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사자성어] 대교약졸(大巧若拙)
하영균(상도록 작가) 승인 2020.10.17 06: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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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노자에서 미학과 관련된 사자성어가 많이 나온다. 아마도 자연미학의 관점이 노자의 글에서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교약졸(大巧若拙)도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그 뜻은 아주 높은 재주를 가진 사람이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아니하므로 보기에 서투른 것 같다는 뜻이다. 실제 이런 식의 예술로 세계적인 위대한 예술가가 된 사람이 있다. 분명 그 사람은 노자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노자의 사상을 서양의 미술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라 본다. 그 사람은 바로 피카소다.
피카소 전시회에서 한 관람객이 그림을 감상하고 나서 피카소에게 물었다. 그림이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고 비꼬는 투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피카소는 나이가 어려질 만큼 생각이 바뀌고 그림이 어린이와 같이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그가 분명 대교 약졸의 한자 성어는 몰랐을지 몰라도 예술의 핵심을 알았다.
피카소 초기 예술과 말년 예술은 완벽히 차이가 난다. 초기엔 너무나도 세밀한 묘사를 잘했다. 정말로 예술가로서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잘 그렸다. 하지만 나이 든 피카소는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모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이런 의식이나 태도는 이후의 모든 예술가에게 상징이 되었다. 두 가지 그런 측면이 있다.
적어도 남들로부터 못 그렸다고 지적을 받는 예술가라고 해도 위대한 예술가라고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정말로 누구보다도 더 묘사를 잘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인간의 내면에 드러나는 모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울고 있기는 하지만 웃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한쪽 면을 보여주면서 다른 쪽 모습도 보여주는 입체적인 접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평면의 그림 속에 인간의 입체적인 감정의 모습을 담고 싶은 것이었다. 피카소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이의 감정과 같은 표현을 한 것은 그림을 못 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노자가 말한 대교약졸(大巧若拙)의 모습인 것이다.
피카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똑같다. 초기의 추사 김정희의 서체와 말기의 김정희의 서체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보기에 어떤 게 잘 썼냐고 평가하면 당연히 초기의 서체가 더 잘 썼다. 그러나 정말로 예술성을 평가한다면 말기의 작품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추사 김정희의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 것이다.
평생을 글씨를 쓰면서 70여 개를 벼루와 천 자루의 붓을 닳아서 없앴다고 하는 그의 노력을 보면 그렇게 말기의 글씨가 못 쓴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지만 여기서 바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의 미학관이 비추어지는 것이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단순히 못 그리거나 못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기에 위대한 것이다. 누구도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줄 때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김정희도 그만큼 많은 연구와 노력으로 나름의 세계를 열었다. 특히나 금석문의 세계에 깊이 빠져서 연구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금석문의 오래된 비문을 보면 마치 어린아이들이 쓴 것과 같은 것도 보이고 그림 그리듯 적어 놓은 것도 보인다. 이런 다양한 금석문의 세계에서 김정희는 나름의 세계를 찾아낸 것이다. 그러기에 위대한 서예가로서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한석봉의 유려한 서체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장식을 드러낸 순수 그 자체의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졸속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하여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최고의 기교에 도달한 사람이 자연에 의지해서 만들어 내는 예술적 깊이가 필요하다.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은 그 시대를 풍미했던 허례허식의 상징을 허물어 내는 그런 의미다. 즉 자연 속에 그 예술적 가치를 찾아내려는 예술가의 경지를 의미한다. 그럼 이와 같은 경지에 있는 예술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한국의 정원이다.
한국의 정원은 일본의 정원과도 다르고 중국의 정원과도 다르다. 일본의 심플하면서도 형식적인 정원과는 차별적이고 중국의 화려하고 기기묘묘하고 웅장한 정원과도 다르다. 한국의 정원은 자연 속에 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자연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정원 같지도 않은 정원 자연의 일부인 것 같은 정원 그러나 적어도 1000년 이상을 스스로 돌아가면서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 않아도 문제없이 그 아름다움을 지켜갈 수 있는 정원이 한국의 정원이다.
그렇게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기술이 집약돼야 한다. 자연에 근접한 기술이 가장 어려운 기술인 법이다. 화려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그렇다고 형식에만 얽매이지 않는 그럼 예술이 바로 대졸약졸(大巧若拙)의 예술이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전공 수료, 가치투자 전문 사이트인 아이투자 산업 분석 칼럼 연재(돈 버는 업종분석), 동서대학교 전 겸임교수(신발공학과 신제품 마케팅 전략 담당), 영산대학교 전 겸임교수(신제품 연구소 전담 교수), 부산 정책과제-글로벌 신발 브랜드 M&A 조사 보고서 작성 책임연구원, 2017년 상도록 출판, 2018년 대화 독법 출판
하영균(상도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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