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隴西行(농서행)/ 隴西行四首(농서행4수)- 陳陶(진도)
풀향 ・ 2024. 10. 6.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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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권6 칠언절구 309.隴西行(농서행)/ 隴西行四首(농서행4수)- 陳陶(진도) <농서행> |
隴西行(농서행)
陳陶(진도)
誓掃匈奴不顧身(서소흉노불고신),
五千貂錦喪胡塵(오천초금상호진).
可憐無定河邊骨(가련무정하변골),
猶是深閨夢裡人(유시심규몽리인).
<원문출처> 隴西行/ 作者:陳陶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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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를 소탕하리라 맹세하며 몸을 돌보지 않더니
오천의 정예병 오랑캐 땅에서 죽었구나
가련타 무정하(無定河) 강가의 백골
여전히 깊은 규방의 꿈속 사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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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흉노를 다 쓸어버리겠다고 맹세하던 수많은 정예병들은 오랑캐 땅에서 죽었다. 그들은 이미 무정하(無定河)가에 뒹구는 백골이 되었건만, 그들의 아내들은 이를 모르고 꿈속에서 그들을 만나니, 가련하다.
[解題] 당대(唐代) 안사(安史)의 난(亂) 이후, 국력은 쇠약해지고 변방의 여러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침략해 와 전쟁이 그치질 않았다. 따라서 변방을 지키는 수많은 병사의 희생과 그 아내들의 독수공방은 일상화된 모습이었다. 이 시는 이러한 상황을 악부의 옛 제목에 붙여 지은 작품으로, 모두 4수이지만 당시삼백수에는 제2수만 실려 있다.
첫 구는 ‘誓掃(서소)’, ‘不顧身(불고신)’ 등 병사의 용맹스런 기개를 찬양하여 비장미(悲壯美)가 드러나고, 2구는 1구에서 찬양한 병사들의 죽음을 그려냄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하였다. 앞의 두 구에서 드러나는 비극적인 분위기는 후반부의 규중 여인의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한 포석이 된다. 3구의 ‘可憐(가련)’은 앞의 두 구와 긴밀하게 이어지는데 무정하(無定河)가에서 뒹구는 백골로 죽은 병사들의 모습을 묘사하였고, 4구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아내들이 여전히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말하였다. 특히 4구의 ‘猶是(유시)’는 전환의 기능을 하는데, 병사들이 3구에선 현실의 모습인 처량한 해골이라면, 4구에서는 꿈속의 젊고 용맹한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배치는 비극적 정서가 점점 고조되는 역할을 한다.
이 시는 전쟁을 정면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규중 여인의 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백성들의 괴로운 삶을 남김 없이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絶唱(절창)’이라 불렸으며, 진도(陳陶)도 이 시로 인해 이름이 전해지게 되었다.
혹자들은 이 시가 이릉(李陵)의 일을 읊은 것이라고 본다. 이릉은 한(漢) 무제(武帝) 때의 사람으로 병사 오천을 거느리고 준계산(浚稽山)에서 흉노와 수없이 전쟁을 치른 인물인데, 병사들이 다 죽고 구원병이 없자 이에 전멸하고 말았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이 시를 한 무제의 경솔한 군사 이동을 기롱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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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隴西行(농서행) : 악부(樂府)의 옛 제목으로 〈步出夏門行(보출하문행)〉이라고도 하며, 《相和歌(상화가)》의 〈瑟調曲(슬조곡)〉에 속한다. 본래 “부인이 단장하고 문에서 손님을 맞는다.[婦有容色 能應門承賓]”는 내용이었는데, 양(梁) 간문제(簡文帝) 때부터 ‘고달픈 전쟁과 정인(情人)에 대한 그리움’을 주제로 삼았다.
‘隴西(농서)’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영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일대를 말한다.
○ 匈奴(흉노) : 진한시대(秦漢時代) 때 북방의 소수민족을 일컫는 말이나, 여기서는 당나라 때 서북 지역을 침략하던 소수민족을 지칭한다.
