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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래는 한태호의 「W. S. Merwin 시의 동양적 감수성」 논문을 개조식으로 요약
1. Merwin의 시 세계: 개요
Modernism 계열의 시인이며, 후기 모더니즘적 성향.
지적 수사, 직유, 의인화 등 사용하지만 반복적 비유는 단조로움을 유발.
신비평의 암시된 은유를 넘어서려는 시도 → 새로운 상상력 추구.
2. 모더니즘과 자아의 긴장
신비평과 Eliot의 객관적 상관물 이론이 지배하던 시기에 활동.
그에 반해 자아 중심의 심리 분석적 시도와 자서전적 시성을 강조.
그러나 완전한 자아 침잠이 아니라, 자아를 넘어선 새로운 객관성을 탐색.
3. 신화적 자아(mythic self)의 특징
자아를 신화화하여 객관화된 정체성을 시로 창조.
**그리스적 ‘존재’보다는 동양적 ‘부재’(absence), 고요함, 무(無)**로 형상화.
숨겨진 것의 드러냄 → 동양적 역설의 미학과 닮음.
4. 서구와 동양의 신화 비교
서구: 죽음을 상징하는 뼈에서 생명의 의미를 찾음.
동양(예: 단군신화): 쑥과 마늘이라는 식물에서 생명의 기원을 봄.
서구: 소멸에서 재생 (종교성, 예언성)
동양: 자연적 전이, 수평적 생명 전승, 탈중심성
5. 동양적 감수성과 시적 특성
자아와 세계(자연)의 합일 추구
→ 하이쿠, 단시, 오도송과 유사한 언어-의식-대상 간 무간극성 중시.
시는 감정의 장식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가 되는 언어를 지향.
대상과 언어가 일치하는 순간을 추구 = 깨달음의 순간
6. 언어와 무의식
자아의 탐구는 분열과 무지로 이어지며, 이는 시적 창조의 계기가 됨.
Merwin은 자아를 타자화, 청중화, 신화화하며 시를 창작.
자아와 역사, 죽음(뼈), 상징의 재창조 → 시를 통한 자기 신화 구성
7. 동양성과 신화적 시적 태도
**불교·도교적 사상(공, 무, 무위, 초연)**의 영향 받음.
침묵, 공허, 결여, 환영 등의 어휘 사용 잦음.
자기 몰입과 이탈의 중용적 태도 → 동양의 중용미학과 상통.
8. 자연과 존재의 관계
자연을 신의 구현 공간으로 봄 = 동양의 자연론, 무아관과 유사
바위·동물과의 동일시 → 동양의 유심론적 세계관과 연결
9. 시적 미학의 핵심 요소
단순하지만 심오한 언어 사용.
장식보다 직관적 의미의 직격 표현 추구.
언어 이전의 감각, 형이상학적 실재를 시로 형상화.
10. 동양적 "부정의 도"
깨달음 → 부정 → 상승의 순환 구조
→ 동양적 도의 전형적 특성.
Merwin의 시는 이런 정신적 구조를 반복적으로 탐구함.
11. 결론
Merwin의 시는 완성된 계시나 진리보다는 가능성과 움직임을 지향.
자아를 중심에 두되, 절대화하지 않고 거리 두기를 실천.
고백시와 예언시를 넘어서, 불완전하고 무한한 시적 가능성을 탐색.
→ 동양적 감수성과 중용의 미학, 자아-세계의 합일, 신화적 자아 창조를 특징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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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W. S. Merwin 시의 동양적 감수성:
신화적 뼈와 식물의 환유 - 한태호 (관동대)
I.
W. S. Merwin(1927- )은 Modernism의 문학사적 특성을 계승한 현존 시인(contemporary poet)이다. 그는 자연히 현시대의 시인들처럼 공통적으로 지적인 기상(intellectual conceits), 직유법, 의인화, 주관성, 개인 의식 등을 다용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신비평 사조의 암시된 은유법을 의식적으로 벗어나서 직접적이고 강하게 겉으로 드러내는 신 비유법을 사용하는 것인데, 어느 면에서 보면 반복된 비유에 의해 오히려 단조로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시 형식의 단순성과 동시에 복잡한 내용을 상호 교차되는 시 효과를 내며 새로운 상상력을 표방한다. 이러한 후기모더니즘의 상상력은 어찌 보면 자의식적으로 모더니즘의 시성을 패로디하는 상징성일 수도 있다. 보다 새로운 시적 가치/내용/형식의 추구를 위한 탐색이면서도 결국은 자아를 넘어서지 못하는 "personal poetry"의 시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내적 자아로의 회귀현상에서 보편적 가치의 부정, 자서전적 시성의 강조, 순간적이고 즉각적 사물 가치의 중시, 영혼의 내적 깊이의 숭상 등이 자연스레 시적 가치나 세상을 드러내는 이미지 대상으로 부상하였다.
