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죽음은 축복(祝福)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 대하여는 슬퍼할 것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다.
참다운 죽음 앞에서는 슬픔의 눈물과 통곡대신에, 기쁨의 환상적 음악과 축하의 노래소리가
울려퍼져야 하며, 흰색 국화꽃과 검정색의 리본 대신에, 오색 찬란한 꽃다발과 무지개빛 영롱한 리본이
장례식장을 화려하게 장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죽는가?
축복받을 참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며,
보다 더 낳은 삶으로 환생(부활영생)하기 위하여 죽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축복받아야 할 참다운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삶 가운데서 참다운 깨달음을 얻고, 참다운 삶을 살아서 자아완성(自我完成)을
이루고 마감한 죽음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생에서 참다운 깨달음을 얻고, 참다운 삶을 살아서, 자기의 영혼(靈魂)을
맑고, 깨끗하고, 밝고, 찬란하고, 아름답게 완숙시켜, 죽음 이후에 극락왕생, 부활영생 할 수 있음에
자신만만한 죽음이 곧, 참다운 죽음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리고 또한, 축복받을만한 참다운 죽음이란 바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어린아이의 죽음, 젊은 청춘남녀의 죽음, 사고사, 전쟁사, 자살사 등이 아닌 죽음으로서,
인생을 살만큼 살고서 노년기에 맞이하는 자연사(自然死), 병사(病死) 등으로서의 원통함이 없는 완숙된 죽음
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언급해 둘 것은 바로, 인생을 살만큼 살지 아니한 젊은이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보다 빠른
조기에 인생의 삶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다소라도 참된 삶을 살아 조기에 자아완성(自我完成)을 이룬
젊은이의 죽음,사고사, 전쟁사, 자살사 등이거나, 또는, 우리 한울님(하나님)께서 크게 기뻐 할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한 젊은이의 죽음, 사고사, 전쟁사, 자살사 등도 축복받을만한 참다운 죽음이라고 하여야 마땅할
것이로되, 너무도 빠른 시기에 아까운 그들을 저승으로 보내 줘야만 하는 이승사람들의 안타까움 때문에,
보다 위대한 일들이 많이 기대되는 그들을 일찍 저승으로 보내야만 하는 이승사람들의 서글픔 때문에,
그들의 죽음을 기뻐하고, 축하하며, 찬양함이란 우리들의 진솔한 감정에 맞지 않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간들 모두는 앞에서와 같은 축복받을만한 참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인생을 살만큼 살아온 사람으로서 위와 같은 참다운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예측되거나 판단되어지는 노년기의 죽음에 대하여는, 될 수 있는 한 화려한 장례식을
치러서 축하와 풍악소리가 저승에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하여 줌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끝> |
첫댓글 좋은내용 잘 읽고 갑니다.
게시판지기님~! 이 사람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