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향
신동엽
하늘에
흰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고
아름다웁고저
화장칠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럴
까닭이 없다
2.그 가을
신동엽
날씨는 머리칼 날리고
바람은 불었네
냇둑 전지(戰地)에.
알밤이 익듯
여울물 여물어
담배 연긴 들길에
떠가도.
걷고도 싶었네
청 하늘 높아가듯
가슴은 터져
들 건너 물 마을.
바람은 머리칼 날리고
추석은 보였네
호박국 전지에.
버스는 오가도
콩밭 머리,
내리는 애인은 없었네.
그날은 빛났네
휘파람 함께
수수밭 울어도
체부(遞夫) 안 오는 마을에.
노래는 떠 갔네. 깊은 들길
하늘가 사라졌네, 울픈 얼굴
하늘가 사라졌네
스무살 전지에.
3.그 사람에게
신동엽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 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4.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신동엽
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 애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길을 도와 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살아가고 싶어서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눈이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와 같이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어여쁘고 싶은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 버리자
그리하여 싶으도록 걸어가는 그의 검은 눈동자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그리하여 만에 혹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그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을 일일께며
5.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6.꽃 대가리
신동엽
톡 톡
두드려 보았다.
숲 속에서
자라난 꽃 대가리.
맑은 아침
오래도
마셨으리.
비단 자락 밑에
살 냄새야,
톡 톡
두드리면
먼 상고까장 울린다
춤 추던 사람이여
토장국 냄새.
이슬 먹은 세월이여
보리 타작 소리.
톡 톡
두드려 보았다.
삼한ㅅ적
맑은 대가리.
산 가시내
사랑, 다
보았으리.
7.너는 모르리라
신동엽
너는 모르리라
그 날 내 왜
넋나간 사람처럼 고가(古家) 앞
서 있었던가를
너는 모르리라
진달래 피면 내 영혼 속에
미치는 두 마리
짐승의 울음
너는 모르리라
산을 열 굽이 넘고도
소경처럼 너만을 구심(求心)하는
해와 동굴과 내 사랑
너는 모르리라
문명된 하늘 아래 손넣고 광화문 뒷거리 걸으며
내 왜 역사 없다
벌레 삥·····니까렸는가를
하여
넌 무덤 속 가서도 모를 것이다
너 안 보는 자리서
찬 돌 쓸어안으며
그 숱한 날 얼마나 통곡했는가
그리하여
넌 할미꽃 밑에서도 모를 것이다
그 날 왜 내
눈물먹은 네 진주에 손대지
안했는가를.
그리고 그것은 몰라야 쓴다.
8.너의 무덤에서
신동엽
온 종일
한가한 공동묘지엔
흔건히 지쳐
해가 딩굴다
함부로 갈큇발이
헤비고 간
가난한 애장 우에
계절은 땀을 흘리며
거기 나물 뜯던 언덕을
아련히 기어가는 하오(下午).
각시풀 다듬던 연한
너의 뼈마디는
지층을 적시며
오늘도 산화(酸化)하는가.....
정(貞)이.
정(貞)이
밤마다 새푸랗니
놀래였나
지표가 구겨졌다.
9.노래하고 있었다
신동엽
노래하고 있었다.
달리는 열차 속에
창가 기대앉아
지나가는 풍경
바라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물결
양털 같은 세월 위서
너는 노래하고 있었다.
죄없는 사람
가로수 밑 걸으며
또각또각 구둣소리
눈녹아 하늘로 번질 때
하늘은 바람
대지 위 고요
노래하고 있었다.
창가 기대앉아
지나가는 들녘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로수 위
구름 위
보이지 않는 영화로운
미래로의 소리로,
거대한 신은
소맷깃 뿌리며
부처님 같은 얼굴로
내 괴로움 위서
노래하고 있었다.
10.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저녁
네 머리 우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첫댓글 아침을 맑히는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