Merwin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50-60년대는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한 신비평주의 문학사조와 Eliot의 객관적 상관물의 이론이 전통과 질서, 가치 개념을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또 당시는 정치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종말과 McCarthy 선풍(좌익주의) 등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러한 격동의 정신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기존 가치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당시의 심리분석(psychoanalysis)의 영향에 힘입어서 당시의 불안정한 정신구조를 극복할 도구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객관성에 반대되는 주관적 심리성과 시적 감식안의 시적 이용이다. 여기서부터 현대시는 개인시성을 강조하고, 자아의 이미지를 표출하고, 독백시나 초현실주의적 시, 자아를 표면화시키거나 역으로 자아를 감추는 등 다양한 시 형식과 내용이 도출하게 된다.
이러한 모더니즘 전통에 대한 반발로 발생된 수많은 시적 경향 속에서 Merwin도 자연히 몽타쥬적이며 불한정된 지칭성을 바탕으로하는 모더니즘적인 전략(Williamson 3-4)를 벗어나서, 자서전적 시적 경험을 표출하고, 깊은 내면의 자아상을 전형적인 이미지로 표출하고, 외부 현상을 순수하고 청명한 시어로 사실 그대로(as it is) 드러내려 하였다. 이러한 시에서는 시인의 주관적 요소가 많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는 주관성에 대한 함몰보다는 역으로 주관성을 넘어서는 객관성으로의 회귀성, 새로운 객관성을 향하는 향수적인 그리움 등이 발견된다. 이것이 외부 대상, 세계에 대한 확고한 관계성을 발견하려는 시인 자신만의 방법론을 구축해준다. 이것을 Mark strand는 "mythic self"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주관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객관성의 미학이 Merwin 시에서는 많이 발견된다. 주관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새로운 객관성의 발견을 추구하는 시성은 보편적 시성, 더 나아가서 동양 시적 성향도 발견 가능하게 해준다.
자아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동시 확립을 위한 Merwin의 노력은 모순적인 듯 하지만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다. 자아가 곧 마음이라고 할 때, 자아(마음)는 탐구하면 할수록 더욱 확신하기 어렵다. 이것이 자아의 성격/본질이다. 자아란 본질적으로 주관적 특질과 동시에 객관적 보편성을 요구받는다. 자아를 아는 방법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본능적 성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개인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진리성, 객관론을 추구하고 싶어진다. 이러한 주관성과 객관성은 상호 모순되고 상충되는 듯하지만, 동시에 하나도 서로 어긋남이 없이 상호 협조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따라서 Merwin이 동시대의 주류 思考인 주관성(self)의 추구와 동시에 자신만의 객관적 진리인 신화 및 그와 유사한 대체물을 추구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개인의 정신/의식을 객관적 표현으로 드러내는 방법이 가능한가? 심리적 어둠의 지대(무의식 영역)를 객관화된 언어로 표현 가능한가? 이는 의식과 조화되는 언어의 상보관계성의 문제가 된다. 이 때 자아는 타자로 전이된다. 즉 시인의 意識的 자아는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다. 시인이며 동시에 청중, 독자가 된다. 생각(의식)이 동시에 창조물(시)이 된다. Merwin은 이러한 모순적 진리성을 시로 직접 드러낸다. 자아 및 의식의 들판에 수없이 널려있는 과거의 해골사이에서 모순된 조화를 모색한다. 무한한 시간의 역사 속에서 생존하는 자아로의 개인과 시간성(소멸성/유한성)의 상관성을 시로 표현한다.
이것이 그의 시에서는 대표적으로 신화(myth)로 표출된다. 그의 신화는 객관성으로 표출되는 자아상이다. 신화적 내러티브 보다는 자아의 감춰진 이성, 감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가면으로서의 신화 像이 탄생한다. 그의 신화는 그리스적인 드러냄(presence)보다는 감춰짐(absence), 고요함(silence), 얼굴 없음(defacement), 無(nothingness) 성향을 보여준다. 언어로 분명히 지칭되고 기표화 되지만, 그 표상화된 실체의 본성이 가뭇하게 가리워진다.
이러한 가리워짐(hiddenness)이 역설적으로 드러남(revelation)이나 투명성(tranparency)이라고 할 때, 그 역설성이 무언가 동양적 성질을 제공해준다. 동양성이라고 할 때, 특정한 불교 이론이나 道家的 초현세성, 일반 동양적 생사관 등을 모두 내포하는 의미가 되겠지만, 여기서는 그 범위를 한정시켜서 동양적 시적 감성으로 이해해본다. Merwin 시에 나타나는 시적 감수성과 철학관, 비유법 등이 동양적 감수성과 연계되는 내용을 살펴본다.
