난다.
산에 들면 텔레비전이나 신문, 유튜브 등을 아니 보아서 좋다. 하루라도 세상과 절연하여 아무런 생각 없이 지금
당장 저 암벽과 슬랩을 어떻게 오를까를 궁리하는 게 즐겁다. 산은 겨울 산이라고 한다. 눈이 없을 때는 부드럽기만
하던 등로가 몰라보게 험로로 변했다. 눈에 익고 발에 익은 바윗길이 눈이 쌓이니 짜릿한 손맛을 보게 되는 설벽의
연속이다. 그러다 숲길 지날 때면 나뭇가지 사이로 건너편 산릉을 기웃거린다. 사패산의 동릉이 장엄한 설산 설릉이다.
범골능선에 올라선다. ┳자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사패산 1.5km이다. 우리는 왼쪽 392m봉을 들른다. 사패산 제2
보루인 암봉이다. 전에는 직등하는 길을 막았는데 열어놓았다. 자세 낮춰 바위굴 지나면 높은 암벽 틈새인 가파른
오르막이 나온다. 최대한 숨을 깊이 들여 마셔 배를 죽인 다음 옆 걸음으로 겨우 지날 수 있다. 자칫 끼이기라도
하면 옴죽달싹 못하여 속수무책이겠다 싶어 겁이 더럭 난다. 그새 내 몸이 불었는지 암벽 틈이 더 좁게 느껴진다.
내 비록 키세스에 동참할 용기는 없지만 이렇듯 엄동의 이른 아침에 암릉 암봉을 달달 기어올라 그들을 응원한다.
8시인데 동녘은 아직 여명이다. 확실히 믿을 건 나침반뿐이다. 남쪽인 줄 알았던 수락산이 동쪽이다. 수락산 너머가
부상(扶桑)이다. 이제 막 해가 솟아오른다. 매직아우어다. 나는 해돋이보다는 그 주변이 황금색으로 도색되는 광경
을 좋아한다. 오늘 새벽에 첫 전철을 타고 또 택시 타고 서둘러 여기 온 까닭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해서다.
함께 온 내 친구는 암벽 틈을 뚫기 힘들어 오르지 못하겠다고 하여 오른쪽 암벽 밑을 돌아 남쪽 슬랩을 올라오라고
했다. 너른 암반인 392m봉 정상은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이는 천혜의 성곽이다. 그래서 고구려와 신라 때 보루로 이
용되었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여 원경은 가렸다. 가까운 불곡산, 수리봉, 불암산, 철마산 연릉 등이 실루엣으
로 보이지만 근경은 눈부시게 화려하다. 관객이 나 혼자인 해돋이 공연이 성료되고 자리를 파한다.
내 친구를 마중 나간다. 남쪽 설벽을 내리기가 무척 까다롭다. 눈 녹은 암벽 틈틈을 비집어 내리고 암릉을 길게 돌아
간다. 내 친구는 너무 멀다며 오지 않고 아까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사패산 가는 길은 큰 오르내리
막이 없는 부드러운 눈길이다. 등로 살짝 벗어난 암봉인 400m봉도 당연히 들러 도봉주릉의 위용을 바라보고 내린
다. 해골바위 지나고 530m봉은 넘으면 도봉주릉 갈림길이다. 사패산 0.6km. 송추북능선의 기점인 540m봉을 넘고
바윗길 오르고 이어 데크계단 길게 오르면 사패산 정상이다.
너른 암반인 정상이 눈밭이다. 여기서 보는 톱날 같은 도봉주릉의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그 연봉 오른쪽 멀리
오봉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만경대와 인수봉, 백운대는 피안이다. 주변 경치를 일람하고 먼저 오른 사람들 옆에
우리도 자리 잡고 휴식한다. 하필 음주금지구역이다. 노란 양재기 아닌 컵에 마가목주 따라 몰래 분음한다.
3. 앞은 사패산 동릉, 멀리 오른쪽은 감악산(?)
4. 불곡산
5. 수락산, 그 너머가 부상이다
7. 불암산
8. 왼쪽은 수리봉, 멀리는 철마산 연릉
9. 도봉주릉 649m봉,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10. 사패산과 송이바위
11. 불암산
12. 가운데 왼쪽은 649m봉, 가운데는 포대(716.7m)
▶ 포대(716.7m), 신선대(726m)
한때는 눈길이나 빙판을 동동 걸음하며 발밑에서 느껴지는 미끌미끌한 감촉을 즐겼는데 이제는 아차 하는 낙상이
중병이 되고 만다. 아이젠을 맨다. 아이젠을 매고 걸을 때도 걸음걸음이 매우 조심스럽다. 아이젠 발톱이 나무뿌리
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고 양발의 아이젠끼리 엉켜 그만 나뒹굴기도 한다. 얼마 전 지리산에서 그랬고
지난주 용문산에서도 그랬다. 무사하기 아내의 기도발을 믿는 것도 염치가 있어야겠다.
