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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생활피정강의 묵상집(2) ― 천주성삼은혜 피정 ― 첫째 날~여섯째 날(1-248페이지까지)
머리말
차안에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늘 타는 것을 느껴 나의 성소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인 조그만 저의 정성을 모았습니다.
처음에는 책 쓸 것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으로 쓰여진 책을 보급하고 저술가들의 책쓰는 일을 나름대로 도와서 나의 소신을 살아가려고 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다보니 나의 열망을 남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생활에서 깨닫고서야 바로 나의 일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신학이나 기타 전문적인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므로 성서에 대한 교리적인 해석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서에서 “깨어라!”(신앙수기「15. “깨어라!”」편 참조) 하는 소리를 듣고 그 후로 체험하고 묵상한 것이 마음에 와 닿으면 종종 기록한 것을 모은 것들입니다.
많은 시간을 거처 한 구절씩 떠 오를때도 있었고 하루에 몇 구절씩 묵상해 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 전에 묵상했던 것들이 시간이 흐른뒤 문득 그냥 깨달아 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소 교리에 어긋나거나 납득이 가지 않은 점이 있다면 본당 신부님께 여쭈어 보시면 신학에 입각하여 올바른 지도가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문장이나 언어가 잘 묘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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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한 점 저의 기술 부족임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다만 하느님을 탐구하시는 삶에 다소 참고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끝으로 저의 군복무를 마칠 무렵까지는 여느 누구와도 똑같은 평범한 일상 생활이였으므로 세삼스럽게 들먹이지 않겠으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어렸을 때 천주교요리 문답을 외웠고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므로 그 영향을 받아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점이었을 것입니다. 돌아온 탕아처럼 아버지의 집을 찾아 돌아가야만 한다는 믿음이 제 마음 속에 언제부터인지 새겨져 있었으며 그 외에는 평범한 신앙생활 외에는 크게 다른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묵상 모음은 제가 영성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 묵상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한 것이므로 제1권(신앙수기)인 나의 삶 과정 사이에 삽입이 되었어야 순서가 맞지만 여러사람들의 여론에 따라 제2권(묵상집)으로 따로 분류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도 역시 제3권(영성시집)으로 따로 정리하였습니다. 이점들 참고하시고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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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생활피정강의 묵상집(2)
― 천주성삼은혜 피정 ―
-차례-
피정 첫째 날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3-31p)
※ 피정 첫째 날 ‘천주성삼 호칭기도’ 1번(196페이지 참조)
피정 둘째 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31-43p)
※ 피정 둘째 날 ‘예수성심 호칭기도’ 1번(175페이지 참조)
피정 셋째 날 :「진복팔단의 진정한 의미(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43-73p)
※ 피정 셋째 날 ‘아기 예수 호칭기도’ 1번(267페이지 참조)
피정 넷째 날 :「계시(啓示)자의 완전함과 계시(啓示)를
보(받)는 자의 결핍①」(73-105p)
※ 피정 넷째 날 ‘천주성삼 호칭기도’ 1번(196페이지 참조)
피정 다섯째 날 :「계시(啓示)자의 완전함과 계시(啓示)를
보(받)는 자의 결핍②」(105-141p)
※ 피정 다섯째 날 ‘예수성심 호칭기도’ 1번(175페이지 참조)
피정 여섯째 날 :「사람의 명오로 능히 통달하지 못할 ‘성
삼의 오묘한 도리’」(142-343p)
※ 피정 여섯째 날 ‘아기 예수 호칭기도’ 1번(267페이지 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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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다음「마음 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제1권 신앙수기) 차례, (제2권 묵상집) 차례, (제3권 영성시집) 차례」에서 목차와 페이지 전체를 모두 다 확인해 보실 수가 있음을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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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첫째 날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창세 15장 1-21절 ‘하느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다’ 편에서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환상(환시)으로 나타나시어 제사를 드리게 하시고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고
창세 17장 1-27절 ‘계약과 할례’ 편「1절 아브람이 구십구 세 되던 해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살아라. 2절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에서는 생시에 나타나시어 계약이란 말씀을 17장에서만도 14번씩이나 말씀하셨듯이
출애 3장 13-15절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 야훼를 알려 주시다’ 편에서 즉 13절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묻자 하느님께서 있는 그대로 14절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15절 “야훼”라는 이름을 알려주셨듯이....(출애 6장 2-3절 참조)
즉 “나는 전능한 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살아라.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창세 17장 1-2절) 하신 이런 말씀은 책임을 져야 하는 말씀으로써 하느님께서 전능하시니까 하신 말씀이지 전능하지 않다면 하실 수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말로만 “나는 전능한 신이다.” 하고 끝내버린다고 되는 말이 아니라 직접 전능하심을 보여주셔야 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함부로 하실 수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아직도 유효하며 성서 연대기를 보면 약 4,000년 전부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지금까지 전능하심을 보여주셨듯이 또「사도신경」에서「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하듯이 성서를 보면 전능이 보이고 전능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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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 예수님이 보이듯이 즉 그러니까 전능하신 분을 믿고 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초월하는 일이고 사실은 탈혼이 되거나 까무러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요한 14장 1-14절 ‘길과 진리와 생명’ 편에서「6절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절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8절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9절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니 무슨 말이냐? 10절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11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 말씀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모든 역사를 통털어 유일하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니까 길, 진리, 생명이심을 드러내 보여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으로써 사람이 되셨을 때 길, 진리, 생명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말씀이지 그냥 함부로 하신 말씀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2025. 1. 21. 신명기 6장「14절 너희는 너희 주위에 있는 민족들의 신들 가운데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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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너희 가운데에 계시는 주 너희 하느님은 질투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주 너희 하느님의 진노가 너희를 거슬러 타올라, 너희를 저 땅에서 멸망시키시는 일이 없게 하여라.」을 읽으면서 “하느님은 질투하시는 하느님이시다.”는 말씀이 깨달아졌습니다. 즉 우리의 질투는 죄가 되지만 하느님께서 우상을 질투하시는 것은 진리라는 것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즉 세계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제아무리 뛰어난 우상을 경험해 보더라도 야훼 하느님께는 견줄 수가 없듯이 홀로 야훼 삼위일체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이심을 우리가 깨닫고 참 하느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만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깨우쳐주시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아멘! 아멘! 아멘!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전능」: 구약성경 총84절 + 신약성경 총14절 = 구, 신약 총98절【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2 + 0 = 2, 전능하신 하느님 7 + 3 = 7, 전능한 하느님 3 + 0 = 3, 전능하신 분 54 + 4 = 58, 진리의 하느님 1 + 0 = 1, 참하느님 3 + 3 = 6, 전능하신 분의 환시 2 + 0 = 2, 전능하신 주님 12 + 1 = 13, 전능하시며 영원하신 분 1 + 0 = 1, 당신의 전능하신 손 1 + 0 = 1, 하느님의 전능과 사랑 1 + 0 = 1, 당신의 전능한 말씀 1 + 0 = 1, 그분의 전능하심 1 + 0 = 1, 전능하신 주 하느님 0 + 6 = 6, 나 말고 다른 신 5 + 0 = 5, 나 말고 다른 신은 없다 1 + 0 = 1,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2 + 0 = 2,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2 + 0 = 2, 내가 하느님, 나 같은 이가 없다 1 + 0 = 1】참조.(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29-232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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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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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의 창조론을 부정 할 수가 없다
아주 체계적이고 뚜렷한 창조론을 부정하고
“나는 전능한 신이다” 하신 하느님을 부정하고
삼위일체 하느님(주님)이신 예수님을 부정하고
아무 근거가 없는 진화론을 믿을 것인가?
아무 근거가 없는 윤회사상을 믿을 것인가?
하느님이 안 계신다면 어느 하느님이신가?
구약의 야훼이신가? 신약의 그리스도이신가?
성령님도 하느님을 예수님을 증언하시는데
天使들 무리도 하느님 예수님을 증언하는데
베드로 사도도 신화가 아니라고 증언하는데
예언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서의 어떤 예언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베드로후서 1장 16, 20-21절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완성자이신 것을
하느님은 직접 세워온 유대교도 갈아 타셨다
구약 시대의 모세와 맺으신 계약이 다르듯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예수님께서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던 것이다
교회란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것인데
참된 종교는 하느님의 뜻이 계약이란 말이다
사람과의 계약도 계약을 엄청 중요한 것인데
하물며 하느님과의 계약이란 얼마나 엄중하고
그분께서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계약을 맺은 하느님이
사도로부터 이어져오는 제도의 정통 교회야지
하느님이 루터와 계약이라도 갱신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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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든 누구든 교회를 다스릴 능력도 없으면서
교회 밖에서의 개혁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인데
이단 척결을 지금까지 수없이 해온 가톨릭인데
이제는 루터가 이단 척결을 계승했단 말인가?
아무리 대화해도 뛰쳐나가면 방법이 있겠는가?
올바른 것을 건의 하면 되지 왜 반항을 했을까?
교황의 회칙을 비텐베륵 광장에서 불태우고....
상황이 성령의 이끄심으로 종교 개혁을 했다면
과정이나 결과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할 것인데
성령 충만이 없으니 사상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
루터 자신의 섣부른 믿음의 혈기로 한 것이라는
루터도 다음과 같이 자백하였다면 회개했어야지
회개했으면 회개하는 귀감이라도 되었을 것을....
(영성시집 ‘191. 최후의 만찬 때의 계약과
「생명의 빵」풀이’ 편 223-228페이지 참조)
오직 성서만을 믿겠다는 루터는 얼마나 궁한가?
예수님은 지금도 메시지로 창조론을 해석하시고
예수님은 지금도 메시지로 복음서를 해석하시고
예수님은 지금도 교황님과 일치를 말씀하시는데
가톨릭 교리에도 천당, 연옥, 지옥을 말하는데....
‘상해천주교요리’ 상권 105 연옥은 무엇이뇨?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
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장 32절)하듯이 내세에서의 연옥이 뚜렷한데....
단테의 ‘神曲’에서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듯이
두 증인 두 예언자도 천국, 연옥, 지옥을 말하는데
곱비신부님 메시지 235번 ‘성인들의 통공’ 편 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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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교회), (정화교회), (승리교회)를 말씀하셨듯이
276번 11. 에서도 순례교회와 정화교회와 승리교회
전체의 ‘어머니’이다. 하셨고 284번 11. 에서도 이는
바로 ‘천국’에서 기쁨을 누리는 교회, ‘연옥’에서 정화
되는 교회, 그리고 너희의 가련한 지상에서 아직 순례
중인 교회(가 이루는 단일성)이다. 하고 말씀하셨듯이
성모님은 언제나 영원의 관점에서 말씀하셨듯이
요즈음 메시지들에도 연옥을 뚜렷하게 말하는데
【(영성시집 ‘147. 두 증인 두 예언자①’ 편 1954년
4월 29일 ‘연옥 영혼 십자가 고통’ 127-128페이지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 메시지 받은이 황옥희 데레사, 264페이지 참조)】
즉 예수님의 메시지들도 성서에 없는 내용이라고
‘그리스도의 시’ 책에서 예수님께서 유다 타대오를
“유다 형!”이라고 부르니 유다와 사촌 형제인 것을
요셉의 형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유다인 것을
알패오의 아들들이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썼겠지만
작은 야고보는 이유가 키가 작았다고 생각되지만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성모님의 친척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살로메의 아들
“마리아가 나와 야고보와 유다의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친척관계 이외에 지식과 교육으로
마치 한 줄기에 달린 세 개의 포도나무 가지와 같이
결합하여 형제처럼 서로 사랑하였다.”(277페이지 참조)
열교에서는 자꾸 예수님의 친형제라고 말을 하니
열교의 교리는 성모님의 평생 동정까지 부정하니
사람이 되신 우리 주님의 섭리로 땅이 거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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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고 인류는 우상 숭배에서 해방되었듯이....(성
무일도 ‘토요일의 성모 기념’ 제2독서 ‘콘스탄티노
폴리스의 성 프로클루스 주교의 강론에서’ 참조)
즉 지금도 전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못 믿는다면
미사 집전을 폐지하는 것이 성령의 이끄심일까?
고해 성사를 폐지하는 것이 성령의 이끄심일까?
계약 없이 세운 종교가 완전한 종교가 되겠는가?
계시의 완성자가 세운 종교가 완전한 종교임을
오도송을 읊고 불법을 전수 받으면 끝인가?
깨달았다는 사람들을 보아도 알 수가 있듯이
깨달았다고 성인도 초보 성인이 있지 않는가?
예수님은 깨닫기 전이 없기에 전능한 神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시다
天使들은 하늘과 땅을 다스릴 능력도 없듯이
그러니까 天使도 사람과 같이 결핍된 존재다
天使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으니
(마태 22장 23-33절 ‘부활에 대한 토론’ 편 참조)
아들이나 딸을 점진적으로 낳는 일도 없으니
세상 창조 이전에 한꺼번에 창조 되었겠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창조될 이 세상을 미리 보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늘과 땅을 다스릴 능력도 없으면서 악마는
사람을 시기하기만 하듯이(지혜 2장 24절 참조)
天使도 심판 전에는 자유의지가 있는 天使였다
天使의 심판은 끝났고 인간의 심판은 남았지만
天使들이 타락한 것이 바로 사탄들이 아닌가?
사람도 죽으면 자유의지의 심판도 끝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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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使가 지옥에 갔다면 사람은 지옥에 없단 말인가?
그러니까 어느 종교에서나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들이 믿는 종교와 神이 옳은 神이라 주장하고
자신들의 계파만이 옳은 것이라고들 주장하는데
진정 옳은 참神은 하느님 한 분 뿐이시며
하느님께서 세우시고 역사하시는 종교와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섭리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즉 이 세대에 새로운 이스라엘이며 새로운 예루살렘을
우리 나라에 건설하시려고 우리 나라에 오시는 것도....
《《《【예레미야 10장 10절부터의 말씀에 “야훼만이 참신 살아 계시는 하느님 영원한 임금이시다. 한번 분노를 터뜨리시면 땅이 덜덜 떠는데 어느 민족이 이 하느님의 노여움을 당해내랴? ★하늘과 땅을 만들지 않은 신들은 천하 온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리라고 사람들에게 일러라.”는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다.★】》》》즉 하늘과 땅을 만들지 않은 신들인 우상들은 사라지고 태초에 하나였듯이 하나로 종교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천년왕국인 성삼은혜를 이루실 것이듯이....(영성시집 ‘198.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불이(不二)」①”’ 편 248-249페이지 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하늘과 땅을」: 구약성경 총25절 + 신약성경 총0절 = 구, 신약 총25절【하늘도 당신의 것, 땅도 당신의 것 1 + 0 = 1, 하늘과 땅을 창조 3 + 0 = 3,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2 + 0 = 2, 하늘과 땅을 만드신 5 + 0 = 5, 하늘과 땅을 만들고 1 + 0 = 1, 하늘과 땅을 내신 1 + 0 = 1,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2 + 0 = 2,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1 + 0 = 1,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0 + 1 = 1,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0 + 2 = 2, 나는 하늘과 땅을 뒤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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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라 1 + 0 = 1(신명기 29장 1-28절 참조)】참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 제1권 ‘64. 예수와 유다와 야고보의 선생 마리아’ 편 311페이지 20째 줄에서 318페이지 24째 줄까지【그러나 다음에는 놀이가 바뀐다. 두 아이 중의 하나가 제안한다. “에집트를 건너질러 떠나오는 놀이를 하자. 예수는 모세가 되고, 나는 아아론, 너는… 마리아가 되어라.”
예수가 개입한다. “이 대목 놀이는 하지 말고 다른 놀이를 하자.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뽑혔을 때 놀이를 하자. ★그러면 흉악한 우상숭배 문제도 없어지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요셉이 빨리 정원과 방을 지나가서 문을 연다.
“알패오와 마리아, 형님네에게 평화가 있기를!”
“너희들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요셉의 형과 그의 아내이다. 든든한 나귀가 끄는 투박한 짐마차 하나가 길 가운데 멈춰 있다.
“무사히 다녀왔소?”
“아주 잘 다녀왔어. 그래 아이들은?”
“마리아와 같이 정원에 있소.”
그러나 아이들은 벌써 엄마에게 인사를 하려고 달려온다. 마리아도 예수의 손을 잡고 온다. 두 동서가 포옹한다.
“애들이 얌전히 굴었어요?”
“아주 얌전하고 귀엽게 굴었어요. 친척들이 모두 잘 있어요?”
“모두 다 잘들 있어요. 그리고 가나에서… 이 선물들을 모두 동서네한테 보냈어요. 그리고… 요셉은? 예수에게 주려고 구해오라고 한 바로 그것을 발견했어요. 짐마차 위에 있는 저 큰 둥근 바구니에 들어 있어요.” 알패오의 아내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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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자기를 올려다보는 예수에게로 몸을 숙인다. 그의 새파란 두 눈에 입을 맞추며 말한다. “너한테 뭘 가져왔는지 아니? 알아맞혀 봐라.”……
어른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알패오가 말한다.… 하지만 올해는 너도 예수를 학교에 보내야겠다. 나이가 되었으니까.”
“저는 절대로 예수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어요.” 하고 마리아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한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이렇게 말하고, 또 요셉을 앞질러 말하는 데 놀랐다.
“왜요? 어린아이는 때가 되어 성인례의 시험을 치르려면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교육은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에는 안갑니다. 이것은 결정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에서 그렇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여자일 것입니다.”
“저는 오직 한 여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요셉, 그렇지요?”
“맞아요. 예수는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요. 마리아는 성전에서 교육을 받아서 율법에 대한 지식에는 진짜 박사예요. 마리아가 예수의 선생이 될 거예요. 내 뜻도 그래요.”
“너희들은 그 애를 너무 귀여워한다”
“형은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예수는 나자렛에서 제일 착한 아이예요. 예수가 우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변덕을 부리고 복종을 거절하고 존경을 안 한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 일은 없었지. 하지만 계속 너무 귀여워하면 그렇게 될 거다.”
“자기 아이들을 자기 곁에 데리고 있는 것이 그 애들을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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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귀여워하는 것은 아니예요. 아이들을 지혜롭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 예수를 이렇게 사랑해요. 그리고 마리아가 학교 선생보다 더 유식하니까 마리아가 예수의 선생이 될 겁니다.”
“그러면 네 예수가 어른이 되면, 파리 한 마리까지 무서워하는 계집애 같은 녀석이 될 거다.”
“아니, 그렇겐 안 될 거예요. 마리아는 씩씩한 교육을 할 줄 아는 강한 여자예요. 나도 약한 사람이 아니고, 씩씩한 모범을 보일 줄 알아요, 예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결점이 없는 아이예요.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올바르고 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형, 염려 말아요. 예수는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뿐 아니라, 이것은 결정이 된 일이니까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마리아가 결정했고, 너는….”
“하지만 그것이 참된 일이라면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상대편의 견해를 받아들여 자기의 것을 만들기 때문에 같은 생각과 같은 의지를 가질 각오가 단단히 되어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 아니예요? 만일 마리아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원하면, 나는 ‘안 되오’ 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현명한 일이기 때문에 나도 그것을 찬성하고 내 의견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첫날과 같이 서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늘 그럴 거요. 그렇지 않소, 마리아?”……
“내 말은… 야고보와 유다가 예수보다 나이가 조금 위여서, 벌써 학교에 다니지만… 그 애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이와 반대로 예수는 벌써 율법을 썩 잘 알아요! 그래서 말인데… 동서가 예수를 가르칠 때 그 애들도 받아 주겠어요? 그렇게 하면 그 애들이 더 착해지고 더 배우는 것이 많을 것으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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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해요. 결국 아이들은 사촌간이고, 서로 형제같이 사랑하니 좋아요…. 난 참 좋겠어요!”
“만일 요셉이 좋다고 하고 아주버님도 좋다고 하시면, 얼마든지 그럴 생각이 있어요. 한 아이를 위해서 말하나 세 아이를 위해서 말하나 마찬가지예요. 성경을 다시 한번 본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아이들을 보내세요.”……
“알겠소. 이제는 계수님한테 ‘고맙다’는 말 밖에 할 것이 없군요. 그런데 예수는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할까요? 어떠냐 예수야?”
“나는 ‘그 여자 곁에 있으면서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집 곁에 거처를 정하는 사람은 복되다’고 말하겠어요. 지혜서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의 친구가 되는 사람은 복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의 친구가 되는 것이 나도 기뻐요.”
“아아니 ! 누가 어린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게 했지?” 알패오가 놀라서 묻는다.
“아무도 그런 사람 없어요, 형 이 세상의 아무도.”
――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가 나와 야고보와 유다의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친척관계 이외에 지식과 교육으로 마치 한 줄기에 달린 세 개의 포도나무 가지와 같이 결합하여 형제처럼 서로 사랑하였다. 이스라엘에서 당할 사람이 없을 박사인 내 엄마가, 다정스러운 내 엄마가 말이다. 지혜와 참지식의 본거인 내 어머니가, 마리아가 세상의 생활과 천국의 생활을 위하여 우리를 가르쳤다. ‘우리를 가르쳤다’고 말한 것은 나도 내 사촌들과 같이 엄마의 생도였기 때문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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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서 사탄의 호기심에 대하여 하느님의 비밀 위에 찍힌 봉인이 일반 사람의 생활이라는 외형 속에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기분 좋은 광경을 보고 즐거웠느냐? 이제는 편안히 있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제2권 ‘13. 유다 타대오가 예수를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하기 위하여 베싸이다에 오다’ 편 70페이지 4-29째 줄까지【예수께서는 일어나서 문쪽으로 가시며 “오라고 일러라”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기름등잔과 화덕의 불빛으로 유다 타대오가 들어오는 것을 보시고는 “아니, 유다 형이!”
“예수야, 나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 입맞춤을 한다.……
그러시면서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을 보신다. “내 친구들이야” 하고 사촌에게 설명하신다. 그리고 베드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이름을 소개하신다. 끝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사람은 요한이야” 하고 말씀하시는데 독특한 어조로 말씀하셔서 유다 타대오의 주의 깊은 눈길을 더 끌고 사랑받는 제자의 얼굴이 붉어지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으로 소개를 끝마치신다. “친구들, 이 사람은 알패오의 아들 유다인데, 세상에서 말하는 식대로 따지면 내 사촌형이다. 내 어머니의 남편의 형님의 아들이니까. 이 사람은 내게는 친구이고, 일과 생활의 좋은 동료이다.”】참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 제10권 ‘20. 다볼산에 나타나신 예수’ 편 197페이지 4째 줄에서 198페이지 7째 줄까지【“부도덕한 종교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어떤 현자에게 주어진 부분적인 계시에 따라 생겼고, 어떤 것들은 영혼에게 어떤 신을 사랑한다는 양식을 주기 위하여 어떤 믿음을 만들어 가져야 하겠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필요에서 생겼다. 왜냐하면 이 필요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자극물이고, 스스로 계신 분에 대한 영속적인 탐구의 상태로서, 비록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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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한 지능이 어떤 신에게도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하더라도, 또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 자기 안에서 불안해 하는 이 필요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모른다 하더라도, 정신은 그 필요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 한 말은 이런 종교들에 대해서 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들에게 준 종교, 내 이름을 가진 종교, 내가 너희들을 그 종교의 대사제와 사제를 만든 종교, 너희들에게 그것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명령을 준 종교에 대하여는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느냐? 참되고 완전하고, 스승인 내가 가르친 변함없는 교리를 가진 유일한 이 종교에 대하여는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느냐 말이다. 내 교회는 장차 오실 분인 성령의 계속적인 가르침으로 보충될 것인데, 성령은 내 대사제들에게 지극히 거룩하신 인도자가 되실 것이고, 또 내 대사제들을 도와서 내 말이 확증될 여러 지방에 세워질 여러 교회에서 보조적인 우두머리가 될 대사제들에게도 지극히 거룩하신 인도자가 되실 것이다.
이 교회들은 비록 숫적(數的)으로는 서로 다르겠지만, 생각은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각 부분으로 점점 더 커지는 큰 건물을 이룸으로써 전체교회와 오직 하나가 될 것이며, 이 위대하고 새로운 성전은 그 별체를 세상의 끝에까지 세우게 될 것이다. 이 교회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지 않고, 서로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화합하고 우애를 가지며, 세상 마칠 때까지 모두 교회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에게 순종할 것이다.……】참조.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279번 ‘그분의 새로운 탄생’ 편【2. ‘하느님의 아기’를 너희에게 낳아 주려 하고 있었을 때 이 천상 엄마가 맛보았던,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그 황홀의 순간에 너희도 참여하여라. 기도가 망토처럼 나를 감싸주고 있었고, 침묵이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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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내 생명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순간, 그분께서 시간 속에 탄생하실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긴 여행 끝의 피로를 잊고 있었고, 우리를 (맞으려고) 열리는 문이 하나도 없는 거절에 대해서도 상심하지 않았다. 외딴 동굴의 고요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으니, 무엇 하나 (갖춰진 게) 없는 동굴의 황량한 헐벗음을 보면서도 마음이 무겁지 않는 것이었다. 3. 그러자 홀연, 아무 것도 아닌 내 (존재의 허무) 위로 ‘천국’(의 빛)이 온통 쏟아져 내려, 나로 하여금 천상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 안으로 빨려드는 황홀경에 잠기게 했고, 내가 아직 지상에 있음을 깨달은 순간에는 이미, 내 품에 나의 하느님을, 기적에 의해 나의 아들이 되신 하느님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300번 ‘이미 모든 것이 계시되어 있다’ 편【4. 이와 같이, 끊임없이 계속된 기도가 (우리를) 맞아준 ‘동굴’까지의 여정 전체를 휩싸고 있었다. 동굴에서는 한층 더 열렬하게 마음이 수렴(收斂)되는 기도에 잠겼는데, 그 정도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장막이 열려 하늘의 심오한 황홀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거기서 나왔을 때는 이미 태어나신 내 ‘성자’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305번 ‘나의 순결과 너희의 순결’ 편【14. (성자를 잉태할 때) 내 안에 일어난 일은 오로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었기에, 출산 전에 나는 동정이었다. 15. 출산 때에도 그 일을 이루신 분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하느님이시므로 나는 동정이었다. 나는 하느님의 빛과 비밀에 휩싸여 있었으니, 오직 하느님 대전에서, 하느님이신 내 ‘아들’의 기적적 탄생도 이루어진 것이다. 16. 출산 이후에도 나는 동정이었다. 지극히 순결한 내 몸은 티없는 내 영혼을 보존하라는 소명을 받았기에, 그 무엇도 내 몸의 그렇듯 흠없는 아름다움을 어지럽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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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엄마의 인격 안에서 성삼위 하느님의 거룩한 광채가 완전히 빛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17. 너희는 나의 이 특은을 옹호하여라.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것을 예사로, 또 천박한 태도로 부정하고 있다. (그러니) 언제나 이 특은을 옹호하여라.】, 508번 ‘이 거룩한 밤’ 편【6. 나로 말하면 심오한 황홀경에 몰입해 있다 :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게 당신 모습을 나타내어 주시니, 나는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사랑’의 거룩한 신비를 관상한다. 이제 내 동정 모태에서 인성을 취하신 ‘말씀’께서 갓난 ‘아기’로 엄마의 팔에 안겨 계시고, 엄마의 입맞춤과 눈물에 온통 휩싸이신다. 성령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당신 힘으로 나를 감싸 주셨음의) 열매(인 ‘아기’)를 흐뭇이 바라보신다.】, 559번 ‘자비로우신 사랑’ 편【7. 나는 뜨거운 기도에 잠겨 있다. 황홀경 속으로 들어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뵙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빛과 사랑으로 나를 감싸 주시고, 당신의 충만한 생명과 축복으로 나를 채워 주신다. 그러는 동안 천국(주민)들은 모든 천사들의 군대와 함께 깊이 엎드려 절하고 있다. 황홀경에서 깨어 보니, ‘동정 어머니’인 내게서 기적적으로 탄생하신 ‘아기 하느님’이 내 팔에 안겨 계신다.】참조.
※ 황데레사 저,「예수님․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책【54번「성모님의 가까운 친척집의 아들 요한에게 성모님이 엎어져 근심하시는 것을 꿈으로 보여주시어 요한이 벌떡 일어서게 하신다.」, 58번「15살 먹은 요한의 동생이 성모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순박하게 따르던 그 동생이 성모님이 고통당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엄마가 아프신가? 그 아주머니가 무엇 때문에 아프신가? 속히 가서 먹을 것을 끊여드려야지” 하며 뛰어간다.」, 59번「요한의 동생은 예수님의 모친이 잡수시도록 빵 한 개와 물을 끊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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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에 담아 들고 들어간다. “오빠, 예수님의 엄마이신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도 근심하시며 괴로워하십니까?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예수님은 어디 가셨는지 흔적이 없으시니 하늘에 올라가셨는가?” 하면서 걱정이 늘어져서 앉았다.」, 94번「요한의 어머니는 두 남매를 매질하여 데리고 가면서도 뒤돌아보고 입을 벌려 고함을 지른다.… 성모님은 겸손하게 침묵을 지키시며 눈을 내리뜨시고 기둥 밑에 나와 서셔서 “잘 가시오!” 하고 인사를 하시니 “무슨 그런 소리를 하오. 참말로 당신이 주의 모친이요? 등신처럼 왜 이래가지고 있소? 천주의 모친이라면 왜 이렇게 가난하요.… 하느님이 다 아실 텐데 이렇게 천한 사람을 뽑으셨을까?” 하며 요한 형제를 손질을 해가며 데리고 가는데… 형제간부터 몰라주고 반대를 하니 우리들도 성모 마리아의 표양을 본받아 매사에 겸손하게 참아 받자.(신앙수기 ‘81. 요리강령에 기록된 전설과「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에 묘사된 부분’ 편 71-72페이지《‘성모 세 살에 동정허원으로써 천주께 자헌’ / 성모님과 성요셉과의 혼배과정이 일반 세속사람들의 혼배 정신과는 판이하게 다른 혼배라는 것》참조)】참조.
※ 인터넷 다음 동영상(복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릭의 책 참조) [성모 마리아의 생애] 총1-125편 중「2. 성모님의 부모님 안나와 요아킴【불임 상태가 되기 전에 낳은 안나의 첫 딸 메리 헬리】」,「3. 성전에서 굴욕당한 요아킴【대사제 루벤】」,「5. 천사가 요아킴에게 원죄없는 잉태의 축복을 주다」,「7. 성모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가 이루어지다」,「8. 성모 마리아의 탄생【안나의 맏딸인 마리아 헬리가 집을 돌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약 19살로 요아킴의 수목자 중 한명인 클레오파스와 결혼했으며】」,「12. 13. 14. 15. 16. 마리아의 성전 봉헌식」,「18. 마리아와 성 요셉의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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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적 만남【성전 소녀들은 성장하면 결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을 성전에 보내면서 그들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경건하고 더 영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처녀들 중 한 사람의 결혼이 언젠가 약속된 메시아의 오심에 기여할 것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편 참조.
※ 인터넷 다음 블로그 [세 명의 마리아 전승] ‘성 안나와 그녀의 세 딸’【요한의 여동생이 또 있다면 이콘에는 둘이던데 그 시대에는 여아는 안 그렸을까? 그리고 성모님과 요한의 어머니는 요아킴이 성모님을 성전에 봉헌한 다음 죽고 성령의 권고로 안나가 재혼을 하였다고 하니 요한의 어머니는 성모님과 씨가 다른 자매로 보입니다.】참조.
※ 요한 19장 25절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요한사도의 어머니】와 글레오파(알패오)의 아내【큰 엄마】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참조.
※ 마르 6장 3절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유다 타대오 그리고 요셉과 시몬은 요셉의 아들들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요셉 성인은 예수님의 양 아버지이지만 고향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배다른 이복형제나 4촌 형제자매들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입니다.(278페이지 참조)】참조.
※ 야고보의 원복음서 8장 6절「홀아비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데,」13절「“저는 늙은이인데다가 자녀들이 있고”」, 12장 2절「요셉은 “내 자녀들이 세금 내는 것은 내가 돌보겠다. 그러나 이 젊은 여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3절「아내로서 세금을 내게 한다면 내가 창피하다. 딸로서 세금을 내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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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 누구나 이 여자가 내 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 4절「때가 되면 주님이 뜻하시는 대로 하도록 맡기자.”라고 생각했다.」, 5절「당나귀에 안장을 얹고 마리아를 태운 뒤에,【요셉과 시몬이】그 뒤를 따라 오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13장 1절「마리아와 자기 아들들을 동굴에 남겨둔 채 요셉이 히브리인 산파를 구하러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다.」, 14장 11절「그러나 갑자기 구름이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찬란한 광채로 변해서 그들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12절「이윽고 광채가 서서히 사라지고 아기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어머니 마리아의 젖을 빨고 있었다.」(★성모님께서 보관한 것을 야고보에게 때가 되면 책으로 알리라고 위탁하신 것으로 추측됨★) 참조.
※ 마르 15장 40절 또 여자들도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키가 작았는지 이미 작은 야고보라고 부르고 있었음을 참조 바랍니다.)와 요셉(요셉과 시몬의 큰 엄마)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성모님의 이부형제)가 있었다. 참조.
※ 고린전 15장 7절 그 뒤에【야고보에게】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참조.
※ 갈라 1장 18절 그리고【삼 년 후에】나는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19절 그 때【주님의 형제 야고보】외에 다른 사도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2장 1절 그리고【십사 년 뒤에】나는 디도를 데리고 바르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9절 그뿐만 아니라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야고보(마태 17장 1절과 26장 37절의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는 다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도】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은총을 인정하고,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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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손을 내밀어 친교의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12절 그의 책망받을 일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게파가 이방인 교우들과 한자리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야고보가 보낸】사람들이 들어오자 그는 할례를 주장하는 그 사람들이 두려워서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물러나갔습니다. 참조.
※ 마태 2장 22절「아르켈라오가 자기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사도행전 12장 1절 이 무렵 헤로데 왕(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 참조)이 교회의 어떤 사람들에게 박해의 손을 뻗쳐 2절 우선【요한의 형 야고보를】잘라 죽였다. 3절 유다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또 베드로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그 때는 바로 무교절 기간이었다. 17절 베드로는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한 다음 주께서 자기를 감옥에서 인도해 내신 경위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야고보와】다른 교우들에게 알리라고 하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44년 순교함) 참조.
※ 사도행전 15장 1-21절 ‘예루살렘 회의’ 편 6절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회의를 열었다. 12절 이 말을 듣고 온 회중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울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 13절 두 사도가 말을 마치자【야고보가】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20절 다만 우상에게 바쳐서 더러워진 것을 먹지 말고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고 편지를 띄웠으면 합니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62년 순교함) 참조.
※ 성삼 가족수도회 기도서 85페이지「교황을 위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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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성삼께 세계 평화와 교회 평화를 구합니다. 베드로 사도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교황의 권위에 순명하며 내려오는데, 현대주의 물질주의에 휩쓸려 많은 사람들이 해방신학과 신신학에 물이 들어【교회에 위험이 닥쳐오고 있으니,】교회가 분열 없이 순명 하나로 일치를 이루어 더욱 튼튼하게 해주시고, 교회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이 겸손되이 교황에게 용서를 청하고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특별한 기적의 은혜를 주소서.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이여, 지극히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이여, 성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순명의 정신을 일깨워 주시고, 마르틴 루터 같은 열교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자존심을 끊고 겸손히 순명하여【교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특별한 보호와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 천국에 계시는 성인 성녀들이여, 사랑하는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목숨 바친 순교 성인들이여, 성교회 안에 다시는 열교가 생기지 않도록 전달해 주소서.
● 공경하올 요셉 성인이여, 교회 안에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을 특별한 보호로 붙들어 주시고 교회의 품으로 돌아와 일치하도록 전달해 주소서.
(주님의 기도․성모송․영광송)【(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86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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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천주께서 세우신 교는 한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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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구령 길에도
길을 바로잡아 들어야 속히 진보하지
잘못 들어 딴 길로 간다면
열교로 쏠리기도 하고 불교로 쏠리기도 한다.
천주께서 세우신 교는 한 길이지 두 길이 될 수가 없다.
두 길이 있다 해도 길을 잘못 들면
허덕이고 구령 길이 늦어진다.
길 잘못 든 것을 깨치면
체면이나 자존심이나 교만을 끊고서
즉시 굴복하여 성모님 집을 속히 찾으려고 하듯이
우리 구령 길도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예수님이 기다리시고 성모님이 기다리시는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는 열쇠를 속히 찾아야 한다.’
※ 황데레사 저,「예수님․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책 76번 글 185페이지 23-28째줄【19번 글 56-58페이지】참조.
※ 2025. 1. 1. 즉 그러니까 열교는 이단 척결을 지금까지 수없이(교부들의 올바른 학문을 바탕으로 토론) 해온 사도 계승의 가톨릭을 인정하고 이제는 루터교인 열교가 이단 척결의 계승과 천국에 갈 수 있는 열쇠를 속히 찾아야 함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72, 286페이지「교황을 위한 기도」, ‘202. 제2의 성령강림 시대를 깨달음’ 편 290페이지「교황 무류성」참조)【(영성시집 ‘181. 천주께서 세우신 교는 한 길이지....’ 편 179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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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창조」: 구약성경 총8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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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총34절 = 구, 신약 총117절【창조주 9 + 3 = 12, 내가 창조한 2 + 0 = 2, 창조하였다 3 + 0 = 3, 말씀 1832 + 755 = 2587, 말씀으로 16 + 16 = 32, 만물을 당신의 말씀으로 만드시고 1 + 0 = 1,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1 + 0 = 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22 + 0 = 22,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0 + 10 = 10,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다 1 + 0 =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58 + 0 = 5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0 + 15 = 15, 천지 창조 1 + 0 = 1, 하늘과 땅을 창조 3 + 0 = 3, 제 종류대로 창조 1 + 0 = 1,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 1 + 0 = 1, 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1 + 0 = 1, 사람을 창조하시던 날 1 + 0 = 1,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 2 + 0 = 2,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1 + 0 = 1,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1 + 0 = 1, 만물의 창조자 1 + 0 = 1, 만물의 창조주 1 + 0 = 1, 만물의 주님 3 + 0 = 3, 만물을 다스리시는 임금님! 1 + 0 = 1,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 1 + 0 = 1, 온 누리의 임금 1 + 0 = 1, 온 세상의 창조주 2 + 0 = 2, 만물을 창조 0 + 2 = 2, 지혜와 창조 1 + 0 = 1, 너의 창조주 2 + 0 = 2,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 1 + 0 = 1,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 1 + 0 = 1, 인간을 당신의 지혜로 빚으시어 당신께서 창조 1 + 0 = 1, 무형의 물질로 세상을 창조하신 1 + 0 = 1, 하느님의 창조물 1 + 0 = 1,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1 + 0 = 1, 창조에 담긴 하느님의 지혜 1 + 0 = 1, 주님께서 사람을 흙에서 창조하시고 1 + 0 = 1, 그때 만물의 창조주께서 내게 명령을 내리시고 1 + 0 = 1, 한처음 세기가 시작하기 전에 그분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1 + 0 = 1,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1 + 0 = 1,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1 + 0 = 1,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1 + 0 = 1,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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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창조하리라. 1 + 0 = 1,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0 + 1 = 1,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0 + 1 = 1, 피조물 12 + 17 = 29】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39-540페이지 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하늘 나라」: 구약성경 총0절 + 신약성경 총38절 = 구, 신약 총38절【하느님의 나라 1 + 58 = 59, 하느님 나라 0 + 20 = 20, 주님 나라 1 + 0 = 1, 주님의 나라 2 + 0 = 2, 당신 나라 2 + 1 = 3, 당신의 나라 1 + 1 = 2, 그분의 나라 4 + 3 = 7, 내 나라는 0 + 1 = 1, 내 나라에서 2 + 1 = 3, 내 나라 6 + 2 = 8, 아버지의 나라 1 + 4 =5, 아드님의 나라 0 + 1 =1, 그리스도의 나라 0 + 1 = 1, 불멸의 나라 1 + 0 = 1, 영원한 나라 2 + 1 = 3, 빛의 나라 0 + 1 = 1, 천상 3 + 2 = 5, 낙원 0 + 3 = 3, 지옥 0 + 14 = 14, 저승 88 + 10 = 98, 하느님의 집 108 + 6 = 114, 하느님 집 23 + 0 = 23, 주님의 집 273 + 0 = 273, 주님 집 13 + 0 = 13, 주님의 문 1 + 0 = 1, 하늘의 문 2 + 0 = 2, 하늘 나라의 문 0 + 1 = 1, 나는 양들의 문이다 0 + 1 = 1, 나는 문이다 0 + 1 = 1,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0 + 1 = 1, 문을 두드려라 0 + 4 = 4,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0 + 2 = 2, 생명으로 이끄는 문 0 + 1 = 1, 정의의 문 1 + 0 = 1, 좁은 문 0 + 3 = 3, 열쇠 2 + 6 = 8, 다윗의 열쇠 0 + 1 = 1, 하늘 나라의 열쇠 0 + 1 = 1, 죽음과 저승의 열쇠 0 + 1 = 1, 계약 353 + 38 = 391, 다시 계약 1 + 0 = 1, 새 계약 2 + 11 = 13】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68페이지 참조)】
《《《인터넷 다음【「왜 천사는 타락하게 되었는가?」스페인의 아그레다 출신의 마리아 수녀(가경자, 시복청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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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2ㅡ1665)에게 일어난 계시(환시)를 기록한 책】참조.》》》【(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687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전능하신 하느님은 우주 만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신 분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해가 아무리 위대하고 크고 빛을 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손바닥으로 그 빛을 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빛 자체이신 하느님의 빛은 우리가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가려지고 그런 빛이 아니고 아무리 두꺼운 벽도 지붕도 빛을 가릴 수도 없는 이 세상의 차원과는 차원이 다른 전능한 빛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우주 만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즉 그러니까 기적이란 아무리 바늘만한 작은 기적이라도 하실 수 있으신 분은 아무리 큰 기적이라도 똑같이 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기적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영성시집 ‘115. 기적이란’ 편 98페이지 참조)
지혜서 6장 22절 이제 나는 지혜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려 주겠다. 너희에게 어떠한 신비도 감추는 일 없이 지혜가 생겨난 시초부터 자취를 더듬으며 그에 대하여 아는 바를 분명하게 드러내는데 진리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23절 사람을 좀먹는 시기를 결코 길벗으로 삼지도 않겠다. 시기는 지혜와 자리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회서 6장 22절 지혜는 문자 그대로 지혜라, 아무나 터득하는 것은 아니다.(신앙수기 ‘37. 지혜를 얻음’ 편 23페이지, 영성시집 ‘34. 가슴속에서 솟은 지혜’ 편 28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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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1. 13. 성무일도 4권 연중 제1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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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들으면서 또 눈으로 같이 따라 읽으면서
【「제1독서」
집회서의 시작 1장 1-20절
―신적 지혜의 신비―
1절 모든 지혜는 주님께로부터 오며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다.
2절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나날을 누가 셈할 수 있으랴?
3절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와 땅 속의 깊이를 누가 잴 수 있으랴?
4절 지혜는 저 모든 것들보다 먼저 창조되었으며 현명한 이해 역시 태초로부터 있다.
5절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법칙이다.
6절 지혜의 근원을 누가 밝히 알아냈으며 그 오묘한 기획을 깨달은 자 누구냐?
7절 지혜를 밝히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으며 그 지혜의 풍부함을 이해하고 완전히 따른 자도 없다.
8절 지혜로우신 분은 오직 한 분, 두려우신 분이시며 당신의 옥좌에 앉아 계신 분이시다.
9절 그분은 지혜를 만드시고 지켜보시고 헤아리시는 주님으로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과,
10절 모든 인간에게 지혜를 너그러이 내리시고 특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풍부히 나누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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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 주님을 두려워함은 행복이요 영예며 쾌락이요 환희의 극치이다.
