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룡 월간조선 차장이 전하는 MB정부의 '6·25전쟁 60주년 행사' 우여곡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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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지난 6월 26일, ‘백범 김구선생 64주기 추모식’ 취재차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 갔다가 백범의 차남인 김신(金信)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공군참모총장 역임)의 둘째인 김양(金揚·60) 전 국가보훈처장을 만났습니다.
3년 전 ‘6·25전쟁 60주년 행사’를 치렀던 김양 전 처장은 “올해 열리는 정전(停戰) 60주년 행사도 난관이 예상된다”며 “6·25전쟁에서 우리와 싸운 중국과의 관계도 중시하는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이 행사를 어떻게 치를지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김 전 처장에게 “3년 전 당시 6·25전쟁 60주년 행사를 치르느라 많이 힘드셨겠다”고 하자, 김 전 처장은 “사실, 할 말은 많지만”하고 손사래를 치며 들어갔습니다.
일주일후 그의 사무실로 무작정 찾아가 한참을 채근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지난번 정부때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6·25전쟁 60주년 행사’ 축소를 직접 지시했고, 보훈처가 강력반발했다는 비화를 털어놓았습니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 대통령은 보수층의 압도적 지지로 정동영 후보를 531만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는데,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기가 찰 노릇입니다. 김양 전 처장은 당시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실화(實話)를 들려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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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통령이 2010년 3월 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양 국가보훈처장(왼쪽 세번째)으로 부터 6.25 60주년을 맞아 21개 참전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제작된 '6.25 60주년기념 땡큐액자'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MB "南과 北이 전쟁한 게 무슨 자랑이냐"
2010년 3월 9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후 집권 3년차를 맞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토착 비리, 교육 비리, 권력형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고 선언했고, 최경환 당시 지경부 장관의 이라크 사절단 방문 결과 보고에 대해 “이라크 유전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이때 갑자기 이 대통령은 안건에도 없던 ‘6·25전쟁 60주년 행사’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통상 부처의 안건은 차관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 여러 부처가 관련된 안건은 관련부처 사전협의를 거쳐 상정합니다. 이 대통령의 ‘돌출 발언’에 대해 정운찬(鄭雲燦) 총리도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은 “보훈처에서 ‘6·25전쟁 6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남과 북이 전쟁했던 일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기념사업을 하느냐”며 “지금 경제 여건도 상당히 안 좋으니 재검토를 해보라”는 취지로 10여분 간 발언을 했습니다. 재검토는 사실상 6·25기념행사를 취소하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국무회의 분위기상 어느 장관도 대통령의 지시에 ‘토’를 달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김양 처장은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서 ‘대통령 자신이 훈령(訓令)으로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李洪九 전 총리)’를 만들어 놓고 이렇게 번복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라고 곰곰히 생각했다고 합니다.
당시 보훈처는 2009년 4월 대통령 훈령(제244호)에 따라 ‘6·25전쟁 60주년 기획추진기획단’을 발족시켜 ‘6·25전쟁 기념사업위원회’의 업무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김양 처장은 박형준 당시 정무수석 등과 함께 이 대통령에게 “6·25전쟁 60주년 행사를 2010년 3월부터 시작해서 G20 정상회의까지 마치겠다”고 보고까지 했답니다.
