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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3장 11-18절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 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 13: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 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며 하나님처럼 예배되고 싶어 합니다. 사탄은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수단으로 궁극적 동맹을 요구할 것이며, 땅에 거하는 자들의 경배를 받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때에 요한은 땅에서 올라오는(coming up) 하나의 짐승을 보았는데, 그것이 어린 양 같은 두 뿔(two horns like a lamb)을 가졌습니다. 짐승의 뿔은 이 세상을 통제하는 악한 세력의 힘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에 같은 뿔들 둘을 가진 이 짐승은 용처럼 말합니다(계 13:11). 거짓 예언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오나 안쪽에는 이리들입니다(마 7:15). 거짓 예언자들은 용의 사상과 용의 말로써 속이고 노략질하는 것입니다.
“용처럼 이야기하였다”는 뱀처럼 거짓말하였다는 뜻입니다. 둘째 짐승이 용처럼 말한 것은 그가 용의 포효하는 소리로 말하였거나 그의 말이 뱀처럼 속이고 기만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 둘째 짐승은 황제숭배를 강요한 속주 의회를 뜻할 수 있습니다. 정치 의회 또는 국회가 법으로 짐승 숭배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안티크리스트의 형상을 만들도록 미혹하고 그렇게 만든 그 짐승의 형상에게 호흡을 주고 말하게 합니다(계 13:15).
우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서 말하게 만들려는 마술이 많았습니다. 구약시대에 우상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호흡(呼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이 기술력으로 만든 제품이 볼 수 있는 기능과 들을 수 있는 기능과 말할 수 있는 기능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있어 프로그래밍된 것일 뿐이나, 기계가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호흡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그것은 참 생명이 아닙니다. 기계가 아무리 정교하여도 기계는 생명체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컴퓨터를 숭배합니다. 인공지능 없이 못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배(禮拜)”의 의미는 어떠한 대상에다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술을 통해 만든 제품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새로운 휴대폰에 경탄과 찬사를 보내는 모습이 바로 찬양과 경배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을 경배하는 것,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사람이 만든 기계 속에 컴퓨터 칩이 들어 있어 기계가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술력을 숭배하고 여기에 무릎을 꿇지 않고서는 살지 못합니다. 현대사회(現代社會)에서 도태되고 마는 것입니다. 도태되지 아니하려면 시스템(system)에 적응하고 순화(馴化)되어 살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배후에 사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탄은 각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세상이라는 체제(system) 자체를 그 뜻대로 바꾸어 그 속에 사는 인류를 통째로 총체(總體)적으로 자기에게로 끄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체계 속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거대한 모체(母體)인 매트릭스(matrix) 속에 있는 부품과 같이 주어진 일들을 수행하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품삯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나 재물을 섬겨야 살 수 있게 됩니다.
참 예언자가 크리스트를 높이고 크리스트를 예배하게 하는 것과 같이, 거짓 예언자는 철저히 안티크리스트를 높이고 그를 예배하게 만듭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실 것이라”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마 4:9).
종교개혁자들은 거짓 예언자를 로마 가톨릭과 교황으로 생각하였는데 거짓 예언자를 로마 가톨릭만으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개신교 내부에서 얼마든지 거짓 예언자의 성향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거짓 예언자는 전혀 다른 신(god)을 믿는 이교(異敎)의 예언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크리스트를 믿는다는 크리스트교 안에 찾을 수 있습니다. 온갖 이교의 가치 체계를 믿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섬김이라고 합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 크리스트를 말하며 믿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예수는 다른 예수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이라고 말하였던 것처럼 이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금송아지를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한다며 스스로 속고 다른 사람들도 속이는 조용기 목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우상숭배 체제며, 재난 속에서도 우상을 예배합니다(계 9:20). 인류는 두 종류만 존재합니다. 한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한편에 용을 예배하는 자들이 있고, “용”은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시킨 “뱀”을 가리키며 “사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재물”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맘몬”입니다. “맘몬”은 그냥 단순히 재물이 아닌, 재물로 표현된 우상 신(神)입니다. 재물에 매달리는 자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맘몬을 섬기는 것입니다.
“맘몬”이라는 것은 언뜻 볼 때에 하나님과 얼마나 비슷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맘몬”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합니다.