12절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는 마음이 즐겁고 행복과 희열을 맛보며 수를 누린다.
13절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는 삶의 끝이 좋으리니 죽는 날에 축복을 받으리라.
14절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이며, 신심이 있는 사람들은 모태에서부터 지혜를 타고 난다.
15절 지혜는 사람들 사이에 보금자리를 틀어 영원한 터전을 삼고 그들의 후대에도 그 곳에서 안식한다.
16절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성숙이며 지혜는 그 열매로 사람들을 흡족케 한다.
17절 지혜는 그들의 집안을 재물로 그득 차게 하고 그들의 곳간을 곡물로 채워준다.
18절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완성이며 지혜는 삶의 번영과 건강의 꽃을 피운다.
19절 지혜는 지식과 총명을 비처럼 내려주고 지혜를 간직하는 사람들의 영광을 드높인다.
20절 지혜는 주님을 두려워함에 그 뿌리를 박고 가지들이 싱싱하게 돋아나 영원히 산다.】
이 말씀의 내용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깨달아졌습니다. 즉 모든 지혜는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특히 이렇게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이며,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성숙이며,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완성이라고 성서에까지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11-12절 주님을 두려워 함은 행복이요 영예며 쾌락이요 환희의 극치 희열이라는 것이 더욱 깊이 있게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잠언 8장 12절에서「“나 지혜는”」하였듯이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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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깨달았다고 해도 우리가 신덕, 망덕, 애덕의 주체이신 예수님의 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덕, 망덕, 애덕, 다음에 있는 것이 우리의 지덕(지혜)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즉 그러니까 지금 시대에도 끝없는 하늘 나라의 참 행복의 길과 완덕의 길의 참지혜의 실체(實體)께서 십자가의 열쇠로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신 천국의 문을 여셨으니까 즉 그러니까 구원의 빛이요 샘이신 그분과 즉 미사성제와 참으로 온전히 함께 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새로운 계약도 아니고 삼위일체 하느님과 참으로 온전히 계약으로 함께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또한 깨달아지듯이 즉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지혜를 논하지만 행복과 지혜의 길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주님께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묵시 7장 12절처럼 전능하신 지혜를 가지신 주님을 세세무궁토록 찬미하고 흠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멘!(영성시집 ‘191. 최후의 만찬 때의 계약과「생명의 빵」풀이’ 편 223-228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3, 329-335페이지,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22-523, 662-663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729-732, 809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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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은 :「모세가 기록한 구약 성서의 다섯 가지 경전」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모세 때를 중심으로 계시를 받았거나 기록된 역사라고 후대 사람들이 모세 오경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기록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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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역사이며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의 역사도 또한 다른 역사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그러니까 아담과 이브의 역사는 그 때의 역사이고 그 때의 기록이고 아브라함과 사라의 역사도 또한 그 때의 역사이고 그 때의 기록일 것입니다. 즉 그러니까 우리는 구전(口傳) :「1. 글에 의하지 않고 예로부터 말로 전해 내려옴 2.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이라는 말을 너무나 단순하게 알아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과정이나 아담과 이브의 창조 과정이나 홍수 이전 족장들이나 조상들의 이름이나 나이를 어떻게 구전으로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기록 보존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 홍수 때 홍수 이전의 창세기의 기록을 방주에 가지고 탓느냐가 문제일 것인데 가지고 탓다고 보아야 합리적일 것이며 또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날 때도 제사의 전권과 창세기의 기록을 노아로부터 받았다고 보아야 합리적일 것이며 야곱이 이집트로 들어갈 때도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할 때도 역시 창세기의 기록은 가지고 다녔을 것이며 이것이 모세 오경으로 같이 결집이 되었고 계약의 궤안에 10계판과 만나와 모세의 지팡이와 법전을 같이 보관한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651-652페이지 참조)
※ 피정 첫째 날 ‘천주성삼 호칭기도’ 1번(196페이지 참조)
피정 둘째 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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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니체의 사신론(死神論)
(부산 성요셉병원 분원에서)
니체 / 신은 죽었다 / 너는 말했지 / 알지도 모르면서 / 자신을 속일텐가 / 신은 죽었다고 / 신을 죽였다고 / 언제 죽고 / 언제 죽였는가 / 너도 못 죽인 신 / 누가 죽였다고 말하랴 / 너는 모르고 하는 말 / 신은 살아 계신다 / 다스리신다 / 나도 모르고 / 말하지 않았노라 / 지금도 고집하려는가 / 내가 너를 바라본다 / 거짓말을 또 하려는가 / 너는 모르면서 / 모르는 이들은 그런가 하고 / 때론 같이 떠들지만 / 역시 또한 모를 소리 / 지금 내말 헤아려라 / 나는 니체 너를 안다 / 너는 나를 모르지만 / 나는 니체 너를 안다 / 이 한마디 말 속에도 / 진실은 드러나고 / 귀 있는 자 알아듣네 / 그리해도 의문하면 / 너 자신을 알라 / 이 한마디면 족하리라
※「성삼수도가족의 영성생활」제3권 36페이지「이런 생각은 휴머니즘입니다. 인간은 살리고 하느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이체같은 사람은 ‘신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제7권 417페이지「예수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장 44절) 라고 하신 오늘 이 말씀에 대해서 독일의 철학자 니이체(Nietzsche, Friedrch 1844-1900)는 ‘예수님이 니이체만큼만 사회 경력이 있었더라도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인간은 무기력하게 되고 용맹 없이 약하게 되어 버렸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장 45절) 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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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리고 덧붙여서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장 45절)고 말씀하십니다.」참조.
※ 정행만 신부의 피정 강의 모음집「회헌해설」‘서론③ / 하느님께서 묻어두신 축복’ 편 40-41페이지「예전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능력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주셨는데 근래에 와서는 드러내 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니체(1844-1900)는 사신론(死神論)을 주장했습니다.……」참조.
※ 2024. 3. 9.『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 책을 ‘니체는 무아지경의 상태로 영감과 계시를 받아 열흘 만에 썼다.’고 하던데 책의 원고 겉면에는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썼다고 하던데 그런데 출판사에서 책의 제목을 바꿔버렸다고 하던데 성경의 4복음서 다음으로 존재하는 최고의 책, 미래의 성서라는 뜻인가 본데 이것은 망상일 수밖에....【이 책을 쓰고 난 다음부터 나는 가장 미친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내가 내려가서 나의 차라투스트라를 설명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 언젠가는 차라투스트라를 위한 강좌와 교수들이 생길 것이다.… 나의 저서 중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독보적이다. 나는 이 책으로 인류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수천 년간을 퍼져나갈 목소리를 지닌 이 책은 (존재하는 최고의 책)일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또한 (가장 심오한 책)이다. (가장 깊은 진리의 풍요로부터 태어난 책)이며, 두레박을 내리기만 하면 금과 선의가 가득 차서 올라오는 고갈되지 않는 샘물이다.《(“수천 년 이래 최초의 책)이자 (미래의 성서)이며 인류의 운명을 내재하고 있는 인간적 창조성의 최대 폭발.”(파울 도이센Paul Deussen에게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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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888년 11월 26일)》참조.】즉 그러니까 예수님을 인간으로만 안다면 비판 할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이신 줄로 안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이런 싸구려 말로 비판 할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는 30살에 이르러 천사장을 만나서 예언자가 되었다고 하였듯이....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는 30살에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듯이.... 나이나 사회 경력이 많음을 비교하고 운운하면서 예수님을 비판 할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니체는 예수님을 충고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이런 성향을 가진 니체가 이 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와 거짓을 깨우치는데 교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즉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느님이심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68. 니체의 사신론(死神論)’ 편 60-62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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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러니까 히브리서 10장 1절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또 로마서 2장 20절 율법에서 지식과 진리의 진수를 터득하였으므로 어리석은 자들의 교사이며 철없는 자들의 선생이라고 확신합니다. 21절 그렇다면 남은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왜 그대는 도둑질을 합니까? 22절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그대는 간음을 합니까? 우상을 혐오한다고 하면서 왜 그대는 신전 물건을 훔칩니까? 23절 율법을 자랑하면서 왜 그대는 율법을 어겨 하느님을 모욕합니까?
또 마태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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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20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43절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절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절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절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절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절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 마태 22장 37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절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절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절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즉 그러니까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찌 누군들 그 말씀을 그 시대에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만은 그래서 백성들은 기적을 보고, 병을 치유 받고, 절름발이가 바로 걷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중풍병자가 치유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하니까 따라가고 몰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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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믿는데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렇게 치유 받을 병도 없어서인지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야 하는데 따르기는커녕 기적으로 살아난 나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한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율법을 어기는 자들로써 또 요한 14장 6절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고 말씀하셨듯이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갔지만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구약시대의 성전 예식에서 하느님이 계신다고 가르쳤지만 그러나 생명의 말씀도 없는 듯했고 병이 치유되지도 않았지만 예수님은 병을 치유해주시고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셨듯이 구약시대에 성전 중심의 율법에서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성전 중심의 진리와 지혜의 실체(實體)이신 예수님께 몰려갔듯이 그러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기 보다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도 기적을 보여주시면 또 시기심을 가졌듯이 그래서 생명의 말씀을 깨닫기는 고사하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듯이 그러나 그러한 기적의 능력이 또 사도들에게도 이어지고 그래서 역시 사도들도 방해하고 죽였듯이 그래서 신도들에게까지 생명의 말씀이 전해졌지만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여전히 생명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실체(實體)가 없는 상징에 지니지 않는 그림자의 삶이였던 것입니다.(영성시집 ‘214.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피앗」과「우리 (성삼위)」②”’ 편 391페이지,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39-444, 460-476, 501-509페이지 참조)
요한 14장 6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절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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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절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23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절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 15장 10절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절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절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신앙수기 ‘102. 당신의 종 김강철(바오로) 형제님을 통하여 풀어주신 묵시록 3장 8-12절 말씀’ 편 127-130페이지 참조)
※ 십계명 :【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4.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5. 사람을 죽이지 마라. 6. 간음하지 마라. 7. 도둑질을 하지 마라. 8. 거짓 증언을 하지마라. 9.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을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계시(啓示)해 주셨듯이....
《《《그리고 요즈음 계약 궤【인터넷 다음「2023.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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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와츠 법궤 발견 세부 동영상」참조】도 발견했다고 하고.... 노아 방주【인터넷 다음「노아 방주 발견」참조】도 발견했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도 깨닫지 못하고....(713페이지 참조) 또 유다 인들은 이사야 7장 10-17절 ‘두 번째 경고: 임마누엘의 표징’ 편【14절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의 말씀도 깨닫지 못하고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계약 궤를 직접 보고 계명을 지키고 살게 되면 하느님께 영광이고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오! 하느님께서 손수 쓰신 십계판을 가서 보고 10계명을 잘 지키고 7덕을 잘 지키고 살게 하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것은 재미도 기쁨도 즐거움도 자유도 행복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10계명을 주신 하느님을 마땅히 흠숭하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10계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10계명을 주셨으니까 지키지 10계명이 없었다면 제가 무슨 재주로 이런 고상하고 거룩한 10계명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사람은 영혼이 있으니까 10계명을 주셨고 10계명을 주셨으니까 짐승과는 다른 차원이 아니겠습니까? 아멘! 아멘! 아멘!……》》》(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723-725페이지 참조)
※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이러한 덕을 지켜서 죄에서 해방되는 하느님 체험이 있었다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또 이러한 자유, 완덕, 구원의 경지에 머물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미흡한지 성찰하고 통회하고 나아가서 상등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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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를 한번 묵상해봅시다.(묵상집 ‘22. 상등 통회와 하등 통회’ 편 13페이지 참조)
상해천주교요리 책에나 요리강령 책에도 4대 교리【「1. 천주존재(天主存在), 2. 삼위일체(三位一體), 3. 강생구속(降生救贖), 4. 상선벌악(賞善罰惡)」(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56페이지 참조)】와 7성사(1. 세례성사, 2. 견진성사, 3. 성체성사, 4. 고해성사, 5. 병자성사, 6. 성품성사, 7. 혼인성사)와 천주십계와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분명하고 뚜렷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지만 높은 완덕을 이루기가 어려워서인지 분명하고 뚜렷하게 가르치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즉 그러니까 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은 따져보아도 답도 없는데 따져본들 뭘 하겠습니까? 이제는 절덕(정결, 청빈, 순명) 하나만 잘 지켜도 높은 완덕이고 하느님께서 섭리하시는 성인이 되게 하는 덕행이라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
그러면 결혼성소는 모든 것을 버리지도 않았고 정결을 지키지도 않으니 또 시키는 대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지도 않았으니 완전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는 말이겠습니까? 그런 뜻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따름을 말하는 것이고 결혼성소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이비지하는 성소로써 자기 아내만을 사랑하고 받은 봉급에 만족하고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한다면 수도자 못지않은 정결, 청빈, 순명을 지키는 높은 완덕인 결혼성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도자가 수도서원을 하고도 정결, 청빈, 순명을 제대로 못 지키면 첫째인 것 같지만 꼴찌가 되는 것이며 결혼성소를 받고 꼴찌 같지만 정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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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 순명을 잘 지키면 꼴찌 같지만 첫째가 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영성시집 ‘18. 올무는 끊어지고’ 편 14페이지,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참조)】
※ 높은 완덕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높은 완덕을 이루기보다는 연옥 보속을 좀 하고 천당에 갈 계산으로 적당하게 사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삶도 아니고 미지근하여 뱉어 버릴 수도 있고(묵시 3장 15-16절 참조) 참으로 자유로운 삶도 행복한 삶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참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한번 묵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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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주님」: 구약성경 총5743절 + 신약성경 총498절 = 구, 신약 총6241절【야훼 10 + 0 = 10, 주 하느님 348 + 9 = 357, 하느님의 이름 26 + 6 = 32, 하느님 이름 7 + 0 = 7, 주님의 이름 74 + 17 = 91, 주님 이름 3 + 0 = 3, 당신의 이름 62 + 3 = 65, 당신 이름 65 + 2 = 67, 그분의 이름 12 + 13 = 25, 그분 이름 5 + 0 = 5, 그리스도의 이름 0 + 15 = 15, 내 이름으로 21 + 18 = 39, 나는 참포도나무 0 + 2 = 2,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0 + 1 = 1,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0 + 1 = 1,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1 + 0 = 1,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 0 + 1 = 1, 그분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 0 + 1 = 1, 그분의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 0 + 1 = 1, 나자렛 사람 예수 0 + 17 = 17《마태 4장 12절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13절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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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사셨다. 참조》, 주님의 목소리 0 + 1 = 1, 그분의 목소리 0 + 1 = 1, 주님의 소리 10 + 0 = 10, 그분의 소리 4 + 4 = 8, 하느님의 소리 5 + 0 = 5, 말씀 1832 + 755 = 2587, 하느님의 말씀 45 + 44 = 89, 하느님께서 말씀 37 + 2 = 39, 주님의 말씀 472 + 15 = 487, 주님께서 말씀 106 + 10 = 116, 아버지의 말씀 1 + 5 = 6, 진리의 말씀 2 + 5 = 7, 전능한 하느님 1 + 0 = 1,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3 + 0 = 3, 주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1 + 0 = 1, 주님께서 살아 계시고 4 + 0 = 4,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15 + 0 = 15, 미래의 주인이신 주님 1 + 0 = 1,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 1 + 0 = 1, 전능하신 분께서 살아 계시는 한 1 + 0 = 1, 살아 계신 분 2 + 3 = 5, 영원히 살아 계신 분 2 + 0 = 2, 살아 계신 하느님 19 + 15 = 34, 살아 계신 주님 18 + 0 = 18,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2 + 0 = 2, 만군의 주님 213 + 2 = 215, 살아 계신 구원자 1 + 0 = 1, 살아 계신 아버지 0 + 1 = 1,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 0 + 2 = 2,★ 전능하신 분 54 + 4 = 58, 전능하신 주님 12 + 1 = 13, 진리의 하느님 1 + 0 = 1, 참하느님 3 + 3 = 6, 온 우주에 계시는 주님 1 + 0 = 1, 나의 주님 3 + 1 = 4, 신들의 신 4 + 0 = 4, 주님들의 주님 2 + 3 = 5, 경외로우신 하느님 4 + 0 = 4,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0 + 7 = 7, 너희의 스승 1 + 1 = 2, 너희의 아버지 0 + 3 = 3, 아빠! 아버지! 0 + 3 = 3, 구원자 49 + 25 = 74, 구세주 2 + 1 = 3, 그리스도 0 + 592 = 592, 우리 주님 4 + 4 = 8, 저의 주님 0 + 2 = 2, 저의 하느님 0 + 3 = 3, 주 저의 하느님 21 + 0 = 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0 + 43 = 43,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0 + 7 = 7,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0 + 1 = 1, 메시아 6 + 39 = 45, 창조주 9 + 3 = 12, 창조자 3 + 0 = 3, 안식일의 주인 0 + 3 = 3, 진실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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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0 + 25 = 25, 진리의 진수 0 + 1 = 1, 진리 자체 0 + 1 = 1, 불사의 뿌리 1 + 0 = 1, 불사불멸 0 + 2 = 2, 불멸 9 + 8 = 17, 실체 0 + 3 = 3, 본질 0 + 1 = 1, 원천 10 + 0 = 10, 근원 6 + 2 = 8, 근본 4 + 0 = 4, 알파이며 오메가 0 + 2 =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0 + 3 = 3(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44-545페이지 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진리」: 구약성경 총19절 + 신약성경 총82절 = 구, 신약 총101절【말씀 1832 + 755 = 2587, 말씀으로 16 + 16 = 32, 주님께서 말씀 22 + 0 = 22, 하느님께서 말씀 0 + 10 = 10,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 0 + 1 = 1, 주님의 말씀 472 + 15 = 487, 예수님께서 말씀 0 + 15 = 15, 진리의 말씀 2 + 5 = 7, 전능한 말씀 1 + 0 = 1, 진리의 길 1 + 1 = 2, 진리의 책 1 + 0 = 1, 진리의 법 1 + 0 = 1, 은총과 진리 0 + 2 = 2, 영과 진리 0 + 2 = 2, 진리의 영 0 + 4 = 4, 진리를 증언 0 + 2 = 2, 진리를 깨닫 1 + 5 = 6,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 0 + 1 = 1, 진리를 왜곡하는 말 0 + 1 = 1, 그리스도의 진리 0 + 1 = 1, 복음의 진리 0 + 2 = 2,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 0 + 1 = 1, 진리를 믿지 않고 0 + 1 = 1, 진리를 믿게 하여 0 + 1 = 1,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 0 + 1 = 1,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 0 + 1 = 1, 진리에서 빗나가 0 + 1 = 1,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0 + 1 = 1, 성령은 곧 진리 0 + 1 = 1,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 0 + 1 = 1, 진리에 대항하고 0 + 1 = 1,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0 + 1 = 1, 메시아 6 + 39 = 45, 창조주 9 + 3 = 12, 창조자 3 + 0 = 3, 창조의 근원 0 + 1 = 1, 거룩함의 근원 1 + 0 = 1, 안식일의 주인 0 + 3 = 3, 진실로 진실로 0 + 25 = 25, 진리의 진수 0 + 1 = 1,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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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0 + 1 = 1, 불사의 뿌리 1 + 0 = 1, 불사불멸 0 + 2 = 2, 불멸 9 + 8 = 17, 실체 0 + 3 = 3, 본질 0 + 1 = 1, 원천 10 + 0 = 10, 근원 6 + 2 = 8, 근본 4 + 0 = 4, 알파이며 오메가 0 + 2 =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0 + 3 = 3(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53-554페이지 참조)
※ 피정 둘째 날 ‘예수성심 호칭기도’ 1번(175페이지 참조)
피정 셋째 날 :「진복팔단의 진정한 의미(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께 불순종으로 지은 원죄(原罪)를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 오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십자가의 구속 사업으로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원죄(原罪)를 배상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연옥이나 지옥에 가는 사람은 없겠습니까? 아닙니다. 연옥이나 지옥은 우리의 본죄(本罪)로 인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복팔단의
【「― 참된 행복(마태 5장 3-10절) ―
3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절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절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절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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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절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절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절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의미를 깨달았다고 해도 또 진복팔단 성당 바닥에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이 새겨져있듯이 또 참된 행복과 부활과 구원의 진정한 의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번 만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된 영적부활의 의미는 죽을 때까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세속과 육신과 마귀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10계명을 지키고 7덕을 지키는 것이 참된 행복과 부활과 구원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묵상집 ‘63. 참된 행복’ 편 48-51페이지, ‘82. 7) 산상 설교〈참된 행복〉풀이’ 편 124-126페이지, 영성시집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예수님의 전능하신 신덛, 망덕, 애덕인 초성덕행에 대해서도 묵상하고 우리가 모든 죄의 근원인【칠죄종(七罪宗) :「교오(驕傲), 간린(간吝), 미색(迷色), 분노(忿怒), 탐도(貪도), 질투(姪妬), 해태(懈怠)」】을 없애고 예수님의 전능하신 신덕, 망덕, 애덕인 초성덕행에 대해서도 윤리덕인 지덕, 의덕, 용덕, 절덕(정결, 청빈, 순명)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해도 또 불교 신자들이【탐(貪)․진(嗔)․치(痴)】를 없애고 팔정도(八正道)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해도(영성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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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가톨릭교회의 구원관과 불교의 구원관’ 편 189-195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 예수님께서 마태 22장 34-40절 ‘가장 큰 계명’ 편에서 하느님 사랑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고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라고 말씀해주셨듯이 예수님의 전능하신 신덕, 망덕, 애덕인 우리의 덕행을 무한히 초월하신 초성덕행에 대해서도 죽어서도 다 알 수는 없다는 것도 한번 묵상해봅시다. 또 우리가 관상이나 명상이나 묵상을 논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전능하신 신덕, 망덕, 애덕인 초성덕행을 과연 합당하게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영성시집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4페이지 참조) 天使들도 신덕, 망덕, 애덕인 초성덕행을 논하기에는 우리와 같이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로써 합당하지 못하다는 점을 하번 묵상해봅시다. 그리고 완덕의 길에 대해서도 대 데레사 성녀의 완덕의 길, 영혼의 성(7궁방), 십자가의 요한성인의「어둔 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 책에서도 완덕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높은 완덕의 길은 바로 정결, 청빈, 순명을 지켜야 높은 완덕의 길이라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 즉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 8장 48절 참조) 또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아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루카 8장 50절 참조) 하셨듯이 믿음이나 구원도 다 초보적인 것도 있는 것이듯이 마르 11장 20-26절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의 교훈’ 편「2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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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고린전 13장 1-13절 ‘사랑’ 편「2절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참조.【(120-123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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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2015. 3. 22. 사순 제5주일 날)
나는 오늘 주일인데 평일로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어제부터 교정보려던 부분 신앙수기 ‘85. 주께서 땅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편 78-79페이지《「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 제7권 공생활 셋째 해 ‘190. “나는 죄지은 여자에게 그의 죄를 갚기 위하여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편의 부분》에서 간음한 여자와 막달라의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께서 비교하신 글을 살펴보다가 ‘해탈’과 ‘구원’ ‘구세주’에 대한 글【「나는 그 여자에게 평화와 강복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그 여자는 용서를 받기 위하여 요구되는 죄에서의 완전한 해탈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의 육체에, 그리고 불행히도 그의 마음 속에 죄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막달라의 마리아는 내 말씀의 맛을 보고 나서 죄에 대한 혐오감을 가졌었고, 딴 사람이 되겠다는 전적인 의지를 가지고 내게로 왔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직도 육체의 목소리와 정신의 목소리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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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장의 혼란 속에서 그 여자는 아직 그의 탐욕의 무거운 짐을 잘라내고, 그에게 파멸이 되는 것을 잘라내고, 그러나 구원이 되는 것은 지니고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가기 위하여, 육체의 그루터기에 도끼를 대고 그것을 쓰러뜨리지를 못했었다.
그 여자가 그후 구원을 받았는지 알고 싶으냐? 나는 모든 사람에게 구세주가 되지 못했다. ★모든 사람에게 구세주가 되기를 원했으나,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의지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게쎄마니아 동산에서 겪은 내 임종의 고통의 가장 깊이 파고드는 화살들 중의 하나였다.★」】을 읽고 예수님의 영혼 구원에 대한 갈망의 고통이라는 의미가 가장 깊이 파고드는 화살들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 깨달아지면서.... 그리고 우리 황데레사 어머님께서 큰아들 종도씨를 이사악 제사 바치라고 하여서 바치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너의 그 고통을 통해서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의 고통을 체험시키는 고통이라고 바로 ‘병중에 있는 자녀 죽음에 이르는 자녀를 바라다보는 그 아픈 마음이 아니고는 체험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는 고통’이라고 ‘그렇게 해서 인류 구원과 이북이남 평화통일, 공산국가 회개, 산아제한 죄 배상하는데 역할이 되도록 부탁하는 것이다.’ 하셨듯이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의 고통에 대해서 깨달아지면서....(영성시집 ‘147. 두 증인 두 예언자①’ 편 129-134페이지 참조) ‘해탈’과 ‘구원’ ‘구세주’에 대해서 그리고 또 타력적 구원과 자력적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사실 나는 그전부터 道, 無, 空, 해탈, 열반, 깨달음, 완덕, 자유, 구원이라고 말해왔지만 그냥 같은 말로만 생각해 왔었는데....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범죄로 인한 즉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原罪)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업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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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타력적 구원과 우리의 자유의지가 동의하는 본죄(本罪)에서의 자력적 구원이 모두가 다 필요하다는 생각과 다양한 상황에서 즉 에집트 종살이에서 구원, 적에게서 구원, 원수에게서 구원, 병고에서 구원, 10계명을 범하는 죄에서 구원,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구원, 믿음으로 얻는 구원, 구원받을 전적인 의지를 가지므로 얻는 구원 등 또 마태 19장 16-26절 ‘부자 청년 ; 낙타와 바늘귀’ 편【16절 한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7절 예수께서는 “왜 너는 나에게 와서 선한 일에 대하여 묻느냐? 참으로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하고 대답하셨다. 18절 그 젊은이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19절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계명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0절 그 젊은이가 “저는 그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절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22절 그러나 그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 23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24절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5절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서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을 비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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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실 때의 구원 등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구원이란 말을 써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넷에서 ‘해탈’과 ‘구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검색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다음에서 해탈(解脫) :「1. 굴레의 얽매임에서 벗어남. 2. 속박이나 번뇌 따위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다.」과 구원(救援) :「1.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2. 인류를 고통과 죄악과 죽음에서 구하는 일.」의 한문의 뜻과「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를 검색해보다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즉 그러니까 道, 無, 公, 해탈, 열반, 깨달음, 완덕, 자유, 구원이라는 말은 다 같은 말로써....(영성시집 ‘183. 가톨릭교회의 구원관과 불교의 구원관’ 편 189-195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59 (문)(답) 해설 ‘구속(救贖)’에서【“구속” : 라틴어 Redemptio를 옮긴 말이다. Redemptio란 다시 사들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듯이 아담과 이브의 범죄로 인한 즉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原罪)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업으로 인한 원죄(原罪)에서 구원되는 타력적 구원과 즉 우리는 구원의 대상으로써 구원을 받으려고 아버지께 다가가는 차원의 본죄(本罪)에서의 자력적 구원의 개념이 구원이란 글자 그 자체에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미사 때마다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하듯이 완전하신 전능한 분의 타력적 구원과 불완전한 우리 인간이 우리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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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는 딴 사람이 되겠다는 전적인 의지 즉 ‘하느님이시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책 제7권 190번「그 여자는 용서를 받기 위하여 요구되는 죄에서의 완전한 해탈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막달라의 마리아는 내 말씀의 맛을 보고 나서 죄에 대한 혐오감을 가졌었고, 딴 사람이 되겠다는 전적인 의지를 가지고 내게로 왔었다.」에서 주님께서 구원받는 조건인 ‘죄에서의 완전한 해탈’과 ‘딴 사람이 되겠다는 전적인 의지’를 말씀해 주셨듯이 즉 우리의 자유의지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자력적 구원 등 즉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하권 211 (문) 성세는 무엇이뇨? (답)【성세는 물로 씻는 예절로 되는 성사니, 이 성사를 받는 사람이 그 원본죄(原本罪)와 그 죄벌까지 온전히 사함을 받고, 천주의 의자(義子)와 천주교회의 지체가 되고,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을 얻느니라.】라고 하였듯이 즉 세례를 받으면「그 원본죄(原本罪)와 그 죄벌까지 온전히 사함을 받고,」하였듯이 즉 상존은총(常存恩寵)을 받지만 즉 원본죄(原本罪)를 온전히 사함을 받지만 돌아서서 본죄(本罪)를 또 지으면 즉 10계명을 범하면 즉시 상존은총을 잃어버리는 것으로써 즉 단테의 ‘神曲’에서도 보면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듯이.... 메시지 받은이 황옥희 데레사,「성모성심 메시지」책에서도 ‘천당 가는 길’ ‘연옥 가는 영혼의 탄식노래’ ‘지옥 가는 영혼의 탄식노래’를 들려주었듯이.... 10계명을 범해도 지옥에 갈 만큼 죄를 범한다면 죽어서 지옥에도 갈 수 있고 또 연옥에 갈 만큼 죄를 범한다면 연옥에 가서 연옥 보속을 치르고 천국에도 갈 수 있는 물론 죄가 없는 구원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천국도 10층이 있듯이(영성시집 ‘175. 완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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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86페이지 참조) 바로 천국으로 가겠지만 그러니까 믿음에 행동이 따라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이것은 본죄(本罪)의 문제로 믿음에 완덕이 따라야 바로 천당에 간다는 말이며 완덕이 따르지 못하면 바로 천당에 갈 수가 없고 연옥 보속을 해야 천당에 간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예수님의 복음을 올바로 믿는 그런 올바른 관계의 믿음이듯이(신앙수기 ‘75.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다는 말의 뜻이 풀림’ 편 54-58페이지, 영성시집 ‘196. 믿음의 힘을 깨달음(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편 241-243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로마서 10장 3절「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제 나름의 방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하였듯이 또 필립비서 3장 9절「내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내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것입니다.」하였듯이 즉 그러니까 덕행도 초성 덕행인 신덕, 망덕, 애덕과 사추덕인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이 있듯이 사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덕행이 다 우리의 덕행을 뛰어넘는 초성 덕행이지만 우리가 나의 의로움인 사추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듯이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인 신덕, 망덕, 애덕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의로움)에 이르고 구원 받는다는 말도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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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겠습니까?《《《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의로움(올바른 관계)」: 구약성경 총96절 + 신약성경 총75절 = 구, 신약 총171절【내 의로움 5 + 0 = 5, 나의 의로움 3 + 1 = 4, 자기의 의로움 2 + 1 = 3, 하느님의 의로움 0 + 7 = 7,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 1 + 2 = 3】참조.》》》즉 그러니까 마태 9장 1-8절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 편【2절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3절 그러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 사람이 하느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며 수군거렸다. 4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어찌하여 너희들은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5절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에서 말씀하셨듯이 죄를 용서하는 것이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한이지만 구원의 조건은 우리가 교리대로 사는 것이듯이....(신앙수기 ‘80. 요리강령이 복음서의 키를 잡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사죄지권」’ 편 69-71페이지, 영성시집 ‘168.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편 160-162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천당도 단테의 ‘神曲’에서 제10천을 여행하듯이 초보적인 완덕인 제1천도 있겠지만 누구나 다 10계명을 지키고 7덕을 지키고 정결, 청빈, 순명을 지키는 성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어느 정도 연옥을 거쳐서 천당에 갈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인 생각이듯이.... 즉 그리고 그리스도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듯이 이 말은 원죄(原罪)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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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님 밖에는 해결할 수가 없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니듯이 즉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으로써 십자가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구속하셨듯이....《《《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상속자」: 구약성경 총6절 + 신약성경 총15절 = 구, 신약 총21절【마태 21장 33-46절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편「38절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39절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참조.》》》즉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완전하고 전능한 구원의 길이 마련되었고 구원의 문이 열리고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듯이 즉 그러니까 구원은 영혼 구원과 죄에서 구원이듯이 영혼에 대해서 “윤회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생명이 있다.” 하고 예수님께서 ★영혼은 여왕으로, 여왕의 권위와 운명을 가지고 창조되었소.
그의 하녀들은 사람의 모든 덕행과 기능이고, 그의 대신은 사람의 착한 뜻이고, 하인은 생각이고, 하녀와 생도는 사람의 생각이오.★ 하고 또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고 아주 명확하게 영혼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듯이....《《《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영혼」: 구약성경 총141절 + 신약성경 총17절 = 구, 신약 총158절【제 영혼 45 + 1 = 46】참조. ★【(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3-188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8-279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또 그리스도는 족보에도 구세주로 오시고《《《마태 1장 1-17절「예수 그리스도의 족보」편, 마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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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8-25절「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편, 마태 16장 13-20절「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편, 마태 22장 41-46절「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편【45절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마태 23장 1-36절「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편【9절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절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요한 13장 13절 참조)】, 사도행전 4장 12절「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참조》》》과거, 현재, 미래에도 전능하고 유일하신 구원의 주체이심을 스스로 밝히셨듯이 즉 그러니까 “부도덕한 종교들 중에서” “어떤 현자에게 주어진 부분적인 계시” 또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셨듯이 완전한 구원의 교리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듯이....(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8-279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바오로 사도께서 골로사이 2장 6-19절 ‘세속의 유치한 원리에 대한 경계’ 편【15절 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고린전 1장 18-31절 ‘십자가의 복음’ 편 참조)】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그리스도는 구원의 완전한 계시자이시듯이 그리스도교의 가톨릭 교리를 통해서 완덕의 경지에 이르는 구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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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종소리를 듣고 성당에 내려가서 성무일도 사순 제5주간 주일 아침기도를 하고 이어서 낮기도 까지 바치는데 낮기도 시편 118장 1-29절 ‘구원받은 기쁨의 노래’ 편【10절 뭇 백성이 이 몸을 에웠었어도 * (주님의 이름)으로 나는 부수었도다 11절 겹겹이 이 몸을 에웠었어도 * (주님의 이름)으로 나는 부수었도다 12절 벌떼처럼 이 몸을 에워쌌어도 + 가시덤불 사르는 불땀과 같았어도 * (주님의 이름)으로 나는 부수었도다 14절 주님은 나의 힘 내 노래이시니 * 당신이 나를 구하셨도다. 15절 의인들 장막 안에 승리의 저 고함소리 * 주님의 오른손이 큰일을 하셨도다. 20절 (주님의 문)이 바로 여기 있으니 * 의인들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22절 집 짓는 자들 내버렸던 그 돌이 *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이다. 26절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을 읊으면서 바로 신약 시대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구원의 문)이라는 것이 깨닫지 못하고 읊을 때와는 다르게 오늘 깨닫고 읊으니 실감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체험했던 신앙수기 ‘62. 올무가 끊어짐을 체험함’ 편 42페이지를 살펴보니 그때 체험한 성서구절이 성무일도 제3주간 월요일 저녁기도 시편 124장 7절「우리의 영혼은 새와도 같이 사냥꾼의 올무를 벗어났으니 * 올무는 끊어지고 우리는 살았도다.」의 내용 이였습니다. 그래서 또 성무일도를 살펴보니 성무일도에는 사순시기 시작부터 사순시기 끝까지 매주 (월)~(토)까지 성무일도 아침기도 성경소구 응송으로 매일 읊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즉 우리가 구원된 삶을 살고 깨달을 수 있도록 잘 배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서에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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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실 때 즉 세례를 받았다고 영원히 구원이 보장된 것은 아니니까 즉 세례를 받고 원본죄(原本罪)가 사해지고 구원을【상존은총】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유다처럼 살면 유다가 지옥에 갔는지 연옥에 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 마태 22장 34-40절 ‘가장 큰 계명’ 편에서 하느님 사랑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고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라고 말씀해 주셨듯이 우리가 관상과 명상과 묵상을 논한다고 해도....(영성시집 ‘140. ‘우리의 생활이 바로 관상생활이구나!ⓐ’’ 편 115페이지, ‘186. 이것이 관상입니다ⓑ’ 편 203페이지 참조) 누구라도 본죄(本罪)인 대죄를 짓고 고해 성사도 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해탈, 열반, 완덕, 구원에 이를 수가 없으며 지옥에도 갈 수가 있고 또 연옥보속을 치르고 천국에도 갈 수가 있는 것이 가톨릭의 교리인 것인데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 인간에게 구원이 평생 동안 보장된 것도 아니고 다시 본죄(本罪)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예수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고) 복음을 지키고 10계명을 지키고 완덕인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지키는 것인데 즉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성직자, 수도자들이 완전한 애덕을 추구할 목적으로 서원까지 하며 지키는 덕으로써 정결, 청빈, 순명을 지켜야 구원의 경지가 느껴지듯이 구원의 경지를 느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즉 그러니까「깨닫는 것은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는 말은 이런 경지에 오를 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 2024. 7. 6. 아침에 잠이 깨이면서 왠지 ‘신적 재량’ 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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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핸드폰에서 검색해보았더니「유아구원에 관한 접근」이라는 제목 글「1. 들어가는 말 2. 로마교의 견해 3. 개혁파의 견해 4. 유아구원에 관한 근거의 견해 5. 맺는말」의 이런저런 내용들을 살펴보고 특히 3. 개혁파의 견해에서「“믿는 자의 유아(의 구원)에 관하여 그것은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불신자의 유아는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기에 판단은 신적 재량에 맡겨진다.”」고 하였지만 뚜렷한 답은 누구든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성당에 내려와 오늘 성무일도 제2독서「성녀 마리아 고레티 동정 순교자(1890~1902년)」를 살펴보고 마리아 고레티가 12살에 순교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래서 어린이에 대해서 깨닫게 하려고 그런 영감을 주셨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죽어도 18세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고들 하던데 어린이도 그러면 철없는 모습이 아니라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어 이성과 기억과 의지가 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선과 악의 뚜렷한 체험이 없을 것이므로 어른이든 아이든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할 수는 없겠지만 어른이든 아이든 천국의 기준인 정결, 청빈, 순명의 완덕의 경지를 이성과 기억과 의지로 느낄 때까지는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없고 연옥에 머문다는 것이 나의 완덕의 경지를 깨달은 체험으로 깨달아졌습니다.(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8페이지,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참조)
※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중권
「164 (문) 신덕은 무엇이뇨?
(답) 신덕은 천주 태워 주신 초성 덕행이니, 천주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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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啓示)하사 성교회에 맡기신 모든 진리를, 천주의
진실하심으로 인하여, 확실히 믿는 덕이니라.
3. 신덕만으로는 부족
교리적 신앙이든, 신뢰적 신앙이든, 신앙만으로는 구령하지 못하고, 반드시 행선 피악(行善避惡)의 실행이 겸하여야 된다.
이에 대하여 트리덴티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만일 누가 오직 신앙만으로 죄인은 의화되므로, 의화의 은총을 받기 위하여 다른 협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어떤 편으로 보든지 자기 의지를 움직여 준비하고 정돈함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파문을 받으리라”(Sess. VI, can. 9).
성서는 이것을 여러 번 명시하였다. “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장 14-26절).
【이처럼 신앙과 선행을 강력하게 요구하므로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같은 편지”라면서 신약에서 뽑아내 버렸던 것이다!】그러나 선행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 야고보서뿐이랴? 신앙 외에 또한 다음 것들이 요구된다…………
169 (문) 윤리덕 중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뇨?
(답) 윤리덕 중에 중요한 것은 사추덕(四樞德)이니, 곧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이니라.
170 (문) 복음 삼덕(福音三德)은 무엇이뇨?
(답) 복음 삼덕은 정결, 청빈, 순명이니, 이는 수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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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허원을 발하여 지키는 덕이니라.
171 (문) 본죄(本罪)는 무엇이뇨?
(답) 본죄는 계명을 알고도 자유로 범하는 것이니라.
178 (문) 모든 죄의 근원은 무엇이뇨?
(답) 모든 죄의 근원은 칠죄종(七罪宗)이니, 교오(驕傲),
간린(간吝), 미색(迷色), 분노(忿怒), 탐도(貪도), 질
투(姪妬), 해태(懈怠)니라.
※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하권
「184 (문) 상존 은총(常存恩寵)은 무엇이뇨?
(답) 상존 은총은 사람에게 항시 있어 그 영혼을 거룩하
게 하는 초성 지위니, 이로 인하여 사람이 천주성
에 참여하고, 성신의 궁전이 되고, 천주의 벗과 의
자(義子) 되어, 선공(善功)을 이루어 영생을 받을
자 되느니라.
188 (문) 잃어버린 상존 은총을 어떻게 회복하느뇨?
(답) 잃어버린 상존 은총은 고해나 상등 통회로 회복하
느니라.
※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하권
「211 (문) 성세는 무엇이뇨?
(답) 성세는 물로 씻는 예절로 되는 성사니, 이 성사를
받는 사람이 그 원본죄(原本罪)와 그 죄벌까지 온
전히 사함을 받고, 천주의 의자(義子)와 천주교회의
지체가 되고,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을 얻느니라.
“그 원본죄(原本罪)와 죄벌까지 온전히 사함을 받고” : 트리덴티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만일 누가 성세로써 주어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원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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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사하여짐을 부인하거나, 죄의 진실한 그리고 본질적인 요인이 없어지지 않고 다만 깎여지고 귀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파문을 받으리라”(Sess. V, can. 5).
“죄벌까지 온전히 사함을 받고” : 로마서 8장 1절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받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라틴어 본문에는 “Nihil damnationis”로서, 직역하면 “처형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란 말이다. 교부들과 특히 플로렌티노 공의회는 이 말씀을 잠벌의 전부까지 사하여짐을 뜻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트리덴티노 공의회는 그렇게 알아듣고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재생한 자들에게서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으시므로… 저들은 무죄하고 순결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데 저들을 체류시킬 것은 아무것도 없다”(Sess. V, can. 5).
