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을까 마는, 중앙응급의료센터 고 윤한덕 센터장의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윤한덕 센터장은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가 문을 열면서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했다가 중앙응급의료센터장으로 승진한 후 지난 4일, 51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삶은 과로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가 속한 의료원 업무 시간은 오전 0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나, 현실은 24시간도 모자라, 사망 당일에도 36시간 연속근무를 하다 변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의 형식상 당직 배정일은 한 달에 한.두번이지만, 실제 당직 배정표대로 근무할 때는 거의 없다고 한다. 본인이 일에 대한 열정도 컸지만 센터 업무가 과중해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도저히 응급의료센터 운영이 안될 정도로 일이 많았다. 그가 재직했던 과거, 그의 전자결재 시간이 새벽 3시로 기록된 경우가 많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게 근무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망한 날에도 설연휴를 이용해 고향에 가기로한 가족과의 약속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안돼, 그의 부인이 사무실로 찾아갔다가 그의 죽엄을 보게 됐다고 한다. 항간에는 의사 자신은 격무에 시달리며 힘들게 고생하지만, 의사 부인들은 남편들이 그렇게 벌어다주는 돈으로 호강한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故 윤한덕 센터장의 경우는 그것도 아닌것 같다. 그가 떠난 후 가족들이 살아야할(지금 가족들이 현재 살고 있는 그의 아파트)는 안양시에 있는 25년 된 30평 대 아파트로 싯가 4억원 정도의 낡은 아파트라 한다. 그의 부인 민영주씨는, 남편은 가족을 사랑했지만, 가족과의 시간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며 그는 가족에겐 평생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자신의 편안함은 물론 가족의 행복까지도 응급환자들을 위해 봉사한 그의 삶 이었기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이승에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느라 가족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지 못했던 삶을 훌훌 털어버리고 하늘나라에서 노란 나비가 되서 마음껏 날아다니길 기원한다. 삼가 명복을 빈다. <조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