매우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맘몬을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죽고 나서 예수님께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니 떠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맘몬이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재물을 주면서 자신을 섬기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속아서 평생 맘몬을 믿고 살았고, 맘몬을 섬기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조용기 목사가 섬기고 설교하였던 하나님은 “재물”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으로 가장한 “재물”을 하나님으로 가르쳤습니다. 조용기 목사의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닌 빛으로 가장한 재물이었고, 그가 강조한 삼박자 축복은 하나님의 복이 아니라 재물의 복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재물을 섬기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사람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속여서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같은 존재가 없습니다(출 8:10). 우상숭배자들은 이 표현을 짐승에 돌려, 어떤 존재가 이 ‘짐승에 같을 것이냐’고 말합니다(계 13:4).
그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그들에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니 재물을 섬기며 사는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께 반역자들입니다(겔 12:2).
재물이 이들의 눈과 귀를 가려, 이들은 진리를 보거나 듣지 못합니다. “재물”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성경을 읽으므로, 진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부와 물질에만 관심이 있고,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여도 실상 재물을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죽은 후에야 하나님이 아닌 재물을 섬기며 살았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지옥에서 영원히 거주하게 되었음을 알게 될 불쌍한 자들입니다. 맘몬이 그들의 눈과 귀를 가렸기에 진실을 말해 주어도 들리지 않으며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진실을 듣기를 싫어합니다(렘 25:3).
귀를 가진 사람이면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계 13:9). 세상은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요한의 시대에 그러했는데, 황제숭배가 그들에게 풍요를 주었습니다. 반면에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계 13:15).
신자들이 카이사르의 형상에게 경배하라는 억압을 받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짐승의 형상에 예배하지 않으면 죽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현금이 없어지고 카드 인출기가 없어지고 전자화폐로 결제하게 될 때,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없으니 굶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풍요가 보장될 것입니다. 재물을 섬기는 자들은 이에 굴복하여도 우리는 죽기를 각오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6-17절에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작은 자들과 큰 자들과 부자들과 빈자들과 자유의 자들과 종들을 그 오른손이나 그 이마에 그들에게 표를 주기 위해 행합니다(계 13:16).
요한계시록 13장 16-17절은 “짐승의 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모든 자들”은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표(mark)”는 정치적·경제적 “인증”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짐승을 숭배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에게 경제적 제재가 가해집니다.
신명기 6장 8절에 “너는 그것들을 너의 손에 표시를 위해 묶을 것이고 그것들이 너의 이마에 표들로서(as) 있을(be)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9장 4절에 “성읍의 중앙 안에 예루살렘의 중앙 안에 지나가고, 모든 가증스러운 것들 위에 탄식하고 울부짖는 그 인간들의 이마들 위에 표시를 표시하라(put a mark)”고 하셨습니다.
크리스트께 속하지 아니한다면 짐승에게 속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건물 출입을 할 때에, 체온을 측정한답시고 이마를 대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마를 갖다 대는 것에 익숙해질 것입니다. 이마를 갖다 대고 인증 받아야 각종 건물에 출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마로 이 표를 인증 받지 못하는 자는 많은 것을 제한받게 될 것입니다.
그 표를 가지지 아니하면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게 됩니다(계 13:17). 사거나 팔 수 없다는 것은 필수적인 경제 활동의 금지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사거나 팔 수 없는 시스템이 도입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이 표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지금 백신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려고 하므로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앞으로는 백신이 이러한 표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면 이제는 안 맞아야 합니다. 그 가능성이 1%라도 그 1%가 진짜여서 영혼을 도둑질당할 수 있습니다. 천만 원도 아니고 1억 원도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담보로 잡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담보로 잡기에는 1%의 가능성도 너무나 큰 것입니다.
그러나 백신을 한두 번 맞은 것으로 너무 낙담해 있을 필요는 없는데, 백신이 한두 번으로 완전한 표라면 부스터 샷은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복하여 접종한다면 유해 물질이 쌓여서 유전자가 변형될 수 있으며, 백신 속의 정신 통제 기능 성분이 접종자의 몸 안에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정신이 통제되어서 회개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회개가 불가능한 존재로 변화됨으로써 구원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이렇게 되기 전에 추가 접종을 안 해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백신의 육체적 부작용만 말했지만 영혼의 위험이 더 큽니다. 백신은 유전자를 변형시켜 사람 아닌 돌연변이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다면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백신 때문에 실직하고 재산을 잃는 것도 각오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 15절에 언급되었듯이 죽임을 받는 것도 각오하여야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악인들은 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들었을까요?
그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시키고자 하는 목적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시키고자 할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몸에 넣기 원하는 것이 백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백신 속에 들어 있는 이 성분은 사람의 DNA를 변경시킬 것입니다.
