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바위 부처님
팔공산에서 제일 인기 있는 부처님은 갓바위 부처님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기로는 약사여래이다. 팔공산은 약사불 신앙의 본산이라고 할 만하다. 골골마다 좌정하고 계시는 부처님은 대부분이 신분이 불확실하다. 신분이 확실한 부처님도 계신다. 그러나 모두 다 약사불이라고 부른다.
팔공산이 언제부터 약사신앙 터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이 아니고 최근에 확립되었으리라고 본다.
동화사 입구의 마애여래 좌상은 도상으로는 미륵불이다. 그런데도 약사불이라고 한다. 동봉 석조 여래 입상, 비로봉 마애여래 좌상, 삼성암터 마애여래 입상. 굴불사의 석조 약사여래 입상. 그리고 갓바위 석조여래 좌상을 모두 약사여래라고 부른다. 약사여래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석연치 않는데도 그렇게 부른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이 중에는 가장 인기가 있어 약사신앙의 중심이 되는 부처님이 갓바위 부처님이다.
1992년에 동화사 맞은 편에 거대한 불상을 조성하고,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한 후에 약사여래라고 하였다. 이후로는 약사신앙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제는 팔공산이라고 하면 약사불을 떠올릴 정도이다
갓바위 부처님은 팔공산의 정상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명마능선의 끝부분쯤인 관봉(850m)에 있다. 명마능선은 험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옛날부터 민속 신앙터로 알려져 있다. 그 능선의 끄트머리 쯤이다.
갓바위 부처님은 소원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고 소문이 남으로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험준한 산길이 시장터처럼 붐빈다. 최근에는 자녀의 입시를 앞 둔 부모들이 전국에서 줄을 잇는다. 한 가지 소원, 그건 가장 절박한 소망이기도 하다.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가장 절박한 소망이 무엇일까? 자녀의 입시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영험도를 정하는 것은 부처님 자신일까? 아닐 것이다. 부처님은 그 자리에 좌정하여 아무런 말씀도 없이 앉아만 계신다. 부처님의 영험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을 부처님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다. 이것은 시대의 양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그 만큼 자녀 입시가 가장 바라는 소망이 되었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여러 부처님이 계신다. 서민들과 가장 친숙한 부처님이 약사불이고 미륵불이다. 약사불은 현세의 고통을 없애주는 부처님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고달픈 민초들이 찾아가서 하소연하기에 딱 좋은 부처님이다. 약사불에 비하여 미륵불은 조금 다른 부처님이다. 이 세상에 나타나서 고통을 들어주기는 하지만 개개인의 아픔을 없애주기 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부처님이다. 세상을 뒤짚어 버리듯이 확 바꾸는 부처님이라고 한다. 조금은 혁명적인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밑바닥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이 세상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꿀떡 같을테니 당연히 인기가 있는 부처님이다. 그러나 오늘은 약사 부처님이 훨신 더 인기가 좋다.
이 부처님이 원래 호적에 약사불로 등재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왜냐면 촌로들의 말로는 3-40년 전만 해도 미륵불로 불렀다고 하였다. 두 부처님이 모두 서민들의 삶을 돌보아주기는 하여도 갈래가 다르다. 역할 분담이 조금 다른 부처님이다. 약사불은 서민들이 병이 나든지 하는 현실에서 겪는 고통을 어루만져 준다. 그러나 미륵불은 개인적인 차원의 고통보다는 세상을 개혁하여 새 세상을 열므로, 좀 더 넓은 의미의 치유방법을 가진 부처님이다.
촌노들의 말대로라면 조선 후기 내지 왜정 시대에는 사회의 제도 때문에 민초들이 힘들어 하였으므로 미륵불이 더 성행하였을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에는 개혁사상이 퍼지면서 정감록을 위시하여 애기장수나 진인의 전설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다. 동화사가 창건되면서 팔공산은 미륵불 신앙지라고 믿고 있는 나는 촌로들의 말이 의미 있게 들렸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미륵신앙이 단지 민간신앙으로 유행하였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