이 대통령은 보고를 받으면서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남북 관계를 고려해 6·25전쟁 50주년 기념행사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고, 이를 위해 국회는 235억원의 예산까지 편성해 주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자, 김 처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한 말씀 드리겠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6·25전쟁은 남북한만 싸운 전쟁이 아니라 유엔 참전국 21개국이 함께 싸운 전쟁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참전한 전쟁입니다. 대한민국 부산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가 있고, 아직도 유엔군은 이 땅에서 전쟁 중입니다. 용산 주한미군사령부에는 지금도 유엔군사령부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6·25전쟁 50주년 행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6·25전쟁 70주년, 80주년 기념행사 때는 참전용사들이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우리 보훈처가 ‘땡큐 액자’를 제작하는 것도 그러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김 처장은 10분 정도 감정이 격해진 상태로 말을 이어갔고, 덕분에 국무회의장은 ‘썰렁’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국무위원들은 통상 20초 이내로 답변을 하는데 10분을 넘겼으니 말입니다. 정 총리가 당혹스러운 듯 김양 처장을 흘끔 쳐다봤고, 이 대통령은 처음엔 경직된 표정으로 듣다 난감한 표정으로 바뀌더라고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김 처장을 외면하고 대신,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왜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런 교육은 안 시키는 거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갑작스레 대통령의 ‘마이크 호출’을 받은 두 장관은 당황하며 “적극 검토해 학생들과 병사들에게 충실하게 교육시키겠다”고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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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3월 22일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한 어린이들이 북한에 의해 폭침됐다가 인양된 천안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천안함 폭침 당하자, "행사 신경 써달라"로 태도 180도 바뀌어
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훈령을 번복하면서까지 행사 축소를 지시했을까요? 당시 청와대가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물밑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의문이 풀립니다.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은 MB의 지침을 받고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임 전 실장이 얼마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숫자는 말할 수 없는데 여러 번 만났다”고 답변한 것으로 미뤄, 2010년 들어서면서 정상회담 개최가 거의 기정사실화 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양 전 처장은 “회담 성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6·25전쟁 6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북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행사 준비를 위해 미국 출장 중인 나를 급히 귀국시켜 국무회의에 참석토록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김양 처장은 3월 3일부터 7일까지 뉴욕·워싱턴을 방문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했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 대한민국 보훈처 명의로 유엔군의 파병에 대한 감사패를 전달했고, 이튿날 미 국방부를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김양 처장은 워싱턴에서 “서둘러 돌아와 귀국 보고하라”는 청와대 전화를 받고 “총리께 결재받고 온 출장인데 난데없이 무슨 보고냐”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청와대는 “더 이상 묻지 말고 서둘러 귀국하라”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당시 보훈처는 60주년 행사를 국내외 참전용사와 가족을 포함해 각계각층이 함께하는 행사를 열기로 결정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던 중이었습니다. 특히 참전 유엔군(전투지원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등 21개국) 가운데 추정 생존자 53만여명에 대한 보훈 사업에 초점을 맞춰 추진 중이었답니다.
문제는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6·25전쟁 60주년 행사를 재검토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지, 보름 만에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북한이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쯤 백령도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을 어뢰 공격으로 침몰시킨 것이지요. 이 사건으로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사망하고 58명이 구조됐습니다.
폭침 사건 이튿날, 김양 보훈처장은 청와대 참모진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이 참모는 “6·25전쟁 60주년 행사를 신경 써 달라”며 “VIP(이 대통령)가 유엔군 묘지를 참배하는 것도 검토해 보라”고 하더랍니다.
김양 전 처장은 “그제서야 비로소 청와대가 북한 김정일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며 “정상회담은 이미 물 건너갔고, 6·25전쟁 60주년 행사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하면 여론마저 험악해질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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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6월 18일 부산시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유엔군 참전묘역 참배에 앞서 경례하며 입장하고 있다.
MB, 44년 만에 처음으로 부산에 있는 유엔군 묘지 참배
보훈처는 대통령의 유엔군 묘지 참배를 추진했고, 이 대통령은 2010년 6월 18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합니다. 이 대통령은 참전 10개국 대사 및 무관 등 주요 인사와 함께 부산 남구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을 찾았습니다. 이 대통령의 유엔군 묘지 참배는 1966년 박정희 대통령 이후 44년 만이었습니다. 김정일이 이 대통령의 유엔묘지 참배를 등떠밀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유엔총회에서 지명한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부산 남구에 14만5450m²(4만4000여평) 규모로 조성됐고, 현재 6·25전쟁에 참전한 21개국 가운데 영국·터키 등 11개국 2300명의 전사자 유해가 안장돼 있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대사는 이 자리에서 김양 보훈처장에게 “왜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전직 대통령들이 유엔군 묘지를 참배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물어 곤혹스러웠다고 합니다.
김양 전 처장은 “대통령들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를 만나 ‘한 건’하려는 생각 때문에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에 나타난 것처럼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적에게 상납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정상회담 개최에 눈이 멀어 6·25전쟁 60주년 기념행사마저 축소했더라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60년 전 이땅에서 피흘린 참전용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천안함 폭침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내리치는 ‘죽비’ 역할을 톡톡히 한 셈입니다.