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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위기와 아비새의 도움 21:15~17
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니 그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거인족을 이긴 용사들 21:18~22
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 죽였고
19 또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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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블레셋 사람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거인족의 아들에게 죽임당할 뻔합니다. 그때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를 죽입니다. 다윗의 추종자들이 이스라엘의 등불인 다윗은 전장에 나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합니다. 그 후에 블레셋과의 여러 전쟁에서 거인족 용사들이 다윗 용사들 손에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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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위기와 아비새의 도움 21:15~17
15~22절은 다윗 용사들이 블레셋과 싸운 이야기의 모음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전쟁했고, 대부분 다윗이 참전했습니다. 본문에 언급한 전투에서 다윗은 싸움 중간에 힘이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 당시 다윗은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을 죽이려 한 블레셋 용사는 거인족의 후예로 매우 무거운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인데, 그의 모습은 골리앗을 연상시킵니다. 청년 시절 다윗은 물매 돌 하나로 골리앗을 넘어뜨렸지만, 이제는 이런 용사를 상대하기 힘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대신 아비새가 거인족을 죽이며 전쟁 임무는 그의 용사들에게 넘어가고 다윗은 전쟁에서 은퇴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지쳐 있는 다윗을 도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육체의 한계를 느낄 때 내게 도움을 주는 지체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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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족을 이긴 용사들 21:18~22
사무엘서 저자는 거인족을 죽인 세 용사를 소개합니다. 첫째, 십브개는 곱에서 거인족의 후손인 삽을 죽입니다. 둘째, 엘하난도 곱 전투에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입니다. 라흐미의 창 자루가 베틀 채 같은데, 이는 골리앗의 창 자루와 같은 모양으로 그 역시 엄청난 거구임을 암시합니다. 셋째, 요나단이 상대한 블레셋 사람은 양쪽 손가락과 발가락을 여섯 개씩 가진 거인족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체적으로 다른 모습은 특별함을 상징하기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한 개씩 더 있다는 것은 그가 ‘특별한 용사’라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다윗의 부하들도 거인족과 싸우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계속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군대와 함께하시기에 거인족은 이스라엘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의 세 용사가 싸운 거인족의 특징은 어떠했나요?
내가 믿음의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거인 같은 대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무엘하 21장 17절
성도의 시선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비새는 위기에 처한 다윗을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줍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타인의 고통은 외면하고 자기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성도의 삶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려움 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돕는 것은 평범함에 담긴 '큰 사랑'입니다.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작은 호의와 사랑일지라도 받는 사람에게는 큰 선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번영을 얻는 길은 그분께로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느냐에 달려 있다. - 피트 그리그
오늘의 기도
하나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다윗의 생명을 지켜 주신 하나님 은혜가 오늘 제게도 임함을 믿습니다. 제 삶을 무너뜨리려는 많은 골리앗의 공격에도 낙심과 두려움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당당하게 맞서 승리할 수 있는 믿음과 은혜를 저와 모든 지체에게 허락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52 십자가 군병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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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협력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가게 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면서 당신의 나라가 굳건히 설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합니다.
우리의 부족함,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동역자들을 붙여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길 간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잘 견뎌내고, 이겨나갑시다.
서로 협력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굳건히 세워 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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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참 등불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그의 계보에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등불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죗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죗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 절망 가운데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등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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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을 보면, 그곳에 나의 희망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잠시 빛나는 반사체에 불과할 뿐 진정한 등불이 되어 나를 구원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반사체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영원한 등불이 되신 그리스도만 바라보기 원합니다. 진정 그러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 마음을 지키시고, 보호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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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은 큰 거인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습니다
거인을 앞세운 이유는 심리적 공포를 유발하여 싸울 의지마저 단념케 하기 때문입니다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3)
그래서 지금도 세상은 몸집을 크게 불리려고 합니다 서로 맞지도 않는 민족들을 억지로 묶어 큰 나라를 세우고, 기업을 문어발처럼 확장하여 대기업을 세우며, 마트, 은행, 병원, 학교, 심지어 교회도 예외 없이 몸집을 크게 하여 거인처럼 보이게 하려고 혈안입니다
그러나 크다고 강한 것이 아니며, 큰 것이 약점이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우리는 거인을 보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이보다 더 큰 자는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시95:3)
우리는 그들보다 더 큰 거인입니다 크신 하나님을 섬기고 크신 왕을 따르는 믿음의 거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다윗의 용사들도 네 거인을 죽였습니다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삼하21:22)
아비새는 거인 이스비브놉을 쳐죽였고,
십브개는 거인 삽을 쳐죽였고,
엘하난은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쳐죽였고,
삼마의 아들 요나단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 거인 앞에 떨 것이 아니라,
우리를 크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주의 손을 의지하여 믿음의 거인이 되기 원합니다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
그래서 믿음의 거인 히스기야는 제국의 큰 군대 앞에서도 무서워하지 않고 이 진리를 선포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던 모든 백성을 안심시켰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대하32:5~8)
참으로 크신 위엄과 큰 영광 가운데 계신 우리 주를 믿는 믿음이면 못할 일이 없고 이기지 못할 대적이 없음을 믿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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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이스라엘의 장수들이 블레셋과 이방인 출신의 거인들 4명과 전쟁을 하듯이,
오늘날 크리스천인 우리들의 삶의 현장도 언제나 거인들과 싸움을 하는 전쟁의 상황일 수 있다. 이러한 어려운 큰 싸움의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담대하게 싸워나가는 마음의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베드로전서 1:5
여러분은 마지막 때 나타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크리스천은
하나님께서 항상 고난으로
단련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역경과 고난을 극복해가는 강한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건축의 초석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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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비브놉, 삽,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 그리고 손발가락이 24개인 블레셋 거인은 모두 이길 수 없는 세상의 큰 벽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대해 담대하고 각각에 대해 철저히 훈련된 이스라엘의 용사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뤄냄으로 여호와의 군대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인생의 큰 문제들에 대해 두려워하고 온갖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그보다 크시고 능력이 풍성하신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이자 권리가 되는 것입니다.