일례로 그의 시 "The Room"에 나타나는 시적 세계와 느낌은 보편적 동양관을 느끼게 해준다.
I think all this is somewhere in myself
The cold room unlit before dawn
Containing a stillness such as attends death
And from a corner the sounds of a small bird trying
From time to time to fly a few beats in the dark
You would say it was dying it is immortal(全篇)
그는 자신의 "방"으로 대변되는 자아의 세계에서 선방에 앉아서 명상하는 道人처럼 차가운 새벽 기운에 젖어있다. 자아 내부 어딘 가에서 차가운 명상의 방구석에서 작은 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둠에서 일어난다. 그의 의식이 차가운 새가 되어서 새벽의 정적, 곧 삶의 無聲 속으로 일어난다. 이 때 그가 바라보는 작은 새, 즉 자아는 죽어가면서 동시에 영생을 얻는다. 이러한 과거진행형 시제로 죽어 가는 소리와 현재에서 영원히 불멸하는 소리가 바로 동양에서 항상 추구되는 생사의 윤회관, 자연과 자아의 합일관, 超然物外觀, 등을 암시 해준다. 이런 기본 사상을 시로 표현하는 시적 특질에서 동양성을 발견하게 해준다.
다음으로 동서양의 비교 연구를 위한 사고의 출발점으로서 인류 탄생의 양태를 비교해본다. 여기서 미국시인 Merwin의 사고, 시성과 동양의 일반적 특성을 비교 암시 받는다. 그의 기본 시성인 신화의 속성은 아무래도 생명의 기원과 탄생의 형태에서 암시 받는 바가 크다. 그의 시적 상상력은 신화적 탄생의 비유와 시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대한 동양적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독특한 서구적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의 시를 접근해본다.
서구인(이스라엘인)은 성경에서 보듯이 제 1인간(Adam)의 갈비뼈에서 제 2 인간(Eve)을 탄생시킨다. 그 창조 신화에서 탄생/재생의 의미를 뼈에서 소여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막에서 널브러진 하얀 동물 뼈에서 암시 받는 생명의 유한성을 역으로 드러내는 탄생 설화(narrative)를 제공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사막에서는 모든 생명이 사라지나 칼슘과 인으로 구성되는 뼈는 영원히 생존된다. 사막에서 뼈로서의 생존은 타자에게 드러내는 생명의 흔적이다. 타자(시인)에게는 드러난 뼈가 신화로 刻印 된다. 뼈는 인식과 앎의 고고학이다. 모든 생명이 소멸되는 場/공간에서 유일하게 과거 시간을 환기시켜주는 전시장/유물이 된다. 뼈는 神/정신/역사로 접근하는 발굴된 자취다. 뼈는 분명히 과거다. 과거가 현실에서 새로운 시적 감각을 제시하는 비유의 중심이 된다.
뼈는 하얗게 표백된 세월의 흔적에서 드러나는 과거성이며, 동시에 그를 지켜보는 현실성, 관찰자(beholder)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뼈는 시간을 통시적(paradigmatic)으로 드러내며, 공시적(syntagmatic)으로 시인을 필요로 한다. 뼈의 의미와 뼈를 통한 과거성의 재생을 완성시켜줄 표현자가 필요해진다. 여기서 노란 사막에 하얀 뼈로 드러나는 서구 역사/신성의 의미는 대상으로서의 시적 소재가 되며, 지나가는 과객으로서의 시인을 요구하며, 시인의 표현으로 시가 된다.
사막 모래에 뼈처럼 숨어있던(defaced) 신/역사/시간의 얼굴이 시인의 참여로 인하여 새로운 시로서 창조된다. 사막 속의 부재(absence)가 詩속의 실재(presence)로 생존/탄생/재생한다. 사막의 뼈는 얼굴과 신원이 없다. 그 뼈는 개인이나 주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객관적 대상, 시적 대상으로 부각되어 온다. 그는 시인의 의식에서 더 이상 부재로서 존재하지 않고, 의미 있는 실존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그의 신원(identification)을 재생시켜 준다.
이러한 숨겨진, 이미 사라진 뼈(주검)의 신원의 재생(representation)이 시다. 시로 재생되는 신화가 된다. 한 시인의 신화는 이렇게 자연히 탄생된다. 신화는 시로 창조되는 설화(narrative)가 된다. 그 신화는 단절된 과거성이 아니라, 顯現되는 시의 환유로 퍼진다. 뼈라는 죽음을 통하여 재생을 연결시킨다. 사라진 살(flesh)과 육체(body)를 뼈의 허구성(voidness)을 통하여 신화로 재구성(reconstruction) 된다. 서구의 신화는 이렇게 죽음과 부재를 바탕으로 할 때 재구성되는 사라진 실재성(defaced reality)이다. 뼈의 성격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언어의 구축물이다.