과연 성교회는【고해 성사로 사죄받은 자에게는 보속을 정해주지만, 영세자에게는, 전에 아무리 큰 죄과를 범했어도 보속을 주지 않아 온다.】
원본죄와 그 벌까지 사하여지는 동시에 상존 은총을 받는다.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213번 ‘일치의 길’ 편【6.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재일치는 오직 완전한 진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진리는 다만 ‘가톨릭교회’ 안에서만 온전히 보존되어 왔다. 따라서 가톨릭교회가 이를 (계속) 보전하고 지키면서 두려움 없이 만민에게 선포해야 한다.】), (219번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 편【5. 나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세대에 걸쳐 그분께서 베푸시는 자비에 대해 몸소 찬미의 노래(루가 1장 46-55절)를 불렀거니와, 너희가 구원을 얻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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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유일한 가능성은 그렇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그분께 돌아오는 데 있을 따름이다.】), (551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너희의 구원이시다.’ 편【3. 너는 이 여행을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시작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야말로 내 확실한 승리의 표징이다.… 특히 이 시대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슬기롭다는 사람들과 안다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보이고 스스로 높다는 사람들에게는 수치스런 일로 여겨지고 있지만, 오직 그분께만 너희의 구원이 있는 것이다. 9.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희망과 확실한 승리의 표징이다.】), (587번 ‘예수 그리스도 홀로 구원자이시다.’ 편【15. 예수 그리스도 홀로 구원자이시다. 16. 복음서에 실린 그분의 말씀은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므로 너희를 구원에로 이끈다. 나는 그분의 신적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이끌어준다. 너희로 하여금 내 아들 예수님의 ‘복음’을 사랑하며 살게 하려는 것이다.】), (588번 ‘참 행복의 길’ 편【8.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복되다.(마태 5장 8절) 내 아기 예수님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 아기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이다. 내게서 인성을 취하셨지만 그분은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아기 속에서 뛰고 있는 심장은 하느님의 심장이다. 이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아들에게서 하느님을 뵈어라. 뛰고 있는 이 심장에서 하느님 심장의 고동을 느끼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마음의 순수함은 완전한 사랑에서 태어난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만이 깨끗한 마음에 이를 수 있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뵐 수 있다. ★11. 그래서 나는 오늘 아기를 팔에 안고 그분 영광의 성전으로 가면서 유심히 그 눈을 들여다본다. 끝없는 참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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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빛이 샘솟는 그 눈을. 12. 홀로 그분만이 너희의 참 행복이다. 참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도 그분이니, 누구든지 그 길을 걸어야 구원과 평화에 이를 수 있다. 그분은 조그만 아기의 모습으로 너희에게 진리와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는, 영원하신 ‘아버지의 말씀’이시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영원으로부터 흐뭇해하시는 외아들이시다. 그분은 또 이 동정 어머니의 아들이시니, 그분을 그분 영광의 성전으로 모셔가는 오늘, 나는 너희 모두에게 되풀이해서 말한다 : 그분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라.★】), (595번 ‘그분 진리의 빛으로’ 편【2. 성령께서 완전한 증거를 주시리라. 7. 성령의 증거로 교회는 깊이 쇄신될 것이다. 8. 그분 ‘진리’의 빛으로 교회는 자신의 인간적 취약점을 온전히 보게 되리라. 그리하여 교회의 신앙 위기가 치유되고, 교회 안에 배교와 불충실의 깊은 상처를 퍼뜨리고 있는 오류의 타격에서도 벗어나게 될 것이다. 10. 성령의 증거로 너희는 진리를 전체적으로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11. 그분 ‘진리’의 빛으로 예수님 복음의 구원 능력이 어디서든지 그분의 신적 광채를 퍼뜨리며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드러나리라. 그리하여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귀여겨듣고, 그분께서 가르쳐주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생애를 본받고,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 12. 내 아들 예수께서 마땅히 모든 이로부터 영광을 받으셔야 할 때가 되었다. ‘두 번째 성령강림’이라는 놀라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속주이시며 오직 한 분뿐이신 구원자이심을 알아보게 되리라.】), (596번 ‘예수 그리스도 홀로 구원자시다.’ 편【5. 예수 그리스도 홀로 구원자이시다. 그분께서는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 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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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완전한 형상이며 ‘영원한 말씀’이신 그분께서 너희에게 신적 진리의 선물을 가져오셨으니, 그 진리가 바로 ‘복음’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아들들아, 충실하고 힘있는 복음선포자들이 되어 다오. 8. 예수 그리스도 홀로 구원자이시다. 그분께서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시기에 생명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모두에 게 주어졌으니,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써 너희에게 생명을 얻어주신 까닭이다. 생명은 ‘은총’과 아울러 너희에게 오고, 은총으로 말미암아 너희는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 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의 길이시다. (그분 의) 이름 외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름이 하늘 아래 달리 없다. 인류 는 그분과의 만남을 향한 여정을 따라가고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당신 왕국을 세우시려고 영광에 싸여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일이다. 그분의 ‘오심’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걸어가거라. 희망의 문턱을 넘어, 평화, 기쁨, 평온, 신뢰 및 아들다운 맡김의 정신으로 살아가거라.】), (597번 ‘영원한 영광의 임금님’ 편【6. 보아라, 그분의 신성이 인성의 고통스러운 한계 때문에 얼마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지를! 그럼에도 나는 영웅적인 믿음의 행위로 끊임없이 내 아들 예수 안의 하느님을 흠숭하였고, 영혼으로는 항상 당신 신성의 광채에 싸여 계신 그분을 관상하였다. 8. 천국에서, 예수님은 이제 당신 신성의 광휘에 싸여 성부님 오른편에 앉아계신다. 오늘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을 더욱더 깊이 관상하여라.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신성을 의심하고, 그분의 말씀을 논쟁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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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으며, 그분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니 말이다. 10. 영원한 영광의 임금님. 예수께서 당신 신성의 영광에 싸여 다시 오셔서 모든 인류에게 나타나시면, 누구든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타볼산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 광채 속에 나타나실 때면, 인성이 지극히 찬란한 신성의 광휘에 싸여 완전히 변모되신 모습일테니 말이다. 11. 그러면 온 우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 성부님의 완전한 형상, 사람이 되신 ‘말씀’, 오직 한 분뿐이신 구원자, 만물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만물을 당신께 굴복시킬 권능을 지니신 분으로 선포하게 되리라.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당신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세우리니, 이는 거룩함과 은총의 왕국,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왕국일 것이다.】), (598번 ‘당신 오른편에 계신 모후께서는 눈부시게 빛나시나이다.’ 편【4. 예수님께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것은, 그것이 아버지의 외아들이신 그분께만 합당한, 영예로운 자리인 까닭이다. 8.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오른편에 앉히신 것은, 그것이 당신 외아들이시며 육화하신 ‘말씀’, 구속주, 한 분뿐이신 구원자, 온 우주의 왕이신 그분께만 합당한, 최대의 영예인 까닭이다. 9. 당신 오른편에 계신 모후께서는 눈부시게 빛나시나이다. 10. 나는 천국의 영광 속에 올림을 받자 내 ‘아들’ 오른편에 자리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것은 그것이 당신의 ‘동정 어머니’에게 합당한 최대의 존경이 되기 때문이었으니, 구원사업에 긴밀히 결합해서 그분의 모든 고난을 함께 나눈 나를 불러 올리시어, 이제 그분의 영광스러운 신적 권능도 함께 나누게 하신 것이다.】), (602번 ‘그리스도께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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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 드려라.’ 편【3. - 그리스도께 문을 열어 드려라. 예수께서는 너희의 구원자, 오직 한 분뿐이신 구속주가 되시려고 동정 어머니인 나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심으로써 너희 가운데 오셨다. 4. 너희는 깨끗한 마음과 애정 어린 눈길로, 내게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순간의 그분을 바라보아라. 자신을 무시하며 배척하는 세상의 싸늘한 냉기와 혹심한 추위를 느끼고 울음을 터뜨리는 이 조그만 아기가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마태 1장 23절)’, 구세주, 오직 한 분뿐이신 구원자이시다. 그분 없이는 어떤 인간도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구원」: 구약성경 총378절 + 신약성경 총159절 = 구, 신약 총537절【구원자 49 + 25 = 74, 상속자 6 + 15 = 21, 공동 상속자 0 + 3 = 3, 구세주 2 + 1 = 3, 그리스도 0 + 592 = 592, 메시아 6 + 39 = 45, 구원의 하느님 12 + 0 = 12, 구원의 영도자 0 + 2 = 2, 구원의 샘 1 + 0 = 1, 구원의 희망 0 + 1 = 1, 실체 0 + 3 = 3, 본질 0 + 1 = 1, 원천 10 + 0 = 10, 근원 6 + 2 = 8, 근본 4 + 0 = 4, 주님의 구원 3 + 0 = 3, 구원의 주님 1 + 0 = 1, 하느님의 집 108 + 6 = 114, 하느님 집 23 + 0 = 23, 주님의 집 273 + 0 = 273, 주님 집 13 + 0 = 13, 성전 211 + 123 = 334, 주님의 성전 21 + 0 = 21, 주님 성전 1 + 0 = 1, 궁전 33 + 0 = 34, 당신 궁전 4 + 0 = 4, 당신의 거룩한 궁전 4 + 0 = 4, 그분 궁전 2 + 0 = 2, 거룩한 당신 궁전 1 + 0 = 1, 성소 239 + 16 = 255, 지성소 17 + 1 = 18, 참성소 0 + 1 = 1, 옥좌 9 + 5 = 14, 어좌 21 + 38 = 59, ‘임금들의 임금, 주님들의 주님’ 0 + 1 = 1, 주님의 문 1 + 0 = 1, 하늘의 문 2 + 0 = 2, 하늘 나라의 문 0 + 1 = 1, 나는 양들의 문이다 0 + 1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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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이다 0 + 1 = 1,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0 + 1 = 1, 문을 두드려라 0 + 4 = 4,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0 + 2 = 2, 생명으로 이끄는 문 0 + 1 = 1, 정의의 문 1 + 0 = 1, 좁은 문 0 + 3 = 3, 열쇠 2 + 6 = 8, 다윗의 열쇠 0 + 1 = 1, 하늘 나라의 열쇠 0 + 1 = 1, 죽음과 저승
의 열쇠 0 + 1 = 1, 이스라엘의 구원 11 + 1 = 12, 죄에서 구원 0 + 1 = 1, 내 구원 9 + 0 = 9, 나의 구원 14 + 1 = 15, 저의 구원 7 + 0 = 7, 구원의 바위 3 + 0 = 3, 고귀한 구원 0 + 2 = 2,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 0 + 1 = 1,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 0 + 1 = 1】참조.
※ 신앙수기 ‘6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편 48-49페이지, ‘75.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다는 말의 뜻이 풀림’ 편 54-58페이지, ‘83. “정배”라는 뜻이 새롭게 뇌리에 파고들었습니다.’ 편 73-74페이지, ‘89. “우리 수도회 카리스마가 무엇입니까?”’ 편 84-89페이지, ‘93.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편 91-94페이지 참조.
※ 영성시집 ‘70. 어린 양의 혼인잔치’ 편 63-64페이지,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183. 가톨릭교회의 구원관과 불교의 구원관’ 편 189-195페이지, ‘185. 성삼수도회의 영성생활 핵심부분’ 편 199페이지, ‘190. 깨달음에도 큰 깨달음과 작은 깨달음이’ 편 221-222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309-314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15-335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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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 두 손을 모아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아! 지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 이것이 나에게는 진리로 다가옵니다 / 예수님께 겸손을 청하면 주신다는 것도 옛날 속담 같지만 진리라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68-69페이지 참조)
※ 마태 11장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절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즉 완전히 겸손한 사람은 예수님 밖에는 없다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 즉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하고 말씀하신 사람도 예수님 밖에는 없다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69페이지 참조)
※ 마음속으로부터 겸손이 우러나오도록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려고 우리의 의지로 한번 노력해봅시다.(69-71페이지 참조)
※ 겸손과 반대 되는 교만과 오만을 한번 살펴보고 天使들도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로써 교만에 떨어지는 죄를 범했다는 점을 한번 묵상해봅시다.(71-73페이지 참조)
★★★★★영성시집 ‘126. 겸손의 노래①’ 편 104페이지【찾아보고 불러봐도 / 없는 겸손 대답할까 / 겸손이 무엇인지 / 사랑보다 더 어렵습니다】, ‘154. 겸손의 노래④’ 편 144페이지【신부님께서 겸손이 화두였는지! / 성령을 받은 영성이 뛰어난 / 자매님께 지도를 받으셨는지! / 교만하다는 지도를 받으셨는지! / “겸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신부님께 범물동 분원 식탁에서 / 갑자기 질문을 받고 나서는 / 이런 저런 것이 겸손이라고 / 「겸손은 한 사람 위에라도 서게 된다면 / 그만한 손실을 분명히 끼쳐준다네.... / (영성시집 ‘129. 겸손의 노래③’ 편 참조)」/ 말로 겸손을 말하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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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나도 겸손을 잘 모르겠어요!” / 그 다음 다음날 번복을 하였습니다 / 나는 겸손을 얻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156. 겸손의 노래⑥’ 편 146페이지【54일 기도를 시작합니다 / 9일 기도를 3번 27일 동안 / 지향을 넣어 (청원기도)를 바치고 / 9일 기도를 3번 27일 동안 / 청하는 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고 / 이루어주심에 (감사기도)를 바칩니다 / 지향은 겸손을 얻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157. 겸손의 노래⑦’ 편 147페이지【겸손을 주리고 목마르게 청원합니다 / 생활의 겸손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 처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렇습니다 / (‘참된 천상지혜)는 매우 천하고 작고, /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과 같다.’는 것을 / 처음에 청했던 것과 같이 지금 막바지에도 / 「준주성범 3권 32장 3번 / ‘내가 네게 소개한 것은 / 세상에서 귀하고 높다는 것 대신에 / 천한 것을 살 것이란 말이다. / (참된 천상지혜)는 매우 천하고 작고, /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과 같다. / 많은 사람이 (이 지혜)를 선전하지만 말에 불과하고 /그 생활은 대단히 다르다. / 그러나 (이 천상지혜)는 / 많은 사람들에게 묻혀 있는 값진 진주다.’」/ 이것으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것이 지혜로군요? / ‘많은 사람이 (이 지혜)를 선전하지만 말에 불과하고 / 그 생활은 대단히 다르다.’ / 즉 생활의 겸손이 부족함을 가장 지적한 말일 것입니다
※ 묵상집 ‘73. (이 지혜)를 선전하지만 말에 불과하고’ 편 73-74페이지 준주성범 인용부분 참조.】, ‘158. 겸손의 노래⑧’ 편 148페이지【생활의 겸손을 얻기를 청하느냐? / 형제들을 섬기고 시중들 것처럼 / 항상 맞이하여라 / 그리하고 믿어라 주시리라 /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 하늘이 도우리라 감흡하리라 / 이것이 주님의 발 씻기심의 모범이셨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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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겸손 이것만을 주십시요! / 출근을 하면서 성모상 앞에서 / 나는 지성을 들여서 기도합니다 / 어제도 오늘도 이것만을 주십시요! / 두 손을 모아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아! 지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 이것이 나에게는 진리로 다가옵니다 / 지극한 정성을 들이면 하늘이 감동한다고 / 옛날 속담이지만 나에게는 진리로 다가옵니다】, ‘173. 겸손의 노래⑩’ 편 168페이지【“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장 29절) / 즉 완전히 겸손한 사람은 예수님 밖에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 즉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 하고 말씀하신 사람도 예수님 밖에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197. 겸손의 노래⑪’ 편 244-245페이지《《《★토요일은 수녀님들 각자가 알아서 퇴근을 하기 때문에 일과를 마치고 어두운데 버스 빈차를 가지고 수녀원으로 돌아오는데 대문 앞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예! 조심히 가세요!” “예! 안녕히 가세요!” 하고 마음으로부터 겸손이 우러나왔습니다.
즉 옛날에는 효성여대 기숙사를 수녀원에서 운영할 때 기숙사 버스를 운전하면서 누가 대문 앞에 차를 주차해 놓으면 전화번호도 없으면 하는 수 없이 빵~ 빵~ 거려 아파트에서도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고 지금은 천주성삼병원을 하면서도 주차하는 일이 더러 있었는데 주로 여성 운전자들이였고 술 취해서 주차하고 들어가 버리는 남성 운전자의 경우 등 그래서 우리 편에서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어서 연구하다가 오뚝이는 세워두었지만 펼치는 차단막도 추가로 세우고 하니 그런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전화번호라도 남겨두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만은 10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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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30분 기다리고 나면 결국 나타나지만 그러면 “차를 이렇게 세우면 됩니까?” “죄송합니다!” “어찌 기본이 안 되어 있어요!” 또 “왜 전화번호도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차 빨리 빼세요!” 아무튼 한마디를 하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았지만 한마디를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2013년 11월 9일 저녁 6시 30분경 문득 혹시 차가 주차되어 있어도 어차피 세상 고통을 같이 격고 사는 이 가련한 세상에서 이해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죄송합니다!” 하면 “예! 조심히 가세요!” “예! 안녕히 가세요!” 그래야 하겠다는 문득 마음으로부터 겸손이 우러나왔습니다.
그전에는 그리 노력해도 마음으로부터 겸손이 우러나오는 그런 이치가 쉽게 깨달아지지가 않았는데 그동안 노력한 덕분인지 오늘은 왜 이리 쉽게 그러한 겸손이 깨달아지는지! 오히려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사실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러면 그 사람이 가시면서 ‘아!- 그 사람 참 다르다! 신분이 누구일까?’ 아무튼 누구이든 궁금해지며 마음에 감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삶을 잊지를 못하며 늘 생각이 나며 그런 삶을 그리워하며 본받으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도 감동할 일이며 그런 측은지심의 삶이 바로 완덕의 길로 나아가는 기초적인 삶이 아니겠습니까?
※ 병원 시작할 때 ‘미리내 성 요셉 애덕 수녀회’ 안내 수녀님께서 빌려주신 어느 수도자가 겸손에 대한 자료를 모은 것으로 보이는「겸손」의 소책자에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겸손이 없으면 네가 완전한 겸손을 가진 것 같을지라도 이것은 겉꾸민 겸손이요, 네 교만을 가려주는 포장 외에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겸손이 없으면 다른 덕행은 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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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가 없이 서 있는 것이다.’(요셉 프라씨네띠)】참조.★》》》, ‘217. 겸손의 노래⑫’ 편 580-584페이지《《《★2016. 10. 1. 인터넷 네이버 지식백과, 국어사전【「겸손」: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교만」: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오만」: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에서 겸손, 교만, 오만이란 단어의 내용들을 계속 곱씹어 살펴보면서… 즉 겸손한 사람을 겪어보면 지식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듯이 반대로 교만한 사람은 지식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혐오감이 느껴지면서 즉 어떤 것이 교만이고 헛된 지식인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깨달아졌습니다.
※ 인터넷 네이버 지식백과「교만」:〔요약〕겸손함이 없이 잘난 체하여 방자하고 버릇이 없음을 일컫는 말.
남을 깔보고 자신을 높게 평가하여 반성함이 없고, 쉽게 우쭐거리는 마음을 뜻한다. 불교에서 비롯된 말로, 교만할 만(慢)자는 산스크리트 마나(Mana)를 번역한 것이다. 중생은 갖가지 번뇌로 인하여 업을 일으키고, 그 때문에 미혹에 빠진다. 불교의 최대 목적은 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라 하여 삼독(三毒)이라 한다. 어리석다는 것은 자기 본성을 보지 못하고 헛것에 매달려 교만에 빠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구사종(俱舍宗)에서는 탐욕[貪]과 성냄[瞋]과 교만[慢]을 삼독이라 하기도 한다.
※ 인터넷 네이버 지식백과「수자타(玉耶)」: 석가에게 어진 아내로서의 길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여성이다. 마가다국 슈라바스티(사바티:舍衛城)의 권력과 재산이 많은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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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태어났다. 자라서는 석가에게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바친 수다타(Sudatta:給孤獨長子)의 며느리가 되었다.《옥야경(玉耶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녀는 뛰어난 미인으로, 친정의 사회적 위치와 자기의 미모를 믿고 교만하여 시부모와 남편을 제대로 섬기려 하지 않았다. 이를 걱정하던 수다타는 석가를 청하여 그녀를 교화하려 하였다. 초대를 받고 수다타의 집에 찾아간 석가는 수자타에게 말씀하셨다. “여자는 무엇보다 단정해야 하오. 단정하다는 것은 얼굴이나 몸매나 의복 등 겉모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한결같이 공손하게 가지는 일이오.”
수자타가 속으로 자기 허물을 뉘우치고 묵묵히 있는 것을 본 석가는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일곱 종류의 아내가 있소. ①어머니와 같은 아내, ②누이와 같은 아내, ③친구와 같은 아내, ④며느리와 같은 아내, ⑤종과 같은 아내, ⑥원수와 같은 아내, ⑦도둑과 같은 아내 등이오. 그 가운데 먼저 든 다섯 종류의 아내는 착한 아내로, 항상 그 이름을 널리 떨치고 여러 사람이 사랑하고 공경하며 일가 친척들이 함께 칭송하게 되오. 그러나 뒤의 악독한 두 종류의 아내는 항상 비난을 받고 몸과 마음이 편치 못해 늘 앓게 되며, 눈을 감으면 악몽으로 두려워 떨고 자주 횡액을 당하며, 죽은 뒤에는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헤어날 기약이 없는 것이오.”
석가의 말을 듣고 수자타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허물을 뉘우쳤다. “제 마음이 어리석고 미련하여 아내로서 몽매한 짓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지나간 잘못을 고쳐 교만을 부리지 않고 종과 같은 아내가 되어 시부모와 남편을 받들어 섬기겠습니다.” 하고 이후 어진 아내가 되었다. 이 경전은 불교에서 재가(在家) 신자에게 어진 아내로서의 길을 가르치려는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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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피정 셋째 날 ‘아기 예수 호칭기도’ 1번(267페이지 참조)
피정 넷째 날 :「계시(啓示)자의 완전함과 계시(啓示)를
보(받)는 자의 결핍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무위법(無爲法)의 예수님을 떠나서는 어떠한 神들도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이듯이 아무리 크게 깨달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해도 우상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견성(見性)과 계시(啓示)일 뿐이듯이....
아무리 큰 계시(啓示)를 보(받)더라도 계시(啓示)자의 완전함과 계시(啓示)를 보(받)는 자의 결핍이 항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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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
의 완성」
불교는 자연과 신비가 공존한 종교입니다
자연과 신비가 공존한 불완전한 종교입니다
그러나 계시종교는 계시의 완성인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계시로 교육을 받고 종교가 생겼는데
완성된 계시가 아니라고 말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계시자의 완전함과 계시를 보(받)는 자의 결핍으로
완성된 계시라도 가르침을 점진적으로 깨달아야지....
하느님의 창조론이 꾸민 거짓말일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전능한 신이다” 하셨는데 이것이 거짓말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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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가톨릭의 계시종교는 전능하시고 창조고 진리입니다
누가 어떠한 논리로도 이것을 정당하게 부정하는 논리는
만들어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불교는 자연과 空사상이 공존한 대단한 종교이지만
결핍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가톨릭은 창조설이 아니라 계시로 창조인 진리입니다
창조진리 계시진리 계명진리 이스라엘 모든 역사진리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증명하신 계시진리인 것입니다
길, 진리, 생명이신 삼위일체 하느님 성자께서 증명하신
로마시대에 빌라도 총독 치하에서 역사적으로 증명하신
이 모든 것을 부정한다면 불교가 옳은 종교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메시지로 전능을 창조를 말씀하시는데
이 계시된 것을 부정하고 空사상을 윤회를 믿으라고요?
이런 것에 아직까지 속고 또 속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계․정․혜), (사성제), (팔정도) 이런 교리가 있다는 게
자연종교로써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지 모르겠습니다
空사상의 즉 불완전한 제도의 종교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는 전능한 신이다” “나는 야훼다” 이름을 계시하신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인정해야지
부분적인 깨달음으로 완전한 계시를 말할 수가 없듯이
空사상의 즉 불완전한 철학의 종교라는 것을 인정하고
완전한 계시종교 보다는 자연 진리를 탐구한 종교로써
죄를 지으면 번뇌의 상태에서 마음이 갈등하는 것이지
(탐․진․치)를 끊지 못하면 악습이 되풀이 되는 것이고
(탐․진․치)를 끊는 것이 바로 완덕을 이루는 것이지만
마음을 닦아서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지
사람의 영혼이 동물의 영혼이 되는 그런 윤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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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혼은 어머니의 태중에 잉태될 때 창조되는데....
불교는 윤회를 믿다보니 교리를 그렇게 적용한 것이다
사실 철학은 자꾸 뒤집히지 완전히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요한 14장 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신
선하신 분도, 스승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도 오직
한 분뿐이신(마태 11장 29절, 19장 17절, 23장 8-10절 참조)
진리의 실체라야 완전한 참된 종교를 세울 수 있는 것이지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는 완전한 제도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불교의 부분적인 계시진리로는 하늘나라를 알 수가 없듯이
불교는 계시의 완성진리를 어느 정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즉 주님을 깨닫지 못하고 하늘나라를 어떻게 깨닫겠습니까?
마태 22장 29절 ‘부활 논쟁’ 편에서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즉 자연종교가 계시종교를 인정 할 수 없다면 어떻겠는가?
즉 계시종교의 창조진리를 인정 할 수 없다면 어떻겠는가?
즉 윤회설이나 “나는 누구인가?”하는 불확실한 화두보다는
즉 부처님과 나는 둘이 아니지만 또한 둘이라는 사실을
즉 창조주와 나는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는 사실을
즉 사람의 영혼이 天使의 영혼이 되는 그런 윤회는 아니다
즉 윤회는 설이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의 진리입니다
즉 윤회는 설이지만 창조는 믿어야할 예수님의 진리입니다
즉 사람의 육신은 윤회한다지만 영혼은 매번의 창조입니다
그러니까 天使의 심판은 끝났고 인간의 심판은 남았으니까
그러니까 아담과 이브의 창조 때와 다름없는 재창조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당신의 숨결을 담은 매번의 재창조입니다
※ 2024. 7. 14. 수도회 전체모임 연수 때 윤학 미카엘 변호
사님의 초청 특강【나는 무엇이냐? / 어떻게 살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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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여기에 인생의 답이 있습니다. / 삶이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가치가 있습니다.】을 들으면서 나는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여러 번 읽었지만.... 인생에 답이 있다는 말이 너무나도 듣기 좋고 생소하고 자꾸 눈물이 나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윤학 미카엘 변호사님은 인생의 목적과 가치와 답을 발견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서 답을 발견하지 못하면 항상 해맬 수밖에 없듯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과 가치와 답을 발견하고 실천하여 성인, 성녀들이 되시기를 희망하며 무한한 감사와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인생은 미완성(이 진관)을 부른 가수는 지금도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이제는 답을 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1 (문)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낫느뇨?
(답)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낫느니라.
여기서 “구한다”는 말은, 물에 빠지거나 불에 타는 것을 ‘구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영혼을 구한다”는 말은 사람이 죽은 다음 그 영혼이 지옥의 영벌(永罰)을 면하고 하늘 나라의 영복(永福)에 들어감을 뜻한다.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낫느뇨?”란 인생의 최후 목적을 묻는 말이다.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할 때는 언제든지 그 목적이 있다. 길에 걸어가는 사람, 밭에서 일하는 사람, 집에서 쉬는 사람, 모두 제각기 목적이 있다. 목적 때문에 행동하는 것은 사람의 본질이다. 이런 본질을 가진 인생 자체의 목적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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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즉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나고 싶어서 난 것도 아니요,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도 아닌 만큼, 자기가 자기의 목적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인생을 창조하신 천주(하느님)께로 올라가 무엇 때문에 사람을 창조하셨는지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서 목적 없이 행동하실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는 당신을 공경하며 당신의 계명을 따라 착하게 살고,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당신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 당신 복락(福樂)을 함께 누리게 하시려는 뜻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다.
인생의 목적이 여기 있음은 다음의 이치로 보아도 알 수 있다.
1. 인생의 가치를 보아서……, 2. 인간의 갈망을 보아서……, 3.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를 보아서……, 4. 성서는 이를 명확히 지적한다.……
3 (문) 천주교는 무엇이뇨?
(답) 천주교는 천주 친히 세우신 참종교니라.
하느님께서는 우리 현세 생활에 절대 필요한 것뿐 아이라, 여러 과일과 기화 요초(琪花瑤草) 등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까지 풍부하게 창조하셨다. 그러하신 만큼 더욱 막중한 관계를 좌우하는 인생 목적 달성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으시고 이를 위하여 종교를 창립하여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천주교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양심이나 잘 지키고 자기가 생각해낸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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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집에서 하느님을 공경하여도 될 것이지, 뭐 천주교라는 것을 반드시 신봉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한다. 하느님께서 만일 종교를 창립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이론이 성립될 수 있지만, 일단 창립하신 사실 이후에는 이런 이론이 용인될 수 없다. 너희가 이를 신봉하든지 말든지 너희 마음대로 하여도 좋다는 모호하고 애매한 태도로 창립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를 창립하심과 동시에 이를 통해서만 당신을 공경하고 각자 영혼을 구하라는 명령을 또한 내리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사람은 모든 일에 전문가의 지도를 받도록 되어있다. 음악, 미술, 과학 등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더구나 하느님과 영혼에 관한 초감각적 사항에 있어서 사람이 혼자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일 뿐 아니라 또한 즉시 미신에 떨어질 것임은 자명하다.
어떤 사람은 동양에도 종교가 많은데 하필 서양에서 건너온 천주교를 믿느냐고 한다. 이것은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는 말이다. 종교라는 것이 정신 수양이나 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믿든지 저것을 믿든지 아무것도 안 믿든지 마음대로 하여도 좋을 것이지만 종교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느님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게 하는 것인 만큼 여기에 양(洋)의 동서가 있을 수 없다.…
9 (문) 계시는 무엇이뇨?
(답) 계시는 천주 친히 진리를 사람에게 가르치사 영적(靈
蹟)으로 그 진실됨을 증명하여 주신 것이니라.
【“계시” : 열어 보인다는 뜻. 마치 가리웠던 막을 열어 제쳐, 아직까지 볼 수 없었던 그 내부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 같은 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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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지능으로 알아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문제는 사람의 지능으로는 알 수 없다. 이렇게 우리 지능으로는 알 수 없는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인 종교적 진리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을 “계시”라 한다.
예전의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이에 두지 않고 하느님이나 천사들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으므로 이를 ‘직접 계시’라 하고,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만 알게 되었으므로 이를 ‘간접 계시’라 한다.
직접 계시는 외적으로도 될 수 있고 내적으로도 될 수 있다. 다니엘 예언자가 벽에 나타난 글자를 읽고(다니 5장 참조), 예레미야 예언자가 끊는 가마솥을 보고(예레 1장 참조), 요한 사도가 일곱 등경을 본 것(묵시 1장 참조)은 외적인 기호나 형상을 통한 것이었고 솔로몬이나 사도들에게 내린 계시는 내적 정신 속에 박히는 확실한 지식으로 되었다. 외적으로 되든지 내적으로 되든지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그것이 당신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확실하게 인식시킨다.】
계시의 목적이 몇몇 개인이나 작은 단체를 위한 것이면 사적 계시요 인류 전체나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면 공적 계시이다.
“영적(靈蹟)으로” : 기적, 이적(異蹟)으로라는 말이다. 기적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 두 가지로 알아들을 수 있다. 넓은 의미로는 좀 이상한 사실을 사람들은 기적이라 한다. 예를 들면 버스가 뒤집혀 모든 승객이 다쳤는데, 그중 한 사람이 무사하였으면 이를 기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좁은 의미, 즉 신학적인 본래 의미의 기적은 “하느님의 능력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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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예외적으로 이루어진 감각할 만한 사실”이다.
감각할 만한 사실 :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된만큼 그 사실이 감각될 만한 것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어떤 영혼 안에만 일으키시는 변화(예를 들면 常存 은총, 성체 성사)는 본래 의미의 기적은 아니다.
26 (문) 천지를 조성하신 자라 함은 무슨 뜻이뇨?
(답) 이는 천주 당신 전능으로 없는 가운데로조차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섭리하심으로 보존하시며 다스리시
는 자라는 뜻이니라.
“없는 가운데로조차(ex nihilo)” : 우리가 무엇을 만들려면 재료가 있어야 하고, 연장을 써야 하고, 수고를 들여야 하고, 또 시간을 소비하여야 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무 재료나 도구나 노력이나 시간도 들이지 않고 즉시에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조된 우주가 발전하기 위하여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재료 없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원인 없이 만물이 생겼다는 ‘◯→만물’이 아니라 ‘전능→만물’이다.
우주의 재료라면 기껏해야 물질이다. 그런데 이 물질은 지극히 불완전한 것이므로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다른 것에서 존재를 받지 않고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능동의 능동(Activum=Actus purus)이다.【물질은 타성적 관성적이요 소모되고 변이되는 수동적인 것, 불완전한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보쉬에(Bossuet)의 말은 철학적으로 매우 당연하다. 자기를 움직이지 못하면, 그 움직임의 기본인 존재를 자기가 가질 수는 더구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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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가견의 세계, 즉【천사들을 창조하시는 데 ‘그 재료’란 있을 수 없는 망상이다.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새로 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창조하신다.】영혼이 재료가 있다면 벌써 영혼이 아니다.
예술계에서는 전에 다른 이가 하지 못한 것, 즉 전에는 없던 것을 만들어 놓으면 창작이라 한다(비록 순수한 의미의 창작은 아니지만). 그리고 예술가의 예능이 클수록 많은 창작품을, 훌륭한 창작품을 내놓는다.
【하느님의 전능은 전에 온전히 없던 것을 ‘창조(Creatio)’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전능이요, 전능이니까 그러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창세 1장 3절)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전능을 잘 나타낸 힘있는 표현이다. “주의 말씀이 계시자 이루어졌고, 주의 명이 계시자 존재했나니”(시편 32장 9절).
“나 야훼가 만물을 창조하였다. 나는 혼자서 하늘을 펼치고 땅을 밟아 늘였다”(이사 44장 29절). “예야, 내 부탁을 들어 다오. 하늘과 땅을 바라보아라.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라. 하느님께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2마카 7장 28절).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신령적 물질적 두 가지 조물을 없는 가운데에서 창조하셨다”(바티칸 공의회).…………】
“그 섭리하심으로” : 만물을 ‘보존’하며 ‘다스리심’을 뜻한다.
보존(Conservatio) : 그 존재를 지켜 유지되도록 돌본다는 뜻이다. 보존은 ‘창조의 계속(Creatio continuata)’이라는 것은 제16문답 천주 무량(無量)에서 이미 말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에 대하여 “조물주의 능력은 모든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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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존속하는 원인이다. 만일 그 능력이 피조물을 다스리기를 그친다면 피조물들의 종류도 동시에 그치면서, 자연 자체가 허무로 돌아갈 것이다”(lib. Ⅳ De Genesi ad litter., C. Ⅻ)라고 하였다. 캄캄한 하늘이 밝기 위하여는 태양이 첫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필요하다. 태양이 비치길 그만두는 동시에 하늘은 암흑으로 돌아갈 것이다.
예수의 “내 아버지께서 언재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장 17절)라는 말씀에서의 일한다(operor)는 것에 만물의 보존도 들어가는 것이다.
“다스리는 자” : 무엇에 목적을 정해 주고 그 목적 달성에 합당한 방법을 늘어놓는 것을 안배(按排 Providentia)라고 한다. 그러므로 안배는 지능 안에 세워진 설계이다. 이 설계대로 추진하여 실현시킴(Executio)을 ‘다스림(Gubernatio)’이라 한다. 여기서는 편의상 이 ‘다스림’까지를 포함하여 ‘안배’라 하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다음 당신이 제정한 자연 법칙에 맡겨 버리고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보살피시며 안배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목적을 세우시고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그대로 손을 떼시고 목적 달성 여부는 관심없이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는 것은 그 지혜에 어긋나는 일로, 하느님께 있을 수 없다.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공장에 큰 기계를 시설한 기사는 그 운행 실태를 보살피고 부모는 자식을 매사에 보살핀다. 심지어 동물 세계에서도 이러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전선하신만큼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내버려 두지 않고 당신 안배로 다스리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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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의심할 수 없다.
성서 여러 곳에서 이것을 증언한다. 1) 모든 것을 안배하신다.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펼치시며, 모든 것을 훌륭하게 다스린다”(지혜 8장 1절). “모든 사람을 보살피는 하느님은 주님 외에는 따로 없다”(지혜 12장 13절). 2) 아주 작은 것까지도 “참새 두 마리가 단돈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럼 참새 한 마리도 너희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태 10장 29절). 하느님은 무한히 완전하시고 전능하심으로 적은 수를 보살피신다고 힘이 덜 들고 많은 것을 보살피신다고 힘이 더 드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3) 우연인 것 같아도 “주사위는 사람이, 결정은 야훼께서”(잠언 16장 33절).…………
34 (문) 영혼은 무엇이뇨?
(답) 영혼은 신령하여 불사 불멸하는 체(體)니 육신과 합
하여 그 생명이 되느니라.
“신령하여” :【비물질적이란 말이다. 영혼의 고유 능력에서 나오는 생각(관념, 판단, 추리)은 물질과 공통되는 점이 하나도 없다. 그 생각이 비물질적임을 우리 자신이 잘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물질에서 비물질적 작용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체(體)” : 실체(Substantia)란 말이다. 어떤 물건이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존(自存)하는 그 기본을 그 물건의 실체라 한다. 나무는 나무의 실체로 해서 나무다. 그 나무의 빛깔, 모양 등은 그 실체에 의존해서 있다. 나무의 작용은 그 나무의 실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실체에 의존하여 있는 것을 ‘속성(屬性 Accidens)’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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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신력은 위대하다. 라디오, 전송(電送) 사진, 무선 전신, 전파 탐지기, 텔레비전, 자동 전화 등 문명의 이기(利器)가 줄기차게 발전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사람의 정신력의 산물이다. 이런 무서운 정신력의 발원(發源)이 한 실체일 것은 명백하다.
“불사 불멸하는” : 영혼은 신령한 실체이므로 물질적 파괴나 화학적 변화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본질상 불멸이다. 육신을 떠나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마태 10장 28절),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부르짖었습니다”(묵시 6장 9-10절).
“그 생명이 되느니라” : 육신이 살아 있는 것은 영혼의 생명력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떠나면 육신은 죽고 분해된다. 사람은 한 영혼으로 생존하고 감각하고 사고한다. 이 세 가지 능력이 한 영혼에 있다.【사람이 어머니의 태중에 잉태될 때 그 영혼은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창조】된다.
그러므로 전부터 있던 영혼이 어떤 육체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육신이나 영혼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물질인 육신에서 영혼이 나올 수 없고, 신령하여 순일(純一)한 영혼에서 다른 영혼이 나오지는 못한다. 그리고 전생(前生)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창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靈魂)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니 하느님께로 돌아가리라.”(전도 12장 7절)」참조.
※ 인터넷 다음 카페글【「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6) -
8.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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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완성이신가?
하느님의 계시는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주신 말씀들은 구약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장 18절)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장 1-2절)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유일한 ‘말씀’이시다.
성부께서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은 없다.(가톨릭교회교리서 65항)
2) 예수님께서 계시해 주신 내용은 무엇인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세월의 신앙 여정을 통해서 “참된 하느님은 야훼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율법 준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행실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의 계시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다 깊은 하느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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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장) 등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병자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 주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의 한없는 깊이를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계시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 덧붙일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통해 계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 우리들의 사랑 의무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장 12절)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장 11-12절)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내면의 엄청난 비밀까지 계시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장 30절)라는 선언과 더불어 삼위일체의 신비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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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내면에 계신 제2위격이신 성자의 신분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신비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 계시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증명이 되었습니다.★
3) 계속 이해되어야 하는 예수님의 계시
계시가 완결되었다고는 해도 그 내용이 완전히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시대를 살아가며 계시의 내용 전체를 점진적으로 파악해 가야 할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66항)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모두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 사랑의 깊이를 단 한 번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 전체가, 그리고 신자 개개인이 예수님께서 계시하신 내용을 점진적으로 이해해 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고,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참조.
※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중권
178 (문) 모든 죄의 근원은 무엇이뇨?
(답) 모든 죄의 근원은 칠죄종(七罪宗)이니, 교오(驕傲),
간린(慳吝), 미색(迷色), 분노(忿怒), 탐도(貪饕), 질
투(姪妬), 해태(懈怠)니라.
‘죄의 종(宗)’이라고 한 것은 그 죄에서 다른 죄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칠죄종’은 이런 종이 일곱 가지란 뜻이다. 예를 들면, 교오에서 이기주의, 불순명 고집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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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본다면 ‘죄’이기보다는 ‘악습’, ‘모병(毛病)’이다. 그렇지만 다른 죄들의 근원이라고 해서 바로 대죄는 아니다. 대죄와 죄들의 근원은 서로 다른 것이다. 어떤 것이 대죄인지는 제자리에서 나올 것이다. ★의지가 윤리에서 탈선함은, 선익을 무질서하게 탐하거나, 선익을 그에 따르는 불편 때문에 무질서하게 도피하기 때문이다.★
★교오, 간린, 미색, 탐도는 선익을 무질서하게 탐하는 것이요, 질투, 분노, 해태는 피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에 따르는 불편 때문에 무질서하게 피하는 것이다.★ 이제 순서대로 살펴보자.
1. 교오(驕傲) : 교오(Superbia)는 자기의 높음을 무질서하게 탐함이다.…… / 2. 간린(慳吝) : 간린(Avaritia)은 세상 사물에서의 무질서한 애착이다.…… / 3. 미색(迷色) : 미색(Luxuria)은 성적 쾌락의 무질서한 탐욕이다.…… / 4. 분노(忿怒) : 분노(Ira)는 복수하려 하는 무질서한 욕망이다.…… / 5. 탐도(貪饕) : 탐도(Gula)는 음식을 무질서하게 탐하는 것을 말한다.…… / 6. 질투(姪妬) : 질투(Invidia)는 남이 잘되는 것을 마치 자기 탁월성의 손실인양 싫어하고 근심하는 것이다.…… / 7. 해태(懈怠) : 해태(Acedia)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게으름을 뜻한다.……(326-337페이지 참조)
※ 중도(中道) :〔요약〕팔정도의 실천을 통해 고와 낙의 양면을 떠나 심신의 조화를 얻는 길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즉 그러니까 팔정도(八正道)와 7덕이 없으면 중도(中道)가 아니고 즉 칠죄종(七罪宗)의 설명에서 선익을 무질서하게 탐하거나 무질서하게 피하는 것을 여러 번 이야기 하였듯이【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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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貪)․진(嗔)․치(痴)】를 없애고 즉【칠죄종(七罪宗)】을 없애고 즉 그러니까 팔정도(八正道)의 올바른 질서에서 벗어난 길이나 완덕인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의 올바른 질서에서 벗어난 길이 바로 무질서한 탐욕이고 중도(中道)가 아닌 것이듯이 즉 중도(中道)는 항상 도(道)에 머물 수 있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듯이 즉 예수님을 믿는 덕도 예수님을 올바로 믿어야 하는 것이듯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선익을 무질서하게 탐하거나 무질서하게 피하는 것은 올바로 믿는 믿음도 아닌 것이듯이 즉 악습이 덕의 습관의 경지에 이르는 이것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곱비신부님 메시지 405번 ‘표범같이 생긴 짐승’ 편【20. -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사는 삶의 열매인 향주삼덕과 사추덕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습관적으로 죄의 상태에서 사는 삶의 열매인 칠죄종(七罪宗)의 확산으로 대립한다. (즉) 믿음에 대해서는 교만으로, 바람에 대해서는 음욕(迷色)으로, 사랑에 대해서는 인색으로, 현명에 대해서는 분노로, 용기에 대해서는 나태(懈怠)로, 정의에 대해서는 질투로, 절제에 대해서는 탐욕으로 대립하는 것이다.】참조.
※ 묵시 12장 1-18절 ‘여자와 용’ 편「3절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큰 붉은 용이 나타났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고 머리마다 왕관이 씌워져 있었습니다.」과 묵시 17장 1-18절 ‘엄청난 탕녀에게 내릴 심판’ 편「3절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으로 나를 감동시켜 광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진홍색 짐승을 탄 여자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짐승의 몸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히 적혀 있었고 머리 일곱에 뿔이 열 개나 달려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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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은 칠죄종(七罪宗)을 말하는 것이고 뿔이 열 개는 10계명에 대립하는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 인터넷 다음 바라밀 - 나무위키 : 대승 불교에서 열반의 경지로 다가가기 위한 수행 방법이다. 바라밀이란 바라밀다, 파라미타라고도 하는데, 1. 피안에 이른다(도피안) 그리고 2. ‘완성’, ‘성취’, ‘신성한 완전무결’의 두 가지 뜻이 있다.
※ 팔정도(八正道)「8가지의 법륜(진리의 바퀴)」: 중생이 고통의 원인인【탐(貪)․진(嗔)․치(痴)】를 없애고 즉【칠죄종(七罪宗)】을 없애고 해탈(解脫)하여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실천수행해야 하는 8가지 길 또는 그 방법.
※ 영성시집 ‘183. 가톨릭교회의 구원관과 불교의 구원관’ 편 189-195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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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러니까 불교나 가톨릭이나 같이 완덕을 이루는 종교이지만 가톨릭은 노아 때부터 예수님 때까지 지금도 여전히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임을 한번 묵상해봅시다.
