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4곡의 가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단히 규모가 큰 가곡임에도 불구하고 연주 시간은 평균 5분 내외로 짧은 편이다. 일관된 줄거리가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내용상 전혀 연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처음의 3곡은 헤르만 헤세의 시에 붙인 것으로 제1곡이 '봄', 제2곡이 '9월', 제3곡이 '잠자리에 들 때'이며, 마지막 곡인 제4곡은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붙인 '석양에'이다.
하지만 작곡된 순서는 제4곡 '석양에'가 가장 먼저이며 이어서 '봄', '잠자리에 들 때', '9월'순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순서로 곡을 배열하여 <네개의 마지막 노래>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슈트라우스가 아니라 슈트라우스의 친구이자 출판업자인 에른스트 로트였다. 원래는 에세의 시 4편에다가 '석양에'를 더하여 모두 5곡으로 구성된 작품을 만들려고 했던 것인데, 1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여, 그래서 로트가 악보를 출판하면서 지금의 제목과 체제로 편집했던 것이다.
정확한 작곡 시기는 1946년 말에서 1948년 9월 사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곡의 초연은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난 지 약 8개월 후인 1950년 5월 22일에 열렸다. 영국 런던의 로얄 앨버트 홀에서 이루어진 이날 초연에서 독창은 키르스텐 플라그슈타트가 맡았으며 협연은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였다.
제1곡 '봄'(Fruehling) 헤르만 헤세의 시 '봄'은 헤세가 낭만주의 전통에 충실했던 초기의 작품으로 서정성이 짙은 시이다. 슈트라우스의 곡도 서정이 듬뿍 흐르고 있으며 봄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산한 가을 분위기가 풍기기도 한다.
가사: 희미한 무덤 속에서/나는 오랫동안 꿈을 꾸었다/너의 나무와 푸른 대기와 /너의 향기와 새의 노래에 대해서//이제 너는 빛과/장식 속에서/내 앞에 기적처럼/빛을 받고 누워 있다//너는 다시 나를 보고/부드럽게 나를 유혹한다/너의 행복한 모습에/나의 몸이 떨고 있다!
제2곡 '9월'(September) 체코슬로바키아의 소프라노 마리아 예리츠 부부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봄'이 알레그레토인데 비해 '9월'은 안단테로 좋은 대조를 보인다. 관현악법도 '봄'보다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는데, 특히 하프와 관악기의 활용이 인상적이다.
가사: 정원이 슬퍼한다/비가 차갑게 꽃 속으로 스며든다//황금빛 잎사귀들이 천천히/키 큰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지고/여름은 사라지는 정원의 꿈 속에서/깜짝 놀란듯 힘없이 미소짓는다//오랫동안 여름은/휴식을 그리워하며 장미 곁에 머뭇거리고//천천히 그 위대했던/그러나 지금은 나약해진 눈을 감는다.
제3곡 '잠자리에 들 때'(Beim Schlafgehen) 헤세는 이 시를 1차 대전 때 썼다. 이 무렵 헤세는 아내의 정신 착란 증세에 크게 충격을 받아 암담한 기분에 싸이게 되고, 결국 자신도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다. 따라서 이 시는 피폐해진 헤세의 정신 세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 헤세는 여기서 낮의 현실로부터 신비한 밤의 세계로 도피하려 한다. 죽음을 예감한 슈트라우스에게 이 시가 주는 감동은 남달랐을 것이다.
가사: 지금 한 낮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내가 애타게 그리워 하는 것은/별이 빛나는 밤을 환영하는 것이다/피곤해진 아이처럼//손은, 모든 너의 행동을 멈추고/이마는 모든 사고를 중지한다/왜냐면 내 모든 감각이 이제 막 잠들었으니까//그리고 내 영혼은 마음껏/자유롭게 떠돌리라/밤의 마법의 성역에서 살기 위하여/깊고 천배나 오래도록.
제4곡 '석양에'(In Abendrof) 이 곡은 앞선 3곡과 달리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사용한 것이다. 슈트라우스의 말년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분위기의 곡이어서 듣는 사람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4곡 가운데 연주시간도 가장 길다.