그러나 동양적, 특히 한국적 탄생과 재생의 설화는 뼈로 시작되지 않는다. 한국의 생명 기원설인 단군의 탄생 설화에서는 웅녀(熊女)의 쑥과 마늘로 대변된다. 생명과 탄생, 재생과 창조의 원소가 쑥과 마늘이라는 식물(plant)이 된다. 다른 탄생설화에서는 알(卵)과 胎生으로 나타난다. 서구에서처럼 생명이 소멸된 유적으로서의 뼈가 아니라, 타 생명의 원천이 되는 援助的 생명체로의 식물성을 갖는다. 동물성으로 대비하여도 뼈와 본성이 다른 알과 태생으로 나타난다. 뼈는 종말의 표본실이지만, 쑥과 마늘은 시작의 잎과 뿌리다.
동양의 생명성은 뼈로 대치되지 않고, 식물로 강장제가 된다. 동양은 각질화된 뼈로서 탄생되는 신화를 믿지 않는다. 이러한 서구의 무생명의 생명화 현상은 신화보다는 종교로서 자리잡게 된다. 신의 창조설로서 언어로서 실재/생명을 지배한다. 동양에서는 생명 그 자체로서 타 생명을 탄생시킨다. 이는 한 생명의 희생을 통한 타 생명의 영속, 부활, 재생을 의미한다. 마늘과 쑥이 곰에게 제물이 됨으로서 새로운 존재로서의 웅녀를 탄생시킨다. 두 식물이 생명성을 전이(transfer)함으로서 새로운 생명으로 상승화(sublimation) 된다.
이 현상은 존재의 代替(substitution), 이동(movement), 변용/수용(adaptation)이다. 수직적(paradigmatic) 변화를 통한 생명의 탄생이 아니라, 수평적(syntagmatic) 이동을 통한 생명의 변형일 뿐이다. 한 존재성이 완전히 소멸되는 변형이 아니라, 타 존재의 바탕이 되는 변화다. 식물을 먹고 동물이 새로운 존재로 성장 재생된다. 이는 동일한 존재성과 본성(육체성, 동물성 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다른 이름의 존재로 수평이동 되는 것이다. 이름의 변화 작용을 경험할 뿐이다. 곰에서 웅녀(인간)로 변용(승화 또는 타락)된다. 이름의 전이는 이루어지나 존재의 생명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름의 변화는 존재의 생명성과 본성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를 언어적으로 표현하면, 이름은 달라져도 그 속성, 본성이 그대로 보전/생존되며, 다른 형태로 재생될 뿐이다.
지금까지 제언한 것처럼, 동양의 탄생성은 식물성, 동질성, 대체성, 물리성, 변용성 등의 형태를 보여준다. 서구는 사멸된 동물성, 이질성, 脫場性/이탈성(displacement), 화학성, 소멸성(defacement), 종교성 등을 보여준다. 동양은 형태/이름의 변화 속에서도 항상 동질성으로 現存(present)하나, 서양은 서로 단절된 부재(absent) 속에서 마술처럼 생명/신화가 갑자기 顯示(revelation)된다. 동양은 설화로 자연스레 구전되나 서양은 신화로 예언된다. 동양은 단계를 건너뛴 예언성(prophecy)을 거부하나 서양은 종교적 예언을 강요한다.
Merwin은 서구시인이면서도 서구적 예언성을 거부한다. 일부 비평가는 그를 "oracular poet"로 평하기는 하지만, 시인 자신은 그러한 평을 거부한다.(Ryan 2032) 그는 추상적 미학이론을 주장하지 않으며, 비평 조류를 기술 및 사회 변화성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이러한 서구적 예언성의 거부 현상과 권위적 주장보다는 침묵(silence), 비우기, 無性을 강조하는 면에서 동양적 시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탄생을 중심으로 한 동서양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Merwin의 시에 나타나는 신화성과 생명성을 비교해보면, 그의 시가 보여주는 동양적 詩感을 파악할 수 있다. 그의 신화는 기독교적 일원성, 권위성, 창조성의 권위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생태학적 관심에서 반영되듯이, 자연의 동화성과 동식물의 친화력(Green with Beasts)을 통하여 동양적 시적 감각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는 신화적 시인이다. 그러나 그 신화성이 그리스적 요소는 가지나 헤브라이적 요소는 거부하는 듯하다. 이 그리스적 신화성이 동양적 시감을 많이 연계시킨다.