봉봉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눈길은 여러 사람들이 오간 잘 다져진 눈길이다. 발밑 또각또각 아이젠 박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회룡바위 지나고 505m봉을 길게 내려 바닥 친 안부는 쉼터인 ╋자 갈림길이다. 산을 다시 가는 것처럼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두 차례 가파른 슬랩을 핸드레일 붙잡고 오르고, 가쁜 숨을 고른 다음 암릉 오른쪽 사면 계단
길을 오른다. 오른쪽 암봉인 550m봉 옆을 지나게 되면 가파름은 수그러든다.
소설가 이병주(李炳注, 1921~1992)는 대단한 산꾼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소설 관부연락선, 소설 알렉산드리아,
지리산, 그해 5월 등을 탐독했다. 그가 도봉산 이곳을 걸을 때였을까. 다음은 그의 「도봉산기(道峯山記)」 중 ‘오솔
길은 남고 사람은 가고 ……’의 한 대목이다. 나도 간혹 그러하다.
“도봉산 오솔길을 걸으며 간혹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앞으로 이 길을 몇 번이나 걸을 수 있을까’ 하고.
가끔 만나고 스쳐 지나간 얼굴이 어느 날엔가 돌연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물어보면 ‘아주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오솔길은 남고 사람은 갔다.”
그는 산을 걷고 있으면 부득이 전생과 현생과 내생을 생각하게 된다며, 왕유(王維)의 장시 「곡은요(哭殷搖)」를
떠올렸다.
“대저 인생은 얼마를 살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인생은 무형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이제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세상사 슬프구나.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지 않고 열 살 난 딸만 남겨 놓고 가다니 차가운 들판에 슬픈 곡성
이 들려온다.
뜬 구름도 그 죽음을 슬퍼하여 빛을 잃고 나는 새도 울지를 않는다. 길가는 문상객도 소리를 죽였다. 태양마저도 빛
을 잃고 차갑다. 회고컨대 네가 이 세상에 있을 때 불도를 배우기를 권했건만 그 충고가 너무 늦어 너의 깨달음이
미완(未完)으로 끝났다는 것이 안타깝다. 많은 친구들이 선물을 보내왔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 네 손에 들어가지
못했다. 친구로 못 다한 일들이 너무 많아 후회가 된다. 그래 소리 내어 울며 나는 나의 움막으로 돌아간다.”
人生能幾何 畢竟歸無形
念君等為死 萬事傷人情
慈母未及葬 一女才十齡
泱漭寒郊外 蕭條聞哭聲
浮雲為蒼茫 飛鳥不能鳴
行人何寂寞 白日自淒清
憶昔君在時 問我學無生
勸君苦不早 令君無所成
故人各有贈 又不及生平
負爾非一途 慟哭返柴荊
(이병주, 『산을 생각한다』, 바이북스, 2021)
범골능선에서 준봉으로 보였던 649m봉을 오른다. 산불감시초소는 새로 지었다. 여기서부터 도봉주릉의 장쾌무비
한 암릉 암봉이 시작된다. 포대 너머로 자운봉과 만장봉이 삐쭉삐쭉 모습을 내민다. 한때는 이곳을 올 때면 암릉
암봉을 일로 직등하였다. 지금은 금줄을 탓하며 얌전히 오른쪽 사면의 잘난 등로로 간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러
하다. 암릉 눈길은 조용하다. 사면 슬랩은 설벽이거나 빙벽이다. 난간 붙들고도 살금살금 지난다. 봉마다 경점이지
만 또 다른 경치가 보일까 전망 트일만한 데는 꼬박 들른다.
13. 사패산 정상
15. 앞은 송추북능선, 뒤는 도봉주릉
16. 멀리는 불암산
17. 오봉, 그 뒤는 북한산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
18. 송추북능선 북사면
19. 멀리 가운데는 오봉, 그 뒤는 북한산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 앞은 송추북능선
20. 멀리 가운데는 포대(716.7m)
21. 도봉주릉 656m봉
22. 앞은 사패산, 뒤는 호명산(?)
헬기장 지나고 ┣자 포대능선 Y자 계곡 우회로가 유혹하지만 분연히 직등한다. 숲속 길 잠시 지나고 긴 데크계단을
오른다. 그 끝은 포대가 있었다는 716.7m봉이다. 따스한 햇볕 가득한 데크전망대에서 휴식한다. 이곳 전망의 압권
은 건너편의 나란한 만장봉과 연기봉, 자운봉이다. 그 수직의 암벽에 눈이 쌓여 더욱 준험하게 보인다. 술맛난다.
