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초산장 이야기 1230회 ) 여름비 같은 겨울비
2022년 1월 16일, 월요일, 맑음
지난 금요일에는 모처럼 단비가 왔다.
그때는 날씨가 많이 풀려 산장에 하루 가서 자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서 갈 텐데
유여사가 탁구하러 가는 길에 태워주었다.
그날까지 비다운 비가 내린 적이 없어서
차를 타고 가면서 유여사와
언제 한 번 비가 시원스럽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날 엄청 많은 비가 쏟아졌다.
겨울비치고는 아주 많은 양이었다.
산장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 비가 퍼부었다.
하우스 천장에서 누군가가 북치는 것 같았다.
두두두두 둥-.
북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흡족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였다.
산장에 들어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산 아파트에 있었더라면 비오는 소리도
제대로 못 들었겠지.
라디오를 틀으니 비에 대한 노래가 계속 흘러나와서
기쁨이 두 배로 커졌다.
히야, 좋구나!
점심 반찬은 기린초를 뜯어서 나물로 데쳤다.
기린초는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나물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파랗게 올라오고 있다.
울릉도에서는 전호나물이
봄에 제일 먼저 올라온다고 하는데
산장에 있는 전호나물을 보니 아직 멀었다.
기린초는 지혈, 이뇨, 진정, 소종 등에 효험이 있는데
성분이 인삼 못지않다고 하니 자주 먹어야겠다.
여태 산장에 들어오면서 반찬거리를 계속 사왔는데
이제부터 당분간은 빈손으로 와서
냉동해둔 먹거리를 다 먹어치우기로 했다.
이른바 냉장고 털어먹기다.
냉동실에는 작년봄에 얼려둔 말오줌대순도 있고
꼴뚜기 새끼, 황태, 명태포, 멸치 등이 있으니
몇 끼는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다.
달래도 올라오고 있어서 뜯어서 초장에 무쳐 먹었다.
점심을 먹고 계곡으로 내려가보니
얼마 없던 물이 그득해졌다.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부자 되기 참 쉽다.
하늘만 도와주면 언제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
비가 낙엽을 소복히 모아놓고 흘러가서
주워다가 밭에 뿌렸다.
고마운 비의 손길!
비는 오후에도 한 동안 이어져서
계곡물이 힘차게 내려갔다.
밤에 자는 동안에도 물소리가 쿵쾅거려서
산사에 온 기분이 들었다.
설거지는 그릇을 들고 계곡으로 가서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참 불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사람이 자꾸 편한 것만 찾으면 건강이 나빠진다.
내가 불편한 것을 마다 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약 한 알 먹지 않고 건강한 편이다.
토끼띠인데도 임플란트 하나 하지 않았으니
내가 실천하고 있는 건강법이 잘못되지는 않았다.
겨울에는 계곡물이 얼기 때문에
모터를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양동이를 들고 물을 길어다 먹는데
운동삼아 즐겁게 한다.
이런 걸 불편하게 여기면 게으르다고 봐야 한다.
물이 없으면 몰라도 가까이 있으니
행복한 시골살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몸을 많이 움직여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조금 아프면 약을 먹고 차 오래 타고 다니고
춥다고 집에 칩거하고 있으면 혈액이 정체되니
없던 병조차 생기기 쉽다.
산장에 오면 아파트에서는 연기 때문에 하기 어려운
쑥뜸을 하는데
이것도 운동을 하면서 해야 효과가 있지
너무 과신하면 안 된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저녁에 비가 그쳐서
모아둔 불쏘시개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산불 위험 때문에
불을 피우지 않는데
이런 날은 마음 놓고 태운다.
수북하게 모아둔 것을 다 태우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세 평 작은 방이지만
책 읽고 영화 보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좋은 생각 2월호에 실려 있는 정연주씨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취업을 하기 위해 여러 회사 문을 두드렸지만
불합격을 거듭하자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킬로미터를 걸었다니 정말 대단하다.
이런 의지라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상주 부근에서 해가 저물어 머물 집을 찾다가
80살이 넘은 김점례 할머니를 만나 따라갔단다.
할머니는 우거지와 고구마, 두부를 넣어
달큰한 된장찌개를 끓여주었는데
지친 몸과 마음을 데워주는 식사였다고.
할머니는 50년 전에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사남매를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는데
연주씨가 대학교도 남보다 늦게 들어간데다
취업이 안 되어 자신감을 찾기 위해
국토대장정을 한다고 하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더란다.
“부끄러븐 얘기지만 내가 글을 일흔다섯에 배웠어.
그때까지 내 이름 석자를 못 썼어.
근데 일흔 다섯에 글을 배우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한 할매라 카대.
그러니까 학생은 하나도 안 늦은 거야.”
할머니 말을 듣고 나니 불안감이 사라졌고
희망과 용기가 몽글몽글 차올랐다고.
남과 비교하면 초조해지고 위축이 되지만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어제 저녁에는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지내는
외할아버지 제삿날인데
유여사가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했다.
나도 많이 도와주었지만 유여사 만큼은 아닐 것이다.
아들과 딸이
화천에 가서 산천어 낚시 체험을 하고
우리 집으로 바로 왔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안 갔다.
아들이 딸과 잘 어울리지 않는데
모처럼 함께 다녀온 것을 보니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우랑 세희가 모처럼 눈구경을 해서 좋았겠다.
산천어 축제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와서
고기가 잘 낚이지 않았다고.
그 대신 많이 잡은 사람이 놓고 간 고기를 얻어서
구워 먹었다니 헛탕은 아니었네.
그래도 특별한 체험을 하고 구경 잘했다니 다행이다.
참, 해남에 매화가 피었다고 해서 참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양산 우리 아파트에도 벌써 피었다.
올해는 계절이 빨리 오는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