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푸르기스의 밤 (외 2편)
김예강
푸른 보자기를 하나씩 덮고 자던 도시의 밤이 있다 보자기의 네 귀를 누구든 팽팽히 잡아당기고 있어야 했다 한 쪽이 결리는 어깨가 있었다 한 사나이는 밤새 의심을 한다 귀와 귀 사이 별을 떼 내다 잠이 든다 별 하나를 떼 내면 별 하나가 새로 돋는 밤 오늘밤 날지 못하면 영원히 날지 못하리* 새해 첫날 접시를 깨뜨린 후 깨진 접시 조각을 지붕 위에 깐 적이 있다 누군가를 밤새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달의 귀들이 자라서 붉은 항아리가 되는 밤이 있다 폭죽이 터지는 붉은 밤 바닥은 뿔이 났고 새의 귀들은 커졌다 꽃이 검은 옷을 입었던 밤이 있다 붉은 해가 삼일 밤을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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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사춘기〉에서
고양이의 잠
꽃이라는 못에 나비가 걸렸다
세상모르고 잠자는 서랍
상자가 밀려나도 잠에 빠져있다 구름이라는 서랍
광합성이 필요한지 햇빛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자는
검은 나무 아래 검은 새들의 휘파람에 어스렁 어스렁 흐르고 싶은
구름이라는 서랍
매일매일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땅으로
걸어 들어가는 서랍
사막을 횡단하는 서랍
붉은 사과에도 귀가 있네
붉은 사과에도 귀가 있네 사과에 마침내 드러내는 검고 딱딱한 씨앗
사과 한 알을 다 먹는 사이 사과 한 알이 마침내 검고 딱딱한 귓바퀴만 남기는 사이
사과색 슬픔을 밀어 넣는 사이 슬픔의 무게는 사과가 가졌지
붉은 사과에도 귀가 있네 물의 기술처럼 침묵으로부터 온 침묵이 가닿은 당신의 둥근 무릎 같네 내 입술이 벽을 대고 벽에 볼을 기댄 아이 스무 살 벽과 나란히 누웠네 울음이 흘린 일기장의 흐린 글자들 얇은 이불자락 끌어 얼굴을 가린 아이 난 충분히 용감하고 거칠게 말할 수 있네 당신의 둥근 무릎 한 알의 사과를 먹는 사이
붉은 사과에도 귀가 있네 당신의 얼굴처럼 음악이 내 얼굴을 지우고 있네
뭉개진 눈 사각 볼 기우뚱한 목 내 손이 나를 만지네 지도책은 이틀째 뒤적거렸고 잠적한 손목시계는 사흘째 찾아다니네 눈도 없고 팔이 없는 나무들 무릎 같은 당신의 둥근
붉은 사과의 귓속 내 말이 자라고 있네
—시집『고양이의 잠』(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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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강 / 1961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교육대학교와 동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2005년 《시와사상》신인상으로 등단. 현재《시와사상》편집장. 시집『고양이의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