자운봉이 도봉산의 주봉(主峰)인데, 예로부터 이름이 높은 건 그 아래 만장봉이다. 문인들은 이 만장봉에 대해서
다투어 시문을 남겼다. 다음은 조선 후기 문신인 월곡 오원(月谷 吳瑗, 1700~1740)의 시 「만장봉(萬丈峰)」이다.
萬丈峰頭朝日照 만장봉 꼭대기에 아침 해 비치는데
千巖落木淨林臯 일천 봉우리에 나뭇잎 지니 숲 언덕 정갈하네
不妨搖落風霜晩 나뭇잎 떨어지고 늦가을 풍상 모진들 어떠랴
盡卷雲煙山更高 구름 안개 다 걷히니 산이 더욱 높네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 박재금 이은영 홍학희 (공역) | 2019
Y자 계곡에 다가간다. 털장갑을 벗고 맨손 한다. 철봉 핸드레일을 미끄러지지 않고 움켜쥐기 위해서는 맨손이 불가
피하다. 스틱은 접고 카메라는 배낭에 넣어 몸동작의 자유를 확보한다. 첫 몇 걸음 내릴 때는 움켜쥔 철봉이 엄청 차
가웠지만 이내 차가운 줄 모르고 내리고 오른다. 릿지에 올라서도 손과 발이 긴장한 터라 주변의 경치는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너른 암반에 내려서고 내쳐 신선대를 오른다. 신선대 슬랩은 사람들이 몰려 줄이어 오르고 내린다.
신선대 정상. 정상 표지목과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섰다. 난간 넘어 만장봉과 에덴동산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까지 다가간다.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 가경이다. 도봉주릉에 뒤돌아가서 양지바른 암반 한쪽에 자리
잡고 점심밥 먹는다. 눈앞에서 자운봉을 바라보는 것이 건 안주이다.
▶ 오봉(655m), 우이암
도봉주릉 북사면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눈길이라 잘 다져졌다. 뜀바위이며 주봉과 기름바위 넘어 직등하는 눈길
은 아무도 가지 않아 고요하다. 설사면을 돌고 데크계단을 오르내린다. 칼바위 직전 ┣자 갈림길에서 오른쪽 오봉능
선으로 간다. 바위길 지나고 등로 약간 벗어난 암봉에 올라 건너편 칼바위를 찬찬히 살피고서 긴 슬랩을 내린다.
부드러운 숲속길이 이어진다. 이때 눈(眼)이 휴식한다. 오봉 가기 전 683.7m봉도 예전에 종종 짜릿한 손맛 보던
암봉인데 이제는 세월의 무게로 겁만 늘었다. 눈으로 넘는다.
오봉샘 오가는 ┫자 갈림길 안부 지나 계단 오르고 헬기장 지나 슬랩 돌아 오르면 오봉 제1봉 정상이다. 오봉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눈에 덮인 오봉 연봉이 곱게 화장한 모습이다. 이 또한 맨입 맨눈으로는 보기 어렵다. 탁주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마가목주를 분음하며 감상한다. 오봉샘 가는 길이 한적하다. 바위난간에 턱
괴고 오봉의 앞모습을 바라본다. 내 맨 처음 여기서 오봉을 바라볼 때의 그 벅찼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봉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능선 길이 목책으로 막히는 데까지 간다. 그리고 가파른 사면 내리쏟아 오봉샘이다.
샘물이 찰랑찰랑하다. 도봉주릉 오봉고개 가는 길 1.4km는 지능선을 넘고 넘는다. 어느 해 여름 폭우로 장폭이던
산모롱이 계류는 살얼음이 얼었다. 오봉고개 ┳자 갈림길. 오른쪽 우이암(0.5km)으로 간다. 도중의 슬랩 오른 암봉
에 올라서 뒤돌아보면 만장봉 주변이 현란한 암봉군이다. 오원이 읊은 “일천 봉우리에 나뭇잎 지니 숲 언덕 정갈하
네(千巖落木淨林臯)” 그대로다.
23. 왼쪽부터 만장봉, 연기봉, 자운봉
24. 왼쪽이 만장봉, 오른쪽은 연기봉
25. 도봉주릉, 맨 오른쪽은 706.5m봉, 그 뒤 왼쪽은 칼바위
26. 만장봉과 자운봉 사이에 있는 연기봉
27. 신선대 아래에 있는 에덴동산
28. 만장봉 정상 부분
29. 도봉주릉 706.5m봉(기름바위)
30. 칼바위
31. 멀리 가운데 뒤쪽에 만장봉이 살짝 보인다
32. 오봉
이 암봉 발아래 거북바위는 내가 와서 보기로 수십 년 이래 제자리걸음이다. 야트막한 안부인 ┫자 갈림길 지나고
긴 데크계단을 오른다. 그 중간에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오봉과 칼바위, 주봉, 만장봉에 이르는 연봉이 대폭 병풍
이다. 바위굴 지나고 암벽 오르면 우이암 위쪽 암봉이다. 우이암(牛耳巖)이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웅장하다.