사람과의 계약도 계약을 맺는 것과 맺지 않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름을 한번 살펴봅시다. 하물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계약이란 얼마나 엄중하고 그분께서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하시겠습니까?(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72페이지 참조)
노아(창세기 9장 9-17절 참조), 아브라함(창세기 15장 17-18절, 17장 1-22절 참조), 이사악(창세기 22장 1-19절 참조), 모세(창세기 24장 6-8절, 34장 10절 참조), 예수 그리스도(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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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26-30절 참조), 12제자 미사성제 즉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시험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 희생 제물로 받으시려는 예표로써.... 즉 골로사이 2장 17절에서「이런 것은 장차 올 것의 상징(그림자)에 지나지 않고 그 본체(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하였듯이 또 히브리서 1장 3절「그 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10장 1절「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11장 1절「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하였듯이.... 즉 그분이 이미 우리들 가운데 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환상이 만들어낸 하나의 우상밖에는 하느님에 대해 무슨 관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즉 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1페이지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 제4권 ‘154. 게라사에서 출발’ 편【「영혼은 매번 창조되고 절대로 계속적인 화신(化身)을 위하여 이용되지 않는다.」】하였듯이.... 즉 그러니까 ★‘니체의 사신론(死神論)’에서 마태 5장 44절을 비판한 것처럼 예수님을 神(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으로만 본다면 비판 할 수도 있겠지만 진리와 지혜의 실체(實體)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만큼 이 얼마나 웃기는 비판인지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68. 니체의 사신론(死神論)’ 편 60-62페이지, ‘214.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피앗」과「우리 (성삼위)」②”’ 편 391페이지,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39-444, 460-475, 475-478, 481-509, 658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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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420번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편【「1. ‘복음서’에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가 18장 8절) 하는 말씀이 있다. 2. 오늘 너희는 내 성자께서 하신 그 말씀을 묵상하기 바란다. 중대한 말씀이다.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반영하심으로써 너희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는 우선,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그것은 그분께서 당신 재림을 너희에게 준비시키시기 위해, 그 영광스러운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가리키는 하나의 표징이 될 상황을 설명해 주시는 것이다. 3. 그 상황이란 (바로) 믿음의 상실이다. 6. 신앙 상실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오류의 만연이다. 오류가 널리 전파되고 있고, 흔히 신학교와 가톨릭 학교의 신학교수들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오류가 진정하고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둘째, 교회 및 특히 교황의 그르침 없는 ‘교도권’에 대한,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반역이다. 그러나 가톨릭 신앙의 진리 안에 온 교회를 보전할 임무를 교황에게 맡기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셋째, 세속 정신에 온통 사로잡힌 목자들이 보이는 악한 표양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선전원이 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장 15절)고 하시며 주신 임무를 망각하고 있다.」】에서도 오류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듯이.... 즉 곱비신부님 메시지 485번 ‘마지막 때’ 편【21. 미사 성제는 예수께서 ‘갈바리아’에서 이루신 희생제사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차) 열교(裂敎)의 교리를 받아들인 자들이 미사는 희생 제사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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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다만 거룩한 만찬, 곧 예수께서 최후 만찬 석상에서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거룩한 미사’ 집전이 폐지될 것이다. 이처럼 매일의 제사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적’에 의해 이루어질 흉측한 독성죄이다. 이 일이 약 삼 년 반 동안, 즉 일천이백구십 일 동안 계속될 것이다.】에서 즉 ‘흉측한 독성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듣게 해주시고 또 그 기간을 ‘1,290일 동안’이라고 깨닫게 해주셨듯이(591페이지 참조) 그리고 그 짐승이 ‘두 증인’인 두 예언자를 죽이는 것은 진리에 반해서 중대한 오류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것이 다니엘서와 묵시록의 핵심을 이루는 성서진리 이듯이 즉 앞에서 이미 소개해 드렸듯이「진리의 책」제5권 1093번에서「그들은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중대한 오류로 이끌 것이며」하셨고 곱비신부님 메시지 420번 6.에서「6. 신앙 상실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오류의 만연이다.」하셨듯이 그리고 또 곱비신부님 메시지【(198번 8. (그리고) ‘성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겠다. 특히,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해당 되는) 성서의 마지막 페이지들(요한 묵시록)을 읽어 주리라. 이 안에 이미 모든 것이,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모든 일이 예언되어 있다.), (282번 10. (또한) 가장 내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을 한다. 그러기에 이것은 예수께서 ‘복음’에서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이다.), (299번 4. 나는 너희에게 ‘지혜’를 주어, 너희가 ‘성서’의 비밀을 더 깊이 깨닫도록 이끌고 있다. 너희로 하여금 성서 (말씀을) 샅샅이 이해하고 즐기고 간직하며, 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에서 성서진리를 자세하게 풀이해주고 있듯이....【(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02-604페이지 참조)】
그리고 묵시 19장 11-21절 ‘흰 말을 타신 분’ 편 20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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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하였듯이 즉 묵시 19장 20절의 이 내용은 이제는 성서에만 있는 내용이 아니라「진리의 책」제2권 398번【★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는 불타오르는 지옥으로 내던져질 것이다.★】에서 예수님께서 최근에 주신 메시지 내용임을 또한 깨달아야 할 것이며....(602페이지 참조) 즉 여기서 인터넷 다음 블로그《《《『말라카이의 예언과 마지막 교황【가장 주목할 내용은 112번째, 마지막 교황으로서 (이전의 111명의 교황과는 달리) 적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거짓선지자에 해당하는 자인 것이다.】』,『미래의 교황에 관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예언【이 고난의 시기에 정상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교황이 올라 설 것이다. 교황은 교활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을 오류와 죽음으로 내몰 것이다.】』,『미래의 교황에 대한 성 비오10세 교황의 예언【1909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람들과의 간담회에서 성 비오 10세께서는 미래의 어떤 교황이 로마에서 쫓겨나는 현시를 봤다고 밝혔다.】』,『교황 레오 13세의 기적【(사탄 : “나는 당신의 성교회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주님 : “네가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그리해 보아라.” 사탄 : “그런데 그리 하려면 조금 더 시간과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 :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느냐?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하느냐?” 사탄 : “75년에서 100년 정도의 시간과 나를 도울 자들에게 힘을 전할 수 있게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 : “너에게 필요한 시간과 힘을 주겠다. 가서 해보아라.”)】』》》》의 예언은 교황 제도가 끝난다는 마지막 교황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성삼은혜인 천년왕국의 시대가 열리기 전의 즉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의 마지막 교황이란 뜻을 깨달아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62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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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646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05-606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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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러니까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7절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그 짐승이 올라와서 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의 내용과 묵시 12장 1-18절 ‘여자와 용’ 편에서 여자는 성모님을 상징하고 용은 사탄을 상징하는 즉 성모님을 박해하고 베드로 반석 위가 아니라 바닷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거짓 교회를 세운다는 것으로써....(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18-619페이지 참조)
즉 묵시 13장 1-18절 ‘두 짐승’ 편을《《《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405번 ‘표범같이 생긴 짐승’ 편), (406번 ‘어린양같이 생긴 짐승’ 편【7. 표범같이 생긴 짐승(묵시 13장 2절)은 프리메이슨을 가리킨다. (그런데) 어린양처럼 뿔이 두 개 달린 짐승은 교회 내부에 침투한 프리메이슨, 다시 말해서 교회 프리메이슨을 가리킨다. 이는 특히 ‘교계제도의 구성원들’ 사이에 퍼져 있다. 이 프리메이슨의 교회 침투에 대해서는 파티마에서 이미 예고한 것이니, 그때 나는 ‘사탄’이 교회 고위층까지 파고들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참조》》》즉 바다에서 올라오는 표범같이 생긴 하느님을 모독하는 짐승을 검은 짐승으로 즉 검은 표범으로써 눈에 띠지 않게 몸을 숨기고 도처에 파고드는 프리메이슨으로 해석해 주었듯이 또 어린양처럼 뿔이 두 개 달린 짐승은 교회 내부에 침투한 프리메이슨로 해석해 주었듯이 즉 묵시 19장 11-21절 ‘흰 말을 타신 분’ 편「20절 그런데 그 짐승은 잡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잡이로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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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행하여 짐승의 낙인이 찍힌 자들과 짐승의 우상에게 절을 하는 자들을 현혹시킨 그 거짓 예언자도 함께 잡혔습니다.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졌습니다.」의 내용의 뜻을 잘 깨달아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588-589, 591, 601-608, 612-617, 617-622, 622-630, 630-639, 643-645, 645-646페이지 참조)
《《《그리고 요즈음 계약 궤【인터넷 다음「2023. 9. 3. ‘론와츠 법궤 발견 세부 동영상」참조】도 발견했다고 하고.... 노아 방주【인터넷 다음「노아 방주 발견」참조】도 발견했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도 깨닫지 못하고.... 또 유다 인들은 이사야 7장 10-17절 ‘두 번째 경고: 임마누엘의 표징’ 편【14절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의 말씀도 깨닫지 못하고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계약 궤를 직접 보고 계명을 지키고 살게 되면 하느님께 영광이고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오! 하느님께서 손수 쓰신 십계판을 가서 보고 10계명을 잘 지키고 7덕을 잘 지키고 살게 하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것은 재미도 기쁨도 즐거움도 자유도 행복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10계명을 주신 하느님을 마땅히 흠숭하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10계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10계명을 주셨으니까 지키지 10계명이 없었다면 제가 무슨 재주로 이런 고상하고 거룩한 10계명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사람은 영혼이 있으니까 10계명을 주셨고 10계명을 주셨으니까 짐승과는 다른 차원이 아니겠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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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722-725페이지 참조)】
※ 루카 24장 13-35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편「25절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절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에서 예수님께서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하고 말씀하셨듯이 지금도 예언의 성격은 구약시대나 산약시대나 똑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다음에 교회에서 인준하면 그때 가서 믿겠다는 것은 안전할 수는 있겠으나 예언이 다 이루어진 후에 믿는다는 것은 가치가 없고 예언자가 받을 상급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계약」: 구약성경 총353절 + 신약성경 총38절 = 구, 신약 총391절【계약의 궤 56 + 2 = 58, 하느님의 궤 43 + 0 = 43, 주님의 궤 32 + 0 = 32, 증언 궤 17 + 0 = 17, 속죄판 21 + 1 = 22】참조.(영성시집 ‘145. 하하하.... 계약 궤’ 편 121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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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 고해 성사 제도를 좀 더 짚고 넘어가자면 천사는 심판이 끝나서 불순명한 루치펠 천사는 마귀가 되었듯이 마귀는 사람과는 다르게 뉘우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창세기 3장 1-24절 뱀, 묵시 12장 3절 크고 붉은 용, 9절 그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20장 2절 곧 악마이며 사탄인 그 옛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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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참조)】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함으로 죄를 범할 수 있고 아직 심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죽기 전에 나의 부족함을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가 되는 것이듯이 우리 가톨릭은 교황님으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일주일, 또는 한 달, 1년에 적어도 1-2번은 고해 성사를 보라고 권장하는 교회이듯이 즉 그러니까 흔히 타종교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죄를 고백하고 고해 성사를 보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것은 모든 덕행의 원천이신 스승이시요 의사이시요 구세주이시요 영혼의 정배이신 예수님께서 즉 예수님은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는 것보다 ‘네 죄를 용서받았다.’ 하시기가 더 쉬우신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7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해, 혼인, 신품, 병자) 중의 하나로써....(영성시집 ‘93. 네 배로 갚고 싶을 죄’ 편 84페이지, ‘168.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편 160-162페이지 참조) 즉 마태 5장 40절에서「“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18장 21-22절에서「“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하셨듯이 이것은 인간 본성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신 분이 세우신 고백 성사로써....(534-537페이지 참조)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인간 본성을 초월하는 전능하신 초성적인 근원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헛된 지식적인 사고방식만으로 고해 성사 제도까지 마련하신 주님을 마땅히 찬미해야지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고해 성사 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가 부담스럽다고 십계명을 없앨 수가 없듯이 십계명을 거슬리고 부담스럽다고 하느님과 화해하는 고해 성사를 보는 것을 없애는 것이 거짓이듯이 고해 성사를 보는 것은 참이고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가톨릭교회에서는 당연히 지금까지도 고해 성사 제도가 가능했듯이 앞으로도 당연히 고해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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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변할 수없는 가능한 일이며 고해 성사 제도가 있어도 모고해(冒告解)를 하는 등 진정한 회개의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또 물론 7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해, 혼인, 신품, 병자)의 교리이기 때문에 교리 때마다 당연히 고해 성사 교리도 가르치는데 구약시대에는 속죄 판이 있었고 속죄 제물도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계약 궤도 없어졌고(영성시집 ‘145. 하하하.... 계약 궤’ 편 120-121페이지 참조) 예수님께서 오셔서 고해 성사 제도를 세우셔서 다행이지 양심의 죄를 근본적으로 풀어주는 고해 성사 제도가 아예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무슨 대책이 없는 아찔한 생각이 들지만.... 매일 삼구(三仇)인 육신과 세속과 마귀와 타협하려고 드는 우리가 고해 성사 제도가 아예 없었다면 모른다고 내 마음이 자유롭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은 죄의 기준도 없이 자의적인 기준으로 기준을 삼았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생각이 들지만.... 구약시대보다 더 진정한 회개의 자유를 이 신약시대에 와서 과연 얼마나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영성시집 ‘96. 자유의 바다’ 편 86페이지【바닷가에 앉아있다 문득 / 심호흡에 한숨을 토해냅니다 / 아!--- 자유의 바다는 끝이 없구나 / 형제간의 좋은 일 괴로운 일도 / 나를 자유에로 이끄는 길이였구나 / 음욕의 즐거움은 아예 없는 것 / 거룩함을 받아들여 쫒아버려라 / 그것이 바다를 가리웠나니 / 오대양 육대주를 넓다 않으리! / 오대양 육대주를 넓다 않으리!】참조)
그리고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에도 항상 현재 영원히 초자연적으로 살아 계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신 우리와 피조물인 우리를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로 보니까 즉 창세기의 천지 창조를 믿을 수 있고 창조주와 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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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둘로 보니까 타력적 구원이라는 이론이 성립되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것도(497-501페이지 참조) 또「가르멜의 산길」책에서도 깨우쳐 주셨듯이 예수님을 올바로 믿고 올바로 희망하고 올바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듯이....(영성시집 ‘208.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①”’ 편 343-347페이지 참조) 즉 복음을 지키고 10계명과 완덕인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잘 지켜서 즉 교리대로 살아서 조그마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참된 지혜인 창조주와 합일하는 자유를 중요시하는데 즉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성직자, 수도자들이 완전한 애덕을 추구할 목적으로 서원까지 하며 지키는 덕으로써....【‘성모성심 메시지’에서 ‘천당문 열고 들어가니 9층이 보이고’ 단테의 ‘神曲’에서 연옥, 지옥, 천국도 제10천 하늘까지 여행하듯이.... 메시지 받은이 황옥희 데레사,「성모성심 메시지」책에서도 ‘천당 가는 길’ ‘연옥 가는 영혼의 탄식노래’ ‘지옥 가는 영혼의 탄식노래’를 들려주었듯이....(486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09-512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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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제사」: 구약성경 총110절 + 신약성경 총8절 = 구, 신약 총118절【참 제물 0 + 1 = 1, 희생 제사 2 + 1 = 3, 희생 제물 99 + 6 = 105, 번제물 257 + 4 = 261, 일일 번제물 24 + 0 = 24, 속죄 제물 127 + 6 = 133, 대사제의 속죄 제물 1 + 0 = 1, 파스카 제물 11 + 0 = 11, 화제물 63 + 0 = 63, 곡식 제물 134 + 0 = 134, 친교 제물 90 + 0 = 90《레위기 9장 24절 그때 주님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굳기름을 삼켰다. 온 백성은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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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환성을 올리며 땅에 엎드렸다. 히브리서 10장 1절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절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5절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6절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제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7절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8절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절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절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1절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절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절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절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5절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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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16절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절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시편 40장 1-18절 [지휘자에게. 다윗. 시편] 편 …… 9절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즐겨 이룹니다. 제 가슴속에는 당신의 가르침이 새겨져 있습니다.”》】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48-550페이지 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계시(묵시)」: 구약성경 총7절 + 신약성경 총21절 = 구, 신약 총28절【환시 117 + 20 = 137, 계시의 빛 0 + 1 = 1,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계시 1 + 0 = 1, 호렙 산에서 내린 계시 1 + 0 = 1,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계시 되었으며 1 + 0 = 1, 누구에게 계시를 설명하려는가? 1 + 0 = 1, 선견자들에게 “계시를 보지 마시오.” 하고 1 + 0 = 1, 환시와 계시 1 + 2 = 3, 다니엘에게 말씀이 계시되었다. 1 + 0 = 1,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0 + 1 = 1, 진노와 계시의 날 0 + 1 = 1,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 0 + 1 = 1, 신비의 계시 0 + 1 = 1, 우리에게 계시 0 + 2 = 2, 어떤 이는 계시를 전하고 0 + 1 = 1, 계시가 내리면 0 + 1 = 1,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0 + 1 =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0 + 2 = 2, 그분을 내 안에 계시 0 + 1 = 1, 나는 계시를 받고 0 + 1 = 1,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0 + 1 = 1, 지혜와 계시의 영 0 + 1 = 1,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0 + 1 = 1,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 0 + 1 = 1, 여러분에게 계시해 주실 0 + 1 = 1,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계시를 0 + 1 = 1,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 0 + 1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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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서 1장 6절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계시되었으며 지혜의 놀라운 업적을 누가 알았느냐? /, 이사야 28장 9절 “저자가 누구에게 가르침을 베풀며 누구에게 계시를 설명하려는가? 겨우 젖 뗀 아이들에게나, 고작 어미젖에서 떨어진 것들에게나 하려는가? 30장 8-14절 ‘순종하지 않는 백성’ 편 10절 이자들은 선견자들에게 “계시를 보지 마시오.” 하고 예언자들에게 “우리에게 올바른 것은 예언하지 말고 솔깃한 말이나 하고 환상 같은 것들이나 예언해 주시오. /, 예레 1장 첫 번째 환시와 계시. /, 다니엘 10장 1절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삼년에 벨트사차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다니엘에게 말씀이 계시되었다. 그 말씀은 진실이며 큰 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그 말씀을 깨달았다. 환상 중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 루카 2장 32절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 로마 1장 17절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2장 5절 그대는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진노와 계시의 날에 그대에게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8장 18절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6장 25절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 코린전 2장 10절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4장 6절 이제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신령한 언어로 말한다 한들,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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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침을 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6절 그러니 형제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에 저마다 할 일이 있어서, 어떤 이는 찬양하고 어떤 이는 가르치고 어떤 이는 계시를 전하고 어떤 이는 신령한 언어를 말하고 어떤 이는 해석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30절 그러나 그곳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내리면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 코린후 12장 1절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7절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갈라 1장 12절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16절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2장 2절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3장 23절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 에페 1장 17절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3장 3절 앞에서 간단히 적은 바와 같이,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절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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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 베드로전서 1장 12절 예언자들은 그 일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일들이 하늘에서 파견된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하여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 묵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63-566페이지 참조)】
※ 피정 넷째 날 ‘천주성삼 호칭기도’ 1번(196페이지 참조)
피정 다섯째 날 :「계시(啓示)자의 완전함과 계시(啓示)를
보(받)는 자의 결핍②」
즉 석가모니 부처님을 체험하는 것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은 즉 불자들에게는 부처님께서 나타나실 것이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겠지만 즉 견성(見性)과 계시(啓示)는 같은 말로써 한 번의 견성(見性)과 계시(啓示) 체험이 또는 한 번의 깨달음과부활 체험이 만사형통은 아닌 것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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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이라도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이미 있었으니 절대적인 진리를 파악할 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즉 성서 안에서나 성서 밖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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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스승과 아버지이신 예수님의 앎이 아니라면 세상의 어떠한 누구의 앎이라도 사상에 불과하듯이....(417-424, 429-432, 438-444, 449-454, 455-469, 469-476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반야(지혜)심경에서처럼 지혜(진리)를 크게 깨달은 분이라고 볼 수가 있지만 구원자로 태어난 분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즉 깨달음을 주신 하느님(주님)께서 아무튼 그리스도교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구약 성서도 접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큰 지혜(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으로써 모든 것을 불이(不二)로만 해석하는 것도 그 시대의 표현으로는 대단한 일이였지만 즉 하늘의 모든 참된 진리(지혜)의 이치를 모두 다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듯이 즉 진리통달의 은혜는 교리가 올바른 곳에 내릴 수가 있는 것이듯이 진리통달의 은혜는 교리가 각각 다른 부분적인 교회에 내릴 수가 없는 것이듯이....(443-444, 455-476, 553-554페이지 참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도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한 말이듯이 아무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뜻은 유일하게 크게 깨달은 분이라는 해석은 틀림없지만 전지전능이란 말은 아닌 것이듯이.... 즉 솔로몬도 전도서 7장 23절【나는 지혜를 다 짜내어 이 모든 것을 알아보려고 했다. 나는 스스로 지혜 있는 자이거니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었다.】에서 하느님은 구약 시대부터 당연히 알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이니까【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예수님의 진리(지혜)에 대해서 즉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고 영혼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듯이....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더 이상 깨달을 수 없는 위없는 최상의 깨달음을 말씀하시듯이....《《《인터넷 다음 어학사전【「위없다」: [(명)이] (무엇이) 그 위를 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장 높고 좋다. / 空을 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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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다는 것은 위없는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이다.】참조.》》》즉 그러니까 최상의 깨달음(空)은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의 체험일 것인데 계시(啓示)를 보(받)는 것을 왜 불교에서는 계시(啓示)를 보(받)았다고 하지 않고 깨달음으로 표현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시(啓示)는 열반(완덕)과는 다른 것이듯이 즉 그러니까 불교에서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깨달음은 계시(啓示)인지 열반(완덕)인지 구분할 수가 없듯이 즉 그러니까 열반(완덕)이고 돈오 돈수도 점차로 깨달음(완덕)에 이르든 단박에 깨달음(완덕)에 이르든 완덕의 경지를 표현한 말이듯이 즉 그러니까 반야심경의 불도(佛道)를 이룬다는 말도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도 깨달음(완덕)의 세계 열반(완덕)의 세계로 또는 피안의 세계로 하늘나라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듯이 즉 그러니까 솔로몬이 열왕상 3장 12절「“자, 내가 네 말대로 해주리라. 이제 너는 슬기롭고 명석하게 되었다. 너 같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에서 지혜를 얻었지만 예수님께서 마태 12장 42절「“심판 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도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에서 “그러나 여기에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하셨듯이 즉 이 말씀은 잠언 9장 1-2절「‘지혜가 일곱 기둥을 세워 제 집을 짓고 소를 잡고 술을 따라 손수 잔치를 베푼다.’」의 말씀과 같은 말씀으로써....(신앙수기 ‘82. 지혜의 일곱기둥’ 편 72-73페이지, ‘88. 성체 성사는 바로 구약의 핵심과 흡사합니다.’ 편 82-83페이지 참조) 즉 지금의 예수님께서 지혜롭게 교회를 세우시고 제자들도 교리대로 삶을 살게 하시고 십자가의 희생제사와 부활로 즉 오늘날의 미사성제로 지혜롭게 교회를 완성시키셨듯이 즉 예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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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깨달음을 얻어도 지혜를 얻어도 믿음이든 희망이든 사랑이든 다 교리 안에 있는 것이듯이 즉 석가모니께서 부처님(깨달음)을 얻는 것이듯이 즉 우리가 깨달음(예수님)을 믿는 것이듯이 즉 본래 완성되어 있는 교리를 내 안에서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과정이듯이.... 즉 그러니까 불교도 석가모니 부처님 때부터 계율과 고통을 소멸하는 참된 진리인 8가지 덕목인 八正道 등(영성시집 ‘183. 가톨릭교회의 구원관과 불교의 구원관’ 편 189-195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 교리적인 가르침의 종교였고 나아가 반야(지혜)심경의 깨달음이 계승되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볼 수 있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83-485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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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러니까 김정빈 구도소설 대행스님의 대담집「道」책(신앙수기 ‘103. 道를 통하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편 130-132페이지【「道」책은 약 32년 전에 읽었음】참조)의 주인공인 대행스님《《《인터넷 다음 카페글「한마음 선원 대행스님」‘1. 유년시절’ 편【소녀 대행이 밤조차 아늑한 위안이 된 것은 바로 내면의 소리 덕분이었다. 버림 받은 고독한 아홉 살 소녀의 내면에서 ★참 자기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소녀는 그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한한 애정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
견딜 수 없는 고독감에 그녀는 소나무 등걸을 쓸어안고 나직이 뇌었다. 뼈져린 고독의 한 영혼에게 위로의 목소리로 다가오는 그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소녀는 그저 ‘아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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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렀다. 육신의 아빠로부터 버림받은 한 소녀의 혼은 이제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불생불멸하며 영원한 아빠★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2. 깨달음’ 편【1945. 8. 15 해방이 되기 전, 그러니까 그녀의 나이 열여덟 살이 되던 때였다. 항상 내면의 ‘아빠’의 인도를 받던 그녀에게 벼락같은 의식의 각성이 열려왔다. 그전에도 항상 감응은 왔지만 이처럼 시원한 열림은 아니었다.
★어느 날 ‘아빠’가 물었다.★
“네가 일할 때는 내가 너와 하나가 되고, 일을 안 할 때는 네가 나와 하나가 되니,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리고 또 이렇게 물었다.
“자(子)가 부(父) 앞으로 가면 부와 하나가 되고, 부가 자 앞으로 오면 자와 하나가 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대행이 대답했다.
“마음에는 체가 없으니, 마음이라는 것은 이름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 부와 자는 둘이 아닙니다.”
그날은 퍽 추운 한 겨울이었다. ★다시 ‘아빠’가 물었다.★
“여름이 옳은 거냐? 겨울이 옳은 거냐? 겨울이 좋으냐? 여름이 좋으냐?”
그러자 대행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여름과 겨울이, 사계절이 어떻게 둘이 되겠습니까? 사람이 춥다 덥다 하는 거지 진리라는 것에 춥다 덥다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때였다. 그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천지가 한데 합쳐지는 거 같았다. 산하대지가 일제히 하나로 모이고 천지가 그냥 하나로 뭉쳐져 불덩어리가 되더니 서서히 작아지면서 ‘펑!’하고 불구슬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깨달음! 그러나 당시에 그녀는 그것이 깨달음인줄도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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랐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왜냐하면 천天은 지地를 다스리면서 산하대지의 일체 만물을 다 기르는데, 우리 인간들은 제 각각 천차만별로 마음에 따라서 저렇게 죽이고 살리고 싸우고 하니 참 너무도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인터넷 다음 블로그「대행스님의 삶과 깨달음 3」 : 한암 스님은 형식적으로 계를 주기보다는 곧바로 마음의 본분을 묻는 선문답을 던져왔다.
무려 4년 만에 다시금 한암 스님에 의해 정성스러운 삭발이 끝나고 나자 큰스님의 비수처럼 날카로운 질문이 떨어졌다.
“지금 누가 계를 받았느냐?”
“스님께서 계 주신 사이가 없고, 제가 계 받은 사이가 없습니다. 다만 한 마리 학이 청산에 훨훨 날 뿐입니다.”
★“네가 죽어야 너를 볼 것이다.”★
“죽어야 할 나는 어디 있으며 죽여야 할 나는 어디 있습니까?”
“네 마음이 어디 있느냐?”
“목마르실 텐데 맑은 물 한잔 드십시오.”
“내가 지남철(자석)이요, 네가 못이라면 어떻게 되겠느냐?”
“못도 지남철이 됩니다.”
그에 이르러서 한암 스님께서는 감탄하시고 말았다.
“네가 정녕 너로구나. 가거라. 네 법명은 청각淸覺이니라.”
노행자는 큰스님께 정성스러운 삼배를 올렸다.
아마도 한암 스님께서는 자신의 현생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셨던 것 같았다.
그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이 아니던가.
강토는 갈갈이 찢겨졌고 모든 사람들의 삶은 뿌리를 잃고 이리저리 떠서 휩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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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한암 스님께서는 결코 절을 떠나지 않다가 1951년 3월 단정히 앉으신 채로 태연하게 입적하셨다.)】, ‘3. 부산생활’ 편【마침내 해방이 되었다.… 이제 그녀의 나이는 열 아홉이었다.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하염없이 걸었다. 그녀의 발길이 닿은 곳은 멀리 부산이었다.
부산까지의 여정은 그야말로 고초의 연속이었다. 남못지 않은 일솜씨를 타고났던 그녀는 당시 미군이 주둔해 있던 근처에서 군복을 수선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대행에게 최초의 물질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워낙 근면이 몸에 배인 데다가 친절했기 때문에 군복 수선의 일감은 쌓이고 쌓였다. 이듬 해 봄이 되자 그녀는 경제적인 면에서 제법 여유를 가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해가 바뀌고 이듬해 봄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자리에 앉자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낮이 조금 지나서 네 가게로 어떤 손님이 찾아 올게다. 세상에서 가장 측은한 사람이 찾아올 거야.
네가 아니면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고통스러워해줄 사람이 없어. 모든 사람들이 침을 뱉고 눈살을 찌푸리는 그 가여운 사람에게 네가 인정을 베풀 수 있겠니? 그리고 여자인 네가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겠어?”
대행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빠’가 말하는 그 측은한 사람이 문둥병자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행은 속삭였다.
“전 두려워 하지 않아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오늘 오후다.”……
“저, 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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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세요. 옷이 아주 험하게 됐군요.”
“사실은 그게.... 제 옷을 좀 누벼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좀 죄송해서.... 돈도 없어요....”
“거기 좀 앉으시겠어요? 제가 갈아 입을 옷을 한 벌 드릴테니까요.”
대행은 우선 집히는 대로 남자 옷 한 벌을 집어 사내에게 준 뒤 사내의 갈갈이 찢긴 옷에 천조각을 대어 옷을 누비기 시작했다. 한 시간 쯤 걸렸을 것이다.… 다만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무심코 안을 들여다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도망쳐 버렸다.……
‘병.... 병.... 병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아빠!”
“대답해 주세요. 도대체 병이란 것은 무엇인가요? 왜 우리는 이처럼 고통스럽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요?”
“아가야....”【【【※ 12번이나 있으나 줄였음 (인터넷 다음 마리아의 구원방주 ‘사랑의 메시지’「2017. 10. 22. 성모님 : “사랑하는 작은 영혼, 내 아가야!”」,「2021. 6. 23. 예수님 : “사랑하는 내 아기야,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네가 그리도 사랑하고 좋아하는 예수다. 나와 내 어머니의 성심의 사도이자 성체의 사도인 내 사랑하는 작은 영혼아!”」,「2023. 4. 7. 예수님 : “5대 영성을 실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는 내 작은 아기야! 고맙구나.”」참조)】】】
그 목소리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속삭임으로 들려왔다.
“아가야, 나는 네게 질문을 할 뿐이다. 대답은 네가 찾아라. 나는 네게 대답해 줄 수가 없어.”
“아가야, 아는 게 문제가 아니란다. 할 수 있는 게 문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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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일은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겠지만, 하려면 자기가 직접 겪는 수밖에 더 있겠니? 넌 네가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해.”
“그럼 저 문둥병자는 어떻게 하지요? 아빤 제가 의사가 되기를 원하시나요?”
“아니란다.”
“그럼 아빤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 건가요?”
“육신의 병의 뿌리는 존재의 병이란다. 넌 그 뿌리를 캐내야 해. 그렇게 되면 넌 영육을 모두 치료하는 의사가 될 수 있지. 넌 수술기구가 없이도 수술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란다.”
“제가요? 그건 도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옛 성인들은 그런 힘을 가지셨다는데요?”
“누구든 가질 수 있지.”
“그렇지만 전 지금 군복 수선을 하고 있는 일개 아녀자일 뿐인 걸요.”
그러나 그에 대해서 내면의 목소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그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모든 존재의 본질적 고통을 또 다시 절감한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고통을 극복하는 길을 따라서 걸어갈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처럼 아홉 살 때부터 내면에서 ★참 자기의 목소리★라고 하고 ★불생불멸하는 영원한 아빠★라고 하는 그 내면의 목소리의 인도를 계속 받듯이 즉 대행스님처럼 말하자면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참 자기의 목소리★와 계속 주고받고 대화를 하고 그 내면의 목소리의 인도를 계속 받듯이(430-432, 437-440, 465-466페이지 참조) 또 인터넷 다음 블로그「한마음요전 (대행스님 행장기, 법어집) 수혜(修慧)편 - 3. 깨달음의 증장 - 이젠 죽어서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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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에서 보면【스님께서는 다시금 아빠와 마주 서셨다. 전쟁의 참화를 체험하면서 처절하게 맞닥뜨려야 했던 삶의 의미를 더욱 투철히 알고자 하셨다. 스님께서는 그 동안 온갖 고통과 시련의 위안처가 되어 주었던 아빠를 다시 찾으며 분명한 대답을 듣고자 하셨다.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아빠는 왜 만날 수 없습니까?” 스님께서는 식음을 전폐하며 정진하셨다. 밤샘은 몇 날 며칠이고 또다시 계속되었다. 그러나 ★번번이 “네가 죽어야 나를 보리라.”는 응답이 있을 뿐이었다.★ 스님께서는 점점 “죽어야 나를 본다”는 의문을 풀지 않고서는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스님께서 회고하셨다. “그때는 정말로 이 육신이 죽어서라도 내가 오랫동안 아빠라고 불러 온 나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참한 전쟁을 목격하면서 산다는 게 도무지 귀찮은 일이라 여겨지기도 했지만 아빠를 만날 수 있다면 차라리 육신을 포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죽기로 작정하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곤 했다. 새벽 어스름에 출발하는 화물차 바퀴 밑에 드러누워 차 떠나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고 담배를 물에 풀어 벌겋게 우러난 물 한 사발에다 키니네 스무 알을 타서 마신 일도 있었다.”】즉 깨달은 후에도 왜 교리적인 부분을 착각하고 자살까지 하려고 하였던 것인지.... 즉 그러니까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그런 眞空妙有한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의 체험일 것인데 왜 내면의 아빠는 “네가” “나를” 하고 구분하시는데 대행스님은 “아빠”와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지.... 즉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에서도「★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셨다.★」고 하였듯이.... (영성시집 ‘214.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피앗」과「우리 (성삼위)」②”’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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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페이지 참조) 즉 루이사 피카레타나 우리 황데레사 어머님처럼(473-474페이지 참조) 즉 성서에서 보면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그런 불생불멸하는 전능한 참 자기의 목소리인 말씀이나 모습까지도 알아듣고 볼 줄도 알아야 할 것인데.... 즉 그러니까 출애 33장 18-23절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편《《《【18절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20절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22절 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 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영광」: 구약성경 총366절 + 신약성경 총170절 = 구, 신약 총536절【주님의 영광 39 + 3 = 42, 내 영광 8 + 1 = 9, 주님께 영광 7 + 0 = 7, 나의 영광 13 + 1 = 14, 당신의 영광 16 + 4 = 20, 당신 영광 10 + 0 = 10, 그분의 영광 17 + 2 = 19, 하느님의 영광 10 + 18 = 28, 그 이름의 영광 4 + 0 = 4, 당신 이름에 영광 3 + 0 = 3】참조)★】》》》에서 말씀하셨듯이 또 요한 11장 25절에서「“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하신 예수님께서 14장 1-14절 ‘길과 진리와 생명’ 편【6절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장 30절 참조) 하고 또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장 28절 참조) 하고 말씀하셨듯이 즉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주인 생명의 주인이시듯이....(441, 479, 481-482페이지 참조) 즉 대행스님도 “내면의 아빠”를 그리 체험하면서도 그 “내면의 아빠”가 바로《《《성삼 가족수도회 기도서 9페이지 삼종기도 후렴「◇ 신덕송(아침)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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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 망덕송(낮)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 애덕송(저녁)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참조》》》진리, 자비, 사랑, 지혜의 근원이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듯이....(집회서 1장 1-10절 참조) 즉 불교에서「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하는 것도 깨달음을 표현한 말이듯이 즉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의 관자재(觀自在)란 볼 관자로써 영안이든 육안이든 즉 출애 3장 14절「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셨듯이 즉 스스로 계신 하느님의 빛을 본다는 뜻으로써....(479-480페이지 참조) 즉 자비란 거룩이란 말을 불교에서 먼저 써온 것이 아니라 성서에서 보면 창세기에서부터 묵시록까지 하느님께서 자비란 거룩이란 말을 무수히 말씀하셨듯이.... 즉 거룩함의 실체(實體)이신 하느님께서 묵시 4장 1-11절 ‘하늘 나라의 예배’ 편【「1절 “이리로 올라오너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겠다.” 8절 그 네 생물은 각각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고, 그 몸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시로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0절 스물네 원로는 옥좌에 앉아 계신 그분 앞에 엎드려 영원 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에게 경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에서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일들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즉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떠나서는 거룩함의 실체(實體)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듯이 즉 우리 수도회 예언자 황데레사 어머님께서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천주성삼의 계시(啓示)를 보았다고 해도.... 성인의 기준은 그런 계시(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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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를 보고 한번 깨닫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번 체험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교리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듯이 즉 그러니까 피조물은 역시 피조물이고 삼위일체 하느님은 온전히 계시(啓示)된 창조주 하느님이시듯이....(420, 439-444, 449-455, 473-474, 539-544페이지 참조) 즉 마태 23장 1-36절 ‘위선자에 대한 책망’ 편「8절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9절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에서 스승과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말씀하셨듯이 그런데 ★청봉스님처럼 대행스님도 법문을 들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를 믿지 말고 법을 믿어라. 고 하셨는데 “왜 종이 되려고 하느냐? 네가 주인이 되어야지!” 하고 또 예수님이 “나를 믿어라!” 하는 것은 실수한 것으로 본다고 하면서 각자가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하듯이★ 즉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를 믿어라!” 할 수 없는 위치이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나를 믿어라!” 할 수 있는 전능한 위치에 계시면서 계속 믿도록 가르치셨듯이....(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구약성경 총0절 + 신약성경 총7절 = 구, 신약 총7절【나를 믿느냐? 0 + 1 = 1, 나를 믿어라 0 + 1 = 1】참조) 즉 그러니까 대행스님은 내면에서 ★참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 불생불멸하는 영원한 아빠★라고 하면서도 “나를 믿어라!” 하는 분이 삼위일체 예수님인줄 깨닫지도 못하듯이....【(영성시집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0페이지 참조)】즉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전능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10계명을 주셔도 또 사무엘상 15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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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거역하고 그분께 대드는 것은 우상을 위하는 것만큼이나 죄가 되오.」하였듯이 즉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진리를 가르치기 전에는 진리를 잘 몰랐듯이....(417-424, 439-447, 450, 455-472, 479, 483-485, 489-490페이지 참조) 즉 성서에서는 나의 종 아브라함, 나의 종 야곱, 나의 종 모세, 나의 종 욥, 나의 종 이사야, 나의 종 다윗, 나의 종 예언자들, 성모님도 루가 1장 38절「“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셨는데....(488-489, 573-57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자연이 초자연과 피조물이 조물주와 하나라고만 말한다면 이것은 모세가 계시(啓示)를 보고 도(道)를 배웠어도....《《《(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당신 길(道)」: 구약성경 총3절 + 신약성경 총0절 = 구, 신약 총3절【당신의 길(道) 21 + 0 = 21, 내 길(道) 17 + 2 = 19, 나의 길(道) 8 + 0 = 8,《시편 95장 10절「사십 년 동안 그 세대에 진저리가 나서 나는 말하였노라.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다. 그들은 내 길(道)을 깨닫지 못하였다.’」, 103장 7절「당신의 길(道)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리셨다.」, 히브리서 3장 10절「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道)을 깨닫지 못하였다.’」참조)》(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34페이지 참조)】》》》하느님의 계시(啓示)에 도(道)에 한 부분을 깨달은 것일 수밖에 없고 하느님께 충실한 종 일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아무리 계시(啓示)를 보고 도(道)를 깨달았다고 해도 자연이 초자연과 피조물이 조물주와 하나라고만 말한다면 이것은 계시(啓示)자와 계시(啓示)를 보(받)는 자의 차이로 인한 결핍된 편협한 도(道)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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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수기 ‘101. 선생님(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편 117-127페이지, 영성시집 ‘198.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불이(不二)」①”’ 편 246-261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페이지 참조)】즉 그러니까 이제는 모세성인처럼 도(道)를 크게 깨닫든 대행스님처럼 도(道)를 작게 깨닫든 모세성인에게 도(道)를 가르치신 하느님이 아니라면 대행스님에게 도(道)를 가르치신 내면의 “아빠!”가 아니라면 자기가 뭔데 하느님의 종이 아니고 내면의 “아빠!”의 종이 아니고 주인이 된다는 말이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이제는 수도승이든 수도자이든 도(道)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아빠!”라고 하는 분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이시라는 것을 이제는 확실하게 알아듣고 깨닫고 풀이할 수가 있는 단계가 왔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나는 그전에 김정빈 구도소설 대행스님의「道」책을 읽고 종교통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안양 한마음선원에 가서 그런 움직임이 있는가를 살펴보기도 하였지만 그런 움직임은 발견하지를 못했다는 기억이 있는데.... 이제야 깨달아지는 것은 다른 스님들은 도(道)를 깨달아도 어느 순간 깨닫고 오도송을 읊은 것만 있으니 비교할 수가 없지만.... 대행스님은 내면의 “아빠!”의 소리를 계속 듣고 도(道)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니 모세성인과 대행스님은 비교해 볼 수가 있다는 것과 또 김강철(바오로) 신앙수기에서 종교통일이 이루어진다는 반야심경의 풀이를 믿고 어느 정도 풀이는 해왔지만.... 이제는 막연히 종교통일이 오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모세성인과 대행스님의 도(道)를 이런 논리로까지 비교하고 설파하는 방식으로 종교통일에 대한 기초를 놓으심으로서 종교통일에 대한 화두가 이렇게 풀리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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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 이제야 깨달아집니다.【(신앙수기 ‘34. 神철학이란 책이 있을까?’ 편 21-22페이지, ‘35. 스님들이 道 닦는 꿈(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꿈)’ 편 22페이지, ‘101. 선생님(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편 117-127페이지, ‘103. 道를 통하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편 130-132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요한 3장 11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에서도 니코데모와 이야기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증언도 믿지 않는다면 누구의 증언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니체의 사신론(死神論)’에서 마태 5장 44절을 비판한 것처럼 예수님을 신(神)이 아니라 인간으로만 본다면 비판 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가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만큼 이 얼마나 웃기는 망상의 비판인지 이제는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68. 니체의 사신론(死神論)’ 편 60-62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89-501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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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도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올바로 믿고 올바로 희망하고 올바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듯이 믿음이든 희망이든 사랑이든 다 교리 안에 있는 것이듯이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고 다 교리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듯이
《《《오늘 아침에 성무일도 연중 제27주일 아침기도 즈가리야 노래, 후렴「다해 : 주께서 말씀하셨도다. “너희에게 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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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겨져라 하여도 너희에게 순종하리라.”」을 읽으면서 이 성서구절은 어렸을 때부터 내 기억 속에 내가 믿음이 약할 뿐이지 믿음만 있으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이루어주실 수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믿게 되어 내 기억 속에 가장 먼저 기억에 남게 된 성서구절이라는 생각이 전에도 종종 더러 들었지만 오늘은 전례에서 직접 이렇게 접하게 되니 또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매일미사 복음 말씀 루카 17장 5-6절 ‘믿음의 힘’ 편「5절 그 때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절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에서도 거의 같은 내용이여서 새 성경과 성서를 대조해 보았더니 즉 새 성경에서는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라고 하셨고 성서에서는 ‘이 뽕나무더러’ 라고 하신 내용이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서를 이곳저곳 더 찾아보고 마르 11장 20-25절 ‘믿음의 힘’ 편「20절 이른 아침, 예수의 일행은 그 무화과나무 곁을 지나다가 그 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절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을 믿어라. 23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24절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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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것이다. 25절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을 읽으면서 내용이 비슷하지만 루가 17장 5-6절 ‘믿음의 힘’ 편은 ‘예루살렘 입성’ 편 전의 내용이며 내용도 ‘이 돌무화과나무더러’이든 ‘이 뽕나무더러’이든「‘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는 내용이며 마르 11장 20-25절 ‘믿음의 힘’ 편은 ‘예루살렘 입성’ 편 후의 내용이며 내용도 ‘그 무화과나무’이며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는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으며 그러나 참으로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신다는 같은 내용이라는 믿음의 힘을 더욱 깨닫게 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문자 그대로 뽕나무이던 돌무화과나무이던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지게도 하실 수 있으시지만 또 산이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지게도 하실 수 있으시지만 그런 기적은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으셨듯이 또 그런 기적을 청하는 사람도 아직 없었듯이 즉 문자 그대로 쓸데없이 하시는 그런 기적이 아니라 즉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하느님께서는 믿고 구하는 사람에게는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영성시집 ‘156. 겸손의 노래⑥’ 편 146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영성시집을 마무리하면서 아무 지식도 없고 책 쓸 능력도 없는 나에게서 그러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이 성서구절 루가 17장 5-6절 ‘믿음의 힘’ 편「5절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니까 6절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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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처럼 마르 11장 20-25절 ‘믿음의 힘’ 편「24절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처럼 즉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자신이 믿는 믿음은 또 다른 것이듯이 믿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마태 17장 20절 참조)
그리고 고린전 13장 1-13절 ‘사랑’ 편「2절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3절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하였듯이 이것은 내 기준대로 하느님의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으로 진리를 믿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성무일도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요한의 묵시록에 의한 독서 22장 10-21절 ‘오소서, 주 예수여!’ 편을 ‘우리 희망의 달성’이라고 성서에는 없는 제목을 성무일도에서는 부쳐 놓았듯이 우리 희망의 달성도 하느님께서 계획하고 이루어주시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더욱 깊게 깨달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신앙수기 ‘75.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다는 말의 뜻이 풀림’ 편 54-58페이지 참조.》》》【(영성시집 ‘196. 믿음의 힘을 깨달음(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편 241-243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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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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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 無, 空, 해탈, 열반, 깨달음
이러한 말이 무수히 많지만
이러한 말은 한마디로 통틀어서
죄를 짓지 않는 경지라는 생각입니다
번뇌, 업(業), 죄를 짓지 않는
계시종교의 완전함에 비한다면
자연종교의 불완전함이 있기는 하지만
인도는 힌두교나 불교나 윤회를 믿으니까
불교는 힌두교 문화권에서 발생한 종교지만
‘그리스도의 시’ 책 제4권 106번 155페이지에서
예수님께서 “윤회는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의 시’ 책 제7권 221번 645페이지에서
피타고라스의 학설은 오류라고 말씀하셨듯이
또 영혼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말씀해주셨듯이
인간의 존엄성이 동물로 윤회하면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도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 외에는
영혼들이라고 말하지만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윤회 없는 空사상도 역시 사상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空사상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 제4권 ‘106. 가나의 집에서’ 편 155페이지【“오! 유다야! 유다야! 너는 죄인들과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 엄격하겠구나! 사람들도 그들이 한 생명과 또 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그 생명을 둘 다 서슴지 않고 위태롭게 한다.”