궁극적 권력과 통제를 가진 소수의 악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몸속에 DNA를 변경시키는 물질을 넣고 싶어 하지만 강제로 그러기는 힘든 것을 알고 예방약이라고 속여 주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이러스라는 문제꺼리를 만들고 해결책으로 백신을 제시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백신을 맞을 것임을 미리 계산한 것입니다.
뜨는 용어들 중 하나가 “하이브리드”(hybrid)인데 “잡종”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신 순종 인류가 아니라 잡종 인류로 바뀝니다.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독립성이 사라지고 의식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람들을 이렇게 바꾸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을 통제가 가능한 농노 계급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소수의 악한 엘리트들을 섬기기 위한 노예 계급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엘리트들은 정치가들이 아니며 정치가들은 그들의 꼭두각시일 뿐이고 정치가들의 배후에는 엄청난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진짜 실체가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를 통제하고 그들을 섬기며 사는 노예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통제와 감시체계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좀비”라는 용어가 요즘에는 인기를 끕니다. 그들은 영화나 TV로써 이것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세뇌시켜 왔습니다. 지금까지 영화일 뿐이지만 이제 현실에서 좀비가 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유전자가 변형되거나 약물이 투여되면, 좀비 출현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유전자가 변형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잡종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해 죽으셨지 변종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네피림이 생기게 되고, 그들은 순종 인류가 아니었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홍수로 죽게 됩니다.
우리는 ‘X맨’이라는 영화에 나온 온갖 돌연변이를 혐오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힘센 능력을 지녔지만 현대판 네피림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DNA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세상에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순수 혈통의 DNA를 지키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더러운 성분으로 가득한 백신을 몸에 넣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반복하여 접종하다가 결국 하이브리드가 되고 잡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의 복음서들에는 귀신 들린 사람들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그 정신이 악한 귀신들에 의해 장악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귀신 들린 사람들이 당시에만 있었고 오늘날에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더러운 행동을 반복하면 그 안에 더러운 영(靈)이 침투합니다. 화인 맞은 양심이 되어서, 악을 행하여도 양심의 가책이 없게 바뀝니다.
빌 게이츠는 머리가 좋아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를 만들었지만 그는 언제부터인가 귀신에 들리게 된 것입니다. 지옥의 타락한 천사가 빌 게이츠를 온전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는 빌 게이츠의 좋은 머리를 이용하여 목적을 성취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혹되지 않으려면 빌 게이츠를 주시할 필요가 있고, 그의 언행으로 그들의 악한 예정표를 예측하고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빌 게이츠에 의하면 코로나 백신은 인구 감축을 목적으로 고안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바이러스 예방 효과가 없으며 여러 부작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목적은 앞에 말한 DNA 변경에 있다고 유추되니,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서 백신을 절대 거부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양인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남과 달라 왕따가 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왕따가 되는 좁은 길을 택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너희는 그 폭이 좁은 대문을 통해 들어가라 멸망 안으로 인도하는(lead) 대문(gate)은 넓고 그 길(way)이 광대하고 그것을 통하여서 들어가는 자들이(they that enter through it) 많으며. 생명(life) 안으로 인도하는(lead) 대문은 좁고 그 길이 압박(壓迫)되고, 그것을 발견하는 자들이 소수(少數)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금을 없애고 전자화폐로만 사고팔기가 가능하게 변화시키고 있는데 백신 접종의 표와 연계되어진다면 표가 없으면 사고팔지 못하게 됩니다.
더 쉽게 설명하면 내가 가진 돈을 신용카드를 통하여 쓸 수 없습니다. 은행에 신용카드 인출기가 없어지고 카드 읽는 기계가 없어지게 됩니다.
신용카드 기능을 하는 표가 앞으로 사람의 몸속에 주입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 자체가 신용카드 기능을 하여 결제수단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이 표를 받지 않으면 쌓아 둔 현금이 많아도 결제 자체가 불가능하며, 이 표를 받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여 모아 둔 돈이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또한 건물 출입을 할 수 없어서 직장을 잃게 되고 일자리가 없어집니다.
그런 까닭에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기 않기 위해 이 표를 받을 것입니다.