우이암은 원통사와 더불어 예로부터 명소로 이름이 높았다.
우이암은 관음보살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형상이라 하여 관음봉 또는 사모봉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원통이란
절대의 진리는 모든 것에 두루 통한다는 뜻으로 관음보살의 덕을 칭송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계 홍양호(耳溪 洪良
浩, 1724~1802)는 「보은사를 중수한 일에 대한 기문(報恩寺重修記)」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보은사는 원통사
의 영조 때 이름이다.
“도봉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 하나가 오똑하게 솟아서 위로 은하수까지 닿는 것을 만장봉(萬丈峰)이라
고 하고, 만장봉 아래에 깎아지른 듯한 층층 바위가 마치 모자를 쓰고 서 있는 듯한 것을 사모봉(紗帽峰)이라고 한
다. 사모봉 아래에 작은 가람(伽藍)이 있어 원통사(圓通寺)라고 하는데 뭇 봉우리들이 에워싸고 둘러서 있으니 마치
선관(仙官)들이 줄지어 시립(侍立)한 듯하며 위쪽으로 평평한 대(臺)가 이루어지니 이를 칠성대(七星臺)라고 한다.”
우이암에서 등로는 원통사로 내리는 외길이다. 능선 길은 목책이 아닌 촘촘한 대나무 격자 울타리로 막아 개미
한 마리도 지나갈 수 없게 했다. 이 울타리 앞에 온도계가 걸려 있어 들여다보니 영하 14도다. 고장 난 것이 아닌가
싶다. 아까 지나온 649m봉 산불감시초소에 걸려 있는 온도계는 영하 8.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원통사 가는 길
0.6km는 가파른 돌길 내리막이다. 우이암 옆으로 내린다. 너른 공터인 쉼터로 내리고 데크로드 지나면 원통사다.
절집에 들러 우이암 관음보살의 모습을 우러른다. 과연 그럴듯하다. 빈눈으로 절집을 나서기가 아쉬워 대웅전 주련
두 구를 담아온다.
因脩十善三祗滿 한없이 긴 세월동안 십선을 닦은 인(因)으로
果脩千華百福嚴 천 가지 영화와 백 가지 복의 과(果)를 누리시는
원통사를 나와 북한산우이역(2.8km)을 향한다. 소나무 숲속 쉼터 지나 긴 데크계단을 내리고 산모롱이와 산모퉁이
를 번갈아 돌고 돈다. 몇 번이나 올려다보는 릿지가 그립다. 기차바위, 오징어바위, 할미바위, 치마바위, 상투바위.
이 릿지가 끝나는 지점은 너른 공터인 쉼터다. 벤치에 앉아 서로의 배낭을 털어 먹고 마시는데, 젊은 홀로 등산객이
아이젠을 매더니 대뜸 샛길출입금지 팻말을 단 금줄을 넘어 그 릿지를 향하여 가는 게 아닌가.
나는 잠깐 그 길을 가보았다. 눈길에 드문드문 인적이 보였다. 부럽다. 이 아래 297m봉에 올라 상투바위에서 우이
암에 이르는 릿지를 눈으로나 간다. 등로는 먼지가 이는 대로다. 아이젠은 진작 벗었다. 내 친구는 계류가 나오자 들
여다본다. 탁족을 할까해서란다. 한겨울 계류 냉수에 탁족을 하게 되면 더 없이 시원하고 개운하다나. 그런데 계류
는 빙하로 변했다. 북한산우이역에 다가간다.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1564~1635)가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에서 그랬다.
“금강산에서 돌아온 뒤로 나의 심정이 쓸쓸하여 즐겁지 않으니, 참으로 당(唐)나라 사람 전기(錢起)가 이른 바
“고개 돌려 현산을 바라보니, 마치 고향을 이별한 사람 같구나(峴山回首望 如別故鄕人)”라는 격이었다. 한 해 동안
예부(禮部)에서 문묵(文墨)의 일을 접응하노라니 더욱 마음이 답답하기에, 연이어 세 차례 상소하여 해직(解職)을
청하였다.”
나 또한 도봉산을 떠나려니 마치 고향을 이별하는 심정이다.
33. 북한산, 앞은 상장능선
34. 북한산 상장능선 상장봉
35. 오봉
36. 북한산 상장능선 상장봉
37. 우이암 오르면서 바라본 오봉
38. 맨 왼쪽은 칼바위
39. 칼바위
40. 우이암
41. 가운데가 자운봉, 오른쪽은 만장봉과 선인봉, 맨 왼쪽은 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