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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젖줄 금강.12
강물은 자연의 정서를 연신 실어 나르며 은연중 생태계의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금강은 끊임없이 흐르면서 숨을 쉬듯 출렁거리고 여울에서 장난꾸러기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거품을 머금고 빠른 걸음으로 내닫는다. 사람들은 힘들 때 자연을 찾아서 위안을 받으며 힐링을 한다. 심지어는 삶을 포기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혈혈단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이 되고자 한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며 새 삶을 살아간다. 자연이 파괴되고 허물어져서 죽어갈 때 손길이 닿는 데까지 지켜주면서 되살아나도록 도와줘야 한다. 백두대간에서 더 이상은 악화되지 않도록 휴식년제를 적용하여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예방차원이라고 할 것이다.
강도 마찬가지다. 천재든 인재든 서둘러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자연이라고 일방적 희생을 외면할 수는 없다. 금강유역의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보존되어야 인근에 살아가면서 보다 질이 좋은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가뭄이나 홍수 같은 큰 재해를 겪고 나면 제 정신이 아니지 싶지만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살아가려면 머뭇거릴 수 없다. 목숨 앞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된다. 혹독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갈 데까지 가보아야 한다. 삶에 대한 애착은 자연의 세계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싶다.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삶은 존엄하고도 성스런 것이다. 그 누구도 임의로 방해를 하고 위협하며 짓밟아서는 안 된다. 생명은 서로 존중해야 한다.
절벽의 일부가 무너지고 바위에 구멍이 숭숭 뚫린 곳도 있다. 세월의 등쌀에 일방적으로 당하여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냥 자연현상으로 그러려니 할 뿐이다. 뿌리치며 훌쩍 달아나고 싶었어도 붙박이로 옴짝달싹 못했다. 곳곳에 상처투성이 문신이 박혔으며 대충 아물거나 변질 되어 중증을 앓고 있다. 뒤늦게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빼어난 풍경이라고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 아픔조차 미화되고 고상하게 비쳐지나 보다. 그 아픔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는 수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그런 모습으로 다듬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훗날 사람들의 눈길을 당기면서 난해한 조각품을 보듯 갸웃거리는 표정을 짓게 한다.
목숨은 한 번뿐으로 삶에 연습이란 없는 실전이다. 자칫 그냥 도태될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비상수단으로 영역을 침범 악착같은 다툼의 분쟁이 일어난다. 끝내는 약자가 밀려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다. 금강에 살으리랏다. 천리 비단강 따라 충청에 뿌리를 두고 대전에 살으리랏다. 대둔산자락에서 시작된 빗물이 버드내(유등천)가 되어 대전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저 물길을 따라가면 곧 신탄진에서 금강에 투항한다. 비로소 당당한 금강으로 세종을 거치고 공주 부여 논산을 지나 장항에 다다라 하구둑을 넘어야 한다. 이제 금강이라는 이름표마저 내려놓으면 서해바다라는 짠물이 된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소금기를 듬뿍 머금는다.
밤낮도 없이 끊임없이 달려온 천리 충청의 젖줄 금강이란 대단원의 역할이 끝났다. 힘겨웠는가 하면 보람되고 뿌듯한 길이었다. 출렁출렁 남해바다와 뒤섞이고 태평양으로 나아갈 길이 트였다. 세계의 문이 열렸다. 물은 한없이 유연하지 싶었지만 한 번 홍수로 부릅뜨면 모든 것을 삽시간에 휩쓸고 갈 만큼 난폭하여 공포에 떨게 했다. 물은 한없이 흔하지 싶어서 펑펑 마구 써대다가도 한 번 가뭄이 들면 바작바작 목이 타올랐다. 자연의 위대함과 물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강의 역할 또한 만만치 않았다. 흔한 것이 물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일깨워주었다. 금강을 돌아보며 마냥 자랑스러웠다. - 201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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