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소나무
전 성 희
나는 새댁 시절에 콩밭지기가 되어 멋스러운 소나무를 흠모한 적이 있다.
새로운 종자가 될 콩을 시험 재배하던 어느 기관에서는 밭에 심은 씨앗을 날승들에게 모두 빼앗긴 후에는 사람을 사서 콩밭을 관리하였다. 나는 우연히 콩밭을 지키는 농군이 되어 까치와 비둘기들이 날아들면 팔을 훠이훠이 저어 쫓아내었다.
유월의 태양을 가리느라 머리에 수건을 걸치고 차양이 넓은 밀짚모자를 썼다. 밭둑에는 화강암의 납작하고 두툼한 돌이 있었는데 걸터앉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미물들도 사람들과 같이 끼니때가 되어야 먹이를 찾아 날아드는 것을 알고 여유롭게 책을 읽기도 하고 시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영악한 새들은 움직이는 허수아비가 두려웠는지 내가 밭에 있는 동안은 기웃거리지 않았다.
윗 밭에는 우산을 펼쳐 놓은 듯한 우직하고 늠름한 소나무가 있었다. 밭에서는 부부가 곡갱이질을 하고 김을 매기도 하였다. 소나무 옆에서 노부부가 땀을 흘리며 일하는 전원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평온하였다.
밭둑에 앉아 고개를 들면 맞은 편 둔덕에 정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와 사람이 어울리는 그림은 간혹 볼 수 있는가 하면 소나무 한 그루가 푸르름과 곧은 기개로 들녘을 지키는 그림은 언제나 볼 수 있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소나무로 집을 짓고 배고픈 시절에는 구황식물로 대용하였으며 생활용구도 만들고 죽은 자가 눕는 널을 만드는 최고의 목재로 쓰였으니 소나무는 인간과 일생을 같이 하는 나무라고 하였다. 초록의 잎과 붉은 줄기, 노란 송화가루, 하얀 송진, 검은빛 솔방울은 오방의 색을 상징하고 있어 인간이 살아가며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엄동설한에도 푸른 빛은 변하지 않은 사람으로 비유되어 덕망있는 선비들과 빗대어 직유와 은유로 표현되었다.
하많은 세월을 살며 소나무의 의연함을 생각하여 보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 드는 소나무와 얽힌 추억이 없을손가.
도심에서 자란 나는 모교의 뒷산인 인왕산에서 송충이 잡던 일이 소실적 기억의 전부이었다. 소래울댁이 되고 나서는 송화다식을 만들고 솔잎도 뽑아 송편을 빚어 먹거리를 장만하였다.
가을걷이를 마친 후 아까시아와 솔가쟁이 등 실하지 못한 나뭇가지를 베어 한 겨울 땔감을 장만하여야 한 해 갈무리가 끝났다. 품을 얻어 뒷산에서 나무를 하기 전에 부지런하신 시어머니께서는 솔을 갈퀴로 긁어 나뭇간에 쌓아 주셨다. 장작과 다루기 어려운 솔가쟁이는 사랑채의 군불 땔감이었고 부엌에서는 거의 짚불로 조석을 짓다가 누렇게 마른 솔가루를 지피면 그을음도 나지 않고 화력이 좋았다.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있노라면 도시생활을 떠나온 아쉬움도 걷히는 듯 하여 좋았다.
나는 콩밭지기가 되어 보름 동안 둔덕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매일 바라보았다.
고요한 전원의 풍경 속에서 외로움도 타지 않는 우뚝한 소나무는 좋은 토양에서 온갖 영양을 섭취하고 엄한 가르침으로 자란 귀공자의 모습이었다. 무더운 더위에 나뭇가지를 절제 있게 뻗어 남을 감싸안듯 그늘을 만들어 주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소나무가 되고 싶었다. 무엇을 닮고 싶은 것일까. 나는 넋을 놓고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붉은 빛이 감도는 줄기는 거북이의 등가죽을 닮아 길한 기운이 서려있으니 만인에게 행운을 주는 서낭목이련가. 뽀얀 속살은 우리네 때거리였으니 중생구제하는 보살이요. 우유빛의 쨈같은 송진은 진득진득하기는 하지만 봄엔 밀알과 가을에는 청가시덩굴의 검은 열매와 함께 궁한 입을 즐겁게 하는껌이요 기계를 움직이는 기름대용으로 쓰이기도 하였으니 사람들에게 활력을 찾아 주는 앤돌핀이 되면 어떨까. 광솔로 어둠을 면하니 구세주요. 사시사철 푸르른 잎은 일편단심 애국자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을 등지고 송순주에 녹아나 풍월을 읊는 한량이 되어볼까도 하지만 겉만 번지르하니 허풍선이요 허깨비라 실속이 없어 싫다. 찌든 삶에 푸악을 떠는 이의 한을 담아 재우는 호박단추나 함지박이 되는 것은 어떤지요. 시린 세월에 청청한 빛이 되는 길은 고독이요. 정이품 벼슬을 얻을라하니 나는 배운 것이 없는 촌무지랭이 콩밭지기여서 척박한 환경에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늙어 버리는 노송이 되고 말리라.
나의 눈길은 오래도록 소나무에 머물렀었다.
꿋꿋하거나 굽어 휘어졌거나 등걸만이 남아도 소임을 다하려는 듯 뿌리에 복령을 키워 병고에 시달리는 인간을 살려내니 무명옷을 걸치고 한 세상을 살아낸다 하여 무엇이 부끄러울까.
강산이 바뀌어 봄은 여지없이 찾아와 콩을 심었던 밭에 서서 노송의 고졸한 가르침을 회상하며 두리번거린다. 아쉽게도 선비를 닮은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옆에는 다섯그루의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지천명의 고개를 넘어서는 나에게 무슨 암시를 하는 것인지 마치 천 년의 고행을 마치고 승천하려는 용의 용맹스러운 모습이다.
첫댓글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을 등지고 송순주에 녹아나 풍월을 읊는 한량이 되어볼까도 하지만 겉만 번지르하니 허풍선이요 허깨비라 실속이 없어 싫다. 찌든 삶에 푸악을 떠는 이의 한을 담아 재우는 호박단추나 함지박이 되는 것은 어떤지요. 시린 세월에 청청한 빛이 되는 길은 고독이요. 정이품 벼슬을 얻을라하니 나는 배운 것이 없는 촌무지랭이 콩밭지기여서 척박한 환경에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늙어 버리는 노송이 되고 말리라.
나의 눈길은 오래도록 소나무에 머물렀었다.
눈길은 오래도록 소나무에 머물렀었다.
꿋꿋하거나 굽어 휘어졌거나 등걸만이 남아도 소임을 다하려는 듯 뿌리에 복령을 키워 병고에 시달리는 인간을 살려내니 무명옷을 걸치고 한 세상을 살아낸다 하여 무엇이 부끄러울까.
강산이 바뀌어 봄은 여지없이 찾아와 콩을 심었던 밭에 서서 노송의 고졸한 가르침을 회상하며 두리번거린다. 아쉽게도 선비를 닮은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옆에는 다섯그루의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