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말씀일기 본문은 잠언 27장 후반부입니다.
13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4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15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16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19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20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24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외인들에게 보증을 선자는 그 몸을 볼모로 잡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가 받는 그런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함에도 보증을 서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그 사람을 위하여 전적으로 희생할 의향이 있어서 보증을 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도 아닌 죄인을 위하여 이렇게 보증을 선 분이 계십니다.
고린도후서 1:20~22절.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우리는 유대인이 보면 외인이며 동시에 죄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위하여 보증을 서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보증하셨기에
대신 죽으시고, 그 보증금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믿게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담보물이 되어서
희생하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자기 신부와 영원히 살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 안에 거처를 삼으신다는 말씀입니다(요14:23).
옛 언약을 보고 듣고 외워서 실천을 한다고 하여도
결국 그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이것이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을 보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새 언약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시고,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은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모든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이기에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여 성경을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어떤지 드러납니다.
히브리서 4:12~13절.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읽게 되면
자신의 실상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자기를 스스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피할 곳으로 갑니다.
성도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성경을 봄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이 어떤지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보는 자는 우리의 큰 대제사장, 곧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굳게 잡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서 담대히 나아갈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죽어갑니다.
아담으로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현재 세계 인구가 약 80억 명이 넘습니다.
이 인구들이 백년 안에 거의 다 죽습니다.
그런데도 무덤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눈과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이 왜 죽습니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늙고 병들어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그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무려 천년을 가까이 살아도 그들은 죽었더라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런데도 특이하게 에녹은 365세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를 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인간들은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이유를 몰라도 죽어갑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기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자족하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들은 헛된 일에 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헛된 줄 모르고 달려갑니다.
그렇게 달려가서 무엇을 성취하였다고 하면서
든든히 섰다고 할 그 때에도 실로 허사입니다(시39:5,6).
이렇게 헛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우리를 지혜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자족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요한복음 7:37~39절.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면서 늘 목말라 하는 우리들에게
끊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수를 자신의 죽으심으로
성령을 통하여 값없이 공급하시는 그 주님을 믿고 사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만족합니다.
지금 그렇지 못하다고 하여도
결국 우리의 인생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한다는 고백이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자리,
내가 내 자신으로부터도 도망가고 싶은 그 자리에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 뿐 아니라 죽음의 자리에까지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만족이 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만족함이 없는 곳이 지옥이며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지금 천국을 맛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은혜를 우리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시편 17:15절.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