II. 동양적 요소
현대시(contemporary poetry)의 가장 큰 특징은 자아가 전면으로 포진되는(forboding) 개성시(personal poetry)의 지배 성향을 들 수 있다.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감수성을 중요시하며, 자연이 곧 자아의 객체, 자아의 표현과 이해 대상으로 부각된다. 자아가 연결되지 않는 전체성, 중심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내면성, 인간 의식을 강조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시들은 크게 두 성향으로 분류 가능한데, 그 첫째 공통점은 우선 시적 성향/언어가 고상하고, 세상/일상과 약간 떨어져 있고, 보다 강렬(intense)하고 고상한(elevated) 시어를 선호하며, 증류된(distilled) 듯이 청명하며, 개인 감정을 솔직(honesty)하게 드러내며, 시적 장식이나 의도적 기교성을 강조하지 않으며, 언어 이전의 세상에 대한 인식(pre-linguistic awareness)을 시어로 표현해내며, 감정의 특정 의미를 표현해내는 특질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가장 일상적 시어로 일상적 감성을 표현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은 주제의 별난 특이성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일상적 주제로 독특한 시성을 드러내려한다.
그 둘째 공통점은 첫째 공통점을 바탕으로 보다 심원하게 발전된다. 즉 시적 주제와 그 주제를 표현하는 시어 사이에 空隙을 두지 않는다.(Gleeson iv) 시적 표현 대상을 인식하는 시인의 의식과 그 인식된 대상을 표현하는 시어간에는 아주 적확하고 딱 어울리는 관계를 가지므로, 인식 상의 차이가 하나도 없다. 이러한 현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覺의 순간과 오도송의 관계성이며, 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성서의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모든 깨달음도 이러한 대상과 언어간의 일치성, 무간격성을 의미한다. 대상의 의미가 언어로 적확하게 표현되는 것이며, 언어로서 대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때 시는 더 이상 하나의 장식물, 언어적 수사나 표현물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 의미 그 자체, 본질 그 자체가 된다. 어느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의 의미가 곧 그 대상에 대한 시인의 의식 그 자체가 된다.
이런 주객의 합일, 대상과 시인의 합일, 인간과 세계/외부의 합일 상태는 단순히 시적 은유로 표현될 수 없다. 현대시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 현실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실재성(metaphysical reality)을 믿으며, 그 실재계에서 합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성향이 있다. 불교를 포함한 대개의 종교성의 궁극 상태는 바로 이러한 상태의 합일성(oneness, unity of being)을 지칭한다. 이런 시 세계는 직접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느끼며 발견되는 세계다. 시의 궁극적 행위의 場에서만 얻어지는 시 의식 상태다. 물질적 외부 세계가 시를 제공하지 않고, 시인의 의식과 자아의 발견이 시에 형태와 의미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시적 성향이 서구에서는 일본의 하이쿠나 동양의 단시를 선호하는 성향으로도 나타난다. 일례로 James Dickey의 "The movement of Fish"라는 시에서 "No water is still, on top./ Without wind, even, it is full/ If a chill, superficial agitation" 같은 부분이 외부 대상과 시인의 의식이 시적 동작성 면에서 합일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성은 Merwin의 시에서도 발견 가능하다.
Merwin은 이미지가 심원하고 장대한 느낌을 주며, 자아의 개성을 정직하게 그대로 드러내는 "pure clear word"를 선호한다. 이 시대의 불확실성의 원리를 시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새로운 미학성인 "신화적 자아(mythic self)"를 창조해 나간다. 이러한 신화적 미학성/자아성은 역설적으로 자아의 불확실성을 더욱 대변해준다. 보다 확고한 존재로서의 대상, 객관성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자아에 대한 연구가 강화될수록 모순적으로 본질적 자아상을 발견하기란 어려워진다. 자아의식이 단순한 정신적 감각기관의 작용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보다 심원한 영혼(자신을 이해하는 본질로서의 정신)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과 자아, 영혼과 의식과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는 서구에서 언어성의 연구로 귀결되어 왔다. 언어의 연금술을 강조하는 시에서는 Baudelaire의 "통합적 미학의 상응성" 개념을 바탕으로 언어성과 시의 관계를 추구하여 왔다. 인간 의식은 곧 언어이며, 천지 창조도 곧 언어로 귀결된다. 침묵(silence)으로 대변되는 본질적 자아는 설명할 수 없기에 분열(dissociation)되게 마련이다. 이 때 의식과 대치되는 무의식의 세계가 시 세계로 들어선다. 무의식은 기존 사상의 내재화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시인의 개인적 신화로 천착된다.