때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놓일지라도 오직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악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내실 영원한 인생의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바라보며 주어진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요한일서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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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새가 죽인 장수는 300세겔(약 3.4킬로그램) 이나 되는 놋 창을 든 거인이었고,
십브개가 죽인 자도 거인족의 아들이었고,
엘하난이 죽인 자도 골리앗의 아우로 자루가 베틀 채 같은 창을 들었던 거인이었고,
다윗의 조카 요나단이 죽인 자도 손가락과 발가락이 하나씩 더 있었던 거인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면 다윗의 용사들은 블레셋의 거인족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인들을 물리치고 블레셋을 제압했습니다.
그들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그들을 위해 싸우셨기 때문입니다(삼상 2:10). 하나님이 떠나시면 거인도 소년을 당해낼 수 없겠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소년이라도 용사를 이기고 거인을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삼상 17:45-49). 우리는 약하더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강하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다윗은 사는 동안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듯 맡겨진 백성에게도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 다윗을 위해 하나님은 충성된 사람들을 곁에 두셨습니다. 다윗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섬겼듯, 그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윗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경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울은 늘 충신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러지 못했으며(삼상 22:7,8) 블레셋에게 죽임을 당할 때 곁에 그를 지켜 줄 신하들조차 없었습니다. 사람을 얻는 길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신실하고 신의가 두터운 동역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15,22절 :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다윗은 뒤에 서서 병사들에게 명령만 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앞서 싸우는 왕이었습니다. 피곤하고 지쳐 능히 전쟁을 치를 수 없을 때까지 전장에 나아가 싸웠던 다윗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새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나는 공동체를 밝히는 등불 같은 사람인지 돌아봅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훈수두고 비판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어둡게 합니다. 공동체의 등불 같은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과 공동체를 위해 앞장서서 수고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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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추종자들(삼하 21:15~22절)
‘다윗의 추종자’라는 번역은 의역된 것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입니다. 직역하면 다윗의 남자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추종자라는 번역이 더 마음에 듭니다. 그냥 다윗의 부하들이 아니라 다윗이 믿고 따르는 가치에 헌신 된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추종자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골리앗을 물리쳤던 다윗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소 미련해 보이고 어리석을 만큼 말씀의 원리에 충실한 다윗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열방의 정신을 좇았던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과 다른 노선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다윗의 추종자들이라는 말이 믿음으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읽어집니다. 어둠이 강하면 빛이 더욱 빛나는 것처럼 혼탁한 시대에 더욱 빛나는 사람들입니다. 내 목회 현장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윗은 삼하 5:17~25절에서 블레셋과 싸워 크게 승리합니다. 저는 다윗이 전쟁을 하다가 피곤해 졌다는 말에서 다윗이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로 읽고 싶습니다. 앞의 사건과 연결해 보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셔서 블레셋의 거인들을 이길 수 있게 하셨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성경 기자는 이런 의도로 배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간 마지막 전쟁이라는 점에서 나이가 들었을 때 이야기로 보입니다. 아침 안개와 같은 인생입니다. 골리앗을 물리칠 때 홍안의 소년이었던 다윗은 어느새 전쟁이 버거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때 다윗을 도와 블레셋의 거인족을 물리친 사람이 바로 아비새라는 것입니다.
아비새는 요압의 동생이지만 요압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골리앗에 버금가는 블레셋의 거인들을 물리친 사람들의 이름이 일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십브개가 삽을 죽였고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고 요나단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스물네 개인 거인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이 다윗의 추종자들, 즉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믿음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다윗에게 더 이상 전쟁에 출전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다윗 주변에 온통 기회주의자들, 열방을 따르는 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비록 소수일 수 있지만, 여전히 다윗의 신앙과 삶을 따르는 사람들, 그를 하나님을 따르는 이스라엘의 등불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목회적으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위로가 되고 행복한 아침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물어 오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다윗의 추종자로 살고 있느냐 아니면 압살롬을 위시한 열방의 추종자로 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다윗과 함께 사선을 넘으며 블레셋의 거인족들을 물리친 이 몇 사람의 이름이 왜 그렇게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물어 봅니다. 어느 편에 설 것이냐고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도 다윗의 추종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아침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잘 응답이 되고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를 돕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귀가 어두워서 못들으시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우리의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다고 말씀합니다.
