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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가 젊은 시절 길을 가다가 밭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물었다.
"보시오, 거 검은 소가 일을 잘하오, 누렁 소가 일을 잘 하오?"
그러자 농부는 밭을 갈던 쟁기를 두고는 황희에게 다가와 귀속말로,
"덩치는 검은 소가 크지만, 일은 누렁 소가 더 잘 한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자 그러면 과연 농부는 일을 잘 하는 누렁 소에게 쇠죽을 많이 줄까, 일은 잘 못하는 주제에 덩지가 커서 먹성이 좋은 검은 소에게 쇠죽을 많이 줄까?
농부가 똑똑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덩지가 크고 먹성이 좋은 검은 소에게 쇠죽을 많이 줄 것이다. 그래야 최고의 생산성이 나오니까. 하지만 만약에 검은 소가 누렁이에 비해 일을 못한다고 먹이를 적게 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당연히 검은 소는 비실비실해서 그나마 일도 잘 하지 못하고, 전체적인 생산량은 떨어지고 말 것이다.
예전에 순진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임금'을 생산성과 연계지어 설명하려고 무던 노력을 했었다. 한계생산성에 따른 임금결정론이 그 대표적인 이론이지만, 오늘날 그 이론을 신봉하는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다.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임금이란 절대로 과학적, 수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A + B = 10이라는 이원일차 방정식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변수는 상대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변수는 '자본'과 '노동'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노동 개혁을 한답시고 내놓은 첫번 째 대책인 '임금 피크제'는 바로 이러한 불확정적 현상 하에서 나온 것이다. 임금이 노동의 바로미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진대,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고 또 그에 따라 감축한다는 것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현실과는 동 떨어져 있는 개념이란 뜻이다.
물론 세상에는 노동의 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배달하는 물건의 갯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 택배 기사나 꿴 구슬의 숫자에 따라 돈을 받는 부업 처럼. 하지만 오늘날처럼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실에서는 이렇게 노동 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일은 오히려 극히 예외적일 뿐, 대부분의 임금은 자본과 노동의 역학 관계에서 결정될 뿐이다.
과연 어떤 천재적인 경제학자가 나타나서 '55세'가 가장 생산성이 좋은 나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60, 70 넘은 대통령, 장관이나 대법관, 국정원장등 요직의 인물들은 다 쓰레기 똥통이란 자백이란 말인가?
맨날 회삿돈이나 횡령할 생각에 골몰하던 최태원이 구속되기 전 연봉이 수백억원이었다. 과연 그가 최저 시급을 받으며 온갖 악성 고객을 상대하는 SK 텔레콤의 전화 상담원 보다 더 나은 노동 생산성을 실현했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는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임금은 절대로 '노동 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되지도 않을 뿐더러, 결정되어서도 곤란하다. 지금 떠들고 있는 '임금 피크제'는 그저 '임금 삭감'과 '노동 가치의 상대적 저평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본 세력'의 농간에 다름 아니다.
경제가 활성화 되어 노동력이 필요해지고 임금이 상승하는 와중에 일자리는 더 늘어 나는 법이고, 임금이 하락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야 말로 새빨간 거짓말일 뿐이다. 검은 소가 밥을 적게 먹는다고 해서 농부가 또 다른 검은 소 한마리를 더 사와서 일을 시킬 것 같은가? 애초 부터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이다.
임금피크제라고 하는 허울 좋은(?) 거짓말은 자본과 노동이 격차를 더 벌이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노동 진입자들을 자본의 노예로 예속 시키기 위한 '사기극'에 다름아니란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첫댓글 이렇게 우월한 게시글을 보았나.. 좋소.. 참 좋소.. 표현도 굿이요~
근데 소피는 안 마렵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