무의식을 지켜보는 자아는 타자가 되기도 한다. 지켜보는 관객으로서의 타자는 곧 시인이며 시인이 표출하는 사상, 생각이 되기도 한다. 자아와 동일한 타자로서의 시인은 뼈로 표상되는 지난 세월의 인간들의 축적된 사상, 상징을 자신의 시에 적용하여 새로운 시를 창조해낸다. 과거의 기존성을 새로운 신화로 창조해낸다. 새로운 사조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고요한 응시를 통한 시성의 창조를 추구한다. 자아를 넘어서는 객관에 대한 고요한 지켜봄, 視線이 보다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至高하면서도 고요한 詩性이 동양성을 연상시켜준다. Merwin 시에서는 이러한 사물과 자아를 응시하며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는 고요함이 수없이 반복된다. 이러한 특질이 하이쿠를 선호하는 공통점이 된다. 그의 시에는 distance, emptiness, vacancy, nothingness, hollowness, illusions, mirages 등의 유사 어휘가 수없이 반복된다. 이 언어들은 동양성 뿐만 아니라 물론 서구적 종교성, 신화적 어휘로서도 연계된다. 그러나 자아와 객관의 합일성, 언어와 사상의 통일성, 무공극성, 간단한 형식성과 내용의 심화성 등에서 동양적 향취와 시적 식견을 발견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자아의 탐구는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자아 상태의 명확한 정의를 추구할수록 그 실체는 파편적이고 궁극적으로 더욱 無知해진다. 이러한 모순이 서구 문학사상의 근간을 이루며, Merwin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다만 그는 그 파편성과 무지성을 발견하기 위해 신화적 고요한 환원(reduction)을 통해 자신만의 신화를 재창조하려한다. 그는 고백시인들이 추구하던 극단적 자아정의를 위한 심리학적 운명성을 답습하지 않고, 자아 발견의 절대성을 부정하려 한다. Merwin은 Snyder가 동양성으로 학습한 서구적 정신의 영웅상, "an archetypal self"를 추구하지 않으며, Ashberry의 시적 소외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심리학적 자아상을 정의할 수는 없다고 믿으면서, 스스로 세속과 이탈하여 한 발 물러난 "negative mysticism" 의 자태를 보여준다.(Williamson 4)
그의 소극적 신화성이 동양적 감수성을 뒷받침 해준다. 즉 고백시인들처럼 자아를 중심으로 한 자아관의 형성 주장은 너무 주관적이거나 괴팍한 내적 경향을 제시하기도 하며, 서구인의 이성 중심적 사고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자아 편애적(나르시스) 성향을 거부하여서 객관적이고 윤리적 성향만을 강조하는 종교적 내성도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偏愛的이거나 자아 초월적 양극단을 중용화 하는 시적 감각을 표현한다. 신화라는 객관적 자아 몰입과 창조성을 통하여 시를 표현한다. 서구적 자아 몰입을 완전하게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약간 떨어트려 놓고 볼 수 있는 경지를 드러내는 그의 시에서 동양적 중용이나 객관적 주관성, 몰입을 하되 특정 대상에 함몰되지 않는 시적 감각을 발견한다. 불교도 결국은 주관주의를 바탕으로 하되 객관적 주관성의 벗어남/이탈(displacement)을 보는 명상자세를 보여준다. 동양은 서구와 달리 근본적으로 주관에 함몰하기보다는 주관과 객관의 어우러짐을 더 강조하기에 유사성이 발견된다.
Merwin의 동양적 감각은 서구인으로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발로서 형성되는 시적 감각이라고 전제하더라도, 그 정치적 참여성 이면에 드러나는 동양적 시감과 이해는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새로운 인생 여정을 마련하기 위하여 유럽, 지중해, 멕시코, 하와이에 거처하는 것은 서구적 감수성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하와이의 일본문화와 둘째 아내 하와이인 Dana Naone의 불교적 관심을 고려할 때, 1970년대에 그는 불교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가 둘째 아내와 이혼하고서도(1983), 하와이에 계속 거주하며 그 문화에 탐익하는 현상은 동양적 감식안을 대변해준다.
III. 시 분석
Merwin은 20C 중반 미국시의 심리적 자아 중심주의, 고백시의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신비평주의 특성을 간직하면서 질서정연하고, 지적이며 일정하게 코드화된 시론을 전개한다. 서구의 주류 사상인 자아론과 "Noble Savage"을 수용하면서 현대 과학성을 재발견하는 신화성을 앞세운다. 이러한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신화성이 Gary Snyder나 Robert Bly와 유사한 시적 특질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과도 약간 다르게 자연 및 특정 종교에 몰입하기보다는 약간 소극적 신화주의를 표명한다.