이 표를 받지 않으면 모아 둔 수억 원의 재산이 무용지물이 되는 때에 여러분은 그 재물을 포기하고 끝까지 이 표를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일사각오 죽기까지 각오하면 재물쯤은 쉽게 포기할 수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재물이라는 것이 나의 젊음과 바꾼 것이니 포기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온 천하보다도 귀중한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는다면, 영혼을 위해서 재물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알곡과 쭉정이가 나뉘게 되고 이것은 시금석이 됩니다.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맘몬을 하나님으로 섬긴 자들은 재물을 택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으로 위장한 맘몬을 믿는 자들이 많고, 평소에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였어도 맘몬을 믿은 것임이 드러납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쌓아 놓았던 돈을 사용할 수 없고 재산까지 압류되고 신체의 자유가 박탈되고 목 베임을 받을지라도 타협하여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여기에 그 지혜가 있노라(Here is wisdom), 이해를 가지는 자는 그 짐승의 숫자를 계산하라 이는 사람의 숫자임이고 그것의 숫자는 666이라(his number is 666)”고 하였습니다(계 13:18).
세상은 편리함을 원하며 크레디트(credit) 카드가 편리하게 쓰입니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살 수 있는데 신용카드에 개인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지갑에 갖고 다니는 것도 귀찮아 할지 모릅니다. 결국 사람들이 초소형 칩을 자신의 몸속에 삽입하는 때가 오게 되겠으며 그때에는 지갑에 신용카드나 신분증을 넣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에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기록이 남게 됩니다. 내비게이션은 자동차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 파악하여 길을 알립니다.
사람의 몸에 삽입된 초소형 칩이 그 사람의 위치를 알려 주게 됩니다. 오늘날에 인류는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도덕과 윤리적으로 당위성을 갖지 못하고 사람들이 반발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만간 사람들에게 칩을 삽입하는 것은 당위성을 얻을 것입니다. 그 당위성은 코로나19 사태처럼 질병 예방이라는 명목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666』이라는 책에 베리칩이라는 생체칩의 가능성을 말했습니다. 1cm도 채 되지 않는 초소형 칩을 사람들에게 이식(移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이 권력을 쥐는 세계가 도래할 때는 사람들이 초소형 칩을 몸에 이식하지 않으면 물건을 살 수 없게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만들어서 경제활동을 하고 먹고살기 위해 사람의 몸속에 칩을 삽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 것입니다. 마트에 갔는데 오른손을 바코드 판독기에 대지 아니하면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음식을 사기 위해서라도 이식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깨어 있지 아니한 사람들은 먹고살려고 칩을 몸속에 이식합니다.
개구리 삶는 방법처럼 처음부터 뜨거운 물속에 집어넣지는 않습니다.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칩을 심다가 모두에게 칩을 심을 것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사회가 얼마나 감시체제로 바뀌었는지 주위를 한 번 보십시오! 감시 카메라가 얼마나 많은지요? 자동차에조차 블랙박스가 설치됩니다.
북한은 전 세대를 5호씩 나눈 후에 열성당원 1명을 지명 배치함으로써 5세대를 지도하게 한 5호담당제를 통하여 독재 체제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적인 독재자가 등장하게 되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생체 칩은 컴퓨터를 통하여 더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거대한 감옥처럼 될 것입니다.
생체 칩이 “666”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구원은 믿음으로 되며 생체 칩을 받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666”을 받게 하는 것이 종교적인 세력이고 거짓 예언자라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앞장서서 “짐승의 표”를 받게 만듭니다. 그것을 받는 것이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노라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가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였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적은 수만 신사참배가 믿음을 배반하는 것임을 알고 순교하였습니다. “믿음”은 그냥 믿는다는 고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 시대가 아닌 고난의 때는 믿음의 대가로 치러야 할 몫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있어서 참된 믿음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체 칩이 강요되는 때에, 생체 칩을 받지 아니하여야 참 믿음입니다. 다수가 신사참배에 동조해도 소수만이 신사참배하지 아니함으로써 믿음을 증명하였습니다(약 2:18).
전자주민증을 만든다는 것은 정보들이 중앙은행에 들어간다는 말이며 이렇게 정보가 집중되면 개인을 다스리는 것이 쉬어진다는 말입니다.
정부가 개인정보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생년월일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사람의 수입과 지출이 파악됩니다. 그의 정보가 디지털화되기 때문에 이제 탈세(脫稅)는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개인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것이 현재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국가가 개인정보를 많이 알면 알수록 국민에 대한 통제가 쉬워집니다. 미국은 세계정부주의자들의 의도대로 건강보험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개인정보를 파악해 국민을 쉽게 통제할 수단으로 쓰일 것입니다. 독재에 악용되면 크리스천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도 쉬워질 것입니다.