“우리가 두 생명을 가졌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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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다시피 육체의 생명과 영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아! 저는 선생님이 윤회(輪廻)를 암시하시는 줄 생각했습니다.”
“윤회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생명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 두 가지 생명을 모두 위태롭게 한다. 만일 네가 하느님이라면, 본능 외에 이성을 타고난 사람들을 어떻게 심판하겠느냐?”】, ‘154. 게라사에서 출발’ 편 602-603페이지【“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많은 이교도들이 믿는 영혼이 다른 육체에 환생한다는 이론을 확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했더니,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딴 뜻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 이제는 그것도 설명해 주십시오.”
“똑똑히 들어라. 너는 정신이 진리를 자발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로 그것이 우리가 여러 일생을 산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네가 사람이 어떻게 창조되었고, 어떻게 죄를 지었고, 어떻게 벌을 받았는지를 알 만큼 넉넉히 배웠다. 동물적인 사람 안에 어떻게 유일한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서 합해졌는지 설명해 주었다. 영혼은 매번 창조되고 절대로 계속적인 화신(化身)을 위하여 이용되지 않는다. 이 확실성이 영혼들의 기억에 대해서 네가 단언한 것을 무효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에 대하여도 그래야 할 것이다. 동물은 한번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다. 사람은 비록 한번밖에 나지 않지만 기억을 할 수 있다. 그 안에 있는 가장 훌륭한 것인 영혼으로 기억한다. 영혼은 어디서 오느냐? 사람의 영혼은 어느 영혼이나 말이다. 하느님에게서 온다. 하느님은 누구시냐? 지극히 지적이고, 지극히 능하신 완전한 영이시다. 영혼이라는 이 기묘한 것, 그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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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父性)의 명백한 표로 사람에게 당신의 모습을 닮게 하려고 창조하신 이것은 그것을 창조하신 분 자신의 특성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그것을 창조하신 아버지처럼 지능이 있고, 신령하고, 자유롭고, 불멸의 것이다. 영혼은 하느님의 생각에서 완전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그것이 창조되는 순간에는 천분의 일순간 동안 첫사람의 영혼과 같다. 즉 공으로 받은 선물로 인하여 진리를 이해하는 완전한 존재이다. 천분의 일 그리고는 형성이 되고 나서는 원죄로 손상을 입는다. 네게 이것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시는 영혼을 가지고 계신데, 그 창조되는 존재는 나면서 지워지지 않는 표로 상처를 입는다고 말이다. 내 말 알아듣겠느냐?”
“예, 영혼이 생각되는 동안은 완전합니다. 창조된 이 생각이 천분의 일순간. 그리고 생각이 사실로 나타나면, 그 사실은 죄로 인해 생긴 법칙을 따르게 됩니다.”
“잘 대답했다. 그러므로 영혼은 사람의 육체에 결합할 때에 그의 신령한 존재 안에 그 비밀의 싹인 창조주신 존재, 즉 진리의 기억을 가지고 온다. 아기가 태어난다. 아기는 착하고 훌륭할 수도 있고 불성실할 수도 있다. 아기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그의 ‘기억’에 천사들의 임무는 빛을 비추어 주고, 덫을 놓고 다니는 자는 어두움을 던진다. 사람이 빛을 추구하고, 따라서 점점 더 큰 덕행들을 추구하여 영혼을 자기 전체 존재의 주인이 되게 하는 데 따라서 영혼 안에는 마치 그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가로질러 있는 장벽을 점점 얇게 만드는 것처럼 기억하는 기능이 발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나라의 덕행있는 사람들이 진리를 느끼는 것이다. 반대되는 주장이나 치명적인 무지로 인하여 흐려져 있기 때문에 완전히 느끼지는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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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그들이 속해 있는 민족들에게 윤리적 지식의 글들을 공급할 만큼은 넉넉히 깨닫는다. 알아들었느냐?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느냐?”
“예, 결론을 내리자면, 영웅적으로 실천한 덕행을 가진 종교는 영혼에 참 종교와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소질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군요.”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가서 쉬고 축복을 받아라. 어머니도, 또 너희 자매들과 여자제자들도. 하느님의 평화가 너희들의 휴식 위에 내리기를.”】, 제7권 ‘221. 자캐오의 집에서 회개한 사람들과 같이’ 편 642-646페이지【“도대체 무엇을 알고자 하오?”
“저희들은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적어도 그것을 알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옛날 작가들이…. 그러나 저희들은 고대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짐승같은 인간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희는 그걸 모릅니다. 영혼은 무었입니까? 혹 이성인가요?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왠고하니, 그렇다면 저희는 영혼이 없어야만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희들은 영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영혼이라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면, 무형의 것이라고 하고 불사불멸의 것이라고 하는 영혼은 무엇입니까? 생각은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과 더불어 끝나니까 불멸의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죽은 다음에는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거 보시오. 영혼은 생각이 아니오. 영혼은 영이고, 생명의 무형의 근원이고, 어떤 사람에게도 생명을 주고 사람이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만져서 느껴지지 않는, 그러나 참된 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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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것은 하도 숭고한 것이어서 아무리 강력한 생각도 그것도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오. 생각은 끝이 있소. 그러나 영혼은 비록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소. 더없이 행복하게 되거나 지옥에 떨어지거나 계속해서 존재하오. 그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거나 더럽게 했다가 다시 깨끗하게 해서,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그의 인성에 생명을 주라고 주셨던 대로 그분께 돌려드릴 줄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하오.”
“그렇지만 영혼이 우리들 안에 있습니까?, 또는 하느님의 눈처럼 우리들 위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있소.”
“그러면 죽을 때까지 갇혀 있군요? 노예로?”
“아니오. 여왕으로 있소. 영원하신 분의 생각에는 영혼, 즉 영은 사람 안에, 사람이라고 불리는 창조된 동물 안에 군림하는 것이오. 영혼은 모든 왕중의 왕이시고, 모든 아버지 중의 아버지이신 분에게서 왔고, 그분의 입김과 그분의 모습, 그분의 선물과 그분의 권리이며,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가지고, 위대한 영원한 나라의 왕을 만들고,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가지고 이 세상의 생명이 끝난 다음 신(神)을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고,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가지고 지극히 높으시고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의 집에서 ‘사는 사람’을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으며, ★영혼은 여왕으로, 여왕의 권위와 운명을 가지고 창조되었소.
그의 하녀들은 사람의 모든 덕행과 기능이고, 그의 대신은 사람의 착한 뜻이고, 하인은 생각이고, 하녀와 생도는 사람의 생각이오.★ 생각은 영으로 능력과 진리를 얻고, 정의와 지혜를 얻고, 훌륭한 완전에 올라갈 수가 있소. 영의 빛이 없는 생각에는 언제나 결함과 어두움이 있을 것이고, 절대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할 거요. 과연 영혼의 왕권을 잃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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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헤어진 사람에게는 그 진리들이 신비들보다도 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오. 세상을 떠나서 높은 곳으로 비약하면서, 완전한 지능, 완전한 능력, 한마디로 말해서 천주성을 만나러 올라가고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지렛대의 받침점이 없으면 사람의 생각은 눈이 어둡고 얼이 빠질거요. 데메테스, 이것은 당신에게 하는 말이오. 그것은 당신이 항상 환전상만은 아니었으므로 알아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오.”
“선생님은 정말 예언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환전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내리막길의 마지막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만일 영혼이 여왕이라면, 왜 군림하지 못하고, 사람의 나쁜 생각과 나쁜 육체를 굴복시키지 않습니까?”
“굴복시키는 것은 자유도 공로도 아닐 것이고, 압제일 거요.”
“그러나 생각과 육체는 자주 영혼을 괴롭힙니다. 이건 저와 저희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그래서 영혼을 노예를 만드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영혼이 우리 안에 노예로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도 고상한 ―선생님은 그것을 ‘하느님의 입김과 그분의 모습’이라고 정의하셨지요.― 것이 하등의 것에 의해서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 하느님께서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생각은 영혼이 노예상태를 겪지 말라는 것이었소. 그러나 당신은 하느님과 사람의 원수를 잊고 있소? 하등(下等)의 영들은 당신들도 알고 있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영들은 모두가 잔인한 욕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기억하면서 제가 이런 인간이 돼서 늙음의 문턱에까지 이른 것은 오직 지옥의 영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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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는 그 때의 길잃은 어린 아이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그 때처럼 깨끗하게 될 만큼 어린 아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혹 뒤로 돌아 걸어가는 것이 허용됩니까?”
“뒤로 돌아갈 필요는 없소. 당신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요. 흘러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진 않소. 흘러간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소. 그러나 그것은 필요하지 않소.
당신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설을 아는 곳에서 왔소. 그것은 틀린 학설이오. 영혼들은 세상에 머무르는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절대로 이 세상의 육체로는 돌아오지 않소. 어떤 동물 안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은, 그와 같이 초자연적인 것이 짐승 안에서 사는 것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 안으로도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만일 그 영혼이 여러 육체 안에 들어 있을 수 있었다면, 최후의 심판에서 육체가 영혼과 다시 결합한 다음에 어떻게 갚음을 받겠느냐 말이오. 그 학설을 믿는 사람들은 계속적인 생(生)을 누리며 계속해서 깨끗해지는 동안에 최후의 재생*(여기서「재생」(再生)이라고 번역한 것은 réincarnation, 즉 영혼이 다른 육체에 들어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임.)에서야 영혼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완전에 이르기 때문에 그 마지막 육체가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오. 이것은 오류이고 모욕이오! 이것은 하느님께서 제한된 숫자의 영혼밖에 창조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이고,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오. 또 사람을 하도 타락해서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얻기가 힘들다고 판단함으로 오류이고 사람에 대한 모욕이오. 사람은 곧 상을 받지 못하고, 백의 아흔 아홉은 죽은 다음에 깨끗하게 함을 거쳐야 할 거요. 그러나 깨끗하게 하는 것은 기쁨을 준비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벌써 구원을 받은 사람이오.★ 그리고 구원을 받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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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에는 마지막 날 이후에 그의 육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릴 거요. 사람은 그의 영혼을 위하여 육체를 하나밖에 가질 수 없고, 이 세상에서 한 생명밖에 가질 수가 없으며, 그를 낳아준 사람들이 만들어 준 육체와 그 육체에 생명을 주라고 창조주께서 창조해 주신 영혼을 가지고 상급을 받으러 갈 것이오.
시간은 뒤로 거슬러 걸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것과 같이 재생*이라는 것은 허락되지 않소. 그러나 자유로운 의지의 충동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허락되오. 그렇소. 하느님께서는 이 의지에 강복하시고 그것을 도와 주시오. 당신들은 모두가 이 의지를 가졌었소. 그러니까 죄인이고 악습에 젖고, 더럽혀지고, 사악하고, 도둑질 하고, 타락하고, 타락시키고, 살인자이고, 독성자(凟聖者)이고, 간통자인 사람이 뉘우침의 목욕을 하고 나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참조.
※ 창세기 1장 1-31절 ‘천지창조’ 편【26절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절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28절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에서처럼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다는 뜻이며 영혼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영혼에는 이성과 기억과 의지가 딸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그러니까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존엄하다는 것과 하느님을 닮은 그 존엄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 윤회해서 동물로 다시 태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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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것은 오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107 (문) 부활한 육신들의 모양은 어떠할 것이뇨?
(답)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다시 죽지 않는 것은 마찬가
지이나 간선자(諫選者)의 육신은 그리스도의 육신
과 같이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어 아름다울 것이
요 악인들의 육신은 추악하고 흉할 것이니라.
108 (문) 영화로이 부활한 육신의 사기지은 무엇이뇨?
(답) 사기지은(四奇之恩)은 상하지 못함과, 빛남과, 빠름
과, 사무침 이니라.」참조.
※ 인터넷 다음 어학사전「존엄(尊嚴)」:
(1) (기본의미)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함부로 범할 수 없이 높고 엄숙함.
(2) 예전에, 임금의 지위를 이르던 말.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존엄」: 구약성경 총5절 + 신약성경 총2절 = 구, 신약 총7절【내 영광(내 존엄한 모습) 8 + 1 = 9, 당신의 영광(당신의 존엄하신 모습) 16 + 4 = 20, 나의 영광 13 + 1 = 14, 영광스럽고 경외로운 이름 1 + 0 = 1, 그분의 영광스러운 현존 1 + 0 = 1, 영혼 141 + 17 = 158, 부활 4 + 61 = 65《마태 22장 23-33절 ‘부활에 대한 토론’ 편 30절 부활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참조.
※ 신앙수기 ‘76. 육체의 부활「“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살아나느냐?”는 의문이 풀림」’ 편 58-62페이지 참조.【(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0-188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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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불교에서는 본각(本覺)이라는 말을 더러 하듯이 우리 가톨릭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보면 전능하신 하느님을 뵙는다는 본각(本覺)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말로써 즉 예수님은 깨달은 적도 없으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분으로써 즉 예수님의 신분을 파악하지 못하면 첫 단추가 잘못 꿰이듯 아무 것도 맞을 수가 없는 것이듯이....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제2위격인 전능하신 분으로 오셔서 계시(啓示)를 완성하시고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바치셨듯이.... 청봉스님의 神 개념은 하나님이라는 성인의 아래 존재인 神 개념이고 가톨릭의 삼위일체의 “나는 전능한 신이다”(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29-234페이지 참조) 하신 하느님과는 전혀 다른 즉 부처님을 호위한다는 부처님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인도에서 우상화로 있었던 범천왕이나 제석천왕(416-418페이지 참조)처럼 물론 무함마드(마호메트)도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神의 말씀을 계시 받았듯이.... 그런데 이슬람은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말씀을 계시 받았으면서 왜 루가 1장 26-38절 ‘예수 탄생의 예고’를 알린 가브리엘 대천사의 말은 믿지 않는 것인지.... 그래서 이미 부도덕한 종교들이라고 말씀해 주셨겠지만....(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8-279페이지 참조) 그리고 부활한 예수님께서 루가 24장 13-35절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편「25절 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26절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절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에서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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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듯이 성서 전체를 인정하셨는데 예수님만 믿고 인정하고 성서 전체의 내용을 믿지 말라는 말인지.... 그리고 또 마태 6장 10절에서「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하셨고 마태 26장 42절에서「“아버지, 이것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셨듯이 창세기의 시작부터 묵시록까지 모두가 다 하느님의 뜻인데 예수님만 믿고 인정하고 예수님의 말씀이나 하느님의 뜻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인지.... 또 출애 3장 15절에서 모세에게「야훼」라는 이름을 계시하셨듯이....(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29-234페이지 참조) 야훼 하느님을 철저하게 믿는 게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이듯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천지를 창조하신 야훼를 분리시킬 수가 없는 것인데.... 전능하신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름을 알려주신 것은 중대한 일로써 앞으로의 일어날 모든 신비의 구원 사업들이 야훼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뜻임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듯이.... 즉 이름도 알려주시지 않고 그런 일들을 하시면 우리가 “나는 있는 나다.”하신 전능하신 그분의 이름을 명확하게 붙일 수도 없거니와 1956번에서처럼 眞空妙有한 마음, 부처, 眞我, 참나, 주인공으로 나름대로 영혼에 대해서도(410-411, 419-420, 424, 432페이지 참조) 불분명하게 표현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청봉스님께서 성직자들이 2271번에서 ‘하나님이라는 성인의 아래존재인 神을 성인이신 예수님 위에 설정하여 놓고’ 하였듯이 어느 부분을 설정하여 놓았다는 말인지....《《《즉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에도 항상 현재 영원히 초자연적으로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 출애 24장 1-11절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다’ 편에서 계약을 맺고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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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을 데리고 올라 가서 하느님을 뵈오며 먹고 마셨듯이 12-18절 그리고 난 후에 사십 주야를 지내며 모세에게 모든 제사 규정을 일일이 다 상세하게 알려주시고 모세와 이야기를 다 마치시고 하느님께서 손수 돌판에 쓰신 증언판 두 개를 모세에게 주셨듯이.... 또 출애 32장 1-6절 ‘금송아지’ 편을 지나 19절에서 증언판을 깨뜨린 후 28절에서 우상 숭배자들을 삼천 명가량 희생시킨 다음 하느님을 뵈오며 먹고 마셨던 나답과 아비후도 주님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켜서 주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시려고 희생 시키셨지만(레위기 9장 1-24절 ‘아론이 첫 제물을 바치다’ 편과 10장 1-7절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과 사제들의 상례’ 편 참조) 또 새 증언판을 다시 받으러 가기 전에【출애 33장 3절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므로, 도중에 내가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5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와 함께 올라가다가는,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패물을 몸에서 떼어 내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 15절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당신께서 몸소 함께 가시지 않으려거든, 저희도 이곳을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17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청한 이 일도 내가 해 주겠다. 네가 내 눈에 들고,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셨다가 동행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듯이 그리고 18-23절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편【「18절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20절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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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22절 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 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 23절 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에서 말씀하셨듯이 또 새 증언판을 다시 받으러 갔을 때에 출애 34장 5-9절 ‘하느님께서 나타나시다’ 편「5절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에서는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듯이....》》》즉 그러니까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칠십 명을 데리고 올라가서 그들은 하느님을 뵈오며 먹고 마셨듯이 또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셨듯이.... 모세에게 당신의 영광스런 모습을 당신의 모든 선을 최대한 보여주셨지만 얼굴은 보여주시지 않으셨듯이.... 모세가 본 하느님으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불가에서는 본질인 실체(實體)가 아닌 현상 세계를 꿈이라고 표현하듯이 즉 창조 이전의 세계가 그냥 神(하느님)의 본질인 실체(實體)이듯이 즉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여 오심으로 지상에서도 우리는 神(하느님)의 본질인 실체(實體)를 겨우 파악할 수가 있듯이....(422-42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불교의 반야심경의 큰 지혜를 깨달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가톨릭교회의 삼위일체의 전지전능한 지혜와는 분명 같은 지혜는 아니듯이....(영성시집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402-407페이지「천주성삼 호칭기도」참조) 즉 그러니까 나름대로 큰 지혜를 깨달았다는 것은 존중하지만 모든 것을 불이(不二)로만 보니 반야심경의 空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에 불과하듯이.... 즉 그러니까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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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신 우리의 불이(不二)와 공(空)과 색(色)인 불이(不二)는 차원이 다른 불이(不二)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듯이....(영성시집 ‘198.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불이(不二)」①”’ 편 246-252, 252-254페이지 참조) 구약시대에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예언자나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수많은 예언자들이나 달마대사, 원효대사, 김정빈 구도소설「道」책의 주인공 대행스님같은 부분적인 초자연적인 견성(見性)이나 부분적인 초자연적인 계시(啓示)가 있었지만 또 모세는 다른 예언자들과는 다른 야훼께서 “나는 나의 온 집을 그에게 맡겼다.”고 해도(민수기 12장 4-8절 참조) 즉【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를 지금 시대에도 비추어보지 않고서는.... 몰록 깨달아서 그 깨달음이 아무리 성성적적한 성인이라고 해도 모세성인이나 엘리야 예언자나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해도 부분적으로 깨달은 견성(見性)과 부분적으로 체험한 계시(啓示)로는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도 견성(見性)의 완성도 아니고 계시(啓示)의 완성도 아니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 즉 인터넷 다음 블로그「견성이란(원불교 사전)」:【선가(禪家)에서는 견성을 일대사라고 하여 수행의 제일의 목적으로 삼는다. 견성이란 말은 보리달마의 저작으로 알려진《혈맥론》에 처음 이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를 설명하기를 “만약 부처를 구하려거든 모름지기 성품을 보라(見性). 성(性)은 곧 부처이다. 만약 견성을 못하면 염불ㆍ송경ㆍ지계ㆍ보시 등은 모두가 이익이 없다. 염불은 인과를 얻고, 송경은 총명을 얻고, 지계는 생천을 얻고, 보시는 복을 얻을 뿐 부처를 구함에는 아직 따르지 못한다. 만약 자기를 밝게 요달하지 못했으면 모름지기 계정혜 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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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겸비한 선지식을 찾아서 생사의 근본을 궁구하라. 견성을 못하면 가령 십이부경을 통설할지라도 생사윤회를 면치 못한다. 삼계에 고를 받아서 벗어날 기약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선 부처가 되려면 견성을 해야 한다. 견성을 못한 사람은 다른 선(善)의 행위가 있어도 선의 과보는 얻을 수 있지만, 삼계를 벗어나는 인(因)을 얻지 못했으므로 진정한 불도는 아니다. 참다운 불도는 진정한 자성을 보는 데 있다. 자기 마음이 부처이며 부처는 자기 마음이다. 달마는 마음 밖에 부처는 없다(自心是佛 佛是自心 心外無佛)라고 말했다. 부처를 구하려거든 견성하라. 만약 견성을 못하면 평생을 밖을 향하여 치달릴 뿐 부처를 구해도 얻지 못한다. 이 말은 선(禪)의 종지를 철저히 표현한 말이다.
특히 육조혜능에 이르러 이 견성이 근본사상이 되어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견성의 실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달마는《오성론》에서 마음이 텅 빈 것(心是空)을 아는 것을 이름하여 부처를 본 것(見佛)이라고 말했다.】에서보면 마음과 영혼에 대해서 잘 모르듯이....(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0-188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9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2페이지 참조) 즉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는 초자연적인 진리로써 같은 말인데.... 그리스도교는 계시(啓示)종교로써 구약 성서에도 계시(啓示)가 풍부하고 신약 성서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장 30절 참조) 하고 또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장 28절 참조) 하고 말씀하셨듯이【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예수님께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우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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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대로 자세하게 다루어나가는 입장보다는(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 불교는 유한유(有限有), 무한유(無限有), 무루법(無漏法), 무위법(無爲法)을 말하면서도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잘 모르듯이 즉 그러니까 보리달마의 말처럼 가톨릭의 입장으로 바꾸어서 말한다면【참다운 불교는「그리스도교도는」진정한 자성을 보는 데 있다. 자기 마음이 부처이며「하느님(예수님)이며」부처는「하느님(예수님)은」자기 마음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얼마나 허술하고 어설픈 오류적인 말이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한마디로 견성(見性)은 계시(啓示)로써 성서에서 계시(啓示)자의 무오류성과 계시(啓示)를 보(받)는 자의 오류성의 차이가 항상 명백히 드러나듯이....(영성시집 ‘18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편 211-213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八正道의 법륜 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이 번뇌하는 윤회인 것이지 영혼이 계속 육도윤회하는 것은 아니듯이.... 즉 그러니까 번뇌가 다한 해탈한 사람은 완덕을 이룬 성인으로써 또 완덕을 이룬 성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대죄가 되는 큰 번뇌는 없겠지만 미세한 번뇌는 누구나 다 없앨 수는 없는 것이듯이....(인터넷 다음 어학사전「성불(成佛)」:【1. 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를 얻음. 2.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부처가 되다.】참조) 즉 그러니까 우리 가톨릭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각 권마다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계속 창조를 말씀하신 명확한 계시(啓示)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539-544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35-442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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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도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한 말이듯이 또 전지전능이란 말은 아닌 것이듯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한번 묵상해봅시다.(483-185페이지 참조)
※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를 믿지 말고 법을 믿어라”는 위치에 계셨고 예수님은 “나를 믿어라”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위치에 계시면서 율법학자들의 의로움보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당신의 의로움을 믿도록 계속 말씀하셨다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320, 489-501, 520-521, 692-695페이지 참조)
※ 불교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이지만 예수님은 과거심가득 현재심가득 미래심가득 이심을 한번 묵상해봅시다.(422페이지 참조)
※ 노자는 비가도 비상도 라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오시기전에 한 말이고 예수님은 항상 도를 말씀하셔도 항상 도이심을 한번 묵상해봅시다.(654페이지 참조)
※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는 무아(無我)라고 가르치셨지만 하느님은 “나는 곧 나다.” 하고 말씀하셨듯이 즉 무아(無我), 오온개공(五蘊皆空), 재법무아(諸法無我)는 영혼이 아니라 물질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한번 묵상해봅시다.(424페이지 참조)
※ 법장스님의 공(空)이 곧 색(色)이다. 색(色)이 곧 공(空)이다. 하는 것은 편견이고 반쪽짜리 진리이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19-520페이지《《《즉 인터넷 다음 백과사전「진공묘유(眞空妙有)」:【이와 같은 공에 대해 예부터 몇 가지 잘못된 이해 방식이 있었는데, 중국 화엄종의 승려 법장(法藏: 643-712)은『반야심경(般若心經)』의 주석서인『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에서 이를 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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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공이 사물과 다르다는 견해이다. 이는 공을 사물과 다르다고 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 별도의 공을 구하는 것이다. 법장에 따르면,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반야심경』에서 ‘색이 공과 다르지 않다[色不異空]’라고 하였다. 둘째는 공이 사물을 소멸시킨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는 이 세계의 구체적인 사물을 소멸시킨 뒤 남는 빈 공간을 공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반야심경』에서 ‘색이 곧 공이다[色卽是空]’라고 하였다. 셋째는 공을 어떤 특정한 사물로 여기는 견해이다. 이는 공을 이 세계의 다양한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있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반야심경』에서 ‘공이 곧 색이다[空卽是色]’라고 하였다. 공에 대한 이런 잘못된 견해들을 타파하기 위해 불교도들은 진공(眞空), 곧 참된 공이란 이 세계의 사물 그 자체의 존재 양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았다.】의 설명은 반야심경의 견해를 논했다고 하기 보다는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말로 편견과 선입견으로 법장스님께서 잘못 대처하고 배척했다고 이제는 파악해 볼 수가 있듯이....》》》참조★)
※ 부활한 육신은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어 天使와 같아진다고는 하였지만 天使들은 하늘과 땅을 다스릴 능력도 없듯이 天使와 사람은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이듯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과는 무한한 거리가 있음을 한번 묵상해봅시다.(마태 22장 30절, 고린전 15장 35-58절 참조)【(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8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1-272페이지 참조)】
※ 피정 다섯째 날 ‘예수성심 호칭기도’ 1번(175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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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여섯째 날 :「사람의 명오로 능히 통달하지 못할 ‘성
삼의 오묘한 도리’」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유일하게 천주성과 인간성을 갖추신 분이시듯이 예수님의 천주성과 인간성을 한번 묵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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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교는 즉 부분적인 진리(불경)를 보유한 종교에서【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예수님께서 세우신 완전한 진리(성서)를 보유한 종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으로 청봉스님은 성서를 ‘神學的 허구’라고 말하니.... 이런 청봉스님과 같은 허구야 말로【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예수님께서 완성시킨 계시(啓示)종교의 즉 성서를 통달한 신학자들에 의해 이제부터 청봉스님도 ‘神學的 허구’라고 ‘성경결집의 潤文’이라고 ‘성직자들의 왜곡된 해설’이라고 한 말에 대해서 신학자들의 검증을 낱낱이 거쳐야 할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모르고 한 말에 대해서는 이쯤 밝혀두고.... 오히려 석가모니 부처님은 2,500년 전에 인도에 갑자기 오셔서 법을 전하고 그 법이 동쪽으로 간 까닭이 전부이지만.... 2,500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포로 시대를 사는 시대로써 그전의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시대의 하느님은 왜 모른다는 말입니까? 즉 그러니까 예수님은 본래 창세기 때부터(창세기 3장 1-24절 참조) 이미 BC 4,000년 전부터 구세주로 오시기로 예언되어 오신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듯이 즉 유한유(有限有)는 무한유(無限有)를 설명할 수도 없듯이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고 깨달은 것은 초자연적으로 있는 그 어떤 것을 보고 깨달았다는 말인 것인데 그것이 바로 피조물을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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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지전능하신「‘◯→만물’이 아니라 ‘전능→만물’」이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304-307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질적인 불이(不二)와 공(空)과 색(色)인 불이(不二)는 차원이 다른 불이(不二)이듯이 즉 그러니까 피조물은「조물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중생(衆生)은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이르는 말이듯이 석가모니 부처님도「물질(色) = 몸은 무아(無我)」를 말씀하셨듯이.... 즉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주인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알파요 오메가시라는 것이 밝혀져....(424-432, 439, 539-544, 568-572페이지 참조) 즉 요한 11장 25절에서「“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하신 예수님께서 14장 6-7절에서「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듯이 즉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즉 예수님께 비추어보지 않고서는 온전한 진리일 수가 없다는 말씀으로써.... 즉 불교에서도 깨달으면 성인이라고 하고 부처님은 구경각을 이룬 사람이라고 하듯이 불성(佛性)과 신성(神性)은 우주 전체의 성품(性品)을 뜻하는 같은 말로써(영성시집 ‘149. 불성(佛性)과 신성(神性)’ 편 136페이지 참조) 예수님은 구경각을 이룬 성인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듯이 즉 불교에서는 불성(佛性)과 주객 합일을 이룬다고 하고 우리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주님)의 신성(神性)과 주객 합일을 이룬다고 하지만 주객 합일의 경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자유 의지를 잘 써야 하듯이.... 즉 반야심경의 해석을 불이(不二)로만 해석하니까 중생지견으로 마음이라고 하고 불지견(佛知見)으로 참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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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듯이 즉 마음으로 주인공을 깨달으니까 참마음이라고 부르게 되었겠지만 우리 가톨릭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하나로 보면서 즉 부처와 중생을 하나로 보면서(영성시집 ‘190. 깨달음에도 큰 깨달음과 작은 깨달음이’ 편 221-222페이지 참조) 또한 전능하신 창조주와 불완전한 피조물을 둘로 보니까 천주성인 초성과 인간성인 인간 본성을 구분하여 하느님의 뜻인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하고 내 뜻인 내 (마음)이라고 하는데.... 즉 예수님은 족보에도 구세주로 태어나셨듯이.... 즉 마태 1장 18-25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편「22절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23절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에서 말씀하셨듯이 또 미가서 5장 1-2절에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장소까지 예언 하였듯이 즉 요한 1장 19-34절 ‘세례자 요한의 증언’ 편「23절 요한은 그제야 “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하고 대답하였다.」에서 말한 대로 소리와 말씀은 본질이 다른 즉 우리의 소리는 유한성을 지닌 소리이고 창조되지 않고 살아 계시는 말씀은 초자연적인 전능하신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이시듯이.... 즉 요한 2장 13-22절 ‘성전 정화’ 편【18절 그 때에 유다인들이 나서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고 예수께 대들었다. 19절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20절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21절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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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절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 하는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고 대드니까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당신의 부활의 기적과 권한을(421-422, 450페이지 참조) 은유적(隱喩的)으로 대답하셨듯이 즉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시고 당신 몸은 참된 성전이시듯이.... 즉 세계 역사의 중심은 기원전, 기원후 하듯이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33년의 생애의 중심은 공생활 3년이고 그리스도교의 창립이고 인류 구원이듯이....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무상정등정각」을 깨달았다고 해도《《《인터넷 다음 어학사전「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세상 모든 일의 참된 내용이나 형편을 두루 알며 최고로 바르고 원만한 부처의 마음 또는 그 지혜【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縟多羅三貘三菩提)는 범어로 아눗타라 삼먁 삼보디 (anuttara samyak sambodhi)를 한자로 음사 표기한 것이다. 범어의 뜻을 풀어 번역하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의미한다.
아뇩다라는 무상(無上), 삼먁(三藐)은 바름(正等)이고, 삼보리(三菩提)는 참된 깨달음(正覺)을 뜻한다. 이를 한 마디로 무상정등정각의 뜻이 된다.】》》》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지 하늘의 이치는 아니듯이 또 아무나 구세주가 다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구세주란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아들어야 하겠지만....(영성시집 ‘183. 가톨릭교회의 구원관과 불교의 구원관’ 편 189-195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15-335페이지 참조) 즉 황데레사 저,「예수님․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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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46, 47, 90번 그림 설명에서 ‘천주 성삼의 성신의 명오로’ 우리는 천주성삼을 모시는 천주성삼의 궁전이라고 깨우쳐 주시듯이....(영성시집 ‘178. 성삼은혜의 핵심(주님의 궁전)을 깨달음’ 편 174-176페이지, ‘185. 성삼수도회의 영성생활 핵심부분’ 편 199-202페이지 참조)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불순종의 원죄를 지어서 죽음이 왔기 때문에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죄 없는 성모님께 잉태되어 태어나시고 원죄가 없다면 육신이 썩지 않고 승천하는 것이 이해가 되듯이.... 즉 예수님과 함께 불순종의 원죄를 순종으로 배상하실 새로운 아담과 이브이심이 깨달아지듯이.... 또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598번 1. 사랑하는 아들들아, 신뢰와 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영육이 함께 천국의 영광 속으로 올림을 받은 너희 천상 엄마를 바라보아라. 내가 지상천(至上天)으로 올림을 받아 내 아들 예수님 오른편에 자리하자, 천상 영들의 대군이 그들의 모후 앞에 모두 엎드려 깊은 존경을 드러내었다. 온 천국이 감미롭기 이를 데 없는 빛과 노래의 하모니를 이루어 나를 찬양하며 외친 것이다: “오 주님, 당신 오른편에 계신 모후께서는 눈부시게 빛나시나이다.” 8.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오른편에 앉히신 것은, 그것이 당신 외아들이시며 육화하신 ‘말씀’, 구속주, 한 분뿐이신 구원자, 온 우주의 왕이신 그분께만 합당한, 최대의 영예인 까닭이다. 10. 나는 천국의 영광 속에 올림을 받자 내 ‘아들’ 오른편에 자리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것은 그것이 당신의 ‘동정 어머니’에게 합당한 최대의 존경이 되기 때문이었으니, 구원사업에 긴밀히 결합해서 그분의 모든 고난을 함께 나눈 나를 불러 올리시어, 이제 그분의 영광스러운 신적 권능도 함께 나누게 하신 것이다.】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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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육화하신 ‘말씀’, 구속주, 한 분뿐이신 구원자, 를 말씀하셨듯이....(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0-188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15-33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이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장 14절 참조)」하였듯이 즉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오른편에 자리하신 예수님의 모후께 합당한 최대의 공경을 드려야 하는 것이듯이 즉 구약 시대처럼 막연한 하느님만 믿게 하고 주인 없는 세상과 하늘 나라를 만들기 보다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이미 이 세상 창조 때부터 예정(豫定)된 계획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듯이....(영성시집 ‘196. 믿음의 힘을 깨달음(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편 241-243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의 창립의 목적도 인류구원이듯이 우리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공생활도 예수님․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도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살으신 삶의 역사이듯이 즉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성서의 이야기는 역사에 개입한 하느님의 역사이고 하늘 나라의 역사이듯이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무량하신 덕능과 무한하신 지혜와 사랑으로 우리 영혼의 아버지, 스승, 정배로서만이 아닌 40일 엄재수난과 십자가 고통을 성모님과 함께 당하신 인류의 죄를 배상하시고 구원하시는 중대한 하늘나라의 기준이 되는 역사이듯이....(영성시집 ‘184. 에레베이터 안에 게시 된「금주의 묵상」’ 편 196-198페이지,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참조)
즉 1956번에서 청봉스님께서【온우주 만유의 창조주는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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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그 무엇인 것이오. 이것을 이름하여 眞空妙有한 法性(佛性, 自性, 부처, 佛, 마음, 참나인 眞我)이라 하는 것이올시다.()】하였듯이....(410-411페이지 참조) 형상없는 그 무엇인 眞空妙有가 바로 불성(佛性)의 자리, 신성(神性)의 자리 즉 참 근본의 자리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듯이 즉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온전히 갖추신 유일한 신인(神人)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구분하는 법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듯이....(영성시집 ‘198.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불이(不二)」①”’ 편 246-252, 252-25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성무일도 재4권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제2독서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그분이 이미 우리들 가운데 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환상이 만들어낸 하나의 우상밖에는 하느님에 대해 무슨 관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파악할 수 없고 다다를 수 없고 보이지 않으시며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기를 원하시고 당신을 보기를 원하시며 당신에 대한 관념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사람의 관념이나 空사상이나 우상화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듯이....(영성시집 417-424, 439, 448페이지 참조)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사상의 그림자도 있을 수 없고 요한 14장 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신 진리의 실체(實體)이시듯이 즉 진리통달의 은혜는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교리가 각각 다른 부분적인 교회에 내릴 수가 없는 것이듯이 진리통달의 은혜를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299번 4. 하느님의 뜻은 (내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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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와 마찬가지로) 너희에게도 너희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데에 있다! 너희가 삶을 통해, 갈수록 그분께 대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너희 정신을 양육하는 매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말씀을 거룩한 책인 ‘성서’에서 찾아라. 내 아들 예수님의 ‘복음’에서 말씀의 온갖 아름다움을 음미하여라. 나는 너희에게 ‘지혜’를 주어, 너희가 ‘성서’의 비밀을 더 깊이 깨닫도록 이끌고 있다.【너희로 하여금 성서 (말씀을) 샅샅이 이해하고 즐기고 간직하며,】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313번 7,), (314번 ‘두 군대’ 편 2-3.), (318번 6. 너희가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을 이해하려면, 그리고,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이 시대의 표징을 판독하는 법을 알려면,】오늘날에도 깊은 고요가 요구된다.)》》》에서 보더라도 가톨릭교회에만 주시는 이유도 깨달아야 하겠지만....(420, 443-44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이제는 천주교회의 4대 교리【「1. 천주존재(天主存在), 2. 삼위일체(三位一體), 3. 강생구속(降生救贖), 4. 상선벌악(賞善罰惡)」】부터 깨달아야 하는 것이듯이 즉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55 예수 그리스도께 몇 가지 성(性)과 위(位)가 있느뇨? 예수 그리스도께 성으로는 천주성과 인성(人性) 두 가지가 있고, 위로는 다만 천주 성자위 하나 뿐이니라.(영성시집 ‘198.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불이(不二)」①”’ 편 251페이지 참조) 하였듯이 또 황데레사 저,「예수님․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책【‘천주성’ ‘인성(영혼과 육신)’ ‘신인(神人)’ ‘인간성’ ‘예수의 천주성’ ‘예수의 인성(人性)’ ‘육신’ ‘영혼’ ‘인간 본성’ ‘자유 본성’ ‘본성적’ ‘초성적’ ‘은총’ ‘성총’ ‘천주님의 성총’ ‘주님의 성총’ ‘인간 본성의 육정’(영성시집 ‘152. 책 제목을 간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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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엄재수난」이면’ 편 139-142페이지 참조)】을 보면 즉 요한 10장 22-39절 ‘유다인에게 배척을 받으신 예수’ 편【24절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25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26절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27절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30절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1절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절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33절 유다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하고 대들었다. 34절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 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35절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고 불렀다. 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36절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주셨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37절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절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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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39절 그 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천주성과 인간성을 쉽게 깨달을 수가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유다인 들처럼 예수님의 천주성과 인간성을 쉽게 깨달을 수가 없듯이 즉 그러니까 마르 6장 1-6절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편에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만을 본 고향 사람들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듯이....(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86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49-458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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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제19권「14 우리 (성삼위) 사업들의」,「25 한편 나의 뜻은 우리 (성삼위)의 한 비유거나 그림자가 아니라」,「28 우리 (성삼위)의 뜻이 알려지고」,「29 우리가 창조한 다른 모든 것은」(영성시집 ‘214.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피앗」과「우리 (성삼위)」②”’ 편 386-393페이지 참조)】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동정녀 태중에 잉태하시는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오시는 방법보다 더 완벽하게 오시는 방법은 없다는 말씀으로 깨달아지면서.... 즉 성령의 “정배”이시고 그리스도 왕을 낳으신 성모님의 운명은 왕후이심이 깨달아지면서....(영성시집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참조) 즉 ‘우리’ ‘우리가’ ‘우리의 영광이’ ‘우리 (성삼위)’ ‘우리가 창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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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글을 계속 읽으면서 문득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우리를 말씀하신다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깨달아졌습니다. 즉 그러니까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장 30절 참조)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또 창세 1장 26절「“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에서 보면 사람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우리라는 말씀을 하셨듯이 즉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진리(지혜)를 깨달은 분으로 믿지만 예수님은 몸 자체가 진리의 실체(實體)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듯이.... 또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도 하늘나라 에서도 불교방식으로 말하자면 법신불(法身佛)의 실체(實體)이시듯이.... 그런데 불교에서는 반야심경의 공(空)과 색(色)을 불이(不二)로만 보니까 불교방식으로 자력적 구원이라는 말이 성립되고 피조물인 天神과 전능한 창조神을 구분하지 못하고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하듯이 왜 신신(神)자를 쓰지 않고 몸신(身)자를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29-234페이지 참조)
즉 영성시집 ‘198.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불이(不二)」①”’ 편 246페이지《《《제가 신앙수기 ‘101. 선생님(스승)은 예수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편 122-123, 126-127페이지에서 소개해 드렸듯이 김강철(바오로) 신앙수기「성모님 도우심으로 이룩될 주의 나라 천년왕국」책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 편【「“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 하는 웅장하면서도 위엄스런 음성이 들려오면서 한없는 기쁨이 넘쳐나고 모든 것이 포근하고 고요해져 버린 것이었다. 그 음성은 온 세상을 울릴 만치나 웅장하고 위엄스러워 정신이 바짝 들면서도 깨어나지는 못하고 다만 “그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라고 여쭈어 보았더니 다시 또 같은 음성으로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 라고 말씀하시어 나는 도저히 이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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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없었으며 너무나도 궁금한 나머지 다시 “그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여쭈니까 똑같은 음성으로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 라고만 말씀하신 뒤 볼 수 없고 알 수는 없었지만 그분이 떠나간 것만은 알 수가 있었다.」】》》》에서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그 풀이까지 자세하게 소개해 드렸듯이 즉 그러니까 삼위일체의 본질적인 불이(不二)와 공(空)과 색(色)인 불이(不二)는 차원이 다른 불이(不二)이듯이 즉 내 안에 하느님께서 하나는 하나로 계시면서 또한 둘은 둘로 공존하고 계시듯이 즉 청봉스님께서 806번에서「진아와 혼(영)이 서로 여의고 있는 것은 아니올시다. 다만 영이니 혼이니 하는 것은 개체로서 이르는 것이라 할 것이로소이다.()」하였듯이(415, 439페이지 참조) 즉《《《인터넷 다음 백과사전「진여(眞如)」:【〔요약〕불교에서 궁극적 진리, 만물의 본체를 뜻하는 말. 변화하는 세계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말한다.】참조》》》하였듯이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아라고 말하는 하느님을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에 불이(不二)로 해석할 수도 있고.... 즉 삼위일체 하느님(주님)이신 창조주인 우리와 피조물을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라고 말하듯이....《《《‘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16 (문) 천주 무량(無量)하시느뇨? (답) 천주 무량하시니 아니 계신 데 없어 곳곳이 다 계시니라. 해설 527-528페이지【“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사도 17장 28절)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 마치 물고기가 바다 안에 있듯이, 우리와 온 우주가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 따라서 하느님은 어디든지 계심을 뜻한다.】참조》》》즉 심우도(尋牛圖)의 내용을 보면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 하였듯이 또 내용을 보면 ‘견성(見性)에 이르는 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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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단계로 간명하게 묘사한 그림’이라고 하였듯이 즉 견성(見性)을 해도 완덕을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견성(見性)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완덕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고쳤으면 좋겠지만 즉 가톨릭에서 계시(啓示)에 이르는 과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완덕에 이르는 과정이 10계명을 지키고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지키고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즉【⑥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때의 소는 완전한 흰색으로서 특별히 지시를 하지 않아도 동자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며, 그때의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게 된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조그마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즉 ⑨ 반본환원(返本還源)에서처럼 유다인 들도 예수님의 참된 지혜의 실체(實體)를 몰라보고 죽였듯이 2,00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몰라보면서 주객이 텅 빈 원상으로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라고 상징적인 말만 되풀이 한다면 그게 무슨 불사불멸이고 영원한 생명이고 진리의 말씀이고 참된 지혜이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412번에서 ‘도(道)인’에 대해서「더 닦고 깨달을 것이 없는 이를 이르는 것이니 이를 覺人이라 하고 부처님이라 존칭하는 것이니」하고 말씀하신 청봉스님께서 계시니.... 청봉스님은 성부의 도(道), 성자의 도(道), 성령의 도(道)는 각각 위격의 도(道)이시지만 삼위일체 창조주 하느님의 도(道)이시듯이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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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도(道)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409, 416-418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⑥ 기우귀가(騎牛歸家)에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묘사된 것은 하늘 나라의 본향을 뜻하는 말로써 하늘 나라의 주인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이듯이....(449-450, 544-545, 568-572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道, 無, 公, 해탈, 열반, 깨달음, 완덕, 자유, 구원이라는 말은 다 같은 말로써.... 계시(啓示)를 보는 것이 구원(완덕)의 조건이 아니라 깨닫고 八正道를 지키고 10계명을 지키고 7덕을 지키고 교리대로 사는 것이 구원(완덕)의 조건이듯이 즉 그러니까 조건 없는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없는 것이듯이....(영성시집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183. 가톨릭교회의 구원관과 불교의 구원관’ 편 189-195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15-335페이지) 또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110번 내가 너희에게 ‘말’을 하는 이유’ 편「2. 각별히 사랑하는 아들들아, 오늘날 들리는 하고많은 목소리에 너희는 미혹(迷惑)되지 말아라. 내 원수가 (거짓) 사상으로 속이며, 말로 혼란에 빠지게 한다.」, ‘304번 나의 말’ 편「5. 그러나 오늘날은 허다한 자들이 복음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이치를 따지며 (사물을) 보는 인간적 관점에 의거하여 복음을 해석하려 들기에,… 하느님의 계획을 가까이 대하면서도 그 계획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없도록 지장을 받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너희가 너무나 인간적인 태도, 오직 이성만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데 있다. 이것이야말로 교만한 태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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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하느님의 지극히 크신 신비에 접근하기에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400번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 머무르려므나.’ 편「3. 하지만, 내 성자께서 (사람으로) 탄생하시고 성장하시며 살아가신 것은 정녕 이 ‘십자가’에 오르시기 위해서였다. 말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온순한 어린양(이사야 53장 7절)이 되시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참으로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장 29절 ; 이사야 53장 12절 참조)이신 것이다.」, ‘518번 그것은 파스카 기쁨이다.’ 편「3. 그것은 (하느님) 성부의 계획에 따라 재창조된 온 인류를 사로잡는 파스카 기쁨이다.」】에서도 ‘미혹(迷惑)되지 말아라.’고 하였듯이 즉 성무일도 제4권 10월 7일「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제2독서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그분이 이미 우리들 가운데 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환상이 만들어낸 하나의 우상밖에는 하느님에 대해 무슨 관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하였듯이 즉 지혜를 깨달은 솔로몬이 오히려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듯이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우상화로 미혹(迷惑) 될 수밖에 없듯이....(열왕상 11장 5절 참조) 즉 마태 12장 42절「“그러나 여기에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하느님의 계획을 복음을 오직 이성으로만 이해하려는 교만한 태도에 대해서 깨우쳐주셨듯이 즉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의 계획을 보아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십자가의 희생 제사의 참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창세초부터 계획된 계획 중에서도 의뜸 계획인 빠스카 계획이듯이....(영성시집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18-323, 329-334페이지 참조) 즉 루가 24장 13-35절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편【21절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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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26절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절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요한 6장 14-15절 참조)】에서 또 36-49절 ‘예수의 마지막 분부’ 편【44절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45절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46절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49절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하고 말씀하셨다.】에서 또 50-53절 ‘예수의 승천’ 편【50절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아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 두 손을 들어 축복해 주셨다. 51절 이렇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에서 즉 베다니아에서 승천하셨듯이.... 즉 고린전 15장 35-58절 ‘육체의 부활’ 편【44절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50절 형제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어두십시오.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썩어 없어질 것은 불멸의 것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51절 내가 이제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52절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의 즉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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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영혼은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즉 마태 22장 23-33절 ‘부활에 대한 토론’ 편【30절 “부활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 31절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하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아직 읽어본 일이 없느냐?”】에서 부활한 다음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고 말씀하셨듯이 즉 天使들은 하늘과 땅을 다스릴 능력도 없으면서 사람을 중심으로 창조된 이 세상을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악마는 하늘과 땅을 다스릴 능력도 없으면서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을 시기하기만 하듯이 天使도 사람과 같이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이듯이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어 하늘에 있는 天使들과 같아진다는 말씀을 이제는 불자들도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8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1-272페이지 참조)】즉 예수님의 계시(啓示)를 체험해도 성인의 기준은 교리적으로 완덕을 이룬 사람이듯이.... 그런데 왜 불교에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말하면서 즉 계시(啓示)를 본다는 말과 10계명을 지키고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지키는 교리대로 살아서 완덕을 이룬다는 구분된 말을 즉 견성(見性)이란 말은 성불(成佛)이라는 말과는 다른 말인 것인데 즉 성불(成佛)을 이루어 성인이 된다는 말을 즉 견성(見性)인 성품(性品)을 본다는 즉 계시(啓示)를 보는 것을 깨달음(완덕)으로 구분 없이 남용하는 것인지....