○ 貂錦(초금) : ‘貂錦(초금)’은 한대(漢代) 우림군(羽林軍)이 착용했던 담비가죽으로 만든 갖옷[貂裘(초구)]과 비단옷[錦衣(금의)]이다. 여기서는 선택된 정예병을 말한다.
○ 胡塵(호진) : 서북 소수민족의 거주지를 뜻한다.
○ 無定河(무정하) : 내몽고(內蒙古) 지역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섬서성(陝西省)을 거쳐 황하(黃河)로 흘러 들어간다. 《一統志(일통지)》에 “무정하(無定河)는 변외로부터 흘러 섬서성(陝西省) 유림부(楡林府) 회원현(懷遠縣) 북쪽을 지나 서남쪽으로 미지현(米脂縣)을 거치고 또 동남으로 흘러가 청간현(淸澗縣) 동북쪽을 지나 황하로 들어간다. 일명 사연하(奢延河)라고 하며, 무너져 내린 모래가 급히 흐르고 깊고 얕음이 일정하지 않아 무정(無定)이라 부른다.”라고 하였다.
○ 深閨(심규) : ‘春閨(춘규)’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여기서는 출정한 병사들의 아내가 머무는 거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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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陶(진도) : 자는 숭백(嵩伯)으로, 영남(嶺南: 또는 파양(鄱陽),검포(劍浦)) 사람이다. 오랫동안 진사에 합격하지 못하였는데, 후에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스스로 ‘三敎布衣(삼교포의)’라고 하였다. 선종(宣宗) 대중(大中) 연간에 난리를 피하여 홍주(洪州) 서산(西山: 지금의 江西省 南昌市 新建縣)에 은거하였다. 詩 10권이 있었다고 하나 일실(逸失)되었고, 후인들이 모은 《陳嵩伯詩集(진숭백시집)》 1권이 있다. 《全唐詩(전당시)》에 시 2권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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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서행 4수>
隴西行四首/ 作者:陳陶
全唐詩 卷七百四十五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一]
漢主東封報太平(한주동봉보태평),無人金闕議邊兵(무인금궐의변병)。
縱饒奪得林胡塞(종요탈득림호새),磧地桑麻種不生(적지상마종불생)。
한주(漢主)가 동쪽을 봉해 태평을 알리고,
사람 없는 금궐에선 변방의 군무를 의논하네.
마음대로 임호(林胡)의 변새 땅을 빼앗더라도,
척박한 땅이라 상마(桑麻)는 심어도 나지 않는다.
[二]
誓掃匈奴不顧身(서소흉노불고신), 五千貂錦喪胡塵(오천초금상호진).
可憐無定河邊骨(가련무정하변골), 猶是深閨夢裡人(유시심규몽리인).
흉노를 소탕하리라 맹세하며 몸을 돌보지 않더니
오천의 정예병 오랑캐 땅에서 죽었구나
가련타 무정하(無定河) 강가의 백골
여전히 깊은 규방의 꿈속 사람인 것을
[三]
隴戍三看塞草青(농수삼간새초청),樓煩新替護羌兵(누번신체호강병)。
同來死者傷離別(동래사자상리별),一夜孤魂哭舊營(일야고혼곡구영)。
농(隴) 땅의 나무 변새 풀이 푸르름을 세 번 보았더니,
누번(樓煩)이 새롭게 들어와 강병(羗兵)을 비호하네.
함께 와서 죽은 자는 이별에 아파하고,
이 밤 외로운 혼백은 옛 군영을 곡한다.
[四]
黠虜生擒未有涯(힐로생금미유애),黑山營陣識龍蛇(흑산영진식룡사)。
自從貴主和親後(자종귀주화친후),一半胡風似漢家(일반호풍사한가)。
교활한 적 생포해도 끝이 없으니,
흑산의 군영 뛰어난 인물임을 알겠다.
그들의 왕과 화친한 후에는,
절반의 오랑캐 풍속 한가(漢家)를 닮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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