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었다.”
30여 년 전 주님의 주권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말 설고 물 설은 미국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그 후 그분의 인도로 주님을 섬기기 위한 일련의 훈련 과정을 거치고 졸업할 즈음에, 저는 그분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솔직히 세세한 모든 것에서 당신의 뜻을 따를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큰 결정에서는 제 뜻을 내려놓고,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 후에 미국에 계속 머물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등을 포함한 몇 차례의 굵직한 일들을 결정했어야 했습니다. 돌아보면, 그럴 때마다 주님의 긍휼로 머리이신 주님 그리고 그분의 몸인 교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저의 개인적인 선호를 고집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최근 들어 그런 큰 일만이 아니라 제 삶 속의 모든 일에서 저의 머리로서의 대우를 받고 싶어 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그 연장선에서 아침에 누린 아래 말씀은 전보다 더 깊이 저의 속부분을 만졌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었다.
“제가 이 무리를 추격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셨다.
“추격하여라. 네가 분명히 따라잡을 것이고, 분명히 그들을 건져 낼 것이다”(삼상 30:8)
<회복역 성경>에 따르면, 사무엘기상하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땅을 누리는 길에 대한 예시”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세 명의 주요 인물인 사무엘(삼상 1-8장), 사울(삼상 9-15장), 다윗(삼상 16-삼하 24장)을 다룹니다. 따라서 이들이 가나안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나안 땅의 실재이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먼저 사무엘은 “여호와의 마음과 생각에 있는 것을 따라 행하여” 이 땅에서 그분과 하나 된 삶을 살았습니다(삼상 2:35). 반면에 사울은 자기 생각과 야심을 따라 살다가 결국 하나님과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대조적으로 다윗은 그분의 왕국에서 왕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본을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래와 같이 매사에 ‘여호와께 여쭙는 그의 태도’가 제게 큰 울림이 됩니다.
1) 참고로 위 본문은 다윗이 전쟁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아말렉 족속이 쳐들어와 본거지인 시글락을 불태우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아내들과 아들들을 사로잡아 간 사실을 알았을 때, 다윗이 보인 반응이었습니다. 이때는 심지어 자신의 부하들이 혼이 괴로워서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라고 말하던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사울처럼 임의로 행동하지 않고(삼상 13:9), 제사장인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하여 여호와의 뜻을 여쭈었습니다.
2) 다윗은 피난 생활 중에, 블레셋 족속이 ‘그알라의 타작마당들을 약탈’할 때도 “제가 가서 이 블레셋 족속을 쳐야 하겠습니까”라고 여호와께 여쭈었습니다. 그분의 응답을 받았지만 그것을 부하들이 반대하자, 재차 여호와께 여쭙고 그대로 행했습니다(삼상 23:1-5).
3)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이미 새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삼상 16:13), 기존 왕인 사울도 전쟁에서 죽은 후라 명실상부한 왕이 되었지만, 그 후에도 자기 마음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는 현재 거처인 시글락을 떠나 유다의 성들 중 하나로 올라가도 되는지를 여호와께 여쭈었고, 허락을 받자 구체적으로 어느 성으로 갈지 또 여쭌 후에, “헤브론으로 올라가라”는 구체적인 응답을 받고 움직였습니다(삼하 2:1).
이런 일련의 사례들은 우리의 왕이요 머리이신 여호와께서 마치 안 계신 것처럼 “숨어 계시지만”(사 45:15),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그분의 관점과 의견이 있으신 분임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사전에 여쭤보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시는 도움을 얻게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분이 시키시지 않는 것을 하지 않아서 주제넘은 죄를 짓지 않게 하신다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관련하여 다음 사례들이 생각났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와 수레로 옮겨지다가 소들이 비틀거리자 웃사는 궤가 안 떨어지게 하려고 손을 내밀어 잡다가 궤 옆에서 즉사했습니다. 웃사는 자신의 선한 생각으로 여호와께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다가 주제넘은 죄를 범한 것입니다(삼하 6:6-7). 오 이런 유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둘째, 성경은 신약 교회 안에서 예언과 귀신 쫒음과 능력의 일을 행하던 이들이 정작 그 날에 주님에게 거절당할 것임을 경고합니다(마 7:22-23). 따라서 아무리 자기에게 은사가 있더라도 그분께 여쭤보고 아버지가 원하실 때만 그것을 실행 하는 절제가 요구됩니다.
첫댓글 회복역 신약 성경?
http://www.rv.or.kr/index.php
https://biblesforamerica.org/ko/free-bible/
제가 둘 다 접속이 안되는데요?
본문 중
<회복역 구약성경>이라 고쳐야 하는 것 같아요.
@여호수아 저도 안 되네요...
주소를 복사해서 주소창에 붙이니까 되네요.
@김바울 네
저는 그 방법도 안됩니다.
@여호수아 구글 검색에 ‘회복역’ 혹은 ‘회복역 성경’을 쳐보시면 어떨까요?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