즉 견성성불(見性成佛)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은 반야심경의 큰 지혜를 얻었으니까 큰 깨달음(완덕)을 함께 이루었다지만 그래서 불교적인 교리의 가르침이 설해졌다지만 오히려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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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깨달은 그 자체가 바로 솔로몬처럼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듯이....(466-467페이지 참조) 즉 우리는 점차로 깨닫든 성성적적으로 몰록 깨닫든 즉 전능한 하느님(주님)을 만나야 우리의 불완전한 영혼이 이성과 기억과 의지로 주객 합일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듯이 즉 한 번의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 체험이 부처님처럼 성인은 될 수 있어도 전능한 하느님(주님)과 영원한 주객 합일을 이룬 것은 아니듯이 그렇지만 사람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셨다고 해도(532페이지 참조) 사람의 지능을 무한히 초월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불완전한 영혼의 이성과 기억과 의지의 마음속으로 들락날락 하시어 우리를 당신의 궁전으로 삼아 당신의 전능하신 이성과 기억과 의지의 마음으로 타이르시고 은총을 베푸시고 축복하시듯이....(영성시집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400-402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우리가 고린전 15장 6절「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처럼 부활한 예수님을 한번 체험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초자연적인 전능한 빛을 체험해도 부분적인 계시(啓示)를 깨달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진리통달의 교리를 대신할 수는 없는 주객 합일인 것이듯이.... 즉 그러니까 결국에는 온전하게 계시(啓示)된 진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듯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모르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며【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예수님 말고 그 누가 현세이든 내세이든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417-424, 429-432, 439-444, 45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을 때까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으로써 한 번의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 체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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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만사형통처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며 즉 완덕을 이루는 것이 학문을 잘 하는 것보다 이제는 더 쉬운 일임을 깨달을 수가 있듯이 즉 성인이 되는 계율과 八正道 즉 10계명과 완덕인 7덕을 꾸준히 지킬 수 있는 습관 된 경지 외에 주객 합일이란 다른 것이 아니듯이....(영성시집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4-32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⑧ 인우구망(人牛俱忘)은 ‘주객 분리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 것으로, 이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일컫게 된다.’는 즉 ‘주객 분리 이전의 상태’란 순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초보(부분)적인 이론이지 정말로 ‘주객 분리 이전의 상태’가 무엇인지 정말로 알고 하는 말도 아니듯이.... 즉 교리적으로 깨달음(완덕)을 이루고 성인이 되었다면 교리적으로 주객 합일이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듯이.... 즉 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때부터「방하착(放下着)」즉 “내려놓아라.”는 말이 있듯이 “내려놓아라.”는 말은 깨달음의 차원에서 인간적인 것을 “내려놓아라.”는 말로써 즉 득우(得牛)는 얻을 득 이듯이 무조건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생각이나 그릇된 습관을 비우고 내려놓음으로써 올바른 道의 습관을 얻고 올바른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듯이.... 가톨릭 신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수님 앞에서 불교방식으로만 무조건 “내려놓아라.”고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마조원상(馬祖圓相)」:「(세등서원No.48)―1983(계해)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4. 01. 17)」를 들어보면【마조(馬祖) 스님이 원상(圓相)을 떠억 그려 놓고 “이 속에 들어가도 치고, 이 속에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니, 일러라!” 했습니다. 한 스님이 그 원상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떠억 앉았어. 마조 스님이 주장자(柱杖子)로 여지없이 한 방맹이를 쳤습니다. 치니까 그 원상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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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억 들어가서 앉은 스님이 “스님이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입을 딱 다물고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리셨어. 지난 삼동 안거(三冬安居)에 용맹정진을 하고 가행정진을 하고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수행을 한 대중이 지혜의 눈을 뜬 자가 있거든, 이 원상을 그려 놓고 “이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그 승(僧)이 들어갔다. 마조 스님이 여지없이 방(棒)을 내리는데 “스님이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왜 쳤는데 ‘스님이 저를 치지 못했다.’ 고 한 도리가 무엇이여? 눈을 갖춘 자가 있으면 한마디 일러.】라고 하던데 물론 유마경 22. 불이법문(不二法門)에서 유마힐거사가 여러 보살들에게 묻고 여러 보살들이 설하고 유마힐거사가 침묵하듯이 예수님은 초자연과 자연을 겸한 불이법문(不二法門) 자체이신 분이신데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나는 길(道), 진리(眞理), 생명(生命)에 대해서 한마디 일러보시오. 일러도 치고 못 일러도 친다고 화두를 내놓고 싶습니다. 즉 그러니까 요한 14장 6절 “나는 길(道)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이다.” 하신 예수님 외에 누가 이르든 못 이르든 맞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우리 가톨릭에서는 성서의 초자연적인 계시(啓示)를 본다는 것은 하느님의 실체(實體)인 빛이나 말씀의 소리를 아브라함이나 모세성인처럼 직접 보고 듣는 체험으로써 또《《《성무일도 4권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제2독서에서 보면【‘무엇인지 모를 눈으로 영혼의 정신이 미치지 못하는 상주 불변의 빛을 보았습니다.’ ‘예사롭지 않고, 육안에 비쳐지지도 않는 이 빛은,’ ‘모든 것을 비추는 따위의 그러한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따위가 아닌 색다르고, 딴 모든 것과 아주 다른 빛이었습니다. 그것은 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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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름이나 땅 위의 하늘같이 내 영혼 위에 있는 것이 아니오나 나를 만들었기에 내 위이고, 나는 그의 지음을 받았기에 그 아래였습니다.’ “나는 장성한 자의 음식이로라. 너는 커라. 이에 나를 맛보리라. 내 육체의 음식처럼 나를 네게 동화시키지 말라. 오히려 너를 내게 동화시킬 것이니라.” ‘나는 얼마나 그대와는 멀리 등차의 세계에 있는지를 발견했노라.’ ‘당신을 누리기에 알맞은 힘을 기르고자 방법을 모색하여 보았으나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주재자, 만물 위에 계시어 세세에 찬미를 받으실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받들어 모시기까지는 얻을 수 없었나이다.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 부르신 그분께서―말씀이 살이 되심으로써― (나는 아직 허약하여 먹지 못할 몸이었으나) 음식을 살에 섞으셨으니 갓난이 우리에게 당신 슬기의 젖을 먹이시기 위함이었고, 실상 그 슬기로써 당신은 이미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었나이다.】》》》하였듯이....(인터넷 다음 어학사전「정문-안(頂門眼)」: 모든 사물의 이치를 환히 아는 특별한 안력(眼力). 본디 두 눈 외에 정수리에 있는 또 하나의 눈이라는 뜻이다. 참조) 즉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 당대에는 天使들도 사람과 같이 피조물이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니까 솔로몬이나 석가모니 부처님도 참神을 잘 몰랐듯이....(417-424, 439-444, 455, 460-472페이지 참조) 지금도 그 불경으로 참神을 어떻게 잘 알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황데레사 저,「데레사의 지난 일들」책 묵시 그림 19번, 묵시 그림 30번【1946. 9. 28. 영세한지 3일 되던 날 한 번도 뵈옵지 못했던 어른들이 보였다. 앞 벽에 고상이 걸린 방안에서 만과를 하던 중 앞 벽이 탁 터지더니 구름길이 확 트여 공중으로 뻗쳤는데 양편에 똑같은 어른들이 보였다. 그때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양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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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예수님이 계시니 의아했다. 복판의 뽀얀 지구덩이 위에는 흰 비둘기가 있는데 거기서 빛이 착착 나고 십자가에서도 빛이 났다. 만과하다 말고 정신없이 바라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묵시 그림 31번【1946. 11. 28. 영세한지 두 달 만에 친할머니와 같이 자다가 탈혼이 되어 묵시가 생생하게 보였다. 영세한지 3일 만에 벽이 터져서 보이던 구름길이 다시 보이고 천신 넷이 와서 같이 가자고 하여 폭삭폭삭한 구름길을 밟으며 따라가는데,… 어디쯤을 올라가자니 중앙청같이 둥근 데서 빛이 쏟아져 내리는데, 그 빛이 쏟아져 내리니 더 못 가겠고 벌벌 떨렸다. 떨다가 쳐다보니 영세한지 3일 만에 보였던 예수님이 양편에 똑같이 계셨다.】, 묵시 그림 41번, 묵시 그림 88번 설명 참조》》》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확실하게 깨닫듯이 즉 ‘앞 벽에 고상이 걸린 방안에서 만과를 하던 중 앞 벽이 탁 터지더니’ 보였다는 것은 즉 인터넷 어디에서 읽은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공스님도「만법귀일 일귀하처」화두를 들 때 지붕과 벽이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고 경허스님을 찾아갔으나 “우주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인가를 받지 못했다고 하였듯이 즉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무엇인지 모를 눈’으로 ‘상주 불변의 빛을’ 보았다는 것은「정문-안(頂門眼)」의 눈으로 3차원의 무루혜(無漏慧)를 보았다는 뜻이듯이....(신앙수기 ‘12. “진정한 믿음으로 기도를 한번 해보세요.”’ 편 5-7페이지 참조) 즉 계시(啓示)의 빛을 보면 그 빛의 비추임에 탈혼이 되고 탈혼 상태에서는 나 자신의 오온이 공(空)함을 느끼고 체험을 인식하는 나는 있지만 무아(無我)인 듯 느껴지듯이.... 그렇지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을 어찌 무아(無我)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424페이지 참조) 그런데 불교는 불이(不二)로 보니까 즉【眞空妙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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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法性(佛性, 自性, 부처, 佛, 마음, 참나인 眞我)】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듯이....(411, 419-420페이지 참조) 즉 루가 9장 28-36절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편에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말로만 가르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에는 하늘나라를 직접 보여주셨듯이.... 즉 天使들도 사람과 같이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이지만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는 3차원의 天使와 같아지는 그런 상태가 바로 하늘나라의 상태이듯이.... 즉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주님)이신 인성(人性)을 취하신 유일한 신인(神人)이시듯이.... 즉 우리의 중생지견의 유한유(有限有), 유위법(有爲法)의 인성(人性)의 마음은 항상 닦을 것이 있지만 무한유(無限有), 무위법(無爲法)의 불지견(佛知見)의 마음(佛性)인 참나(眞我)인 참하느님의 참마음은 닦을 것이 없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듯이 즉 한마디로 불지견(佛知見)인 불성(佛性)의 자리, 신성(神性)의 자리 즉 초자연적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리인 예수님의 과거 현재 미래에도 항상 영원히 살아 계시는 초자연적인 진리나 지혜의 실체(實體)이신 예수님(성심)의 참마음의 자리에서는 닦을 것도 깨달을 것도 없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420-425, 430-432, 439-444, 455-458, 460-472,「예수성심 호칭기도」472-473, 537-539, 568-572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62-475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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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주인공과 주객 합일을 이룬다는 것은 즉 성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해변에서 천사를 만나 체험하였듯이《《《요리강령 16페이지 그림 설명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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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의 오묘한 도리’ 二十一, 상본 하우편에는 아바람이 삼위 천신을 보고 하나로 인사하여 이르되 「주여 너 만일 나를 총애하시거든 내 집을 그저 지나치지 말으소서」하는 형상이니 이는 삼위 천신을 보고 삼위일체이신 천주를 공경함과 같음이니라.(창세기 18장 1-15절) 二十二, 상본 하좌편에는 성 아오스딩이 해변에서 거닐면서 성삼의 오묘한 도리를 깊이 궁구하시더니 홀연 한 아이가 있어 강변에 적은 구멍을 파고 조갑지로써 바다물을 길어다가 붓거늘 이르시되「아이야 무엇을 하느뇨?」「온 바다물을 다 이 구멍에 담고져 하나이다.」「적은 구멍이 어떻게 바다물을 다 용납하겠느뇨?」「내가 바다물을 다 이 구멍에 담을 수는 있어도 당신이 성삼의 오묘한 도리는 통달할 수 없으리라.」하고 아이가 보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천신이 아이의 형상으로 발현하여 성삼의 오묘한 도리는 사람의 명오로 능히 통달 못할줄을 성 아오스딩에게 가르침이니라.(신앙수기 ‘101. 선생님(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편 120-121페이지 참조)》》》즉 삼위일체의 오묘한 도리를 천신이 아이의 형상으로 발현하여 사람의 명오로 능히 통달 못할줄을 깨우쳐 주어서 삼위일체론을 쓰게도 되었겠지만....(영성시집 ‘178. 성삼은혜의 핵심(주님의 궁전)을 깨달음’ 편 175페이지【이제야 천주 성삼의 성신의 명오로서】참조) 또 성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나는 장성한 자의 음식이로라. 너는 커라. 이에 나를 맛보리라. 내 육체의 음식처럼 나를 네게 동화시키지 말라. 오히려 너를 내게 동화시킬 것이니라.”」에서처럼 하느님이신 주인공께 주님의 종인 성모님과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피조물이고 종인 나를 하느님께 동화시켜야 하는 이치인 것이듯이....(472-474, 488-489, 499-501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초자연적인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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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啓示)를 보아도 하느님께서 원하신 완덕을 이루어 성인이 되는 즉 10계명과 완덕인 7덕은 모두가 다 닦아야 하는 것으로써 즉 초자연적인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를 보고 부처님이나 하느님의 성품(性品)인 불성(佛性)과 신성(神性)을 닦으라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성으로는 천주성과 인성(人性) 두 가지를 갖추신 분으로서....(532페이지 참조) 우리는 인성(人性)의 마음을 닦아서 성불(成佛)인 팔정도(八正道)나 완덕을 이루는 성인이 되라는 것으로써 즉 원죄(原罪)는 예수님께서 대신 보속해 주셨으니까 즉 천국의 문 구원의 문은 열렸으니까(영성시집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3페이지 참조) 즉 누구도 먼저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먼저 들어가셨으므로 즉 하늘 나라의 기준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시고 부분적인 계시(啓示)는 성서 안에서나 밖에서나【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스승과 아버지이신 예수님의 앎이 아니라면 세상의 어떠한 누구의 앎이라도 완전한 앎이 아니듯이....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히브리서 10장 5절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6절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제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7절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시편 40장 7절 당신께서는 희생과 제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의 귀를 열어 주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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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8절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소서, 제가 왔습니다. 두루마리에 저에 대하여 쓰여 있습니다. 9절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즐겨 이룹니다. 제 가슴속에는 당신의 가르침이 새겨져 있습니다.”」】말씀하셨듯이 즉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시험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 희생 제물로 받으시려는 예표로써.... 요한 19장 30절「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이 세상 구원을 위하여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모든 우상 숭배를 쳐부수시고 세상 구원을 이루셨듯이....(417-424, 439, 455, 483-484, 548-550페이지 참조) 즉 구약시대부터 희미한 하늘 나라를 몸소 임하여 오셔서 십자가의 희생 제사는 미사성제와 하나이고 새 계약의 피로써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완수하시고 부활승천 하심으로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 편에 앉으셔서 삼위일체 천주성삼의 궁전인 하늘 나라의 주인이 되셨듯이(영성시집 ‘178. 성삼은혜의 핵심(주님의 궁전)을 깨달음’ 편 174-176페이지, ‘185. 성삼수도회의 영성생활 핵심부분’ 편 199-202페이지, ‘213. 천주성삼의 현존을 항구히 인식해야 한다’ 편 380-385페이지 참조) 즉 요즈음 메시지들도 지옥도 연옥도 천국도 그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뚜렷한 메시지들의 가르침이시듯이....(영성시집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9-272페이지 참조) 즉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교를 통하여 하늘 나라를 성서말씀 그대로 이미 통치하고 계시듯이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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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문 구원의 문은 열렸듯이 즉 하늘 나라의 다스리심은 이미 뚜렷하게 시작 되었듯이(568-572페이지 참조)
즉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를 보고 불성(佛性)을 신성(神性)을 닦으라는 것이 아니라 즉 영혼이 소유하고 있는 이성과 기억과 의지로 인성(人性)의 마음을 닦아서 깨달음과 참된 지혜인 완덕을 이루라는 성불(成佛)하라는 성인이 되라는 것으로써.... 즉 인간 본성으로 지은 본죄(本罪)를 닦아서 초자연적으로 살아 계시는 불교에서 말하는 불지견(佛智見)의 부처님이나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합일을 이루라는 것으로써 즉 성인이 되는 계율과 八正道 즉 10계명과 완덕인 7덕을 잘 지켜서 즉 교리대로 살아서 조그마한 번뇌도 묻지 않는 참된 지혜인 완덕의 경지를 이루라는 것으로써....(466-475, 475-484, 501-502페이지 참조) 그런데 불교는 인터넷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견성(見性)을 검색해 보면【「견성(見性)」:〔정의〕마음 닦는 공부를 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는 체험의 경지.〔내용〕불교에서는 중생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을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음을 잘 닦아서 미혹(迷惑)에서 깨어나면 곧 부처가 됨을 가르치고 있다.
교종(敎宗)에서는 이 마음 닦는 방법을 계(戒)·정(定)·혜(慧)의 3학(三學), 또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등 6바라밀(六波羅蜜)의 교리와 실천행을 제시하였다.
선종에서는 복잡한 교리나 단계를 밟는 수행법보다는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 이므로 곧바로 본성을 보아서 부처를 이루는 것[見性成佛]’을 종지로 삼고 있다. 즉, 선법(禪法)으로서 마음을 직관(直觀)하고 정신을 통일하여 마음의 본바탕을 발견하면 부처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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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하였듯이 또《《《즉 인터넷 다음 블로그「견성이란(원불교 사전)」:【선가(禪家)에서는 견성을 일대사라고 하여 수행의 제일의 목적으로 삼는다. 견성이란 말은 보리달마의 저작으로 알려진《혈맥론》에 처음 이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를 설명하기를 “만약 부처를 구하려거든 모름지기 성품을 보라(見性). 성(性)은 곧 부처이다. 만약 견성을 못하면… 견성을 못하면 가령 십이부경을 통설할지라도 생사윤회를 면치 못한다.…】》》》고 하였듯이....(440-441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보리달마도 견성(見性)인 계시(啓示)를 보지 못한 것이 죄가 아니라 즉 견성(見性)이라고 말하는 성품인 하느님 아버지를 보았다고 해서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 하느님 아버지의 진노를 살 것을 두려워해야 하듯이 즉 그러니까 죄를 지어야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니까 견성(見性)이나 생사윤회는 다른 것인데 즉 그러니까 견성(見性)을 하면 생사윤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회개로 다시 태어나야 번뇌가 없고 용서를 받는 것이 올바른 이치인 것인데 견성(見性)이나 생사윤회를 잘못 정의하고 있듯이.... 즉 그러니까 八正道는 깨달음이나 열반에 이르기까지 마음이 법륜바퀴의 번뇌에서 돌고 돌아 윤회한다고 영성적으로만 적용하면 될 것인데 영혼 육신을 가진 사람을 동물의 몸처럼 물질적인 이치로까지 잘못 적용해 버렸듯이....(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0-188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조건 없는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없는 것이듯이....(466-472, 475-484, 486, 498-501페이지 참조) 즉 계시(啓示)의 완성은 교리의 완성이고 부분적인 견성(見性)은 교리의 미완성이란 말과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이 깨달아지듯이.... 그래서 계시(啓示)의 완성인 가톨릭의 교리는 10계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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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덕인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으로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교리가 완성되어 잘 정리되어 있듯이....(영성시집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3페이지 참조) 그리고 인터넷 다음 어학사전「신덕」을 검색해 보면【「신덕(信德)」: 향주 삼덕의 하나로 천주와 교회의 가르침을 굳게 믿는 마음】이라고 하였듯이 이것을 그냥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신덕의 근본인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계시(啓示)하시니까 보고 듣고 교회가 그 계시(啓示)를 전수받아(영성시집 ‘18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편 211-213페이지 참조) 그 가르침에 오류가 없는 조건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믿는 그런 믿음인 것이지 그냥 무조건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닌 것이듯이....【‘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믿을 교리 편- 제1장 천주/제2장 삼위 일체/제3장 천지 창조, 천사, 마귀/제4장 사람/제5장 원죄/제6장 구세주/제7장 천주 성신/제8장 교회/제9장 사말(죽음, 심판, 천당, 지옥) 참조】그런데 불교의 교리는 부분적인 견성(見性)인 만큼 교리가 사실상 불완전하기도 하지만 즉 견성(見性)과 깨달음과 지혜와 관상과 명상도 교리를 넘어서 있는 것은 아니고 10계명을 지키고 7덕을 지켜서 완덕(의 경지)에로 이끄는 견성(見性)과 깨달음과 지혜와 관상과 명상이 아니라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듯이....(영성시집 ‘140. ‘우리의 생활이 바로 관상생활이구나!ⓐ’ 편 115페이지, ‘186. 이것이 관상입니다ⓑ’ 편 203페이지 참조) 즉 솔로몬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혜를 깨달았다고 해도 오히려 지혜를 깨달은 그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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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듯이....(424-425, 466-475, 483-48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유위법(有爲法)의 교회를 세우신 무위법(無爲法)의 실체(實體)로써 즉 한마디로 자연과 초자연의 세계가 공존하는 것으로써 즉 그러니까 계율이나 八正道의 경지란 복음을 지키고 10계명과 완덕인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잘 지켜서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10계명과 완덕인 7덕을 지키기 위한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가 아니라면 그런 견성(見性)과 계시(啓示)는 (거짓) 사상으로써.... 그러니까 보리달마의 저작《혈맥론》에서도 즉 견성(見性)을 해야 생사윤회를 벗어난다고 근본적으로 가르치고 예수님은 “윤회는 없다”고 피타고라스의 학설은 오류라고 근본적으로 가르치시니 창조와 윤회 둘 중의 하나는 당연히 진리가 아니겠지만.... 견성(見性) 체험과 깨달음(완덕)을 구분하지 못하는 등....(439-444, 449-455, 460-472, 483, 484, 497-502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교리적으로 지키는 정결과 청빈과 순명의 절덕의 경지는【‘성모성심 메시지’에서 ‘천당문 열고 들어가니 9층이 보이고’ 단테의 ‘神曲’에서 연옥, 지옥, 천국도 제10천 하늘까지 여행하듯이....(486페이지 참조)】천당에서는 초보적인 완덕 성인의 단계라고 이제는 파악해 볼 수가 있듯이 즉 송담스님께서《《《인터넷 다음 백과사전「화두(話頭)」: 공안(公案)·고칙(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의 ‘화(話)’는 말이라는 뜻이고, ‘두(頭)’는 머리, 즉 앞서 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화두는 말보다 앞서 가는 것, 언어 이전의 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참된 도를 밝힌 말 이전의 서두, 언어 이전의 소식이 화두이며,… 염화두(念話頭)를 놓치지 않고 계속 하게되면 일을 하거나 말을 하면서도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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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 또렷하게 들리는 간화두(看話頭)를 할 수 있게 되고, 간화두가 되었을 때 거듭 대용맹심을 불러일으키면 참의심(眞疑)이 생겨나서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닌 대무심(大無心)의 경지에 들게 되는데, 이때의 화두를 참화두(參話頭)라고 한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도를 깨치게 된다고 한다. 즉, 화두가 또렷하게 잡혀서 놓아지지 않는 경지, 밤이나 낮이나 잠을 자나 꿈을 꾸나 항상 참화두가 되는 경지에 이르면 7일을 넘기지 않고 확철대오(廓徹大悟:확연히 꿰뚫어 크게 깨우침)하게 된다.》》》화두를 자주 말씀하시듯이 즉 그러니까 ★깨달았다고 말을 해도 초보적인 깨달음은 성숙된 깨달음이 오면 ‘아차! 그때 잘못 깨달았구나!’ 하고 나도 이렇게 여러 번 바뀌었듯이 바뀔 수가 있는 것이지만 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교리대로 살지 않고 10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참된 도(道)도 아닌 것이며 10계명과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지키면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완덕(깨달음)을 이루는 것이고 즉 화두를 들고 선정삼매에 이르는 깨닫음(완덕)도 있어왔고 즉 7덕을 닦아서 완덕(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도 있어왔듯이 즉 이것이 (‘조그마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라는 즉 이것이【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우상을 쳐부수시고 십자가의 구속 사업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교리적인 지혜 자체의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417-424, 439, 455-475, 475-501, 501-509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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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편 501-509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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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우리의 생활이 바로 관상생활이구나!ⓐ’
나는 관상생활이라면
갈멜수도원 같은 데서나
하는 것으로 막연히 알았습니다
분도수도원 같은 반 관상생활은
관상을 반만 하는 것으로
그것도 막연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관상은
갈멜수도원 같은 데서나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겨우 깨닫습니다
영혼이 맑아지면서 문득 깨닫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바로 관상생활이구나!’
※ 2024. 11. 10. 쯤부터 십자가의 요한성인의 어둔 밤(능동적 밤과 수동적 밤)이 바로 (능동적 관상과 수동적 관상)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관상에 대해서 이제는 강의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 인터넷 다음 어학사전「관상6 (觀想)」: (1) [철학] 순수한 이성 활동에 의하여 진리, 실재(實在)를 인식하는 일.
※ 명상(冥想) :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함.
※ 신앙수기 ‘43. 명상과 무아상태’ 편 28-29페이지, ‘60. 십자가의 요한성인의 어둔 밤(능동적 밤과 수동적 밤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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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주관성을 발견함)①’(~④) 편 40-41페이지 참조.
※ 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06-507페이지 참조.【(영성시집 ‘140. ‘우리의 생활이 바로 관상생활이구나!ⓐ’ 편 115페이지 참조)】
186. 이것이 관상입니다ⓑ
성삼수도회의 영성생활 관상생활을 공부하다가
「‘천주교에는 관상(觀想)이라는 것이 있는데,
하느님 대전에 자신의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정신 통일을 시키는 게 아니고,
꿀을 마시면 단맛에 취하듯이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은총의 단맛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은혜를 바라보면서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고 하느님께로 몰입되는 것,
이것이 관상입니다.
그래서 옛날 수도자들은 관상을 중하게 여겼습니다.’」
죄가 없는 생활이 바로 관상생활이라는 생각입니다
죄를 지으면서 어찌 관상생활을 한다고 하겠습니까?
즉 죄를 지으면서 어찌 하느님을 본다고 하겠습니까?
우리 수도회는 관상과 활동을 완전히 겸하는 수도회
이것이 우리 수도회의 회헌이고 영성이고 규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관상과 활동을 완전히 겸하지 않으셨습니까?
※ 정행만 신부의「회헌해설」17페이지 1-6째줄【「성삼수도가족의 영성생활」제8권 251페이지 14-18째줄 “자기 뜻을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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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주님의 뜻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관상 생활입니다. 자기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찾는 생활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끊고 고통을 참는 것, 이것이 바로 활동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수도 생활은 관상과 활동을 겸해야 합니다.”】참조.【(영성시집 ‘186. 이것이 관상입니다ⓑ’ 편 203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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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37-539페이지《《《※ 475페이지 참조 : 성삼 가족수도회 기도서 122-123페이지【「예수성심 호칭기도」】: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하늘에 계신 천주성부님
자비를 베푸소서.(이하 같은 후렴)
● 세상을 구원하신 천주성자님
⃝ 천주성령님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들이신 예수성심
● 동정 마리아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성심
⃝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성심
● 영광과 위엄이 가득하신 예수성심
⃝ 하느님의 (성전)이신 예수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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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존하신 이의 (장막)이신 예수성심
⃝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신 예수성심★
● 사랑의 불가마이신 예수성심
⃝ 나눔과 베풂의 그릇이신 예수성심
● 자비와 인정이 넘치시는 예수성심
⃝ 모든 덕행의 원천이신 예수성심
● 지극한 찬미를 받으실 예수성심
⃝ 모든 마음의 중심이요 임금이신 예수성심
● 온갖 지혜와 지식의 보고이신 예수성심
⃝ 천주성이 충만하신 예수성심
● 성부의 기쁨이신 예수성심
⃝ 풍부한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성심
● 죽은 이들의 희망이신 예수성심
⃝ 지극히 자비로우시고 인내하시는 예수성심
● 모든 이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예수성심
⃝ 생명과 성덕의 샘이신 예수성심
● 저희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성심
⃝ 극도의 모욕을 당하신 예수성심
● 저희 죄로 찢기신 예수성심
⃝ 죽기까지 순명하신 예수성심
● 창에 찔리신 예수성심
⃝ 모든 위로의 샘이신 예수성심
●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성심
⃝ 평화요 화해이신 예수성심
● 죄인들의 제물이 되신 예수성심
⃝ 주님께 바라는 이들의 구원이신 예수성심
● 주님을 믿으며 죽는 이들의 희망이신 예수성심
⃝ 모든 성인의 즐거움이신 예수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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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마음이 어질고 겸손하신 예수님
● 저희 마음을 주님 마음과 같게 하소서.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지극히 사랑하시는 성자의 성심을 보시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바친 성자의 찬미와 보속으로 마음을 푸시어 주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저희를 용서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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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윤회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생명이 있다.”】하시고(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0-188페이지 참조) 사람의 영혼과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부도덕한 종교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어떤 현자에게 주어진 부분적인 계시에 따라 생겼고,” 하시면서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8-279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307-309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2페이지 참조)】하고 영혼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듯이 즉 한마디로 불교의 스님들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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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크게 깨달아도 성서에 대해서는 또 영혼에 대해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 깨달아지듯이.... 또 1706번에서【실은 기적이나 우연은 절대로 없다는 것부터 아셔야 하리다.… 기적 같은 감회를 받으며 평범한 일을 뛰어넘은 것으로 비췰 때는 기적이라 오인하는 것이라오.… 성경결집의 潤文(글을 신비롭게 보이게 지어만듬)이라 할 것이오.()】하였듯이 또 마태 17장 1-9절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편【5절 베드로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에서 모세와 엘리야 사도들도 증인이 된 기적 등, 아무리 바늘만한 작은 기적이라도 하실 수 있으신 분은 아무리 큰 기적이라도 하실 수 있으신 것인데 그리고 天使들이나 예언자들의 기적은 주님께로부터 위탁 받은 기적일 수밖에 없듯이....(영성시집 ‘115. 기적이란’ 편 98페이지 참조) 즉 성모님이, 요셉 성인이 섬기고(황데레사 저,「예수님․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참조) 로마가 회개하고 온 세계가 섬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불자들은 무슨 근거로 언제까지 폄하하려고 하는 것인지!.... 즉 가톨릭의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성서지식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 깨달아지듯이....《《《성무일도 제4권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 일 제2독서 ‘성 예로니모 사제의「이사야서 주해 서문」에서’【유다인 들처럼 “너희는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권능도 모르니까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는 성서 말씀을 듣지 않기 위해, “성서를 파고들어라.” 그리고 “찾으라. 얻을 것이다.”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명에 순종할 때, 내가 해야 할 바를 다하는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의 말처럼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권능이시고 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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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지혜이시라면 성서를 모르는 이는 하느님의 권능도, 그분의 지혜도 모르는 것입니다.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기 창고에서 새 것과 옛 것을 끄집어 내는 집 주인을 본받고 싶으며, 또 아가에서 “아, 임이여, 햇것도 해묵은 것도 임을 기다리며 마련해 두었답니다.”고 말하는 그 신부를 본받고 싶습니다.……
사실 이사야서에서는 주님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임마누엘로, 여러 놀라운 일들과 기적들을 행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분으로, 그리고 만백성의 구세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참조.》》》
즉 그러니까 하느님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아는 것은 누구나 다 말할 수가 있겠지만 성서를 잘 해석한다는 것은 불자라고 해도 아무리 철학자들이라고 해도 하느님에 대해서 이런 저런 탐구를 많이 하고 말한다고 해도 하느님을 깊이 있게 아는 방법은 성서 밖에는 없는 것인데 성서를 모르고 어떻게 하느님을 잘 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예수님은 요한 2장 13-22절 ‘성전 정화’ 편【19절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21절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절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또 예수님의 몸은 하느님께서 온전히 살아 계시는 성전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즉 이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자연 법칙과, 초자연 법칙이 성서 속에 예수님 안에 온전히 공존하시면서 예수님은 시간 밖에 머무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즉 인류의 자연적인 역사에 개입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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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전능한 초자연적인 법칙인 진리인데 즉 이것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장 6절 참조) 할 수 있는 참 하느님의 참된 진리인데 불교는 眞空妙有를 말하면서도 자연적인 법칙인 진리를 어긴다는 것으로만 보는 등.... 이야기를 해서 그러나 이러한 것을 어디에다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마음으로 고심을 했는데.... 불교의 부분적으로 깨달은 견성(見性)으로는(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8-279페이지 참조) 진리를 몰록 깨달아서 그 깨달음이 아무리 성성적적하다고 해도 영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처님과 영혼에 대해서 잘 아시는【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2페이지 참조》》》또 석가모니 부처님의 권한과 예수님의 권한이 다르듯이 즉 마태 28장 16-20절 ‘제자들의 사명’ 편【「18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절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영성시집 ‘168.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편 160-162페이지 참조)】에서 말씀하셨듯이 또 묵시 5장 1-14절 ‘두루마리와 어린 양’ 편【9절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두루마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 값을 치러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 내셔서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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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그들은 큰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주인이시듯이.... 즉 불교에서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고 하지만【삼위일체 하느님(주님)이신 예수님은 과거심가득 현재심가득 미래심가득이시듯이】즉 부처님의 자격과 권한이 예수님의 자격과 권한이 서로 다르듯이 즉 창조의 계시(啓示)진리와 윤회가 근본적으로 다르듯이 즉 2271번에서「하나님이라는 성인의 아래존재인 神을 성인이신 예수님 위에 설정하여 놓고」하였듯이 즉 예수님은 계시(啓示)된 진리이시고 空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에 불과하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00페이지 참조) 즉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온 그 순간에도 전능하신 神(주님)을 출애 32장 1-6절 ‘금송아지’ 편「4절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수송아지 신상을 부어 만들자 모두들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내온 우리의 신이다.”」의 우상과도 구분하지 못했듯이 天使를 창조한 전능하신 神(주님)을 이집트나 그리스처럼 힌두교의 神 개념과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므로 본래 깨달은 체험이 있을 수 없으신 하느님의 본질의 모상이시고 진리의 실체(實體)이신 분이신데 깨달은 성인으로 본다는 점, 즉 그러니까 사상(思想)과 우상(偶像)과 이단(異端)은 비슷한 말로써 하느님께로부터 계시(啓示)된 온전한 진리가 아니고는 사람의 생각이 2%든 20%든 부족한 생각이 섞여 있으면 사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듯이 즉 히브리서 1장 3절에서「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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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하고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은 하느님의 본질의 모상으로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 때에는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어 하늘에 있는 天使들과 같아지는 것인데.... 즉 天使도 사람도 같이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이듯이.... 그래서 사람은 동물과는 다르게 영혼이 있기에 그에 따른 기능(능력)으로 이성과 기억과 의지가 있는 것인데 이것이 가톨릭의 정통적인 교리의 가르침인 것인데.... 그리고 예수님은 天使의 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신약의 계약도 天使와 맺은 것이 아니라 사람과 맺으셨듯이....(영성시집 ‘152. 책 제목을 간파하고「예수님의 엄재수난」이면’ 편 139-142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86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8.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①”’ 편 343-347페이지,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가톨릭은 창조주의 권능과 주도권을 성서 곳곳에서 주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낱낱이 말씀하시듯이(539-544페이지 참조) 하느님께로부터 계시(啓示)된 온전한 진리의 말씀으로 天使와 영혼 문제의 교리를 분명하게 다루는데 불교의 부분적으로 깨달은 견성(見性)으로는 이러한 세상의 창조와 사람이 天使와 같아지는 영혼의 창조를 믿지도 깨닫지도 못하니까 즉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419-420페이지 참조) 하셨듯이 즉 무아(無我)는 영혼이 아니라 동물적인 물질에 관한 이야기이듯이.... 즉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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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주님)이신 예수님은 참나(眞我)로써 영혼이 있는 사람과 계약을 맺으셨듯이.... 그렇다면 동물들이야 영혼이 없으니까 이성과 기억과 의지도 없고 무아(無我)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을 어찌 무아(無我)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신앙수기 ‘43. 명상과 무아상태’ 편 28-29페이지 참조)《《《또 인터넷 다음 블로그【8. 우리말 반야심경- 선행학습〈무아경〉: 수행승들이여, 물질(色) = 몸은 무아(無我)이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몸(물질)이 나라면 이 몸에 질병이 따를 수가 없고 이 몸에 대하여 “나의 몸은 이렇게 되라. 나의 몸이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참조》》》또 사람이 무아(無我)라면 어떻게 무아(無我)인 베드로와 바오로가 무아(無我)의 경지를 체험할 수가 있겠습니까?(사도행전 10장 10절, 11장 5절, 22장 17절 참조) 또 관상, 명상, 묵상이란 말이 있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지 관상, 명상, 묵상은 믿음에 비해 대단한 것도 아니듯이....(영성시집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4페이지 참조) 나의 경우도 명상을 체험하고도 여전히 죄를 짓고 고백성사를 자주 보아왔듯이.... 즉 그러니까 왜 불법을 깨달은 스님들은 정법을 이야기 하면서도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법인 십계명을 깨닫지 못하고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법인 십계명을 부정하는 법이라면 정법이 아니라고 깨달아지듯이....(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29-234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9-425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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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10. 7. 아침 성무일도기도 중에 그전에 곱비신부님 메시지에서 읽었던「판독」이란 말씀이 문득 깨달아졌습니다.《《《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25-626페이지《299번 4. 하느님의 뜻은 (내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너희에게도 너희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데에 있다! 너희가 삶을 통해, 갈수록 그분께 대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너희 정신을 양육하는 매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말씀을 거룩한 책인 ‘성서’에서 찾아라. 내 아들 예수님의 ‘복음’에서 말씀의 온갖 아름다움을 음미하여라. 나는 너희에게 ‘지혜’를 주어, 너희가 ‘성서’의 비밀을 더 깊이 깨닫도록 이끌고 있다.【너희로 하여금 성서 (말씀을) 샅샅이 이해하고 즐기고 간직하며,】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318번 6. 너희가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을 이해하려면, 그리고,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이 시대의 표징을 판독하는 법을 알려면,】오늘날에도 깊은 고요가 요구된다.》참조.》》》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을 이해하려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이 시대의 표징을 판독하는 법을 알려면, 이 책을 읽지 않고 성경을 판독할 수 있다고 한다면 교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성모님께서「판독」이란 이런 말씀을 그냥 괜히 하셨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성령칠은(聖靈七恩)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 곧 지혜, 통달, 의견, 지식, 용기, 효경, 경외심】의 은사가 있듯이 과거 초대교회 때의 초보적인 성경통달의 의미가 있었다면 지금 현재 메시지시대의 성숙된 성경통달의 의미를 한번 곱씹어 묵상해보아야 할 시대라는 생각입니다.(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24, 439-444, 449-456, 481-509, 517-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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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 673, 685, 727-729페이지 참조)
★★★★★ 이 부분은 묵상 년도가 다르지만 판독의 부분이여서 여기에다 한꺼번에 삽입하게 되었음을 참조 바랍니다.《《《★※ 2023. 10. 26. 그리고 또 곱비신부님 메시지 450번 ‘온전한 진리에 대한 깨달음’ 편 특히 4.【그분께서 너희를 ‘하느님 말씀’(요한 8장 47절; 히브 4장 12절)의 비밀 안으로 데려가시어 ‘복음’ 전체의 내용과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관해 기술된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지혜의 빛을 주실 것이며,】의 내용을 즉 요한 8장 47절「“하느님에게서 난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너희가 하느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의 즉 불법의 인간이 나타나 계명을 모독한다는 내용을 즉 ※ 곱비신부님 메시지 405번 ‘표범같이 생긴 짐승’ 편【20. - 향주삼덕과 사추덕의 열매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습관적으로 죄의 상태에서 사는 삶의 열매인 칠죄종(七罪宗)의 확산으로 대립한다.… 21. 칠죄종의 희생물이 된 자는 누구나 하느님께만 합당한 예배를, 바로 그 모든 죄의 화신(化身)인 거짓 신에게 바치도록 점차 유인된다. 여기에 가장 중대하고 끔찍한 모독이 있다. 그래서 ‘짐승’의 머리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묵시 13장 1절)이 적혀 있다. 프리메이슨의 각 집회소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여러 (거짓) 신들을 경배하게 만드는 것이다.】에서 흉측한 독성죄가 무엇인지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깨우쳐 주었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31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곱비신부님 메시지 내용을 깨닫는 것이 바로 ‘온전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핵심이며 ‘성서 (말씀을) 샅샅이 이해하고’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이 시대의 표징을 판독하는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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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지금 현재시대의 성경통달의 의미라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깨달아졌습니다.(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24, 439, 449-456, 475-484페이지,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591, 601-617, 622-630, 630-631페이지 참조)
오! 하느님께서 손수 쓰신 십계판을 가서 보고 10계명을 잘 지키고 7덕을 잘 지키고… 즉 그러니까 사람은 영혼이 있으니까 10계명을 주셨고 10계명을 주셨으니까 짐승과는 다른 차원이 아니겠습니까? 아멘! 아멘! 아멘!(72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창조를 하셨으면 10계명을 주실 수밖에 없고 10계명을 주시지 않으시려면 창조도 안하셨을 것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이제야 알고 보니 10계명이 그만큼 엄중하고 준엄하고 중대하다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 2023. 11. 6. 성무일도 4권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마카베오 상권에 의한 독서’ 1장 41-64절
【―안티오쿠스의 유다인 박해―
그 무렵 41절 안티오쿠스왕은 온 왕국에 영을 내려 모든 사람은 자기 관습을 버리고 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45절 성소 안에서 번제를 드리거나 희생 제물을 드리거나, 술을 봉헌하는 따위의 예식을 하지 말 것. 안식일과 기타 축제일을 지키지 말 것. 46절 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47절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울 것.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희생 제물로 잡아 바칠 것. 48절 사내아이들에게 할례를 주지 말 것. 온갖 종류의 음란과 모독의 행위로 스스로를 더럽힐 것. 50절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54절 백사십오년 기슬레우월 십오일에 안티오쿠스왕은 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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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위에 가증스러운 파멸의 우상(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참조.