이들은 불교적 성향이 높으며 인간의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 본능, 동물성, 원시성을 시로 표현할 줄 안다. 이러한 본원적 인간성을 표현하려는 시는 본원과의 일치성(oneness)을 보여주며, 인간이 자연과 합일되거나 자연 그 자체, 동물 그 자체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마다 서로 다른 개성으로 근원적 회귀성을 표현하지만, 언어 자체를 초월하려는 성향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근원으로의 회귀성과 언어의 초월성이 불교 및 동양적 사고의 향취를 느끼게 해준다. 시인으로서 종교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가장 숭고하면서도 肉化된 시어로서 생의 진리나 본질을 드러내려는 작업을 한다. 바위나 동물과 동일시되는 시적 심미안은 불교의 唯心一切造나 일반 동양성의 초연물외 사상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성향은 시어 및 시론 면에서 무의식적인 무질서나 감정 토로적인 시보다는 일정한 기본과 질서를 유지하며 자아를 드러내는 시를 제공한다. 단순 명료하면서도 심원한 생의 신비성을 드러내려는 시를 선호한다. 시어의 자유연상을 중시하면서도 적확한 표현성, 내용성, 지적 정교함을 중요시한다. 단순함과 동시에 복합적 모순성을 같이 드러낸다. 이런 시어가 Merwin의 신화성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그의 신화는 素朴性(simplicity)에 근거하는데, 그 순수성/소박성이 동양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박성은 동양적 無, 실재성(reality) 등을 인식시켜 준다. 그는 자신의 강렬한 감성에 맞는 시적 호흡, 리듬이나 단문, 더 나아가 한 단어로 동양적 순수성을 표현하려 한다. 이 때 시적 기교(artifice)는 시 의미 자체가 된다. 순수하고 적확한 시어는 형식 및 기교성 보다는 그 시에서 풍겨 나오는 의미 자체를 칼로 찌르듯이 전해준다. 그는 구체적 사물을 평면적으로 기술하며 세밀하게 묘사하는 정도에 국한하지 않고, 그 사물의 의미가 주는 전부를 드러내려 한다. 즉 Elizabeth Bishop이 "how things are"를 주로 표현했다면, 그는 "what they mean"을 드러내려한다.(Hix 25)
"Leviathan" explication
이 세상의 근본을 밝혀내는 방법은 生老病死되는 유한한 존재/사건의 이면에 숨어있는 진리, 즉 질서정연하고 엄밀한 기본 법칙을 이해하고 잡아내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현상을 적확히 드러내면 된다. 이러한 근본 이치를 드러내는 방법은 Merwin의 신화적 사고법이나 불교 및 동양의 근원적 접근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겉으로 상이한 두 요소의 공통점이 될 것이다. 그 공통점이 적확하게 중첩되지는 않더라도, 葉狀體 식물(frond)처럼 줄기와 잎이 같이 뭉숭그레 어울려드는 혼합성, 관계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A falling frond may seem all trees. If so / We know the tone of falling"("Dictum: For a Masque of Deluge")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시인으로서 생의 근원성을 밝혀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인은 종교적 수행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My blind neighbor has required of me
A description of darkness
And I begin I begin but
근본을 발견해내지 못하더라도, 시인은 시어를 동원하여서, 또는 시어를 버림으로서 근원의 동작(gesture)을 직감하고 있다. 근본이 보여주는 몸짓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言說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로 부르짖고 있다. 이러한 언어이전의 감각, 말로 나타나기 이전의 근본성을 보는 점에서 동양적, 불교적 색감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서구인으로서 문명의 거부, 야수성, 신화적 요소로 대변될 뿐이다.
이러한 요소는 "gnostic tendency"로 이해되기도 한다.(Williamson 91) 순수자아를 발견할 수 없다면, 구체적 외부 세계에서 그 의미/본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 또는 좌절감을 보게된다. 이는 내면성의 추구보다는 외부로의 향한 눈길을 말한다. 시인은 근본적으로 구루/聖者 같은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다만 시적 주제로서 자아 동일 반복적으로 의미를 드러내는 시적 敎師로서 존재한다. 시인의 복합적 비전으로서 새로운 시적 공감을 촉발하는 것이 의무로 이해된다. 시인은 적절한 도덕성/도덕적 의무와 미학적 가치로서 자아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강조하는 것이 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시나 유사한 종교시는 자연스레 도덕적, 교화적 가치(didactic impulse)를 표방하게 된다.
Merwin의 동양적 연계성은 그의 시의 자연 계시성(nature epiphany)에서 발견된다. 그의 시 전편, 특히 The Compass Flower에 나타나는 자연 속에서의 신의 구현성이 종교적 계시성과 유사하고, 불교의 무아경 속에서의 神接論的인 경지와 동양 정서의 자연론을 발견하게 해준다. 이 경지에서는 자연히 언어초월적, 언어 이전의 고요한 상태, 수사학이 필요 없는 무언의 원시상태를 동경하게 된다. 이것이 더 발전하면 언어를 반대하는 종교적 고립주의(religious isolationism), 시인의 은둔주의(asceticism), 불교의 세속과 이탈하여 은둔하는 수행주의와 연계된다.
Merwin은 신의 계시를 반대하는 시인(anti-epiphanic poet)이다(97). 그는 언어와 의미의 시를 표현하려 하지만, 곧 바로 언어에 대한 회의성도 가지고 있다. 그의 암시된 철학은 부정의 道(Way of Negation), 그노시스파의 사상(gnosticism), 마니교 사상(Manichaeanism)이라고 한다(97). 이 사상의 근본 공통점은 개념, 생각, 감각 세계는 모두 환영(illusion)이라고 보는 점이다. 이것은 불교나 도교의 기본 개념이며, 신과 영혼의 분리 현상을 드러내는 관념이다. 이 중에서도 동양과 불교 사상의 기본은 부정의 도에서 연계성을 볼 수 있다.
