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공연이 끝나고 장충동 왕족발집에서 2만원짜리 족발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집으로 가는 길. 애들 먹일 과자하고 음료수 사자고 들어간 체육관 앞 24시간 편의점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계산을 하는데 뒤에서 어깨를 툭 치며 '너 나 몰라?'하는데 모르는 얼굴이라 '누구시더라?' 하다 자세히 보니 중학교 동창놈. 옛날에는 뛰룩뛰룩 별명이 '돼지'였던 것 같은데, 살이 많이 빠져 한 눈에 몰라 보았지요.
"그래, 뭐하고 사냐?"
"인터넷회사 그런 거 해"
"사장이야?"
"그렇지, 뭐"
"근데 이게 몇 년 만이야?"
"한 20년 됐나?"
"그래 여긴 어쩐 일이야?"
"어, 여기 공연이 있어서 구경 왔어"
"공연? 어떻게?"
"어, 아는 사람하고 같이... 너는?"
"나... 그냥"
"그래, 넌 뭐하냐, 명함이나 한 장 주라"
"......"
짚히는 데가 있어서 "너 경찰이냐?"
건네주는 명함을 보니 이 지역 관할경찰서 소속
"조사계에서도 이런 일 하냐?"
학교는? 결혼은? 애들은 몇이며, 어디 사는 지, 반갑다 어쩌구 하다가
"시내 나가면 한 번 갈께, 점심이나 먹자"
동창은 같이 온 동료들하고 먹을 컵라면하고 김치를 사고, 나는 밖에서 기다리는 아내하고 애들한테 나오는데 "여보, 누구야?" "친구.... 응... 중학교 동창... 짭새래 -_-"
자정으로 가는 시간, 장충동 고갯길 버스정류장. 한 손은 다섯 살 짜리 아들놈 잡고, 등에는 엊그제 돌 지난 딸내미. 양손에 분유며 옷보따리 가방을 쥔 아내에게 "여보, 오늘 보니까 우리같은 사람들 많이 왔더라, 그치" 하고 웃었지만, 동창놈 헤어지면서 쳐다보는 '너도 왕년에 데모했냐?'는 눈빛과 아무 생각없던 중학교 시절의 흐린 기억이 자꾸 생각난다.
지금 이 순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고 웃고 있겠지. 국가보안법을 어긴 '양심수'들은 차가운 겨울감옥에서 잠들지 못할 시간. 이제 새천년의 첫 해 마지막 밤이 가기 전에 '안녕- 국가보안법!'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