통치자가 선한 일을 장려할 때에는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권력자가 악한 법령을 내린다면 절대로 순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몸에다가 컴퓨터 칩을 받으라는 법령에 순순히 응하지 않아야만 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을 가지고 왕의 칙령을 듣지 않고 불복종하였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에 그와 같이 행한 것입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행위”가 뒤따르는 것입니다(히 11:23).
앞서간 신앙 선배들이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신문’이라고 외쳤습니다. 성경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요한계시록을 올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절에 “대답하여 주소서 어느 때에 이것들이 있겠으며 당신의 오심과 시대 완료의 표적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질문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대답해 주셨습니다. 왜입니까? 시대의 표적을 보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에 행함이 따릅니다. 시대마다 있는 ‘믿음의 행위’가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방주를 만들고 그 방주 안에 들어가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아니하여야만 참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생체 칩을 받지 않아야 참 믿음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행위가 없는 죽은 믿음은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루터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말하면서 비하하였던 것처럼, 믿음과 행위를 이원화하여 구분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노아가 방주를 만들지 아니하였다면 그가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그는 방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는데 그가 방주를 만든 행위가 그의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날들과 같이 이와 같이 그 사람의 아들의 재림이 있을 것이니. 왜냐하면 홍수(洪水) 이전에 노아가 그 나무 상자 안으로 들어간 날까지 먹고 마시며 결혼(結婚)하고 결혼시키는 사람들이 저 날들 안에 있었고. 홍수가 왔으며 홍수가 전체를 들어 올렸기까지 그들이 알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도 이와 같이 있을 것입니다(마 24:37-39).
하나님께서는 그 조언을 그 예언자들에 밝히신 후에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생체 칩을 경고하셨습니다(암 3:7). 그 경고를 받아들이고 생체 칩을 결코 받지 않아야만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휴거 이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면 휴거만 준비하면 됩니다. 그러나 휴거와 재림 이전에 이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받지 말라는 경고가 필요합니다.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믿음이냐 불신이냐의 차이가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날 때 건강한 심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심장병이 있는 사람의 심장을 인공심장으로 바꾸어 생활할 수 있게 하면 그것은 병자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의료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체 칩은 인공심장 혹은 인공신장으로 바꾸는 것과 다릅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칩을 가지지 아니하고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몸 안에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새겨 넣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우리는 문신의 각인한 기록을 우리 안에 주지 않아야 합니다(레 19:38). 우리의 몸 안에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새겨 넣지 않아야만 합니다.
“각인한 기록”(케토베트)은 몸속에 기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속에 개인정보가 기록되는 칩을 넣지 말아야만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때에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약 2:26).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렇게 분명히 문신의 각인한 기록을 금지하십니다.
사람의 기술과 숙고의 새긴(행 17:29) 생체 칩을 몸 안에 주는 행위는, 사람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불신행위입니다.
저는 『666』이라는 책에 베리칩이라는 생체칩의 가능성을 말했으나, 이것은 10년 전의 책이며 오늘은 나노칩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제 100만분의 1mm 크기의 나노 크기 칩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물질들이 얼마든지 백신을 통하여 혈액에 주입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베리칩을 주입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이것은 쇼에 불과합니다. 진짜 표는 베리칩이 아닌, 백신과 경구용 알약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리칩을 안 맞는다고 안심하지 말고 백신에 경각심을 가져야 됩니다. 베리칩은 거부하는 자를 위한 눈속임이며 진짜는 나노칩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신(神)을 섬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면 가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섬겨지는 대상인 신(神)은 인격체일 수 있지만 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돈이나 권력을 신(神)으로 숭배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든지 사탄을 섬기든지 둘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사탄을 섬기는 것은 사탄주의자들 같이 고의적인 자들은 적은 수입니다.
대부분은 사탄을 섬기는 것인지 모르고 다른 대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상 배후에 우상숭배자들에 의해 섬김과 예배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구분하기 가장 힘든 우상이 바로 재물 우상입니다. “재물”이 그리스어로는 “맘몬”인데 맘몬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다니지만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맘몬”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맘몬”이 하나님과 비슷하기에 하나님인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렇게 사탄의 거짓에 미혹되어 하나님인 줄 알고 섬기다가 멸망합니다.
돈을 섬기던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할 수 없게 될 때에 그동안 쌓아둔 돈이 무용지물이지 않으려고 짐승을 표를 받을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이들이 짐승의 우상에 예배하는 삶을 살아온 증거입니다. 그러나 재물에 미혹된 이들은 멸망하여 영원히 지옥에 거주할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서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