가사: 고달플 때나 기쁠 때나/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지나왔다/이제 우리는/우리의 여행을 그만 두고/조용한 곳에서 쉴 수 있다//계곡 주위는 온통 경사지고/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두마리 종달새만이 날아 올라/향기로운 밤 공기 속에서 꿈을 꾼다//좀더 가까이 오라 그리고 그들이 날개짓 하도록 놓아두라/곧 잠잘 시간이 될테니까/우리는 기를 잃어서는 안된다/이 외로운 시간에도//오, 한없이 고요한 안식이/석양에 그토록 깊이 숨어 있을 줄이야!/우리는 여행 중에 얼마나 피곤해졌을까/이것이 어쩌면 죽음일까? [레코드 포럼 97년 2월호]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
리트(Lied), 즉 독일 가곡을 사랑하시는 애호가 여러분들께서는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이라 불리우는 세 편의 가곡집들, 즉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겨울 나그네", 그리고 "백조의 노래"를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들 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는 리트 가수에게나 리트 애호가에게나 모두 영원한 스탠다드 넘버로 사랑받는 불후의 명작이자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품입니다만, 세 편의 가곡집들 중 맨 마지막으로 출판된 "백조의 노래"는 리트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입니다. 따라서 이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이 슈베르트 자신에 의해 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가 타계한 뒤 후세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것이라는 사실도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었을까요?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시라면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에서 '이 가곡집이 슈베르트의 마지막 작품군에 속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쉽게 아실 것입니다. 옛 유럽 전설에 나오는, "백조(swan, 독일어로는 Schwan)는 죽을 때에 운다"는 (즉 다른 새로 치면 '노래를 부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한 예술가(특히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 즉 유작(遺作)을 "백조의 노래"(Schwanengesang)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백조의 노래를 남기고 타계하였습니다. 물론 마지막 작품이라 해서 모두 특별히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는 그 작곡가의 음악세계 또는 생애와 관련하여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유난히 잘 알려진 백조의 노래들도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두 편의 백조의 노래 - 모짜르트의 "레퀴엠"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신비감을 더하는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작곡가의 백조의 노래는 그가 모짜르트처럼 젊은 나이에 갑자기 타계한 경우가 아니라 오래도록 살면서 온갖 영욕을 겪은 끝에 죽음을 바라보는 생애의 끝자락에서 쓴 작품인 경우, 자연히 그의 음악이 추구해왔던 모든 것을 함축하는 작품이 될 것이며, 따라서 그 이전의 작품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심오한 음악적, 예술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작품 - 작곡가 자신의 백조의 노래이자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의 종언(終焉)을 고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리트의 위대한 전통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걸작으로 사랑받고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 역시 그렇듯 각별한 음악적, 예술적 의미를 지닌 명곡입니다.
Richard Strauss (1864-1949)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마지막 계승자이자 "최후의 리트 작곡가"로 불리우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세기 말엽부터 "돈 후안",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영웅의 생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의 교향시로 청중들을 사로잡았고, 1905년 그의 세 번째 오페라 "살로메"가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이후로는 오페라 작곡가로서도 당대 제일의 명성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교향시와 오페라의 압도적인 명성과 인기 때문에, 슈트라우스가 동시대의 구스타프 말러, 후고 볼프와 더불어 "마지막 리트 작곡가"였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되곤 합니다. 특히 말러와 볼프가 각각 1차 세계대전 이전에 타계한 뒤로 거의 슈트라우스 혼자서 리트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과 동시에 리트의 전통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은 아직도 대다수의 우리나라 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슈트라우스의 첫 번째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모두 리트였다는 사실은 그가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리트 작곡가라는 점을 인식시켜줍니다. 그가 생전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 6세에 작곡한 크리스마스를 위한 리트였고, 그의 '공식적인' 유작이 "네 개의 마지막 노래"이며, 1984년에 비로소 그 존재가 알려진 그의 '진짜 유작' 또한 말년에 특히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인 체코 태생의 전설적인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마리아 예리차(Maria Jeritza)를 위해 작곡한 가곡 "접시꽃"(Malven)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결국 리트 작곡가로 출발하여 리트 작곡가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슈트라우스의 리트는 음악적 측면에서 볼 때 20세기에 작곡된 곡으로는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초기 교향시 및 두 편의 오페라 "살로메"와 "엘렉트라"에서 보여주었던 무조성(無調性)적이고 진보적인 요소들은 그가 오페라 "로젠카발리어"에서 모짜르트의 영향이 뚜렷한 고전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성향으로 전환하여 압도적인 대성공을 거둔 이후로 더 이상 그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슈트라우스는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통에 입각한 음악, 일반 대중들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러한 음악을 지향했고, 덕분에 20세기 음악이라면 무조건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도 슈트라우스의 음악에는 그러한 거리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리트 역시 슈만, 브람스, 말러, 볼프로 이어지는 독일 낭만주의의 전통을 착실히 계승하고 있으며,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이러한 리트의 전통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라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이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노래이자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마지막 노래이고, 동시에 리트의 위대한 전통의 마지막 노래인 것입니다. 이 작품 이후로 독일 음악계에서 더 이상 리트로 불리울만한 작품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줍니다.
자료출처: 네이버블로그의 보카치오님의 글 인용
https://youtu.be/RdRq7ynfkHs?si=ruEgZa629gep2QGH
Richard Strauss - Vier Letzte Lieder | Four Last Songs | Jessye Norman, Wolfgang Sawalli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