Merwin의 시가 부정의 도에 연계되는 이유는 그의 시에 나타나는 반복되는 탐구(quest)의 의식구조, 정신적 제스쳐, 그 탐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제반 의미를 새롭게 정화하려는 노력(a repeated purgation of false meaning)에서 발견된다.(98) 동양적 부정의 도는 끊임없는 정신적 최고성을 향한 노력과 그 노력에 의해 발생되는 결과의 끝없는 부정이다. 그 부정을 통하여 다시 새로운 차원으로 상승, 승화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일이다. 이러한 발견-부정-상승의 과정을 그의 시에는 수없이 반복하여 묘사된다.
이러한 깨달음과 부정, 그리고 다시 다음 단계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정신적 순환과정은 자연히 종교적 재생, 육화(incarnation)/부활, 신의 구현성(epiphany) 등을 초월하는 성격을 보여준다. Merwin의 시가 종교적 시성보다는 신화적, epoclyptic 요소를 보여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현세초월적인 성향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surrealism 요소로 해석하기도 한다.(93-8)
Merwin의 시적 어휘와 감성에 따라서 초현실주의적 성향을 인정하더라도, 그의 시성/초월성(transcendence)의 방향성은 상향성이 강하다. 그의 시에서 동물(Green with Feasts), 식물, 대지와 관련된 시가 많기는 하지만, 그의 의식/정신 구조는 무(nothingness, absence) 같은 허공으로 향하는 언어의 상향성(upwardness)을 보여준다. 그의 시어와 이미지는 하늘 속에 숨어있는 듯한 기묘한 언어의 날개짓을 통하여 자연과 자아의 신비를 드러내려 한다. 그는 자아를 표현하는 자아 重視 시인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자아를 독백시인(confessional poets)처럼 자아 신상에 대한 구체적 독백보다는 자아를 神話化하여 객관적으로 자아를 창조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자아의 신화론(mythology of self)이다. 이러한 자아의 신화성은 자연히 내부로 향하든 하늘로 향하든 아직 어두운 실체를 향하여 상승의 성향을 보여준다.
Habits" 시 분석
의식된 삶이나 꿈조차도 악마의 재산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성향에는 심리학적, 예술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If all concrete realization is a betrayal of spirit to habit, there is little point in following any new insight, intuition, or association through what can only be suicide of its valuable elements; and the self loses the possibility of being changed by experience, even the most inward experience.) 이런 경우는 극단적으로 악화되면 시는 있지만, 주제가 없는 듯한 현상도 있다. 자기 가능성을 항상 열어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결국은 자기 방어를 하는 자세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시를 쓰는 것이다.
"We Continue"
"Air"
IV. 결론
Merwin시는 전체적으로 완성된 깨달음이나 발견(enlightenment)보다는 순수한 가능성(pure potentiality)으로 향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적인 제스쳐 같은 느낌이 든다. 동양적인 확고한 신념과 안정감, 편안한 자태보다는 아직도 미래와 언어의 가능성으로 향하는 끝없는 흔들림, 손짓, 정신의 움직임을 느끼게 된다.
그의 시는 "the anti-projective epistemology"(Williamson 100)을 보여주는 성향이 있다.
꿈같은 이미지, 일상적인 감정과는 약간 다른 신비하고 낯설지만 중심적인 자기 존재의 상징성 등을 표현한다. 그의 시는 어느 면에서 Eliot 가 주장하는 "unified sensibility"를 충족시켜주고 있으며, 시에서 감성적 인상을 끊임없이 재생시켜주는 모습을 제공한다. 그는 Berryman의 Dream Songs 처럼 꿈속에 나타나는 시적 영상을 표현하는 듯하면서도, 자신이 제공하는 시적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 해석하려 한다.
Alan Williamson이 분류하는 자아의 두 형태의 진영에서(150-1) 특정 진영에 치우치지 않는 점에서 동양적 중용과 조화성의 미덕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분명히 서정성이 높은 시를 쓰면서도, 미국 시단의 시대적 조류의 경계선에서 고백시적인 자아추구의 극단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초현실적인 자아버림/초월의 극단 또한 취하지 않고, Snyder, Bly 시 같은 자연시와 예언시적 성향을 약간 보여준다. 후자의 두 시인과의 동일 궤에서 발견되는 동양시적 감각이 불교 및 동양적 취향에 접근성을 제공해준다.
tragic vision 과 nihilism.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신화적 세계와 apocalypse 세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