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外 1편
성재봉 시인
시든 꽃, 뱀 한 마리 가을산을 오르고 있다
관절이 꺾인 가지가 날선 바람에 쫓기듯
기울어진 산을 오른다
그의 근원은 태초의 바위가 뿌리내린
차갑고 음습한 흙덩어리, 징그러운 모태신앙이
싹틔운 창조주를 향한 경외이다
조상의 배교로 두 동강 난 머리는
천년 후 가을을 피로 물들이고
신을 항명한 죄로 갈라진 혀는 위선의 도구가 되고 말았지
고독(蠱毒)으로 고독(孤獨)을 품고
독이 스민 쓸개는 함께를 망각하여 몸뚱이를 길게만 늘어뜨렸다
밤이슬에 몸을 적시고 오미자 열매를 짓이겨 삼켜도
말라비틀어진 비늘, 마른 독새풀 같은 두 눈
바위에게 조차 가을은 말을 걸었지
… 나는 ……
바위를 칭칭 감아 갈라진 혀로 침묵을 핥았지
돌아온 건 원죄가 각인된 화석의 돌팔매질 뿐
긴 몸을 꿈틀거릴 때마다 소실되어가는 구원
허공을 마주한 오래된 벼랑 끝
시간의 틈에서 흩어진 폭포처럼 떨어지는 절망들
몸을 던진다
허공을 찢으며 튀어오른 경외의 파편들
박명의 서쪽 하늘 끝
잠시 반짝이는 별
아무도 보지 못했다.
불맛
(인간은 불을 소유한 자들에게 지배당하였다)
지난밤 전투는 자작나무를 붉게 물들였다
요동 땅을 밟은 대왕은 희푸른 눈(雪)에 무뎌진 칼을 갈았다
차가운 명왕성의 불기운을 불러와 언 빗돌에 화(火)자를 새겨 넣었다
자작나무의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다
병자년의 난은 끝이 났다
인자한 왕은 오랑캐 수장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예를 바쳤다
남한산성의 도야지들은 배고픈 십자가에 매달려 화형을 당하였다
노을은 무너지고 한강의 얼음이 풀렸다
(지금도 불의 지배는 계속되고 있다)
청파동 골목 끝 적산가옥을 개조한 오성반점
언제 갈아입었는지도 모르는 낡은 작업복
날아간 단추로 부풀어 오른 배꼽 냄새가 춘장 대신 눈인사를 건넵니다
그냥 뭐 대충 손목 스냅으로 휙휙, 별거 없어요 문제는 화력이거든 쫙쫙 갈라진 거북손으로 불을 지핍니다
장팔사모를 들어 올린 기운으로 거대한 웍은 달궈집니다
숭덩숭덩 썰어 놓은 야채들 달달 볶아진 웍은 검은 화장터, 벌겋게 타올라 천국으로 인도하리라
줄지어 서있는 군중의 무리,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나오는 소년의 표정이군요
잘게 잘려 나간 도야지의 붉은 살점, 바다를 썰어 담은 오징어의 검은 눈물, 배멀미로 탄력을 잃은 등굽은 새우, 필리핀에 두고 온 근육을 찾아 밀항을 꿈꾸는 목이 긴 닭의 가벼움까지…
발골한 돼지 뼛국물이 투하되고 멕시코에서 공수해 온 하바네로의 타는 듯한 목마름에 더하여 이마를 스쳐 볼태기를 타고 떨어지는 육수 두어 방울이면 불맛이 완성됩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11월호 발표
성재봉 시인
경남 창녕애서 출생, 2024년 《애지》신인문학상 등단, 풀꽃시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