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 태 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에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평생을 시골과 소도시 공주의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임한 나태주 시인은 한때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았었다
병석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자신보다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컸기에 아내를 향한 마음을
기도의 시로 나타내었고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는 노시인의 하소연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남편의 글에 화답하여 쓴 아내의 글이었다
어찌 보면 남편이 드린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이자 시인 아내의 절창(絕唱)이었다
아내(김성예)의 답글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 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詩)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꽃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예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土房)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