사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죄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잘 처리해서 하나님이 마음껏 복을 주실 수 있는 복된 사람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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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레셋과의 전투 (15-17절)
블레셋과의 전쟁은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과거와 달리 다윗은 싸움에서 피곤함을 느낍니다.
과거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물맷돌 다섯 개로 이겼던 모습은 없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일까요?
지금도 다윗은 소년시절처럼 전쟁에서 이겨 싸워야 믿음이 좋은걸까요?
이 땅에서 나이가 들고, 체력이 약해지고, 먼 미래로 보면 죽음에까지 이르는 그 과정은 자연스러운 섭리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한들, 70대에도 20대와 같은 체력으로 밤을 지새면서 사역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루에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의 시간들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역이 마친 후 월요일은 온 몸이 아파, 심한 몸살을 앓듯 자리에 눕게 됩니다. 월요일이 피곤한 정도로 넘어갔던 과거와 다르지요.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의 역할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다윗은 현재 전쟁터를 누빌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절대 꺼져서는 안 되는 신앙의 보루요 시대의 양심입니다.
전투에 능한 자들 (18-22절)
다윗이 전쟁에 나가지 않지만, 오늘 소개된 많은 이들은 전쟁에서 공을 세웁니다. 다윗의 빈자리가 빈자리로 있지 않고 전쟁의 장수들이 채워진 것을 봅니다.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 등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다윗의 나라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중심이 되지만, 과거의 다윗처럼 뛰어난 군사들이 다수 활약합니다.
세대를 이어 세워지는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빈 자리가 채워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가끔 축구 경기나 야구 경기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세대교체에 성공했습니다. 기존에 잘 하던 선수들이 가고, 그 다음에 세워져야 할 사람들이 잘 세워진 것입니다. 이는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세워져가는 곳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리더라도 영원히 사는 리더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누구라도 제외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세워가시는 공동체에 나도 귀하게 세움받길 소망하시길 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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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해서 4번의 블레셋과의 전쟁에 대한 기록이 있다.
1. 첫번째 전쟁은 장소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다윗이 전쟁 중에 피곤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많이 든 때인 것 같다.(15)
블레셋의 대장은 이스비브놉이다.(16)
다윗 군의 대장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였다.(17)
2. 두번째 블레셋과의 전쟁은 곱에서 전쟁이다.(18)
블레셋의 대장은 삽이고(18)
이스라엘 군의 대장은 십브개였다.(18)
3. 세번재 블레셋과의 전쟁도 곱에서 있었다.(19)
블레셋의 대장은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이고(19)
이스라엘 군의 대장은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이였다.(19)
4. 네번재 블레셋과의 전쟁은 가드에서 있었다.(20) 골리앗의 고향이다.(삼상17:23)
블레셋의 대장은 이름도 성도 없지만 키 큰자이고 손가락 발가락이 6개씩인 괴물이다(20)
이스라엘 군의 대장은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였다.(19)
네번의 전쟁에서 다른 점은 장소와 장군들은 모두가 다 달랐다.
그러나 공통점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어째서 매번 승리 할 수 있었을까?
장소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환경과 조건이 다 달랐을텐데도
언제나 승리는 한방향이였다. 왜 그렇까?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승리하지 않았을까?
블레셋과 같은 세상의 많은 도전이 있지만 백전백승 할 수 있는 비결은
내가 늘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니라)
주님과 함깨 함이 이 세상 승리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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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펼쳐지는 인생의 전쟁터에서도 두려움과 무서움을 벗어버리고 승리의 깃발을 높이는 성령의 사람 되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때론 낙망하고 넘어지지만 오직 우리의 빛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제자 된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견고한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존귀하신 성호를 찬송합니다.
인류가 범죄하여 에덴 동산을 쫓겨난 이후, 그 어떤 시대도, 그 어떤 세대도 진정으로 안전을 누렸을까요
언제나 인생들에게 주어진 삶은 불확실했고 인생들은 이런 불안한 삶을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매일 변하고 어제의 가치있는 것이 오늘 아무 가치가 없어지는 불확실한 시대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 같은 지도자 다윗을 의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을 기록한 말씀을 묵상합니다.
다윗은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전을 보장받았음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감사하고 감사하옵는 것은 우리에게 다윗은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스라엘의 등불만이 아닌 인류의 빛을 보내주신 은혜이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시라고 증거하여 주셨습니다.
이 어둡고 정함이 없는 세상에서 진리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주께서 나의 영적인 눈을 회복시키실 때뿐입니다.
제가 얼마나 진리에 눈먼 자였는지요
지금도 주님의 깊고 무한한 은혜의 신비를 이해하고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께서 친히 빛이시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믿는 일이옵니다.
오늘도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육체의 소욕과의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힘을 다해 싸우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기뻐했던 다윗의 모습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몸담아 있는 곳의 등불같은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