※ 곱비신부님 메시지 405번 ‘표범같이 생긴 짐승’ 편【8. - 성부와 성자께서 가르쳐 주시고 성령께서 밝혀 주신 이 길을 인간이 걷지 못하도록 하려고 방해(공작을 펴며) 싸우는 것 - 간교하면서도 끈질기게 싸우는 것이야말로, ‘검은 짐승’, 곧 프리메이슨의 일이다. 사실, ‘붉은 용’은 온 인류가 하느님을 배제하고 부정하며 살게 할 목적으로 활동하기에 무신론이라는 오류를 퍼뜨리지만, 프리메이슨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묵시 13장 1절 참조)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짐승은 입을 벌려 하느님께 대한 모독의 말을 뱉아내며 하느님의 이름과 그분의 처소를, 그리고 하늘에 거처하는 모든 이들을 모독한다.(묵시 13장 5-6절 참조) 가장 큰 모독은 오직 하느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를 여러 피조물이나 사탄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프리메이슨의 그 괴악한 행위 배후에서 검은 미사와 악마숭배가 도처로 퍼져나가고 있다. 더욱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영혼 구원을 가로막으려 드는 프리메이슨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무효화하려고 기를 쓴다. 11. -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출애 20장 7절 참조)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음흉하고 악마적인 온갖 수법을 동원하여 하느님과 그분의 그리스도께 대한 모독으로 반역하고, 무엄하게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무슨 상품의 상표 수준으로 비하시키며, 그분의 생애 및 신적 ‘위격’에 관한 독성적인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13. - “부모를 공경하라.”(출애 20장 12절) - 는 계명에 대한 프리메이슨의 반역은 가정을 부부 중심의 새로운 유형이거나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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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 동성애자들의 동거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14. - “살인하지 말라.”(출애 20장 13절)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곳곳에서 낙태를 합법화시키고 안락사를 받아들이게 하며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마땅한 존중이 거의 사라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 15. - “간음하지 말라.”(출애 20장 14절)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온갖 형태의 음란을 정당화하고 부추기고 선전하며, 심지어 자연을 거스르는 음행까지 정당화한다. 20. -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사는 삶의 열매인 향주삼덕과 사추덕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습관적으로 죄의 상태에서 사는 삶의 열매인 ★칠죄종(七罪宗)의 확산으로 대립한다.★ (즉) 믿음에 대해서는 교만으로, 바람에 대해서는 음욕(迷色)으로, 사랑에 대해서는 인색으로, 현명에 대해서는 분노로, 용기에 대해서는 나태(懈怠)로, 정의에 대해서는 질투로, 절제에 대해서는 탐욕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21. 칠죄종의 희생물이 된 자는 누구나 하느님께만 합당한 예배를, 바로 그 모든 죄의 화신인 거짓 신에게 바치도록 점차 유인된다. 여기에 가장 중대하고 끔찍한 모독이 있다. 그래서 ‘짐승’의 머리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묵시 13장 1절)이 적혀 있다. 프리메이슨의 각 집회소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여러 (거짓) 신들을 경배하게 만드는 것이다. 22. (‘짐승’의) 첫째 머리는 교만이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믿음과 대립하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이성과 교만과 기술과 진보라는 신을 숭배하도록 몰아간다. 23. 둘째 머리는 음욕이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바람과 대립하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섹스 내지 음행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이끈다. 24. 셋째 머리는 인색이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사랑과 대립하는 이것이 어디서든지 돈을 신으로 숭배하는 (풍조를) 퍼뜨린다. 25. 넷째 머리는 분노라는 모독적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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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있다. 현명과 대립하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불목과 분열을 신으로 숭배하게끔 유도한다. 26. 다섯째 머리는 나태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용기와 대립하는 이것이 여론과 핍박에 대한 공포라는 우상 숭배를 널리 파급시킨다. 27. 여섯째 머리는 질투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정의와 대립하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폭력과 전쟁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도록 이끈다. 28. 일곱째 머리는 탐욕이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절제와 대립하는 이것이 향락주의와 물질주의와 쾌락이라는 우상을 찬양하며 숭배하게끔 인간을 이끈다. 29. 프리메이슨의 ‘롯지’(지부 집회소)들이 오늘날 교활하게 활약하며 임무로 삼고 있는 일이야말로, 어디서든지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의 거룩한 법을 업신여기게 하는 것이요, 십계명을 공공연히 반대하면서 하느님께만 합당한 예배를 거짓 우상에게 바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거짓 우상은 이성(理性), 육체, 돈, 불목, 지배욕, 폭력, 쾌락인데, 이를 숭배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일로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악과 악습과 죄의 어두운 종살이 (상태)로 서둘러 빠져드니,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 죽음의 순간에는 영원한 불구덩이인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30. 이제 너희는 이 시대에, ‘검은 짐승’ 곧 프리메이슨의 무섭고 음흉한 공격에 대항하는 내 ‘티없는 성심’이 얼마나 안전한 너희의 피난처이며 하느님께로 데려가는 확실한 길인가를 깨달았을 터이다. 티없는 내 성심에는 너희 ‘천상 엄마’가 쓰는 전략이 설계되어 있다. 31.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모든 자녀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십계명을 지키고, ‘복음’을 곧이곧대로 실천에 옮기며,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무는 데 필요한 도움을 얻기 위해 자주 성사들을 받되, ★무엇보다도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자주 받도록 가르친다.★ (또한) 활기 있게 덕행을 닦으며 언제나 선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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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순결과 성화의 길을 가도록 양성한다. 32. 그리하여, 나는 내게 자신을 봉헌한 내 작은 아들들인 너희를 (도구로) 써서, ‘검은 짐승’이 너희 (앞길)에 파두는 간교한 함정을 폭로하고, 결국에 가서는 그 짐승이 오늘날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거슬러 개시한 대공격을 헛된 것으로 만들 작정이다. 특히, 프리메이슨이 더없이 크게 참패했을 때, 마침내 승리를 거둔 내 ‘티없는 성심’은 온통 찬란한 광채에 싸여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참조.★》》》즉 그러니까 우리는 10계명과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지키고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칠죄종(七罪宗)을 피하고 무엇보다도 대화하고 소통하려고 언어를 주셨듯이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자주 받고 우리 영혼 안에 우리 영혼의 정배께서 현존하실 수 있으시도록 깨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2024. 8. 24. 그리고 또 여기서 우리는 아주 신비적이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영혼의 정배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전능한 사랑을 지니신 예수님이니까 즉 전능하게 존재하는 예수님의 사랑이니까 지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한 것이지 그 사랑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뚜렷하게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셔서 우리가 뚜렷하게 전능한 사랑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듯이 그래서 우리는 신덕, 망덕, 애덕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 세상에서도 하늘나라에서도 신비적으로 영원히 사랑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피조물인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자녀를 출산하기 위함이며 피조물로서 한정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 2024. 8. 26. 새벽 1시에 잠이 깨이며 마태 23장 1-36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 편【8절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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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절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절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의 말씀의 뜻이 전능한 아버지는 오직 한 분뿐이시고, 전능한 스승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라는 뜻이 문득 깨달아졌습니다.
※ 2024. 8. 28. 수녀원에서 미사 중에 전능한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영원히 항상 행사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영성시집 ‘70. 어린 양의 혼인잔치’ 편 63-64페이지,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183. 가톨릭교회의 구원관과 불교의 구원관’ 편 189-195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15-335페이지,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09-511, 518-519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746-754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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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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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즈음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을 읽고 있는데 ‘신비적 혼인’이란(400-402페이지 참조) 글들과 ‘지성과 기억과 의지’라는 글들을 읽으면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 문득 깨닫습니다. 나는 깨닫고 보니 이 세상에 사는 것이 감사하기보다는 과거 현재 미래에도 항상 현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무한히 감사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기 이전의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무한히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살게 하시려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무한히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세 1장 26절에서「“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하시고 우리에게 영혼육신을 주시어 이성과 기억과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지어 내시고 또 예수님께서 요한 13장 34절에서「“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하시고 요한 14장 15절에서「“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하시고 23절에서「“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 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하셨듯이 천주성삼께서 우리 영혼 안에 현존해 사시면서 당신의 뜻 안에서 이성과 기억과 의지로 당신의 현존을 기억하며 항구히 인식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무한히 감사합니다. 즉 삶이란【계시의 완성자이신】전능하신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이지 즉 신랑이신 주님과 신부인 교회의 관계이듯이 즉 ‘신비적 혼인’의 관계이듯이 즉 우리 성삼 가족수도회 기도서「천주성삼 호칭기도」에서【 ⃝ 지극히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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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시어 우리를 주의 모상으로 내신 성부여, ⃝ 우리 영혼의 정배이신 천주성자여,】하듯이 즉 삶이란 영혼의 정배이신 주님과 이성과 기억과 의지를 가진 우리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신앙수기 ‘65. “우리가 먼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살짝 보여 주셨습니다”’ 편 47페이지, ‘83. “정배”라는 뜻이 새롭게 뇌리에 파고들었습니다.’ 편 73-74페이지, 이사야 62장 5절 참조)
그리고 마태 22장 23-33절 ‘부활에 대한 토론’ 편【30절 부활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천당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고 천사들처럼 육신의 정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듯이 본성적인 사랑을 무한히 초월한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초성적인 사랑으로써 우리 수도회의 ‘회헌과 회칙’에서 보았던「그리스도를 따름을 생활의 최상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즉 이 세상에서도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따름을 글로서가 아니라 생활의 최상 규칙으로 생활로 깨닫습니다.(영성시집 ‘70. 어린 양의 혼인잔치’ 편 63-6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율법의 골자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듯이(마태 22장 34-40절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참조)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해야(요한 1서 4장 20-21절 참조)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완전히 사랑하는 척도는 바로 살아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고) 복음을 지키고 10계명을 지키고 완덕인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지키는 즉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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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써 성직자, 수도자들이 완전한 애덕을 추구할 목적으로 서원까지 하며 지키는 덕으로써 즉 정결, 청빈, 순명의 서원을 하였는데 다른 것을 지켜서 완덕을 느끼겠습니까? 즉 그래서「천주성삼 호칭기도」에서「⃝ 세상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예비하신 나라에 우리를 데려가시기를 구하오니,」즉 우리에게 예비하신 하늘나라를 말씀하시듯이 즉 그러니까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삼위일체 예수님을 교회가 영혼의 정배로 찬미하는 것도 당신께서 시편에서 아가서에서 성서 곳곳에서 가르쳐주셔서....【이사야 62장 5절. 마태 9장 15절. 25장 1, 6, 10절. 28장 19절. 마르 2장 19, 20절. 루가 5장 34, 35절. 요한 3장 29절. 고린전 12-13장. 에페소서 4장 15절. 5장 30-32절. 골로사이 2장 19절. 묵시 21장 2절 참조】지금이라도 합당하게 ‘신비적 혼인’에 대해서 찬미할 수가 있는 것이지 우리 인간 스스로는 찬미를 해도 제대로 찬미할 수도 없고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즉 그러니까 이 마지막 시대에 천주성삼의 영광을 특별히 드러내 주시는데 우리가 외면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영성시집 ‘213. 천주성삼의 현존을 항구히 인식해야 한다’ 편 380-385페이지 참조) 삼위일체이신 영혼의 정배이신 천주성자께 당신의 뜻 안에서 영원무궁토록 세세에 영원히 영광과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드립니다. 아멘! 아멘!
※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제1권 ‘31.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당신과의 신비적 혼인을 준비시켜 주시다.’ 편, ‘37. 신비적 혼인을 위한 마지막 준비’ 편, ‘38. 신비로운 혼인 예식’ 편, ‘43. 예수님께서 신비적 혼인을 천상에서 새로이 할 준비를 시키시려고 향주삼덕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믿음’은 영혼을 비추는 빛이다.” 편, ‘46. 천상 혼인을 위한 마지막 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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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정과 고통에 대한 갈망’ 편, ‘47. 복되신 성삼위 대전에서 새로이 거행된 신비적 혼인’ 편, ‘49. 세번째 혼인 : 십자가의 혼인’ 편 참조.
※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제6권 ‘72. 은총의 빛, 예수님의 수난을 이룬 모든 고통은 거의가 다 삼중적이다.’ 편【7. 사실 인간이 하느님한테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되면서 지성과 기억과 의지라는 세 가지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다.】, ‘74. 자기 극복은 나라 하나를 차지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편【2. “자기 극복은 나라 하나를 차지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3. 그리고 그분은 모습을 감추셨다.】참조.
※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제11권 ‘64.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결합되면 영혼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형성된다. 하느님의 뜻을 소유함은 전부를 소유하는 것.’ 편 참조.
※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제12권 ‘149. ‘첫째 피앗’과 ‘둘째 피앗’을 발하신 주님께서 한 영혼을 통해 ‘셋째 피앗’을 발하시려는 까닭.’ 편, ‘153. ‘셋째 피앗’은 ‘성화 피앗’이요 ‘마지막 피앗’으로서 인간을 창조 당초의 본연의 상태로 돌아오게 하리니, 하느님께서 이 마지막 피앗 안에서 영원히 쉬시리라.’ 편 참조.
※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제14권 ‘20. 영혼 창조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간의 공조 관계 인간의 의지와 지성과 기억의 타락으로 인한 예수님의 고뇌’ 편【3. 나 하느님은 사람에게 의지와 지성과 기억을 부여하였다. 6. 내 천상 아버지께서 무엇보다 먼저 그분의 의지와 똑같이 사람의 의지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것이 되도록 정하신 것은, 우리의 생명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8. 둘째 행위로, 하느님의 아들인 내가 인간에게 지성을 부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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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나의 지혜와 지식을 소통하였다. 인간이 앎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을 누리고 선한 것을 즐기게 하기 위함이었다. 10. 그리고 셋째 행위로, 성령께서 인간에게 기억을 부여하였다. 수많은 은혜를 기억함으로써 끊임없는 사랑의 흐름 안에, 끊임없는 친교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사랑이 인간에게 영예로운 관을 씌어주고 그를 얼싸안으며 그의 삶 전반에 스며들 예정이었다.】, ‘67. 예수님께서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영혼 안에서 반복하시는 일. 지식의 필요성 ― 많이 알수록 많이 받는다. 하느님 뜻을 알리려고 오랜 세월 기다려 오신 예수님의 산고.’ 편, ‘68. 피조물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삼위 하느님 자신의 뜻만이 하늘과 땅 사이의 흐름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수탁할 수 있다.’ 편, ‘75.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의 흐름들’ 편 참조.
※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제15권 ‘25. 지옥 뱀의 머리를 밟아 뭉개야 하는 사명. 하느님 뜻 안의 삶은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승리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신 일차적 목적과 이차적 목적.’ 편, ‘41.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큰일일수록 도구로 뽑힌 이는 그만큼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그분의 선하심으로 또 다른 은총의 시대가 열리리라.’ 편 참조.
※ 성삼 가족수도회 기도서 20-24페이지「천주성삼 호칭기도」:
⃝ 천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천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 그리스도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하늘에 계신 천주성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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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이하 같은 후렴)
● 세상을 구원하신 천주성자여,
⃝ 천주성령이여,
● ★삼위일체이신 천주여,★
⃝ 하나이요, ★나누지 못할★ 성삼이여,
● 체는 하나이시요, 위는 셋으로서 한량이 없으신 성삼이
여,
⃝ 그 이름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지극히 높으신
성삼이여,
●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도다, 지극히 거룩하
신 성삼이여,
⃝ 만물의 시작과 마침이신 흠숭하올 성삼이여,
● 한없는 위엄을 갖추신 영화로운 성삼이여,
⃝ 만물을 내시고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천주성삼이여,
●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신 천주성삼이여,
⃝ 순전한 신(神)이시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를 흠숭하
는 이를 원하시는 성부여,
● 지극히 어지시어 내신 바를 버리지 않으시는 성부여,
⃝ 만물의 시작과 마침이신 전능(全能)하신 성부여,
● 지극히 인애로우시어 외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게
하신 성부여,
⃝ 지극히 인자하시어 우리를 주의 모상으로 내신 성부여,
● 지극히 너그러우시어 날짐승과 길짐승을 기르시며 주를
믿는 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성부여,
⃝ 성부의 외아들 천주 제2위여,
● 우리 사람을 사랑하시는 천주성자여,
⃝ 우리의 형이시요, 벗이시요, 우리를 구속하신 천주성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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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스승이시요, 목자시요, 양식이시요, 생명이신 천
주성자여,
⃝ 우리의 주재자시요, 영원한 희생이신 천주성자여,
● 우리의 귀한 손님이시요, 의사이시요, 임금이신 천주성
자여,
⃝ 우리 ★영혼의 정배이신★ 천주성자여,
● 하늘과 땅을 서로 화해시키는 중재자이신 천주성자여,
⃝ 우리의 길(道)이신 천주성자여,
● 우리가 마땅히 믿을 진리(眞理)이신 천주성자여,
⃝ 우리의 생명(生命)이신 천주성자여,
● 슬기와 통달과 의견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굳셈과 지식과 두려움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모든 선지자를 묵계하신 천주성령이여,
⃝ 모든 성인들에게 선을 행하게 하신 천주성령이여,
● 미쁨과 화목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은혜로움과 인자함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양선과 인애와 열절함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우리의 앞길을 밝게 하시는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기도와 정성과 꿋꿋함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겸손과 인내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용맹과 굳셈과 항구함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절제와 정결과 순전한 선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순박과 화애의 신(神)이신 천주성령이여,
⃝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천주여,
●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를 용서하소서.
⃝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198)………………………………
● 온갖 악에서,
성삼이여, 우리를 구하소서.(이하 같은 후렴)
⃝ 온갖 교만에서,
● 식음을 과도히 하는 악에서,
⃝ 모든 분노와 질투에서,
● 모든 음란하고 정결치 않음에서,
⃝ 모든 게으름과 온갖 근심에서,
● 주의 무량하신 덕능으로,
⃝ 주의 무한하신 지혜로,
● 주의 풍후하신 어지심으로,
⃝ 주의 영원하신 영광과 위엄으로,
● 주의 전지(全知)와 통할하심으로,
⃝ 주의 무한하신 사랑과 인자하심으로,
● 주의 공의에 의한 헤아릴 수 없는 섭리로,
⃝ 심판 날에,
● 죄인들이 구하오니,
성삼이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이하 같은 후렴)
⃝ 우리 모든 날에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주를 섬기게 하시
기를 구하오니,
●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공경케 하시기를 구하오니,
⃝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게 하시기를 구
하오니,
● 성교회의 거룩한 축일을 선행으로 정성되이 지키게 하
시기를 구하오니,
⃝ 부모와 모든 어른을 마땅한 공경과 두려움과 순종으로
섬기게 하시기를 구하오니,
● 마음과 말과 행실로 남의 생명이나 명성이나 체면에 해
를 끼치지 말게 하시기를 구하오니,
………………………………(199)………………………………
⃝ 우리 마음의 추악한 육욕을 없애 주시기를 구하오니,
● 공정치 않음으로 남의 재물에 손해를 주지 말게 하시기
를 구하오니,
⃝ 남을 망녕되이 증참하며 거짓 증거와 거짓말을 하지 말
게 하시기를 구하오니,
● 남의 것을 탐내지 말게 하시기를 구하오니,
⃝ 우리 주 천주를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케 하
시기를 구하오니,
● 주를 만유 위에 사랑하고 주를 위하여 남을 내 몸같이
사랑케 하시기를 구하오니,
⃝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원치 말게 하시기를
구하오니,
● 우리를 모든 은총으로 풍성케 하시기를 구하오니,
⃝ 주의 무한하신 사랑과 인내를 가벼이 여기지 말게 하시
기를 구하오니,
● 우리 육신을 거룩하고 아름다운 산 제물로 천주께 바치
게 하시기를 구하오니,
⃝ 세상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예비하신 나라에 우리를 데
려가시기를 구하오니,
●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우리를 위하여 성부께 전달하소서.
⃝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우리에게 성령을 주소서.
⃝ 복되신 성삼이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 흠숭하올 성삼이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우리 주 천주를 찬송하나이다.
………………………………(200)………………………………
● 세세에 영원히 찬미하나이다.
⃝ 모든 천사와 성인이 다 주를 찬양하나이다.
● 세세에 영원히 주를 찬미하고 찬송하나이다.
⃝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이 다 주를
찬송하나이다.
● 세세에 영원히 주를 찬미하고 찬송하나이다.
⃝ 성부와 성자를 성령과 함께 찬송하나이다.
● 세세에 영원히 찬미하며 찬송하나이다.
⃝ 주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 내 부르짖음이 주께 이르게 하소서.
+ 기도합시다.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주는 이미 우리에게 진실한 신덕으로 삼위의 영광을 알아 믿게 하시고, 엄위하고 전능하신 주의 일체이심을 흠숭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이 신덕을 견고케 하시어 모든 어려움에서 항상 보호하여 주소서. 주여, 우리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심으로 당신의 전능을 특별히 드러내시니, 당신의 인자하심으로 우리에게 천상 영복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주는 넘치는 사랑으로 기도하는 자의 공로와 구하는 것 이상으로 더 주시오니, 주의 인자하심을 베푸시어 우리 양심이 두려워하는 것을 풀어주시고, 우리가 감히 구하지 못하는 것도 베풀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226번 1. 나는【‘성령의 배필’】이다. 11.【당신 정배,】), (510번 5. 영원으로부터 성령께서는 당신의 풍성한 신적 ‘사랑’에 의해 내 동정 모태가 기적적으로 열매를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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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하심으로써 아무런 인간적 개입 없이 ‘어머니’가 되는 나를 생각하셨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나의【신적 ‘배필’】이 되신 것이다.), (521번 13. 지극히 사랑하시는【당신 정배가】당신을 부르는 음성을 들으시어 오소서.
나는【‘성령의 거룩한 정배’】이다. (하느님) 성부의 기묘한 계획에 따라 참으로 ‘성자의 어머니’가 되었듯이, 참으로【‘성령의 정배’】도 된 것이다. 성령께서 내 영혼에 당신 자신을 부어 주시어【혼인의 진정한 내적 결합】이 되게 하심으로써 신적 열매가 태어나게 하셨으니, (그 열매가 바로) 지극히 순결한 내 동정 모태에 잉태된 ‘말씀’이시다. 14. 성령께서는 당신을 부르는 (이)【정배의 음성】을 못들은 체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너희의 간청은 이 마지막 시대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즉) 너희 천상 엄마인 내가 가르쳐 주었고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 기도를 습관이 될 정도로 거듭거듭 자주 바쳐 다오 : “오소서, 성령님, 지극히 사랑하시는【당신 정배,】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의 힘있는 전구를 들으시어 오소서.” 15. 그리고 희망에 너희 마음을 열어라. 가장 위대한 기적인 ‘두 번째 성령 강림’이 바야흐로 너희에게 이루어지려 한다.) 참조.
※ 신앙수기 ‘83. “정배”라는 뜻이 새롭게 뇌리에 파고들었습니다.’ 편 73-74페이지 참조.
※ 영성시집 ‘70. 어린 양의 혼인잔치’ 편 63-64페이지, ‘147. 두 증인 두 예언자①’ 편 124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35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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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4. 18. 어제 새벽 4시쯤 잠이 깨어 요즈음「천상의 책」을 금지시키는 우리나라 교회의 상황이 묵상이 되면서.... 나주 율리아 자매님의 (아멘, 셈치고, 생활의 기도화, 내 탓이요, 봉헌)의 영성을 인간적인 지식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가 있겠는가? 즉 잘못하면 하느님을 대적하는 꼴이 될 것이니 이것은 신약시대에도 지금의 메시지 시대에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사도행전 5장 39절 참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루이사 피카레타「천상의 책」까지 오류로 보니....(영성시집 ‘214.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피앗」과「우리 (성삼위)」②”’ 편 386-397페이지,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참조) 나는 아시아의 중심인 우리나라가 새 이스라엘이며 새 예루살렘이라고 좋아만 하였는데 이 시대의 오류와 영적 전투까지도 아시아의 중심인 우리나라에서부터 이렇게 시작이 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곱비신부님 메시지 책에서도 지금시대는 오류가 만연한 시대라고 오류와 영적 전투를 수십 번 말했듯이 예언자들이 오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예언자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오류를 말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영성시집 ‘18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편 211-213페이지,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591, 601-606, 611-617, 622-630, 630-631페이지,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739-743, 751-754, 791-795페이지 참조)【(영성시집 ‘147. 두 증인 두 예언자①’ 편 124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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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7장 홍수가 나기까지도 그냥 일반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수준의 구전(口傳)이 아니라 그 시대에도 창세기 5장 1-32절 ‘아담의 자손’ 편과 11장 10-26절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편을 보면 창세기 전체가 즉 모세오경 전체가 성서로 묵어지기 전의 문서전승으로 추측되지만(인터넷 다음 백과사전「가톨릭 교회의 성서와 성전」참조) 그리고 창세 31장 22-42절 ‘라반이 야곱을 쫓아가다’ 편과 43-54절 ‘야곱과 라반이 계약을 맺다’ 편을 보면 물론 장인어른의 신들(장인 댁 수호신들)과 나호르의 하느님은 무슨 차이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하느님께서 즉 테라를 비롯한 조상들이 섬겼던 나호르의 하느님께서 즉 여기서 나호르의 하느님이란 단순한 하느님의 개념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고 민족적으로 아브라함의 하느님으로 자리매김 하심을 엿볼 수가 있듯이 즉 노아(600세)홍수에서(창세 7장 6, 11절 참조) 아브라함까지 즉 홍수를 겪은 후 350년을 노아를 모시고 같이 살아왔던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후손들이듯이(창세 9장 28-29절 참조) 바로 그런 노아와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 즉 테라를 비롯한 조상들이 섬겨왔던 나호르의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느님으로 자리매김 하기 전까지의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계약을 저버리고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신 것이 아니라 그 계약이 이어지게 하신 즉 에녹은 카인의 후손 에녹(창세 4장 17절 참조)과 셋의 후손인 아담의 칠 대손 에녹(창세 5장 18절 참조)이 다른 에녹으로서(유다 1장 14절 참조) 에녹의 아들 무투셀라가 아담과 노아의 동시대를 살았고【창세 5장 25절 므투셀라는 백팔십칠 세 되었을 때, 라멕을 낳았다. 27절 므투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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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모두 구백육십구 년을 살고 죽었다. 28절 라멕은 백팔십이 세 되었을 때 아들을 낳고, 29절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노아라 하였다.(187세 + 182세 + 600세 = 969세)】나호르와 테라가 노아와 동시대를 살았듯이【셈은 100세에 아르팍삿을 + 아르팍삿은 35세에 셀라흐를 + 셀라흐는 30세에 에베르를 + 에베르는 34세에 펠렉을 + 펠렉은 30세에 르우를 + 르우는 32세에 스룩을 + 스룩은 30세에 나호르를 + 나호르는 29세에 테라를 + 테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호르와 하란을 = 390년(창세 11장 10-32절 참조)】즉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이의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시어 제사의 전권이 또는 창세기 1-12장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기록이 전수되기 전까지의 그런 노아와 데라와 같이 살아왔던 나호르의 하느님이실 것이며.... 그리고 성경연대기도 다 맞고, 천년왕국【성부의 시대 4,000년 + 성자의 시대 2,000년 + 성령(천년왕국)의 시대 1,000년 = 총 7,000년 참조】의 성경의 진리도 다 맞다는 생각입니다. 즉 그러니까 우리 성삼은혜 ‘천주성삼 노래’에서「2. 천주성삼 마지막 공경하오며」(신앙수기 ‘99. 성삼은혜의 핵심을 깨달음’ 편 110-112페이지 참조) 하였듯이 인류가 천주성삼을 공경하게 하는 천년왕국 재림시대를 당신의 전능으로 마련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생각입니다. 제2의 성탄시기가 온 것입니다. 제2의 성령강림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창조사업, 구원사업, 이 시대의 성화사업(영성시집 ‘178. 성삼은혜의 핵심(주님의 궁전)을 깨달음’ 편 174-176페이지, ‘185. 성삼수도회의 영성생활 핵심부분’ 편 199-202페이지 참조)인 성삼은혜인 천년왕국의 재림시대가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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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수님을 포함하여 세계 4대 성인이란 말이 있듯이「석가모니 부처님은(BC 563~BC 483)」: (나는 진리(지혜)를 깨달았다.),「공자는(BC 551~BC 479)」: (예(禮), 인(仁)의 사상),「소크라테스는(BC 470~BC 399)」(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52, 482-483페이지 참조)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성경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이 단순한 생각에서 한 말이겠지만.... 또 마태 16장 13-20절 ‘베드로의 고백’ 편【13절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14절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15절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절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17절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절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절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의 즉 14절에서「“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는 말과 같은 말이겠지만....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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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이런 사람들을 다 먼저 보내고 구약의 정점을 찍어야 할 때가 되자 동정녀를 택하시어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께 예수님께서 잉태되어 나시는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고 깨달아지듯이....《《《※ 인터넷 다음 동영상(복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릭의 책 참조) [성모 마리아의 생애] 총1-125편 중「2. 성모님의 부모님 안나와 요아킴【불임 상태가 되기 전에 낳은 안나의 첫 딸 메리 헬리】」,「3. 성전에서 굴욕당한 요아킴【대사제 루벤】」,「5. 천사가 요아킴에게 원죄없는 잉태의 축복을 주다」,「7. 성모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가 이루어지다」,「8. 성모 마리아의 탄생【안나의 맏딸인 마리아 헬리가 집을 돌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약 19살로 요아킴의 수목자 중 한명인 클레오파스와 결혼했으며】」,「12. 13. 14. 15. 16. 마리아의 성전 봉헌식」,「18. 마리아와 성 요셉의 운명적 만남【성전 소녀들은 성장하면 결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을 성전에 보내면서 그들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경건하고 더 영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처녀들 중 한 사람의 결혼이 언젠가 약속된 메시아의 오심에 기여할 것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82-283페이지 참조)》》》또 ★노자의 도덕경에 道可道 非常道라고 하였듯이 즉 道를 道라고 하면 道가 아니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골백번 道를 말씀하셔도 예수님은 항상 道이시듯이★ 즉 예수님은 요한 14장 6절「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즉 불이법문(不二法門)도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 말하는 진리는 온전한 진리가 아니고 부분적인 진리이듯이 즉 사도행전 17장 16-34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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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에 간 바울로’ 편【23절 내가 아테네 시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예배해 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을 보더라도 소크라테스의 시대가 인간이 ‘알지 못하는 神’을 알아가는 전성기였듯이 즉 갈라디아 3장 15-29절 ‘율법과 약속’ 편「19절 그리고 이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중재자의 손을 거쳐 제정된 것입니다. 20절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은 중재자를 내세우지 않고 하느님 한 분의 생각으로 하신 것입니다.」에서 또 골로사이 2장 17절「이런 것은 장차 올 것의 상징(그림자)에 지나지 않고 그 본체(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에서 또 히브리서 1장 3절「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10장 1절「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11장 1절「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그러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빼고는 구약 시대처럼 결국에는 하느님 진리의 실체(實體)를 잘 알 수가 없고 우상화로 미혹(迷惑) 될 수밖에 없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24, 429-432, 439, 455-475, 483-484, 501-509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계시(啓示)를 보지 못해서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야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니까 견성(見性)이나 생사윤회는 다른 것인데 즉 그러니까 견성(見性)을 하면 생사윤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회개로 다시 태어나야 번뇌가 없고 용서를 받고 마음이 번뇌하는 윤회가 없는 것인데 즉 八正道는 영성적으로 열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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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기까지 마음이 번뇌에서 돌고 돌아 윤회한다고 영성적으로만 적용하면 될 것인데 영혼 육신을 가진 사람을 동물의 몸처럼 육신만 가진 사람처럼 잘못 적용해 버렸듯이.... 즉 그러니까 구약의 창세기부터 꾸준히 계시(啓示)되었던 창조주 하느님과 이집트나 그리스처럼 인도에서 우상화 시킨 창조신인 브라흐만과는 전혀 다른 순전한 神(하느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즉 사람의 사상이 섞이지 않은 온전한 계시(啓示)진리이신 창조주 하느님이시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9-421, 429-432, 435-436, 437-444, 447-454, 455-459, 460-469, 469-479, 481-484, 489-509페이지 참조) 즉 예수님께서 스승과 아버지는 오직 한 분뿐이라고 말씀하셨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18, 498-502페이지 참조) 즉 히브리서 1장 1-4절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다’ 편【2절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절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느님 본질의 모상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즉 우리 천주성삼 수도회의 예언자 황데레사 어머님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빛을 영안으로 본 것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말로 풀이를 하면서도 그런 절대적 진리인 본질적인 전능한 하느님의 체험을 많이 하면서도 오직 믿을 뿐이지 ‘어리석고 순박한 마음’(메시지 받은이 황옥희 데레사,「성모성심 메시지」책 ‘7. 데레사의 생활’ 편 60-6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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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이라 본인의 지식으로는 전능한 하느님을 교리적으로 전혀 설명하지를 못한다는 생각이지만.... 즉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의 영안이든 육안이든 정문-안(頂門眼)이든 영원 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불생불멸하는 전능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거나 빛을 본다는 뜻이듯이.... 즉 그러니까 현세이든 내세이든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고 결국에는 모든 우상을 쳐부수시고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창시자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알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24, 429-432, 437-444, 447-454, 455-475, 475-484, 489-509, 539-544, 544-548, 548-550, 575페이지 참조) 즉 마태 14장 13-21절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편에서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을 행하시고 바로 그날 저녁에 마태 14장 22-33절 ‘물 위를 걸으신 기적’ 편【22절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4절 그 동안에 배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25절 새벽 네 시쯤 되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26절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려 엉겁결에 “유령이다!” 하며 소리를 질렀다. 27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28절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29절 예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밟고 그에게로 걸어갔다.】을 보면 계획적으로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여주셨듯이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볼 수 있는 존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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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 하느님은 예수님의 보이지 않는 존재이시듯이【(마태 11장 25-27절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편, 루카 10장 21-24절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편, 콜로새서 1장 15절「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참조)】즉 자연적인 법칙과 초자연적인 법칙이 공존하고 있듯이 즉 부활 때에는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어 하늘에 있는 天使들과 같아진다는 즉 天使들은 하늘과 땅을 다스릴 능력도 없으면서 사람을 중심으로 창조된 이 세상을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악마는 하늘과 땅을 다스릴 능력도 없으면서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을 시기하기만 하듯이 天使도 사람과 같이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이듯이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어 하늘에 있는 天使들과 같아진다는 말씀을 이제는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69페이지 참조)】즉 그러니까 창조론 강좌를 들으면서 생각해 볼 수 있듯이 노아홍수 때【창세 7장 11절 노아가 육백 살 되던 해 둘째 달 열이렛날, 바로 그날에 큰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24절 물은 땅 위에 백오십 일 동안 계속 불어났다. 8장 13절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14절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다 말랐다. 16절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와라.” 참조】즉 ‘노아가 600살 되던 해’ ‘노아가 601살이 되던 해’ 약 1년 동안 퇴적암 지층이 쌓인 것이라고 창세기 1-7장의 노아 홍수 이전의 기록도 함께 보관했다고 추측되지만....(651-653페이지 참조) 공룡과 함께 살았고 공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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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다니는 벽화도.... 공룡을 둘러싸고 반달형 모양으로 원을 이루어 활을 쏘아 공룡을 잡은 벽화도 있듯이 공룡이 멸종한 이유와 기록들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지만 아마도 독화살이 없었다면 눈을 쏘아서 잡았던지.... 약 100년 동안을 노아 방주(창세 5장 32절 ‘노아가 500세’ 참조)를 만들고【야살의 책에서는 에녹도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고 노아가 5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다고 하였지만「여호수아 10장 13절 이 사실은 ㉠야살의 책(고대 시들을 모은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창세 5장 24절, 히브리서 11장 5절 참조)」】950년(창세 9장 28절 참조)을 산 노아가 600세에 그렇게 비가 쏟아지게 하셨는데 어쩌다 우연히 쏟아지게 하셨겠습니까?【(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651-659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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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러니까 나주에서도 기적수가 나오고 상주에서도 기적수가 나오듯이 또 때가 되면 더 많이 나오겠지만.... 즉 예수님께서 오실 때 에제키엘 47장 1-12절 ‘성전에서 솟아 흐르는 물’ 편【「9절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이 이 시대에도 새롭게 이루어질 말씀으로써.... 즉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성전 오른 쪽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참된 행복의 길과 완덕의 길의 십자가 열쇠로 천국의 문 구원의 문은 열렸으니까(영성시집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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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3, 329-335페이지,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03-504페이지 참조) 즉 요한 19장 31-37절 ‘군사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다’ 편【34절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에서 그런 일이 참으로 새롭게 이루어졌듯이 즉 그러니까 마태 3장 13-17절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가 생각해보아도 의도적으로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는 성전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피할 필요도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요르단 강물을 축복하시고 생명의 샘에서 흘러나온 물은 자연적으로 시내를 이루고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 들어가듯이 비유적으로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느님의 계획적인 섭리라고 깨달아지듯이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새것도 헌것도 다 기록이 되어 있듯이(마태 13장 52절 참조) 성경을 떠나서는 새것도 헌것도 찾지 말아야 할 것인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면서(마태 9장 17절 참조) 새로운 복음화란 말로 인간적인 말재주를 부리는 것은 오류를 퍼뜨리는 것으로써.... 즉 마태 24장 15-28절 ‘가장 큰 재난’ 편이 지나고 29-31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편「30절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에서 예수님께서 천년왕국을 이루시려고 재림하시듯이 묵시 21장 1-8절 ‘새 하늘과 새 땅’ 편과 9-27절 ‘새 예루살렘’ 편과 또 22장【「1절 그 천사는 또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2절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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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에서처럼 ‘새 하늘과 새 땅’ 편과 ‘새 예루살렘’ 편과 생명수의 강의 의미가 현세에서부터 더욱 영성적으로 새롭게 이루어져 그 때에는 준비된 기적수가 계속 터져 나와 묵시록의 생명수의 강은 예수님의 강의 비유이듯이 생명 나무의 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되어.... 육신의 병도 치유해주시고 영혼의 병도 치유해주셔서 구원의 기적을 행하신 하느님을 어린양처럼 기뻐 뛰며 찬미하게도 되지 않겠습니까? 루르드, 파티마의 기적이 전주곡이라면 본 노래의 기적은 어떻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아시아 전교를 남한만 가지고 하시겠습니까? 그러니 남북통일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요즈음 케네스 배 목사님 같은 그런 신앙 간증을 들어보면 통일을 준비시키는 하느님의 뜻도 분명히 있으시듯이.... 물론 북한도 중국식 개혁 개방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겠지만 북한을 말로만 돕는다면 하느님의 얼굴을 어찌 양심적으로 그냥 뵙겠습니까? 물론 임진왜란(1592-1598년) 때 일본한태 우리가 어떻게 당했는지.... 또 6. 25. 전쟁 때 북한한태 우리가 어떻게 당했는지를 생각하면 물론 일제 강점기(1910-1945년)를 거치면서 공산주의 사상으로 비롯된 남북 이념으로 비롯된 즉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의 도움으로 남한 정부를 세웠듯이 김일성 주석이 소련의 도움으로 북한 정부를 세웠듯이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해방 운동을 따로 따로 했으니 해방이 되어도 따로 따로 가지고 있는 이념이 이미 분열의 뿌리가 되었듯이 그때나 지금도 가장 용납할 수 없는 원인이 되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을 순교 또는 탄압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자유로이 믿는 민주주의의 사상과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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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으로 비롯된 6. 25. 전쟁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철저한 안보 밖에 없고 안보정책을 바탕으로 해야겠지만 세상의 일은 인간의 일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계획이 임진왜란 때도 있으셨고《《《영성시집 ‘188. 용서를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편 216-219페이지【난중일기 : 정유(丁酉) 선조 30년 충무공 연기 53세 정유년(1597년 참조)
9월 15일 계묘 맑음. 조수(潮水)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에 진을 옮겼다.... 이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어떠한 신인(神人)이 지시하시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크게 이기고, 이와 같이 하면 지게 된다는 꿈이었다.】참조》》》그래서 한국의 민족성을 유럽의 이스라엘처럼 이 시대에 아시아에서 지질학적으로나 신앙적인 면으로나 쓰시려고 한국이 영원히 일본이 되는 것을 막아주셨고 일제 강점기 때는 미국이 일본을 이길 것을 이미 아시는 하느님께서 굳이 개입을 하지 않으셔도 되셨지만 그러나「데레사의 지난 일들」책 그림 3번 1933년을 보면 하느님께서 성삼은혜를 주시는 사적계시의 다른 방법으로 황옥희 데레사가 여덟 살 때부터 세상 만물의 창조주가 누구인지 묻고 끝없이 궁금하게 섭리를 시작하셨듯이.... 즉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천년왕국의 공적계시 진리를 보더라도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계획 앞에서는 인간의 일만을 고집할 수 없듯이 통일을 준비시키는 하느님의 계획대로 통일준비를 해야 할 때라면 실지로 통일준비를 해야 할 마음이 생기도록 통일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으면 죽이고 잡아 가두는 하느님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을 수없는 그들도 주님의 구원을 알게 되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전능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죄인들이 하느님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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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해드리고 보답할 수 있는 마땅한 길이 아니겠습니까?(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22-425페이지’ 참조)
우리 나라가 지질학적으로 보더라도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고 부강한 나라가 된다고 전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나라가 된다고 말을 하던데 그 말이 착각이고 빈말이란 말이겠습니까? 우리가 평화통일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누가 아시안 하이웨이든 하늘길이든 연결해 주겠습니까? 금강산 관광 계성공단이 진정성 없이 속임수로 시작했다는 말이라면 말이 되겠습니까? 이런 수준이라서 부분적으로나마 개방된 문마저 닫치게 되었겠지만 계속적인 이런 수준이라면 대화마저도 해볼 수 없는 분위기가 아니겠습니까? 공산당은 민주주의와는 사상이 다른 적대관계라지만 똑같은 피를 나눈 동포요 형제인 것을.... 이사악과 이스마엘은 서로 사상이 다른 적대관계라지만 똑같은 피를 나눈 동포요 형제인 것을....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에도 항상 영원히 초자연적으로 살아 계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셔서 우리를 더욱 아름다운 천당에서 살리시기 위해서 지금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으로 은혜를 주시는 성삼은혜인 천년왕국의 시대에 이런 성소(聖召)를 받은 예언자들《《《황데레사 저,「데레사의 지난 일들」책 그림 63번【세 번이나 넘어지며 성삼산에 오른 다음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고통을 대신 받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가만히 박힌 것이 아니라 주리를 틀리고 아파서 못 견디시는 고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셨다.
십자가 그 아픔은 죽는 것같이 아팠다. 앞으로 서른세 번을 십자가 고통을 받는데 세계 평화, 교회 평화, 죄인 회개, 외교인 귀화, 성직자․수도자 성화를 위해서 받으라고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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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국 치명자들이 성인품에 오르도록 희생하고 한국을 위해서도 희생 바치라고 하셨다.】, 235번, 238번, 240번 설명 참조》》》의 희생 고통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전쟁 없는 평화통일을 주신다는 데 이런 마지막으로 은혜를 주시는 성삼은혜의 시대에 ‘천주성삼노래’에서「2. 천하만민 백성들 보여주시면 / 상등통회 발하는 우리교우는 / 3. 그시에는 자기복중 복중을치며 / 자기죄를 통회하여 우는소리가 / 온세계에 진동을 진동을하며」하였듯이 천주성삼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시면 상등통회를 발하는데 무슨 흠이라도 있겠습니까?(신앙수기 ‘99. 성삼은혜의 핵심을 깨달음’ 편 108-115페이지, 영성시집 ‘146. 상존은총(常存恩寵)’ 편 122페이지, ‘168.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편 160-162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유다민족들이 천년왕국이 올 때까지 예수님께서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마태 26장 26-30절 ‘성찬례를 제정하시다’ 편 참조) 예언 후 40년 만에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버렸듯이 유다인의 반기로 학살로 유다인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렸듯이 유다인의 반기로 학살로 유다인들의 나라가 없어져버렸듯이 그 민족들의 상황에 따라 구약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었듯이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라면 대한민국을 천년왕국이 올 때까지 영원무궁토록 우리나라 민족성을 보호하셔서 신앙적으로 막내나라인 우리나라를 통하여 아시아 전교를 세계 평화, 교회 평화, 죄인 회개, 외교인 귀화, 성직자․수도자 성화를 시키시려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보호해 주셨다는 생각입니다.(영성시집 ‘145. 하하하.... 계약 궤’ 편 120-121페이지, ‘147. 두 증인 두 예언자①’ 편 123-134페이지, ‘188. 용서를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편 215-219페이지, ‘191. 최후의 만찬 때의 계약과「생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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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풀이’ 편 223-228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86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662-668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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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터넷 다음 블로그에서《《《부모미생전 본래면목 : 위산(潙山) 선사가 향엄(香嚴)에게 이르기를 『평생에 듣고 본 것을 떠나서, 네가 세상에 나오기 전 너의 본래 면목에 대하여 한마디 말하여 보라』》》》하였듯이 즉 네가 세상에 나오기 전 너의 본래면목이라면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주님)이신 예수님이실 수밖에 없으시듯이....(775페이지 참조) 즉 그리스도는 족보에도 구세주로 오시고《《《마태 1장 1-17절「예수 그리스도의 족보」편, 마태 1장 18-25절「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편, 마태 16장 13-20절「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편, 마태 22장 41-46절「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편【45절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마태 23장 1-36절「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편【8절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절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절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요한 13장 1-20절「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편【13절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사도행전 4장 12절「사실 사람들에게 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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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참조》》》전능하고 유일하신 구원의 주체이심을 스스로 밝히셨듯이 또 콜로새서 1장 24-29절 ‘교회를 위한 바오로의 사도직’ 편「26절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절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에페소서 3장 5절, 묵시 10장 7절 참조)」에서도 밝히셨듯이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뭣고?’ ‘참나’ 생, 노, 병, 사의 문제를 몰라서 궁금해 하실 분도 아니고 모든 화두는 예수님께 물어야 정답이 나오는 것이듯이 그런데 청봉스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참神(하느님)이 아니라 신성시했다고 하였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6-418, 420-324, 439-454, 455-475, 481-509, 649, 673페이지 참조) 즉 요한 1장 1-18절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편【1절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18절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요한 8장 48-59절 ‘아브라함 전부터 계신 분’ 편【58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의 이런 말씀은 사량분별심으로 따지고 알아들어가는 그런 것이 아니듯이 즉 그러니까 근기에 따라 염불을 통해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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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에 들어 주객 합일을 이루는 방법도 있어왔고 화두 참선(參禪)을 통해서 선정삼매에 들어 주객 합일을 이루는 방법도 있어왔듯이 즉 사량분별심이 끊어져야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듯이 그러니까 일어나는 생각은 일어났다 없어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놔둬버리고 돌려서 화두를 들어라고 하듯이 ‘이 무엇고?’ 하는 이것이 나의 마지막 화두가 되도록 계속 닦아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멘! 아멘!★★★★★
즉 그러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이름도 계시(啓示)해주지 않는 불교와는 달리 물론 부처님, 여래(如來), 법신불(法身佛)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식으로 알려 준 이름도 아니고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부터 모세에게 “야훼”라고 한번 계시(啓示) 하셨으니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으신....(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29-234페이지 참조) 즉 이름도 계시(啓示)해 주지 않으셨으면 이집트나 그리스처럼 인도에서 우상화 시킨 수많은 神들의 이름처럼 중구난방 수많은 神들의 이름을 같다 붙였겠지만 “야훼”라고 한번 계시(啓示) 하셨으니 신약에서는 예수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으신 전능하신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실체(實體)이신 하느님을.... 즉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의 영안이든 육안이든 정문-안(頂門眼)이든 영원 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불생불멸하는 예수님의 영원한 목소리를 들었다거나 진리의 빛을 보았다는 뜻이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24, 430-432, 437-444, 449-454, 455-475, 475-482, 481-509, 575, 673페이지 참조) 즉 출애 33장 11절 그리고 18-23절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편에서는 당신의 영광스런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셨듯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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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37-439페이지 참조) 그런데 이제는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던 말씀께서는 요한1서 1장 1-4절 ‘생명의 말씀’ 편「1절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2절 그 생명이 나타났을 때에 우리는 그 생명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에서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씀하셨듯이
즉 그러니까 요한 8장 12-20절 ‘나는 세상의 빛이다’ 편【12절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빛이다.…”】에서 또 요한 9장 1-12절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시다’ 편【5절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에서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요한 14장 1-14절 ‘아버지께 가는 길’ 편【4절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절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절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절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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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고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즉 요한 10장 22-39절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다’ 편【24절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절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절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절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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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절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절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말씀하시고 또 요한 16장 25-33절 ‘내가 세상을 이겼다’ 편【25절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8절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29절 그러자 제자들이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절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에서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는 이런 말씀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진리와 지혜의 실체(實體)이신 예수님이 아니시면 아무나 할 있는 말씀이 아니듯이(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30-432, 438-454, 455-479, 481-509, 673페이지 참조) 또 우리는 성경을 통달하고 진리를 깨달아도 길, 진리, 생명, 빛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즉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3장 2절 참조) 하고 말씀하셨듯이 즉 天使도 사람도 같이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이듯이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고 天使들과 같이 되어(658페이지 참조) 즉 스승이신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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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도의 참모습을 뵙겠지만 전능하신 예수님을 다 알 수는 없듯이 또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110번 내가 너희에게 ‘말’을 하는 이유’ 편「2. 각별히 사랑하는 아들들아, 오늘날 들리는 하고많은 목소리에 너희는 미혹(迷惑)되지 말아라. 내 원수가 (거짓) 사상으로 속이며, 말로 혼란에 빠지게 한다.」】에서 말씀하셨듯이 (거짓) 사상으로 키에 담긴 밀처럼 까불리지도(루가 22장 31절 참조) 미혹(迷惑)되지도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24, 439, 455-475, 481-509페이지,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01-606, 623-624, 630-631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통하여 로마를 유럽을 점진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믿도록 자연적인 방법으로 섭리하셨듯이 이 재림 시대에는 새 이스라엘인 우리 나라를 통하여 로마 같은 중국의 공산주의를 남은 아시아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교를 믿도록 섭리하셔서 전 세계적인 구원사업의 완성인 성화사업을 이룩하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그러니까 유다인과 이슬람의 화해는 이사악과 이스마엘의 두 형제의 후손들이 조상의 아브라함의 무덤에서 해년마다 함께 제사를 드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즉 계약을 맺은 하느님의 자녀인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논리와 세속과 육신과 마귀의 지배를 받는 원수가 (거짓) 사상으로 미혹(迷惑)하는 세상의 자녀인 이스마엘, 에사오의 논리가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고 또한 공존할 수밖에 없듯이.... 즉 그러니까 요한 14장 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고 유일하게 말씀하신 예수님 이름 외에는 구세주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아들어야 하겠지만 즉 족보에도 아기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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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분과 이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오신 天使의 심판을 끝내신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심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1-272페이지 참조)】《《《인터넷 다음【「왜 천사는 타락하게 되었는가?」스페인의 아그레다 출신의 마리아 수녀(가경자, 시복청원 중 / 1602ㅡ1665)에게 일어난 계시(환시)를 기록한 책】참조.》》》즉 그러니까 마태 16장 13-20절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 편【「15절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절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절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절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에서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수위권까지 주신 예수님께서 21-23절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 편【「21절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절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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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에서 즉 마르 8장 31절에서는 “반드시”라고 말씀하셨고 32절에서는 “명백히”라고 말씀하셨듯이 그래서 베드로가 만류하기 시작하였겠지만 베드로의 인간적인 만류를 보고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듯이.... 즉 당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중요한 시기마다 당신의 수난을 예고 하셨듯이....(마태 16장 21-23절, 17장 22-23절 20장 17-19절 참조)《《《또 마태 26장 2절 “너희도 알다시피 이틀이 지나면 파스카인데, 그러면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3절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카야파라는 대사제의 저택에 모여, 4절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고 공모하였다. 57절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카야파 대사제에게 끌고 갔다. 그곳에는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모여 있었다. 63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입을 다물고 계셨다. 대사제가 말하였다. “내가 명령하오. ‘살아 계신 하느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밝히시오.’” 64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65절 그때에 대사제가 자기 겉옷을 찢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방금 여러분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66절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자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또 요한 11장 49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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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절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3절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2장 9절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절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즉「53절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10절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고 하였듯이 즉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무엇인지 즉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이 세상에 항상 공존하고 있듯이 즉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뚜렷하게 깨우쳐주신 예수님의 지혜로운 말씀이라는 것을 또한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680-689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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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마태 24장 15-28절 ‘가장 큰 재난’ 편이 지나고 마태 24장 29-31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편이 이어지는 말씀으로써【29절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30절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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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을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31절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가 뽑은 사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모을 것이다.”】의 말씀과 데살전 4장 13-18절 ‘주님의 재림’ 편【16절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17절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의 말씀과 고린전 15장 12-34절 ‘우리의 부활’ 편【23절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24절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의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묵시 6장 1-17절 ‘일곱 봉인’ 편【9절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떼셨을 때에 나는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그 말씀을 증언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0절 그들은 큰소리로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대왕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또 우리가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주시겠습니까?”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11절 또 그들은 흰 두루마기 한 벌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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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동료 종들과 형제들이 다 죽어서 그 수가 찰 때까지 잠시 쉬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의 즉 ‘그 수가 찰 때까지 잠시 쉬라는’ 말씀은 순교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잠시 쉬라는 말씀으로써 즉 묵시 7장 1-8절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뽑힌 십사만 사천 명’ 편과 9-17절 ‘모든 나라에서 온 군중’ 편은 다른 뜻으로써 묵시 14장 1-4절의 ‘첫 열매’는 뽑힌 성인들을 말하기도 하지만 순교성인들을 말하는 뜻으로써....(성무일도 1권 12월 28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 참조) 묵시 21장 14-17절 ‘그 도성의 성벽’처럼 즉 묵시 22장 4절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처럼 그들의 이마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정신적으로 새겨져 있을 뽑힌 군사를 상징하는 뜻으로써 즉 묵시 7장 9-17절 ‘모든 나라에서 온 군중’ 편의 9절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은 다른 뜻으로써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마지막 때인 그때 살아나서 즉 첫째 부활해서(묵시 20장 1-6절 ‘천년왕국’ 편 참조) 즉 묵시 11장 1-13절 ‘두 증인’ 편의 두 예언자들과 마태 25장 1-13절 ‘열 처녀의 비유’ 편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과 함께 초자연적으로 휴거할 때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인 순교자들이 첫째 부활해서 함께 휴거한다는 것이듯이 묵시 20장 1-6절 ‘천년 왕국’ 편【4절 나는 또 많은 높은 좌석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심판할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했다고 해서 목을 잘린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낙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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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거룩합니다. 그들에게는 둘째 죽음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제가 되고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을 할 것입니다.】의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즉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함께 휴거한다는 말씀으로써 즉 묵시 7장 9-14절처럼 ‘그 뒤에 나는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언어에서 나온’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 희게 만들었습니다.” 하였듯이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순교자들이 살아나서 휴거하는 것이지.... 즉 묵시 20장 1-6절 ‘천년 왕국’ 편은 천년 왕국 이전의 상황으로써 즉 묵시 7장 2-4절과 9-17절은 다른 뜻으로써 14장 1-4절의 ‘첫 열매’는 뽑힌 십사만 사천 명을 말하기도 하지만 순교자들을 말하는 뜻으로써.... 21장 14-17절처럼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뽑힌 십사만 사천 명’은 즉 예루살렘 성벽은 144,000척인 예루살렘을 지키는 하느님의 도장을 받은 뽑힌 군사를 상징하는 벌써 그 수효를 셀 수 있는 숫자이지만.... 즉 묵시 7장 9-14절 ‘모든 나라에서 온 군중’ 편은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순교자들이 살아나서 휴거하는 것이지.... 즉 그러니까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결정된 징벌을 잘 알아들어야 할 것이며....(인터넷「마리아의 구원방주」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 2001년 11월 9일 말씀 소개부분 714-715페이지 참조) 휴거하는 사람은 7명(열 명 미만)의 성소 받은 식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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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하고 그 나머지는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순교자들의 영혼이 살아나서 휴거하는 것이 이유인 것이지 어떤 열교에서 말하는 자기 교단의 셀 수 있는 신도 수로 사칭하여 144,000명이 휴거한다고 말하는 그런 휴거는 아닌 것입니다.(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01-606, 630-631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루카 17장 22-37절 ‘사람의 아들의 날’ 편【37절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마태 24장 15-28절 ‘가장 큰 재난’ 편【28절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든다.”】에서 하신 말씀의 상황과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즉 다른 곳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마태 24장 15-28절 ‘가장 큰 재난’ 편에서 하신 말씀으로써 즉 예수님께서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든다.”고 하신 말씀은 독수리는 눈이 밝고 시체의 냄새를 잘 맞듯이 특히 곱비신부님의 메시지를 많이 읽어서 눈이 밝아진 사람이나 냄새를 잘 맞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징조나 표징을 쉽게 알게 되는 법이라고 해석할 수가 있듯이.... 그리고 29-31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편【29절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즉 그런 재난의 기간이란 마태 24장 3-14절 ‘재난의 시작’ 편과 15-28절 ‘가장 큰 재난’ 편과 묵시 12장 1-18절 ‘여자와 용’ 편의 삼 년 반 동안의 이 시대의 재난을 암시하는 기간으로써】“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즉 해와 달이 빛을 잃을 마태 24장 15-28절 ‘가장 큰 재난’ 편의 그런 재난의 기간을 즉 암흑의 3일을【오상의 비오신부님, 파티마의 성모님, 진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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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프랑스 라 살레뜨 메시지,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 등】여러 곳에서 예언하였듯이 해와 달이 빛을 잃을 암흑의 3일이 온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말씀으로써 암흑의 3일이 전 세계적으로 오면 그 암흑의 3일의 벌은 전 세계적인 유황불이 내리는 벌일 것이며 즉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의 2, 8, 13절 그 도시이든 도성이든「7절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그 짐승이 올라 와서 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절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이며 상징적으로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합니다.」하였듯이 즉 ‘그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이라면 실지 살인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어떤 최종적인 법의 선포로 즉 법의 선포도 지방 법원의 선포와 대 법원의 최종적인 선포가 있듯이 ‘두 증인’인 두 예언자가 실지 자연사하는 기간이 있듯이(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01-608페이지 참조) 즉 ‘그 도성은 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이면 즉 이 시대에 새 예루살렘이며 ‘상징적으로는 소돔이라고도’ 한다면 ‘소돔’【가톨릭 성서낱말사전 ‘소돔’ : 하느님께 대한 죄악으로 고모라와 함께 불과 유황으로 멸망한 도시. 사해 동남쪽 바다에 잠겨 있다 함.】이나 ‘그 도성’은 ‘두 증인’인 두 예언자가 나올 국가를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즉 소돔 같은 벌은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에서「12절 그리고 그 두 예언자는 자기들을 향해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예언자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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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갔습니다.」하였듯이 그리고 에녹과 엘리야 같은 ‘두 증인’인 두 예언자를 살려서 데리고 가시려고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즉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예수님과 같이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즉 휴거하는 성소(聖召)를 받은 2 + 5 = 7명을 같이 보게 되겠지만....(713페이지 참조)《《《인터넷 다음 동영상【「241. (간증)휴거 되어 올라 갔으나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쫓겨났다(노아방주, 박지예 선교사 2023. 10. 26.)」,「249. 닥쳐올 휴거와 환란 대비(2024. 3. 9.) : 아버지께서 ★한국만 보여 주셨는데★ 준비되서 올라갈 자들의 수 가 제가 입 벌릴 만큼 너무 작은 거예요. 보여주셨어요. 이 말씀을 인제 촬영하려고 기도하면서 준비하는데 ★한국만 보여주셨어요.★ 아버지께서 근데 올라가시는 분들이 너무 작아요. 그렇게 수가 작을 수가 있는지 좀 마음이 아팠어요.」,「258. 음녀의 왕국이 완성 되어가다」】참조.》》》즉 묵시 7장 9절「‘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언어에서 나온’」처럼 모든 나라에서 나온 순교자들이 살아나서 같이 올라가는 휴거하는 상황을 전 인류가 어린이부터 남녀노소가 다 볼 것이라니(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595-596, 601-617, 630-631페이지 참조) 즉 초자연을 장애물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보게 될지 즉 기도 중에 앞 벽이 탁 터지듯이 자연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절대적 진리의 실체((實體)인 주님을 그렇게 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73-474페이지 참조) 어떻든 과거 현재 미래에도 항상 영원히 초자연적으로 살아 계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그렇게도 하실 수 있으심을 나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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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저의 믿음인 것입니다. 즉 그러니까 열왕하 2장 23절「엘리사는 그곳을 떠나 베텔로 올라갔다. 그가 베텔로 가는 도중에 어린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하며 그를 놀려 댔다.」에서처럼 즉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에 대한 즉 두 예언자가 휴거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천년왕국 성소(聖召)를 받은 이들의 말을 철없는 아이들처럼 조롱하듯 대하는 것은 삼가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인터넷 다음 블로그《《《『말라카이의 예언과 마지막 교황』,『미래의 교황에 관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예언』,『미래의 교황에 대한 성 비오10세 교황의 예언』,『교황 레오 13세의 기적』》》》의 예언은 교황 제도가 끝난다는 마지막 교황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성삼은혜인 천년왕국의 시대가 열리기 전의 즉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의 마지막 교황이란 뜻을 깨달아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591, 601-608, 622-630, 630-631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716-722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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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수님의 성모님의 구속사업 공로가 있으시니까 노아 홍수 때와는 다르겠지만 노아 홍수 때보다 더 못한 타락한 세상이라면 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천년동안 종말 때까지 보존하고 싶으시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묵시 10장 1-14절 ‘두 증인’ 편에서 두 예언자를 살려서 데려가시듯이 성삼은혜를 안다면 두 예언자를 어렵지 않게 파악해 볼 수가 있듯이(영성시집 ‘147. 두 증인 두 예언자①’ 편 123-134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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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태 24장 36-44절 ‘깨어 있어라’ 편「37절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41절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에서 살아 있는 사람도 엘리야처럼 데려간다고 깨달을 수가 있듯이 또 내가 세례자 요한이 되는 꿈을 꾸었으니 자연히 관심이 가듯이(영성시집 ‘15. 아! 소리이고 싶어라!’ 편 12-13페이지 참조) 또 창세기 18장 16-33절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빌다’ 편에서 32절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즉 휴거하는 일들이 두 예언자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그때 각 나라의 순교자들이지만 모두 함께 휴거하는 것이듯이(718-719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인터넷「마리아의 구원방주」사랑의 메시지 2001년 11월 9일【성모님 : 이미 나는 ‘암흑과 불과 피의 벌을 자초하지 말라.’고 애타게 호소하면서 대환난의 때가 다가왔음을 여러 차례나 경고해 주었는데도 회개하기는커녕 대다수의 성직자들까지도 태평세월을 노래하며 깨어있지 못한다면 그들을 따르는 양 떼들은 과연 어떻게 될 거나?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이 이미 끝나가고 있으니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를 묵상하며 이 세상에 내려질 징벌과 타오르는 유황불의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어서 깨어 기도하여라.(714-715페이지 참조)】메시지와 2019년 4월 19일【예수님 :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죽음과 지옥과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내가 머지않은 날 하늘의 여왕인 내 어머니와 함께 상과 불을 가지고 너희가 한 행적대로 갚아주기 위해 너희 각 사람에게 갈 것이다.】메시지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성모님께서 큰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실 지휘관으로 오시는....(804-809페이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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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지금 이 시대가 최후 심판의 축소판 같은 가장 큰 재난의 천년왕국 재림의 심판인 즉 하느님의 의로우신 불 심판이 결정된 때라면 노아 홍수 때가 새 세상을 위한 심판의 기준이라면....(702페이지 참조) 즉 암흑의 3일을【오상의 비오신부님, 파티마의 성모님, 진리의 책, 프랑스 라 살레뜨 메시지,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암흑의 3일이 지나면 성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새 교황을 임명할 것입니다. 엄청난 빛이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교황이 될 추기경을 비출 것입니다.》등】여러 곳에서 예언하셨듯이(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05-608, 708, 719-722페이지 참조) 즉 암흑의 3일이 지나서 새 교황을 뽑는다면 암흑의 3일 동안에 미래의 교황에 대한 예언대로 된다는 뜻이듯이 온 인류가 새로운 삶을 사는 새 세상을 위한 전 세계적인 불 심판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 불 심판을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마태 24장 1-44절【‘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 편, ‘재난의 시작’ 편, ‘가장 큰 재난’ 편,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편, ‘그 날과 그 시간’ 편】의 성경 내용이나.... 묵시 9장 15절 ‘사람들의 ⅓을 죽이려고 이 해, 이 달, 이 날, 이 시간을’ 하였고 17절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았으며,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왔습니다. 18절 이렇게 그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 이 세 가지 재앙으로 사람들 ⅓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였듯이 불과 연기와 유황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 심판을 말하는 뜻으로써 묵시 18장 1-24절 ‘바빌론의 패망’ 편에서는【8절 “재난이 하루 사이에” 10절 “네가 일시에” 17절 “재난이 하루 사이에” 19절 “그것이 다 일시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하였듯이....(영성시집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608-609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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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참조) 또 묵시 14장 10절 이런 자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의 구덩이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였듯이 또 묵시 19장 5-10절 ‘어린양의 혼인 잔치’ 편은 묵시 18장 1-24절 ‘바빌론의 패망’ 편이 이루어지는 그때에 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듯이 즉 그러니까 성경의 혼인 잔치의 비유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씀이지만 묵시 19장 5-10절 ‘어린양의 혼인 잔치’ 편은 묵시 21장 2, 9-10절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인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을” 보여 주신 것과 같은 뜻으로써 마태 25장 1-13절 ‘열 처녀의 비유’ 편의 혼인 잔치와 일치한다는 것을 이제는 파악해 볼 수가 있듯이 즉 예수님의 천년왕국 전의 재림 때를 뜻하신 혼인 잔치라는 것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해석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듯이....(영성시집 ‘70. 어린 양의 혼인잔치’ 편 63-64페이지,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참조) 즉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의 예언은 묵시 20장 1-6절 ‘천년 왕국’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즉 삼년 반이나 사흘 반이나 암흑의 3일 동안을 기록하는 예언이기 때문에 즉 이것이 바로 묵시 10장 7절「이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터인데 그 소리가 나는 날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전해 주신 대로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완성될 것이다.」하였듯이 天使의 나팔 소리는 암흑의 3일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완성되면서 실지 들려오는 天使의 나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24-526(7)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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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편 739-743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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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7. 29. 오늘 매일미사 ‘성녀 마르타 기념일’ 요한 11장 17-27절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편「19절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절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절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절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절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절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절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에서 라자로를 부활시키실 일을 계기로 당신께서 부활과 생명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시는 말씀으로써 또 요한 1장 1-18절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편【1절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3절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4절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10절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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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4절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18절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과 또 요한1서 1장 1-4절 ‘생명의 말씀’ 편【1절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2절 그 생명이 나타났을 때에 우리는 그 생명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4절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냅니다.】을 살펴보고 그래서 사람은 유일하게 말을 하는 능력을 주셨고 하느님과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하여 유일하게 언어의 능력을 주셨다는 생각이지만....(영성시집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참조) 그리고 요한 사도의 생명의 말씀에 관한 웅대한 설명 앞에 앞도 되면서....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존재하셨던 道, 無, 公, 眞空妙有, 불생불멸은 실존하신 분으로 설명하자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전능하신 예수님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분으로써★ 즉 인터넷 다음 백과사전「진공묘유(眞空妙有)」:【이와 같은 공에 대해 예부터 몇 가지 잘못된 이해 방식이 있었는데, 중국 화엄종의 승려 법장(法藏: 643-712)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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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般若心經)』의 주석서인『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에서 이를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공이 사물과 다르다는 견해이다. 이는 공을 사물과 다르다고 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 별도의 공을 구하는 것이다. 법장에 따르면,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반야심경』에서 ‘색이 공과 다르지 않다[色不異空]’라고 하였다. 둘째는 공이 사물을 소멸시킨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는 이 세계의 구체적인 사물을 소멸시킨 뒤 남는 빈 공간을 공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반야심경』에서 ‘색이 곧 공이다[色卽是空]’라고 하였다. 셋째는 공을 어떤 특정한 사물로 여기는 견해이다. 이는 공을 이 세계의 다양한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있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반야심경』에서 ‘공이 곧 색이다[空卽是色]’라고 하였다. 공에 대한 이런 잘못된 견해들을 타파하기 위해 불교도들은 진공(眞空), 곧 참된 공이란 이 세계의 사물 그 자체의 존재 양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았다.】의 설명은 반야심경의 견해를 논했다고 하기 보다는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말로 편견과 선입견으로 법장스님께서 잘못 대처하고 배척했다고 이제는 파악해 볼 수가 있듯이.... 즉 그러니까 공(空)과 색(色)이 하나라고만 말하는 이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편견의 진리고 온전한 진리가 아니듯이.... 즉 그러니까 삼위일체의 본질적인 불이(不二)와 공(空)과 색(色)인 불이(不二)는 차원이 다른 불이(不二)이듯이....(349페이지 참조)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듯이....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 노, 병, 사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즉 대행스님께서 전능하신 분과 주고받고 대화를 하듯이 즉 과거, 현재, 미래에도 영원 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영원한 생명’인 그 생명(空)은 죽음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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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깨달았다는 것이며.... 즉 그러니까 이제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깨달아야 하는 그런 시대라면.... 그리고 향엄 선사의 ‘향엄상수화’도 있고 경허 대선사의 ‘참선곡’에 ‘돌장승이 아이 낳으면 그때에 말하리라’는 말도 있듯이.... 즉 돌장승이 아이를 낳는다면 ‘향엄상수화’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의 화두가 풀리는 것으로써.... 즉 돌장승이 아이 낳으면 큰 바위 얼굴의 예언이 풀리는 뜻이라면....(신앙수기 ‘112. 큰 바위 얼굴「어네스트를 찾아온 시인」편 풀이’ 편 167-181페이지 참조) 즉「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누가 선생님의 대리자로 올 것입니까?” “소년티를 겨우 면한 다른 사람과 지금 오고 있는 저 사람이 보이지요?】에서 예수님의 대리자로 성령으로 오시는 두 사람을 말씀하셨듯이....(영성시집 ‘18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편 213-21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청봉스님처럼 대행스님도 법문을 들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를 믿지 말고 법을 믿어라. 고 하셨는데 “왜 종이 되려고 하느냐? 네가 주인이 되어야지!” 하고 또 예수님이 “나를 믿어라!” 하는 것은 실수한 것으로 본다고 하면서 각자가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하듯이★ 즉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를 믿어라! 고 할 수도 없는 위치이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나를 믿어라!” 고 할 수 있는 전능한 위치에 계시듯이....(488-489, 498-499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초성덕행이신 신덕, 망덕, 애덕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신【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이시지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원의 주체도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스님들은 항상 깨달음의 법맥을 이어 오는데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에 대해서 말을 못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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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해도 죽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불이(不二)만을 고집하는 불교 안에서는 해결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며.... 즉 그러니까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의 이런 전법은 달마가 반야다라를 따라(인터넷 다음 블로그「제 27조 반야다라」참조) 출가하여 40년 동안 수행하고 유언으로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혜가에게 전법을 전하고 내 일은 이미 끝났도다. 하고 혜가에게 다섯 번 독약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여섯 번째의 독약은 스승이 명하신 전법을 전하는 성소(聖召)를 완수했음으로 그냥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독약을 먹고 죽어서 528년에 그 시신을 웅이산에 장사지냈다.(인터넷 다음 블로그「달마의 생애」참조) 고 하였듯이 그리고 인도에도 중국에도 법맥이 끊어지고 한국에만 계속 이어져 오듯이 이런 전법은 단순히 불교만을 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부처님(불사불멸 전능하신 분)의 섭리로 깨달은 스승이 명하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의 분명한 성소(聖召)라는 것이 깨달아지듯이
그리고 요한 11장 17-27절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편「23절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절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절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에서 하신 이런 말씀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하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써 즉 그러니까 석가모니부처님의 ‘오도송’에도【한량없는 세월, 생사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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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거듭하면서 / 집 짓는 자를 찾아 헤매었으나, /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 이는 고통이었다. / 아! 집을 짓는 자여! / 이제 너를 보았노라! / 너는 이제 더 이상 집(오온)을 짓지 못하리라. / 모든 번뇌(서까래)는 부서졌고, / 무지(대들보)는 산산이 조각났다. / 나의 마음은 조건 지어진 것들에서 벗어났고, / 모든 갈애는 파괴되었도다!】하였듯이 즉 그러니까 우리 가톨릭으로 보자면 하늘 나라의 주인이신 하늘 나라의 성전(궁전)의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은 ‘임금들의 임금’이시고, ‘주님들의 주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이시듯이 즉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 우리 상주 데레사 어머님의 예언자를 보더라도 죽을 때까지 성령의 영감이 항상 머물러 계셨듯이 즉 불교의 깨달음은【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부분적인 깨달음(啓示)이고 예언자에 불과하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 즉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신 예수성심께서(537-539, 568페이지「예수성심 호칭기도」참조) 하늘 나라의 참된 행복의 길과 완덕의 길의 열쇠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가 있듯이....(영성시집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3, 329-335페이지 참조)
그리고 요한 10장 1-6절 ‘목자와 양’ 편과 7-21절 ‘착한 목자’ 편【7절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8절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11절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17절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18절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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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을 보면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는 유일한 권리를 가지고 계신 분의 말씀으로써
그리고 또 다른 면으로 해석해 본다면 에녹과 엘리야 같은 사람은 사실 육신의 생명도 영원히 죽지 않고 그 시대에 본보기로 초자연적으로 천당으로 데리고 가셨듯이.... 즉 마태 24장 1-51절의 ‘가장 큰 재난’이라면 노아 홍수가 심판의 기준이고 성서의 진리라면.... 어떻든 예수님께서 사도신경의 산 이와 죽은 이를 한꺼번에 심판하는 종말 심판 이전의 노아 홍수 때보다 더 타락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가장 큰 재난’ 때에 직접적으로 공중에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도 당신의 대리자로 성령으로 오시는 것도 즉 묵시록 3장 8-12절로 풀이되는 사람도 대리자로 등장하고 예수님께서도 ‘그리스도의 시’ 책에서 두 사람으로 증거하고 계시듯이....(영성시집 ‘18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편 210, 213-214페이지 참조) 즉 그런 일들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일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예언의 말씀으로써 즉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의 ‘두 증인’인 두 예언자만이 아니라 ‘두 증인’인 두 예언자 주위의 즉 마태 25장 1-13절 ‘열 처녀의 비유’ 편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에 비유되는 사람들도 즉 예언자들은 한번 죽은 몸이지만 이 사람들은 마태 24장 40절「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하셨듯이 한 번도 죽지 않은 사람들이든 죽을 예언자들이든 함께 포함하여 육신의 생명도 초자연적으로 승천시켜서 이 시대에 본보기로 데리고 가시는데 그 뜻이 있다면 즉 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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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엘리야 같은 ‘두 증인’인 두 예언자만이 아니라 즉 ‘두 증인’인 두 예언자 주위의 사람들을 한 번도 죽지 않은 사람들이든 죽었던 사람들이든 함께 초자연적으로 승천시켜서 이 시대에 본보기로 데려가서 성삼은혜인 천년왕국을 튼튼하게 세우시는데 즉 성모님 도우심으로 이룩될 주의 나라 천년왕국(신앙수기 ‘101. 선생님(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편 117-127페이지, ‘107. 천년왕국’ 편 141-156페이지 참조)이 이루어질 재림의 때에 즉 묵시 10-19장 삼년 반이나 사흘 반이나 천년왕국 전의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신비로운 계획이 완성될」....(467페이지 참조) 즉「진리의 책」제2권 442번에서 예수님께서「묵시록에 언급된 1,000년은 바로 그대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라.」에 대해서, 제5권 1105번에서 하느님께서「암흑의 삼일」에 대해서, 1126번에서 예수님께서「암흑의 삼일」에 대해서 말씀하셨듯이 천년왕국을 입증하기 위한 즉 가톨릭교회가 천년왕국을 선언(준비)하기 위한 즉 그 효과를 내기 위해서 주위의 성소(聖召)를 받은 사람들을 즉 마태 25장 1-13절 ‘열 처녀의 비유’ 편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에 비유되는 사람들을 초자연적으로 승천시켜서 이 시대에 본보기로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 휴거일 것이며.... 만약 성인이라고 해도 144,000명의 사람이 휴거한다면 성인이면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는 종말 때 천당에 가면 되지 그 휴거의 이유가 될 수 없을 것이므로 어떤 열교에서 말하는 자기 교단의 신도 수라고 사칭하는 144,000명의 셀 수 있는 사람은 휴거의 대상이 아닌 것이며 즉 묵시 7장 1-8절과 9-17절은 다른 뜻으로써 14장 1-4절의 ‘첫 열매’는 ‘맏물’의 뜻으로써 21장 14-17절처럼 즉 22장 4절처럼 그들의 이마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정신적으로 새겨져 있을 뽑힌 군사를 상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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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뜻으로써 즉 묵시 7장 1-8절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뽑힌 십사만 사천 명’ 편의 즉 4절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과 묵시 7장 9-17절 ‘모든 나라에서 온 군중’ 편의 즉 9절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은 다른 뜻으로써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마지막 때인 그때 살아나서 즉 첫째 부활해서(묵시 20장 1-6절 ‘천년왕국’ 편 참조) 즉 묵시 11장 1-13절 ‘두 증인’ 편의 두 예언자들과 마태 25장 1-13절 ‘열 처녀의 비유’ 편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과 함께 초자연적으로 휴거할 때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인 순교자들이 첫째 부활해서 함께 휴거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깨달아졌습니다.《《《【(영성시집 ‘18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편 209-210페이지, ‘208.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①”’ 편 341페이지, ‘209.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휴거」②”’ 편 350, 353-354페이지, ‘210. 수도생활의 순명에 대해서 깨달음’ 편 363-364페이지,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591, 595-617, 617-622, 622-630, 630-639, 643-645페이지,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705-713, 716-723페이지」참조)】》》》
그리고 여기서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노아 홍수 때 죽은 사람들이나(창세 6장 17절 참조) 소돔과 고모라를 치실 때 죽은 사람들이나(창세 19장 24절 참조) 또 지금 시대가 노아 홍수 때보다 더 타락한 시대라고 하던데「의인 열 명(창세 18장 32절)이 없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를 묵상하며」하였듯이 암흑의 3일 때 희생될 사람들이나....(영성시집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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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편 713-715페이지 참조) 또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인 그 둘은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산 채로 던져지는(묵시 19장 20절 참조) 악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는데,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이미 들어가 있는 그곳입니다.(묵시 20장 10절 참조) 하였듯이 즉 이런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직접 치셨고 또 치실 것이듯이 즉 이것이 바로 묵시 10장 7절「이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터인데 그 소리가 나는 날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전해 주신 대로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완성될 것이다.」하였듯이 11장 15절「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하였듯이 天使의 나팔 소리는 암흑의 3일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완성되면서 실지 들려오는 天使의 나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 2024. 1. 17.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109 (문)(답) 해설 천년왕국을 좀 더 연구하다가『또 가톨릭 대사전 ‘천년왕국설’에 보면「유스티노, 이레네오 등의 교부들에 의해 지지를 받기도 했던 이 설은 교회에 의해서 배척되었다.」란 즉 단죄되지는 않고 배척만 되었다는(신앙수기 ‘107. 천년왕국’ 편 141페이지 참조)』내용에서 가톨릭 대사전에 있는 내용을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109 (문)(답) 해설에서 한참 착각하고 찾다가 마지막 나팔 소리가 궁금해서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에서「마지막 나팔 소리」를 검색해 보았더니 코린전 15장 35-58절 ‘부활 때에 완성되는 인간의 구원’ 편「52절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그리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묵시록에서 부는 나팔 소리는 같은 마지막 나팔 소리인지 살펴보았더니 묵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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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절 ‘천사와 작은 두루마리’ 편과 11장 15-19절 ‘일곱째 나팔’ 편「1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님과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이다.”」에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은 즉 종말 때에 부는 마지막 나팔 소리와 천년왕국 때, 즉 재림 전에도 미리 불지 재림 때만 불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 영성시집 ‘70. 어린 양의 혼인잔치’ 편 63-64페이지,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735-743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17-527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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